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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68호 안녕!인디스페이스!] 인디스페이스(Indie Space)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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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 acteditor 2016. 1. 21.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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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68호 안녕!인디스페이스! 2009.12.30]


인디스페이스(Indie Space)를 찾아서

김유리 (독립영화 관객)

 

 

 

‘안녕 인디스페이스'라니…… 도무지 무엇이 ‘안녕'이라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나 역시 인디스페이스의 운영주체가 공모를 통해 바뀐다는 것은 이미 전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그러나 오히려 독립영화 전용관이 늘어난다는 뉴스들이 간간히 ‘반갑게' 나오는 요즘 아닌가. 그간 수고했던 운영진이지만, ‘공모'라는 ‘민주적'인 방식을 통해 새로운 운영진의 새로운 운영의 묘를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거라고 믿고 있는 사람들이 분명 존재할 것이다(그래서 때때로, ‘민주적', ‘참여'같은, ‘너무도 당연한 말들'은 그만큼 힘이 없다). 그래서인지 이번 공모를 통해 보수적인 운영주체가 인디스페이스를 비롯한 여러 전용관들을 접수할 것이라며 미리 긴장하고 싶지는 않았다. 부산영화제 김동호 위원장도 공무원 출신이라고 하지만 훌륭하게 영화제를 이끌지 않았나.

 


따라서 이 자리는 나의 '독립영화 관객' 정체성이 시간에 따라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인디스페이스는 그 시간의 어디쯤에 위치해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이를테면 이것은 나의 ‘독립영화 관람 경험사'이다. ‘인디 스페이스', 독립영화 공간을 찾아 떠났던 시간들이었다. 그리고 모든 게 시장 논리로 사고되는 세상에 걸맞게, 소위 ‘독립영화의 소비자 주권'을 요구할 것 같다. 독립영화란, 여전히 그 실체가 모호하긴 하지만, 적어도 이런 식으로 체험되는 것이라고 이야기해 둔다면 앞으로의 운영진 역시 참조할 수 있으리라.

 

 

1. 2003년~2005년 겨울. 독립영화, 동시대성의 매체

 


지방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서울에 올라온 것이 2003년. 이때 독립영화는 내가 서울에서 반드시 ‘체험'해야 할 ‘선진문물'이었다. 당시 내 고향 전주에서는 영화제 기간이 아니면 ‘비상업영화'를 볼 수 없었다. 2003년 초봄, 옷가지며 책 따위를 실은 아버지의 차 트렁크 안에는 고이 모아둔 서울의 극장 팸플릿들도 들어있었다. 고교시절 전주국제영화제 기간 동안 모아둔, 미지의 세계에서 온 미지의 영화에 대한 안내문들은 서울에서 내가 반드시 순례해야 할 장소들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런데 왜 나는 ‘예술영화 팬'이 아니라 독립영화 관객이 되었나. 아마 그 이유는 독립영화를 보는 경험의 ‘동시대성' 때문 아니었을까 싶다. 사실 그 시점에서 독립영화는 ‘선진문물'이라는 점에서 다른 예술 영화나 전국 동시개봉을 하지 않은 저예산 영화들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혹은 덕수궁미술관이나 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블록버스터 전시회'와도 그리 다르지 않았다. 예술/고전영화나 르네상스 화가의 전람회를 보며, 쇼트 하나, 붓질 하나에도 신경질적으로 예민한 어떤 감식안을 갈고 닦는 것 역시 촌에서 올라온 소녀가 지향해야 할 ‘교양 있는 서울 시민'의 법도였다. 하지만 동시대의 독립영화에는 그런 나의 ‘따라잡기' 욕망, ‘지방 출신 콤플렉스'까지도 포함한 ‘날 것의 세계'가 들어있었다. 「그의 진실이 전진한다(신재인, 2002)」에서는 끝내 갈등과 부조리가 소화전 호스에서 물이 뿜어져 나오듯 흘러 넘쳤다. 「원더풀데이(김현필, 2003)」는 ‘못생기고 촌스러운' 주인공들의 쉽지만은 않은 ‘친구사이'를 보여주면서, 창백한 여주인공이 등장해 ‘영성'을 설파하는 롱테이크 예술영화가 주지 못하는 감동을 선사했다(말이 그렇다는 거외다). 독립다큐멘터리들이 열어젖힌 세계는 두말할 것도 없었다.

 


더 보고 싶었다. 일 년에 몇 번 열리는 독립영화제들을 손꼽아 기다리지 않고도 지금 여기서 더 많은 독립영화들을 보고 싶었다.

 

 

2. 2005년 봄 ~ 2007년 여름. ‘작은 영화'말고 독립영화

 


우연찮게 영상자료원 독립영화 관객모임 ‘해피투게더 독립영화'에 합류하게 되면서 독립영화를 적극적으로 보고 ‘공부'한 때다. 이때 나는 참 열성적이었는데, 영상자료원에서 오래된 독립영화들을 꺼내 보며 독립영화의 역사를 훑어나갈 정도였다. 물론 나중에 취직할 때 이런 ‘특이한' 경험이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리라 생각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독립영화라는 급진적인 미디어가 한국 사회를 그려내는 방식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살펴보는 일은 퍽 흥미롭고 가슴 떨리는 일이었다.

 


특히 전주국제영화에서 한국장편독립영화들을 심사하는 ‘관객평론가'활동을 하게 된 일이 결정적이었다. 전북지역 신문사에서 관객평론가들에게 인터뷰를 청했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트는 작품들이 난해하고 대중적이지 못하다는 비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라는 질문이었다. 순간 버럭 화가 났다. “아니, 왜 대중을 무시하시나요?” 대강 이런 대답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별건 아니었다. “지방 출신도 어려운 영화, 독립영화 이해할 수 있다!”는 항변이었을 뿐이다. 지방에서 자랐다고 해서, 근처에 다양한 영화들을 볼 기회가 그다지 주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그가 언제나 텔레비전 멜로드라마 같은 영화들에만 안주해야 한다는 건 곧 ‘불평등'이었다. 더 많이 볼 기회만 있다면 취향이나 감식안쯤은 개발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따라서 독립영화는 쉽고 감동적인 것 그 이상이어야 했다. 말랑말랑하고 귀여운 단편영화들도 분명 가치가 있지만, 표현의 한계를 넘나들면서 사람들에게 충격과 각성을 주는 ‘어려운 영화들' 역시 분명 보일 기회를 가져야 했다. 당시 독립영화를 ‘작은 영화'라고 부르고 싶어 하던 영화진흥위원회 쪽의 주장에 반감이 생긴 것도 이 때문이었다. ‘작은 영화'라는 소박한 말보다 더 강력하고 힘이 센, 그런 것으로 나는 독립영화를 바라보고 싶었다. 이때 본 김경묵 감독의 「얼굴 없는 것들(2005)」, 곡사의 영화들은 많은 영감을 주었다.

 


함께 독립영화 관객 모임을 하던 이들이 전용관을 준비하던 모습 역시 이에 조응하는 것이었다. 낡은 중앙시네마에 둥지를 틀게 되었지만, 휠체어 장애인이 접근 가능한 1층 상영관을 반드시 확보해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던 그 밤이 생각난다. 이를 비단 ‘작은 영화'로서의 소박한 지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권리를 요구하는 ‘독립'의 태도를 견지하는 것으로 해석했다면 지나친 것일까. 그때 나는 혼자 ‘나중에 곡사의 어렵고 무엄한 영화들도 개봉의 권리를 갖게 되겠지.'라고 생각하며(그리고 2009년 드디어 「고갈」이 개봉을 했다), 약간의 두려움, 약간의 흥분, 그리고 다량의 술에 취해 있었다.

 

 

3. 2007년 겨울~ 현재 : 불편 달콤한 꿈, 독립영화.

 


드디어 독립영화전용관이 생겼다. 그리고 나는 졸업을 했다. 1년 동안 50개가 넘는 자기소개서를 썼다. 기업이 원하는 인재가 되기 위해 가치관마저 바꿔야했던 나의 동료들은 누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광화문의 촛불들을 ‘반동'이라 일컫는 데 주저하지 않게 되었다. 만족스럽지 못한 면접을 보고 나와, 익숙지 않은 구두를 끌고 서울 도심가를 걷다보면 이내 인디스페이스에 도착해 있었다. 독립영화는 여전히 강퍅한 세계를 타협 없는 자세로 그리고 있었다. 지친 마음을 달래주는 다정한 영화들은 아니었다. 그러나 당시 나는 ‘타협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고 협박하는 이 세계로부터 잠시 벗어난 듯 한 느낌으로 인디스페이스를 찾았다. 실로 불편하지만 달콤한 꿈이었다. 상영장을 나올 때마다 나는 더 강해져 있었다. 타협하지 않고도 생존할 수 있다는 것, 타협하지 않고도 생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인디스페이스와 독립영화들이 웅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나는 한 중소기업에서 사무직으로 일하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인디스페이스를 찾는다. ‘인디포럼 월례비행'이 있는 날은 칼퇴근을 하고, 저녁식사도 거른 채 인디스페이스로 달린다. 주말에도 자주 중앙시네마에 나온다. 팔리는 콘텐츠, 한류 열풍, 박스오피스 성적 같은 것에 기대지 않더라도, 오롯하게 자기 이야기를 하는 영화들이 거기에 있다. 이따금 그런 이야기가 의욕만 넘치는 실패로 그치곤 하지만, 적어도 ‘독립'을 지향하며 독립의 기운을 관객들과 나누려는 말건넴들이 인디스페이스에 있다. 이런 불합리한 사회란 도무지 존재 자체가 불가능이라고, 이때 영화는 무엇이어야 하느냐고, 뜨겁게 발언하던 영화들. 그 발언대를 진짜 민주적으로 이끈다는 것, 진정 소비자 중심적, 관객 중심적으로 이끈다는 것이 다수결원칙이나 관람객 수치 같은 양적지표에 기인해선 안 될 것이다. 그런 단순한 ‘민주주의' 말고, 지금 가장 힘들게 만들어진 영화, 이곳 아니면 상영될 수 없는 영화, 그렇지만 ‘독립'영화라는 기치 상 보여줄 가치가 있는 영화, 라는 추상적인 언급이 오히려 가장 명확한 기준일 수 있을 것이다. 소비자대중을 ‘쉬운 영화'나 좋아하는 사람으로 치부하지 않고, 관객이 보고 싶어 하는 것 그 이상, 때때로 관객이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보여주는 것이 독립영화 전용관의 원칙이다. ‘회사인간'이 되어 세상에 적당히 찌들어가는 삶이 ‘정상'이라고 믿는 삶 말고, 추하고 더럽지만 지금 이곳에 분명하게 존재하고 있는 진실을 외면하지 않을 수 있도록 나에게 힘을 주는 영화. 이것이 내가 인디스페이스에서 오래토록 보고 싶은 독립영화다.

 

 

4. 인디 스페이스를 찾아서

 


이것저것 상상해본다. 아마 새로운 운영진은 ‘대학생 인디스페이스 리포터' 이런 걸 뽑을 것이다. 아예 청년인턴 고용을 할지도. 발랄한 대학생 감독의 영화도 많이 틀 것 같다. “88만원 세대 영화제” 같은 깜찍한 기획을 보게 될 지도 모른다. 이주노동자처럼 ‘험악'하고 논쟁적인 소수자 말고, 노인, 다문화가정처럼 길거리에서 자기 권리를 외치지 않는 온순한 소수자들의 영화제가 아마 ‘독립영화'의 이름으로 환영을 받겠지. 나중에 내가 그런 영화들을 좋아하게 될 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사실 나는 적극적으로 독립영화 리뷰를 쓰며 독립영화에 대한 애정을 공공연히 밝혀 왔던 다른 ‘우수관객'들에 비하면 나는 언제나 무심하게 인디스페이스를 찾곤 한다. 감독과의 대화 도중에 나가버린다거나,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러닝타임보다 더 길게 영화에 대한 흠을 잡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나의 이 무심함은 전용관이 생기고 난 뒤부터 본격화된 것 같다. 영상자료원의 월례상영회나 영화제 때가 아니면 좀처럼 독립영화를 볼 수 없었던 그 때, 나는 좀 더 열성적인 관객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독립영화를 보러 왔다가 옆 상영관 스폰지 하우스로 새는 일도 잦다. 독립영화는 언제나 거기, 인디스페이스에 있기 때문이다.

 


까놓고 말해서 중앙시네마 인디스페이스 의자는 오래되어 울룩불룩해 금세 엉덩이가 아팠고, 자세히 보면 상영관 벽에는 희미한 곰팡이들이 주름처럼 자글자글했다. 그러나 독립영화 상영공간을 안정적으로 확보했다는 성과, 이곳이 독립영화를 보는 이들의 아지트와 커뮤니티를 형성하리라는 기대는 언제나 설렜다. 그러나 2009년이 저무는 지금, ‘독립'을 찾아 떠나는 봇짐이 인디스페이스 앞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듯싶다. 오랜 독립영화 활동가들은 곳곳을 돌며 공동체상영을 조직하는 지루한 사업을 다시 시작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 감독들은 언제나처럼 도발적인 독립영화를 만들러 나설 것이다. 관객인 나는 글쎄…… 진짜 ‘인디 스페이스', 진짜 독립영화가 상영되는 진짜 독립적인 공간을 찾아 떠돌게 될 일이 많아지지 않길 기대할 뿐이다.

 


나는 늘 무심하고 이성적인 관객이었는데, 글을 맺으려다가 문득 울컥해진다. 인디스페이스 트레일러(용관이와 뽀삐, 면도크림 그리고 그녀 이야기)가 나올 때 웃음을 터뜨리는, 인디스페이스와 독립영화에 이제 막 발을 들인 사람들이 여전히 이렇게 많은데! 소심하고 후줄근한 것이 딱 내 타입인 용관이에 대한 의리를 위해서라도 결심해본다. 새로운 ‘인디스페이스'가 독립영화 「후회하지 않아」 출신 배우 김남길을 데려다가 더 멋진 트레일러를 만든대도 나는 그의 미소에 딱 한 번만 탄복할 테야. 행여, 김남길을 이젠 「선덕여왕」에서 볼 수 있듯이, 텔레비전에서도 볼 수 있을 독립영화들만 튼다면, 나 독립영화 관객 혹은 (요즘 가장 무서운) 소비자는 과감하게 발걸음을 돌릴 것이다. 열정만은 2003년 스무 살 그 때처럼, 진짜 ‘독립'영화, 인디스페이스를 찾아서. 그럼 대체, 김남길은 무슨 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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