[ACT! 98호 릴레이인터뷰 2016.5.23]
독립다큐 공동작업실 탐방기 #1
사람 인연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
- 김경만, 노은지, 하샛별 감독 작업실
진행 및 정리 : 민경 (자유인문캠프)
주현 (ACT! 편집위원회)
<편집자 주>
릴레이 인터뷰 시즌1:독립다큐멘터리 단체 시리즈를 마무리하고, 시즌2는 공동작업실을 돌아다니기로 했다. 최근에는 다큐멘터리 작업자들이 굳이 단체를 만들지 않고, 작업실을 공유하면서 따로 또 같이 작업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경향에 대해 어떻게 봐야할까. 공동체가 와해되는 시대의 분위기가 독립다큐멘터리 진영에도 반영되는 것일까. 시대에 발맞춰서 공동체와 개인의 경계를 넘나드는 새로운 활동 양식일까. 큰 질문은 뒤로 하고 먼저 이들을 만나보기로 했다. 첫 번째로 찾아간 작업실은 김경만 감독, 노은지 감독, 하샛별 감독이 함께 쓰고 있는 곳이다. 인터뷰는 학교에서 다큐멘터리를 작업 중인 민경과 ACT! 편집위원회의 주현이 함께 했다. 본문에 “(웃음)” 표시가 많은 것을 먼저 양해드린다. 근데 실제 인터뷰 현장은 훨씬 더 웃겼다.
집 파는 집 앞을 지나칠 때면, 가던 걸음을 멈춘다. 문 앞에 다닥다닥 붙은 전월세 매물정보가 적힌 종이들을 유심히도 훑어본다. 오늘도 맨 처음 보는 방은 투 룸이다. 원룸 월세를 벗어날 길은 요원하지만, 못 먹는 감 찔러라도 보자(?)는 심정이라고나 할까. 작업의 지속성이라는 게 생각보다 정말 간단치 않은 문제란 걸 깨달아 가는 요즘, 독립된 공간에 대한 망상을 해보고는 한다. 왠지 자는 방 하나, 작업실 하나, 그렇게 분리된 공간이 갖춰지면 지금보단 게으름 피우지 않고 안정적으로 더 열심히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것이다.
다만 그것만이 지금 처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최선은 아닐 수도 있다. 어쩌면 그보다 시급한 건 관계망에 관한 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당장 집단을 찾아 해매기도 부담스럽다. 이런 저런 고민에 빠져 다시 허우적거리기 시작할 무렵, 들려온 소식들이 두 귀를 솔깃하게 했다. 근래 점점 더 많은 감독들이 한 작업실을 공유하며 개별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혹시 이분들을 만나면, 이 꼬인 고민 해결을 위한 실마리를 좀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조금 설레기 시작했다.
탐방의 지도를 그려, 그 출발은 김경만, 노은지, 하샛별 감독의 공동작업실로 정하기로 한다. 각자 작업의 영역이 분명해서 안 어울릴 것 같지만, 이들은 지난해 함께 청소년 미디어 교육 프로그램을 여는 등 공동의 기획을 통해서도 시너지를 내고 있다. 세 사람은 어떻게 모이게 되었으며 무엇으로 인해 그 형태가 지속되는 것일까. 총선이 막 끝나고, 해는 길어졌지만 여전히 찬바람이 불던 사월의 어느 날 저녁, 한적한 동네의 골목길을 찾아들어갔다. 대문에서부터 달그락 거리는 접시 소리가 났다.
△직접 준비해주신 저녁을 맛있게 먹은 후 인터뷰를 시작했다. 이들은 작업실에서 모일 때면 늘 함께 밥을 해먹는다고 한다.
왼쪽부터 하샛별 감독, 노은지 감독, 김경만 감독, 장민경 객원 기자
자기소개 부탁드린다.
김경만(이하 경만): (하샛별 감독을 보며) 사장부터 해라.
ACT!(주현): 왜 하샛별 감독이 사장인건가.
하샛별(이하 샛별): 자꾸 이상한 사업이나 알바 거리들 물어오고, 작업실 방만하게 운영한다고 그렇게들 부른다(웃음).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에 대한 다큐 작업을 하고 있다. 편집을 빨리 해야 하는데 늘어놓은 일들이 너무 많아 힘들다. ‘쌍차’ 작업을 하면서 맺게 된 인연으로 ‘현장을 지키는 카메라에 힘’을 이라는 모임에도 함께 하고 있다.
노은지(이하 은지): 요즘 작업은 따로 안 하고 있고 사람들을 도와주고 있다. 자영업자들의 일터 시리즈 작업을 드문드문하고 있고, 학교 교수님의 작업도 도와드리고 있다. 정일우 신부 관한 작업을 같이 하고 있다.
경만: 최근 국회의원 선거에 대한 촬영을 했는데 노은지 감독이 많은 도움을 줬다. 이제 편집에 들어갈 거다. 하샛별 감독의 쌍차 작업에도 스텝으로 참여하기로 했다.
공동 작업실을 꾸리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경만: 작년 인디다큐페스티벌 때 만나서 두 사람에게 같이 하자고 했다. 그 전까지는 서로 잘 몰랐고 그때 처음 봤다.
샛별: 폐막식 뒤풀이 때 술을 계속 같이 먹었는데 그때 얘기를 많이 하게 됐다. 노은지 감독은 <밀양, 반가운 손님> 하면서 친해졌지만 김경만 감독은 별로 안 친했고, 실은 편견도 있었다. 예전에 김경만 감독의 <미국과 바람의 불>(2011)을 본 적 있는데, 그때 너무 힘들어서 5분 정도 보다가 껐다(웃음). 또 한 번은 ‘푸른 영상’에서 진행하는 ‘다큐보기’ 행사에서 <시간의 소멸>(2013)을 보는 날이 있었는데, 그때 준비하는 감독들이 사운드 체크를 굉장히 열심히 하더라. 잘못하면 김경만 감독 화낼 수도 있다며 평소보다 훨씬 분주히 세팅을 하길래, 아 이 감독은 되게 예민하고 무서운 사람인가보다, 라는 편견이 생겼다. 그런데 막상 술자리에서 얘기 하는 거 들어보니, 영화랑은 또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 하샛별 감독.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등 주로 노동운동과 관련한 작업을 많이 했다. 아래는 작업 리스트(공동 연출 포함)
나의 길위에서 (2010)
와배우겠노 (2012)
대한문 투쟁이야기 ver1.0 (2012)
하늘을 향해 빛으로 소리쳐 (2013)
대한문을 지켜라 (2014)
밀양, 반가운 손님 (2014)
거리에서 온 편지 (2015)
ACT!(민경): 작업실 제안을 했던 이유가 무엇인가?
경만: 좋은 사람들인 것 같아서. 인디다큐페스티발에서 <밀양, 반가운 손님>(2014)을 봤는데, 노은지 감독의 촬영이 좋았다. 같이 작업을 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샛별 감독 작품은 그 영화의 첫 번째 에피소드였는데, 늦게 들어가는 바람에 마지막 부분 밖에 못 봤다. 갑자기 극영화가 나오길래 처음에는 상영관을 잘못 들어왔나 생각했다(웃음). (필자 주: <밀양, 반가운 손님>에서 하샛별 감독이 연출한 첫 번째 에피소드만 극영화다). 그래도 취지가 좋았다. 마침 나중에 둘 다 작업실을 구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어서 공동 작업실을 제안했다.
은지: 나는 그런 말 한 적 없다(웃음).
샛별: 둘이서 서로 이야기 된 거 아니었나? 아무래도 그날 내가 또 술 먹고 헛소리 한 것 같다(웃음). 어쨌든 그날 처음 만나서 이야기 한 뒤, 한 번 더 같이 만나서 고민해보자고 얘기를 했다.
은지: 그때 나는 취업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공동 작업실을 꾸릴지 말지 확정도 안 된 상태일 때, 직방, 다방 사이트 보는 게 너무 재밌었다(일동 웃음). 결국 그 이야기 나온 지 한 달 만에 방을 구했다.
이전에는 각자 어떤 방식으로 작업했나?
샛별: ‘푸른 영상’에서 조연출을 하기도 하고,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이 대한문에서 농성중일 때 영상팀을 꾸려서 필요한 속보영상을 만들었다. 공동 작업을 하기도 했는데 따로 공간은 없었고, 필요한 일은 그때그때 집에서 했다. 한계를 느꼈고, 작업실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 마침 김경만 감독님을 만난 거다.
은지: 원래는 학교에서 조교를 하면서 주로 학교에서 작업했다. 짧은 영상 작업은 남자친구 집에서도 했다. 주로 남의 집을 전전하면서 했다(웃음). 그때 만든 게 <옥탑방 열기>(2012)다. 에이즈 감염인 커플이 살았던 이야기를 찍었다. 일종의 사랑영화를 만들었다(웃음).
경만: 난 아카이브 푸티지 쪽으로 분류가 돼있는 사람이다. 촬영도 가끔 하긴 하지만 작업방식에 있어 다른 다큐멘터리 액티비스트들과 다른 부분이 있다. 이 작업실을 오기 전에는 영화제작소 ‘청년’에 있었다.
△ 김경만 감독. 아래는 작업 리스트.
각하의 만수무강 (2002)
하지 말아야 될 것들 (2003)
골리앗의 구조 (2006)
바보는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 (2008)
미국의 바람과 불 (2011)
시간의 소멸 (2013)
삐 소리가 울리면 (2014)
지나가는 사람들 (2015)
광화문의 어떤 하루 (2015)
공동 작업실을 꾸린 전후 달라진 점이 있다면?
경만: <지나가는 사람들>(2015)을 보면 ‘쌍차’ 농성 장면이 잠깐 나온다. 푸티지 편집을 주로 하다 중간에 촬영한 장면이었는데, 하샛별 감독과 지내게 되면서부터는 쌍차 노동자들을 직접적으로 만나고 있다. 현장에 나가 그분들을 보는 게 나한테도 좋은 계기가 되는 것 같다.
샛별: 혼자서 작업할 때는 못했던 것들을 해볼 수 있어서 좋다. 최근에 인터뷰 촬영을 할 일이 있었는데, ‘투 캠’(필자주: 카메라를 두 대 써서 촬영하는 것)은 생각도 못했는데 두 사람이 얘기를 해줘서 투 캠을 했다. 그런 부분에서 자극이 된다. 김경만 감독이 처음 카메라를 맡았는데 세팅이 엄청 오래 걸렸다. 뭐든 꼼꼼하게 하는 걸 보면 많이 배운다. 생활적으로 변한 것도 있다. 김경만 감독이 생협 조합원이라서 초반에는 대형 마트에서 장보는 걸 함부로 못했다. 지금은 나도 생협 조합원이 됐다. 다 생협 물건을 쓰는 건 아니지만, 합성세제 대신 고형비누를 쓰는 등 노력중이다. 아 프라이팬도 스테인리스로 바꾸고(웃음).
은지: 나는 원래 취업을 고민했었다. 방세도 내야하고. 밥먹고 살아야하는 부분에 대한 고민을 별로 하고 싶지 않아서다. 그런데 작업실을 같이 꾸린 뒤에 두 사람 생활을 보니까, 어떻게든 사는 거다. 물론 이 사람들은 집이 월세는 아니었다(웃음). 그래도 내 또래 친구들과 삶의 태도가 다른 것 같아서 두 사람을 관찰했다. 작업에 대한 확신이 계속 있고, 자신의 시간에 대한 가치를 알고 잘 쓰는 것 같았다. 또 하샛별 감독은 굳이 혼자 고립돼서 생각을 하지 않고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에너지를 주고받는 것 같았다. 돈이 굳이 없어도, 삶을 살아갈 수 있게끔 하는 다른 에너지를 받고 있는 듯했다. 김경만 감독님은 뭐 그런 에너지는 없는 것 같지만(일동 폭소). 그래도 이렇게 살면 되겠다는, 신념 같은 게 이미 정립되어 있는 사람인 것 같다. 난 이렇게 왔다 갔다 하는데. 그래서 아 저렇게도 살 수 있는 거구나하는 생각을 하면서 예전보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많이 없어진 것 같다. 예전에는 돈 안 벌면 안 버는 대로, 작업 안하면 안 하는 대로 불안했다. 지금은 남을 돕고만 있어도 별로 안 불안하다.
경만: 많이 좋아졌다.
샛별: 은지가 초반에 엄청 불안해했다.
경만: 나는 원래 사람이 좀 고립적이었는데 공동 작업실이 생기면서 사회생활이 넓어졌다. 노은지, 하샛별 만난 이후로 경박해졌다는 생각도 든다. 포도당 과다인가(웃음).
△ 노은지 감독. 아래는 작업 리스트 (공동 연출 포함)
경계를 넘어 (2008)
기억을 걷는 시간 (2011)
옥탑방 열기 (2012)
밀양, 반가운 손님 (2014)
지난해 여름 하샛별, 김경만, 노은지 감독은 다음세대재단이 함께 운영하는 청소년 미디어 창작지원 사업 ‘유스보이즈’에서 열린 미디어 교육자 프로젝트에서 <기록필름과 현대사>라는 제목의 강의를 진행하기도 했다. 김경만 감독의 영화, <각하의 만수무강>(2002), <삐 소리가 울리면>(2014), <하지 말아야 될 것들>(2003)을 보고, 관련된 한국현대사에 대해서 참가자들과 토론하는 수업이었다. 여기서 만난 한 친구와 함께 김경만, 노은지 감독은 역사 공부 세미나도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ACT!(민경): 어떻게 그런 교육을 하게 된 건가. 원래 같이 미디어 교육을 했나.
샛별: 나랑 노은지 감독은 원래 각자 청소년 미디어 교육을 하고 있었다. 그때 당시 제작 교육에는 약간 싫증이 난 상태라 다른 걸 해보고 싶었다. 마침 김경만 감독이 미디액트에서 현대사 강좌를 하고 있었고, 이걸 같이 접목시켜보면 좋을 것 같았다. 한창 역사 교과서 왜곡 문제가 불거지던 시기이기도 했고.
경만: 청소년 교육은 이 양반들을 만나서 처음 해보게 된 거다. 원래 청소년 교육 쪽은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제안을 해줘서 같이 하게 됐다.
△ 인터뷰를 진행한 장민경 객원 기자
ACT!(주현): 그때 진행했던 수업에 대해 좀 더 설명을 해달라.
샛별: 영화를 보고, 질문지를 작성하고, 한 번 더 영화를 보여주고, 다시 질문 정리하고, 그 질문 하나 하나에 대해 토론하는 형식으로 진행했다. 청소년 역사 교육을 하게 된다면, 기존의 강의 방식과는 다르게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노은지 감독도 주입식 교육을 싫어했다. 은평구에 있는 신나는 애프터 센터 친구들과 노은지 감독이 수업했던 친구들이 주로 참여했다. 멤버십이 되게 좋았다.
작업뿐만 아니라 밥도 같이 먹고 세미나도 진행하는 공통 공간이다보니, 일 분담은 어떻게 하는지를 물어봤다. 돌아온 답은 역시나, 각자 잘 하는 것을 맡아 자율적으로 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돈 관리는 하샛별 감독이, 요리는 김경만, 하샛별 감독이, 설거지는 노은지 감독이 하는 식이었는데 크게 충돌하는 부분은 없다고 했다.
ACT!(주현): 각자 일과가 어떻게 되나? 출근 시간도 있나
경만: 그런 거 없다.
샛별: 둘은 늦게 일어난다. 특히 김경만 감독은 10시 12시 사이, 해가 다 떠야 일어난다. 나는 원래 시골사람이라 전날 술을 먹고도 다음날 아침 6시 반에 눈이 떠지는 사람이다. 지난 번 쌍용자동차 출근 투쟁에 두 사람을 초대 한 적 있는데, 되게 힘들어 하더라(웃음). 최근에는 선거 촬영 때문에 일찍 일어났지만, 보통은 두 사람 다 늦게 나와 늦게 나간다.
서로 스타일이 많이 다른 것 같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공동 작업실을 이어나가게끔 하는 이유는 뭐라 생각하나.
경만: 각자 다르지만 또 같이 지내는 동안 느끼고 경험하는 게 있기 때문이다. <밀양, 반가운 손님>에서 하샛별 감독의 취지 같은 게 좋았고, 노은지 감독 같은 경우 놓여진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데서 공감대가 형성되는 게 있었던 것처럼.
샛별: 나는 굳이 작업이 아니라 해도 다른 활동도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예를 들어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다른 영역, 활동가로서 하고 싶은 일들을 할 수 있다 생각한다. 다만 지금은 영상을 통해 말하고 싶다는 욕망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그래서 늘 갈등하기도 하지만, 지금 옆에 이런 사람들을 둠으로 인해,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을 더 잘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경만: 나는 영화밖에 할 게 없는 사람이고. 샛별은 영화와 활동의 중간에 있는 사람이고. 은지는 영화와 취업의 중간에 있는 사람이고(웃음).
샛별: 그래서 서로서로 채워지는 것 같다. 또 사람들끼리 잘 맞는 에너지라는 게 있지 않나. 난 만약 나 같은 사람 세 명이 있으면 힘들 것 같다. 물론 김경만 감독 같은 사람 세 명 있는 것도 힘들 것 같다.
요즘 드는 고민이나, 화두가 있다면?
샛별: 지속가능한 음주?(웃음) 아프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늘 한다. 최근에 떠오른 화두도 있다. 1년 정도 같은 미용실에 다니면서 같은 미용사와 얘기를 나누게 되는데, 불현듯 직업병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노동형태에 따른 직업병이 뭘까, 궁금해졌다. 미용사들은 화약약품 때문에 손이 엉망이다. 손목도 다 나간다. 다양한 노동을 하는 사람들의 몸이 각자 어떻게 반응하고, 또 우리 사회는 이를 어떻게 책임지는지, 그에 관한 작업을 한번 해보고 싶다. 앞으로도 노동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이고 싶다.
경만: 제주도 촬영을 해볼까 생각하고 있다. 4.3에 대한 작업인데,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다. 과거 지나간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실은 언제나 현재적인 것이기 때문에 작업을 한다. 역사적인 피해가 반복되는 문제도 있지만, 그것뿐만이 아니라 그런 사람들의 경험이 말 그대로 현재에 녹아든 것에 관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군인들이 과거에 베트남에서 전쟁을 경험했다는 데서 피해가 그치는 게 아니라, 한국에 돌아왔을 때,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정상적으로 꾸리기 힘들다는 데서도 문제가 발생한다. 이 관계에는 어떤 왜곡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곳에서의 경험이 한국 사회 속에서 재생산되는 것이다. 결국 과거라는 것이 현재적이라는 얘기를 하고 싶다. 4.3은 현재 한국이 가지고 있는 문제의 출발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은지: ‘일터’라는 주제로 계속 소상공인을 찍고 싶다. 살기 힘든 하루를, 그 시간을, 자신이 쌓아온 기술들을 어떻게 이용해서 잘 지나가는지. 그런 기술들을 잘 포착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남들은 별 것 아닌 것 같은, 그들만의 장사하는 방식이나 공간을 꾸리는 방식 등을 잘 관찰하고 극대화해서 어떻게 하면 잘 보여줄 수 있을지를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글도 정리를 하고 영상도 찍어서, 그런 것들을 외부로 계속 보여주고 싶은 생각이 있다. 소상공인? 영세자영업자? 이렇게만 표현하기는 힘들다. 노동자도 아니고. 노점상도 아니고. 적절한 용어를 잘 못 찾겠다.
끝으로, 공동 작업실을 꾸려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참고가 될 만한 말 하나만 해달라
은지: 2008년 3월 내가 다큐새싹이던 시절 이야기다. 처음으로 영화제에 갔을 때다. 그때 김경만 감독님 영화를 봤다. GV 시간 때 처음으로 질문을 했는데, “알아서 생각하라”는 답변을 들었다. 불친절하고 쌩하고 어두운 느낌이었다. 그 뒤로 계속 김경만 감독 작업을 안 봤다(웃음) 그러니까, 관객과의 대화 할 때 꼭 친절하게 하자. 사람 인연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일동 웃음).
최근 공동 작업실 문화가 퍼져가는 현상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이들은 높은 부동산 값과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라는 이유를 꼽았다. 공통의 목표 속에서의 협업이 아닌 서로 다른 영역 사이의 연계를 꾀하는 이들은 그렇게 조용한 어느 동네 구석에 터를 잡고 따로 또 같이 작업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어제까지 작업실에서 아카이브 푸티지 작업을 주로 하던 그는, 오늘 활동가와 감독의 경계에 선 그녀의 현장에 함께 서있을 것이다. 그녀 또한 내일이면 작업과 생활 사이를 고민하는 또 다른 그녀의 자그마한 작업 현장에 함께 서있을 것이다. 그 속에서 발생하는 예측불가한 어긋남과 차이는 이들에게 오히려 즐거움이다. 그러다 날이 어둑어둑해지면 다시금 이들은 작업실에 모여들어 함께 맛있는 밥을 지어먹을 것이다. □
<필자소개>
장민경
기업화된 대학에 관해 오 년째 글을 쓰고 영상을 찍어 나르고 있다. “희망의 진지전을 펼치자”며 모여든 자유인문캠프 기획단들과 함께 ‘자기-교육 운동’을 하고 있으며, 독립저널 <잠망경>과 <잠망경TV>를 꾸려나가고 있다. 대학과 사회, 교육에 관해 명확히 풀리지 않는 고민을 안은 채, 흩어져있는 대학생들의 모습을 기록해 두는 데 관심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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