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 98호 Me,Dear 2016.5.19]
글에 대한 어떤 두려움
성상민(ACT!편집위원회)
언제부터 인지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주장이 확실하면서도 논쟁의 여지가 없는 완벽한 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물론 이런 글 자체는 나쁘지 않다. 확고한 주장과 정합성이 높은 글은 글을 쓰는 이들이라면 다들 원하는 글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자신에 내재되어 있는 두려움을 되새기다 보니 결국 깨닫고야 말았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결국 분명 내 안에 존재하고 있는 트라우마를 말이다.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직후의 일이었다. 나는 그 때 모 인터넷 신문의 문화부 기자로 활동하고 있었다. 사단은 그 때 발생했다. 문제가 된 기사는 2009년 말 신동일 감독의 <반두비>가 청소년을 대상으로 만들었지만, 정작 영상물등급위원회의 등급 분류에서는 ‘18세 미만 관람불가’(현,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은 것을 지적하는 내용 이었다. 동시에 <반두비>에 대한 불합리한 등급 분류가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의 최근 행보와도 연결되어 있다는 언급을 했다. 기사가 발행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난생 처음 보는 번호로부터 연락이 왔다. 전화를 받자마자 수화기 너머 상대방은 내가 그 기사를 쓴 장본인이냐고 다짜고짜 물어왔다.
아무 것도 모르고 그저 그렇다고 말을 하자, 그는 자기가 영진위에서 근무하는 직원이라고 말했다. 그리고서는 왜 기사에서 영진위에 대해서 허위 사실을 꾸며 적었냐고 따졌다. 그 날 아침부터 영진위 위원장이 회의에서 내가 쓴 기사를 꺼내더니 무척이나 노발대발했다고 직원은 전해왔다. “대체 왜 그렇게 기사를 쓰셨어요. 기사를 보자 하니 영진위가 <반두비> 등급 분류에 관여한 것처럼 오해할 수 있게 만들었던데, 왜 그런 거짓말을 쓰신 겁니까? 이 사람 이거 악질이네. 조만간 고소할 수도 있으니 나중에 직접 만나서 이야기나 좀 들어봅시다.” 그 말을 끝으로 전화 통화 역시 끝났다. 순간적으로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 순간처럼 자존감이 바닥으로 떨어졌던 적은 없었던 듯하다. 이 모든 게 내 잘못처럼만 느껴졌다. 다시는 글을 쓰면 안 될 것만 같았다.
며칠 뒤 사건은 언론중재위원회를 통하여 일단락되었지만 여파는 컸다. 이전의 글쓰기와는 분명 달라져있었다. 조금이라도 트집을 잡힐 부분이 있거나, 허점이 보이면 바로 나에게 공격이 들어올 것이라는 공포감이 먼저 들었다. 하필 사건이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시 인디스페이스가 영진위에 의해 내쫓긴 빈자리에 뉴라이트 활동 의혹을 받던 시네마루가 들어오자 그에 대해서 기사를 썼는데, 시네마루 대표가 직접 자신에게 가해진 의혹을 반박하며 나를 비판하는 댓글을 단 것도 내 공포심을 더욱 부추겼다. 대체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나에게 정말 왜 그러는 건데. 무서운 동시에 분노가 치밀었다. 그리고 A4 1장이나 되는 장문의 댓글을 올리면서 나는 마지막 문단에 그에게 영진위 직원이 먼저 협박해왔던 말을 동시에 적어 올렸다. 그런 식으로 인신공격을 하면 나도 고소를 할 거라고. 그 말에 대표가 지레 질린 건지, 아니면 별 관심은 없었던 건지는 몰라도 내가 댓글을 단 이후 대표는 후속 댓글을 달지 않았다. 하지만 상처가 완전히 아문 것은 아니었다.
(사진출처=Pixabay)
한동안은 잊었다고 생각했다. 막 입학한 대학교 생활에 적응하느라 바빴고, 교지편집위원회의 신입 편집위원으로 들어가 글 쓰는 것을 기본부터 다시 차근차근 배우느라 이렇다 할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기억 너머 저편으로 날려 보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몇 년 전부터 다시 본격적으로 글을 쓰면서부터 스멀스멀 공포감이 나를 잠식하기 시작했다. 어떤 칼럼은 독자들로부터 칭찬을 들었지만, 첨예한 논쟁이 될 수 있는 몇몇 글들은 SNS와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 상에서 나를 ‘안주거리’로 만들었다. 자신들이 좋아하는 대상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마치 오징어와 땅콩처럼 잘근잘근 씹어 발길 수 있는 존재로 여겼다.
애초에 악플을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나는 진심으로 그런 댓글을 남기는 사람이 너무나도 원망스럽고 싫었다. 정말 어떤 식으로든 복수를 해주고 싶은 분노가 솟구쳤다. 그리고 작년 5월, 내가 쓴 칼럼이 수많은 SNS와 커뮤니티로 무수히 퍼지고 나를 공격해올 때 결국 나는 참을 수가 없었다. 며칠 동안 잠을 못 자고 화에 치밀어서 나에게 달린 악플을 전부 저장해두었다. 그리고 도합 천여 장에 이르는 고소장을 만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밤을 새면서까지 일일이 고소장을 만든 내 자신이 신기하지만, 나는 어떻게든 복수를 해야겠다는 일념에 가득 찼던 것 같다. 검찰청에 고소장을 제출한 이후, 길고 긴 경찰서 방문이 시작되었다. 매번 경찰서를 찾아오는 나에게 ‘이래서 인터넷 실명제가 다시 부활해야 한다’고 강변하는 경찰도 싫었지만, 그런 경찰에 대한 불쾌함도 이길 정도로 내 분노는 너무나도 깊고 강하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내가 고소를 제기한 사건 중 대다수는 기각되었고, 몇 건은 기소 처분되었다. 악플을 단 가해자는 나에게 전화를 걸어 용서를 원했고 나는 거절했다. 용서를 부탁하는 그들에게 나는 알량한 사과가 아닌 물질적인 수단으로 사죄를 하기를 제시했고, 다시 그들은 너무나도 버겁다고 했지만 나는 그들의 부탁이 단지 동정심을 자극하기 위한 추태로 여겨져서 수화기 너머로 분노와 역정을 토해냈다. 합의문을 작성한 뒤에도 매달 독촉 전화를 그들에게 걸어 나는 끝끝내 한 치의 틀린 액수도 없이 합의금을 전부 받아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분노는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그 이유를 나는 처음엔 내가 제기한 고소 대부분이 기각되어서 그런 것인 줄로 알았었다. 더욱 집요하게 나에게 악플을 단 사람을 찾아내 계속 고소하고, 또 고소하고를 반복했다. 하지만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서야 나의 분노가 계속되었는지를 알 것 같다. 내 분노는 내가 공격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 기인한 것이 아니었을까. 어떻게든 완벽하고, 한 치의 의심도 찾아보기 쉽지 않은 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은 내 자신을 더욱 지치게 만들었다. 내 글에 대해서 가해지는 욕은 곧 내 자존감을 건드리는 것이자 협박처럼 다가왔다. 공포가 나를 더욱 분노하게 만든 것이다.
물론 분명 좋은 글이 필요하다. 엉성한 글보다는 좀 더 엄밀하게 구성된 글들이 많은 독자에게 사랑받고, 훌륭한 평가를 얻는다. 하지만 그런 글을 쓰기 위해서 내 마음이 계속 지쳐야 한다면 과연 그것은 옳은 길인 것일까. 약 7년 전 다가온 공포는 나에게 강박이 되었다. 그리고 다시 다른 누군가를 혹독하게 부리고, 또 다른 상처를 낳는 원천이 되고 말았다. 악플을 달았던 이들의 행동은 분명 잘 했다고는 볼 수 없지만, 생각해보면 다시 그리 가혹하게 굴 일은 아니었다. 나는 이따금씩 글로 그런 두려움과 강박을 가지고 사는 이들을 비판해왔지만, 정작 내 자신도 그런 행동 양식에서 전혀 자유롭지 않았다.
트라우마는 한동안으로도 계속 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앞으로도 글을 계속 써야하는 입장에서 좋은 글을 써야만 한다는 강박은 계속 자극될 것이 뻔하다. 또한 아직 내가 제기한 고소가 여전히 많이 남아있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늦은 자기 성찰일지도 모르지만, 이제는 조금 여유를 가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누구나 좋은 글을 쓰고 싶지만, 항상 좋은 글을 쓸 수만은 없는 것이다. 어쩌면 그런 강박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때, 정말 훌륭한 글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쉽지는 않지만, 천천히 내 마음에 채워진 족새를 풀려고 이제부터라도 시도해보려 한다. □
[필자소개] 성상민(ACT!편집위원회)
지금은 사라진 만화언론 [만]에 2005년 얼떨결에 객원필진으로 데뷔해 한 10년 이상 팔자에도 없을 줄 알았던 글쓰기를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 빨리 졸업하려고 다짐했던 경희대학교 사회학과는 2010년 입학한 이래 졸업 학점은 아직 한참 많이도 남았지만 이젠 뭐 언젠간 졸업하겠거니 하고 만다. 지금은 [ACT!]와 [미디어스]를 중심으로 만화, 영화, 미디어 등 각종 문화에 관련된 글을 줄창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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