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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68호 안녕!인디스페이스!] 인디스페이스, 늦었지만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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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16. 1. 21.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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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68호 / 2009년 12월 30일






인디스페이스, 늦었지만 사랑합니다.
 
윤성호 (영화감독)

 

 

 

* 이 에세이에는 영화담론지 [네오 이마주] 2009년 6월 오프라인 판에 필자가 기고한 원고의 단락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는 당신이 좋아요

 

당신은 무한히 밝아요.

 

내가 무슨 말을 지껄여도

 

당신은 조용히 웃고 말겠죠.


- 아마추어 증폭기 '마네킹' -

 

 

1. 제 첫 장편극영화인 [은하해방전선]을 개봉할 때 이런 질문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동안 단편은 꽤 여럿 만들었는데 장편영화를 만드는 소감은 어떻게 다른가?”

 


영화도 연애도 남들보다 조금 늦깎이로 시작한 저는, 그 두 영역에 대한 담화를 서로의 비유로 포개어 쓰는, 이제는 조금 패턴을 읽힌 버릇이 있는데, 저 질문에 답을 할 때도 역시나 이랬더랬죠.

 


“단편이 조금 긴 데이트거나 짤막한 연애라면, 장편을 하나 쓰고 찍고 편집해서 사람들에게 공개하는 일은, 연애 상대와 아예 맘먹고 살림을 차리는 것과 비슷하다.”

 


아마 ‘결혼'으로 비유하려다가 ‘그럼 다음 장편을 만드는 건 새 장가드는 거냐.' 하는 식의 지적을 받을까봐 ‘살림'이나 ‘동거' 정도의 어휘를 쓴 듯합니다.

 

 

각설하고, 실은 2년 전 인디스페이스 개관 소감을 말해달라는 어떤 인터뷰에서도 저 비유를 이어갔어요. ‘그동안 독립영화들이 동가식서가숙을 해왔다면 이제는 번듯한 전셋집을 하나 얻은 것 같다'고. 좀 더 ‘성인'스럽게 말하자면, 그동안 이 모텔 저 여관을 전전하던 가난한 커플이 마침내 원룸을 하나 얻고 동거에 들어간 셈이라고나 할까요.

 

 

마.침.내. 최소한의 질서라는 게 생긴 거죠. 오도카니 가여운 우리 사랑을 덥혀줄 공간이 다른 수요에 의해 이미 만실이 되어 있을까봐 걱정할 필요 없고, 그날그날 소모적인 대실료를 지불하는 대신, 그 비용을 차라리 같이 쓸 세간을 장만하는 데 쓸 수 있는 그런 원룸.

 

 

뭣보다 고유의 주소가 생긴 게 좋았어요. “오늘은 저희의 서사 敍事 를 홍대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내일부터 며칠 동안은 저희들의 서사가 종로3가 쯤에 자리를 잡을 것 같구요, 다음 달은, 음, 다음 달은 아직 모르겠습니다.” - 이래가지고는 세간 마련은 커녕 드나드는 절친 한 명 확보하기도 쉽지 않잖습니까. 내가 알고 당신이 알면서 은근히 왕래할 수 있는 주소가 필요하죠. 사람이 있고 공간이 있고 그 다음에 이야기가 생깁니다. 영화와 관객, 연출자와 대중, 활동가와 창작자가 서로를 확인하고 교류도 하고 설레어도 하고 실망도 하고 그리하여 다시 그 다음을 기약하기도 하는 서사의 마당. (반성과 전망!) 그러고 보니 제 미숙한 장편이 그 고마운 주소지의 첫 전입신고대상이었네요. 새삼 영광입니다. 

 

 


 

 

 
2. 좀 더 거슬러 올라가 더 몇 년 전의 이야기를 해볼게요. 예전에 충무로 역사 안에 '활력연구소'라고 있었습니다. ‘십만원 비디오 페스티벌'이라는 이르고 담대한 행사를 90년대부터 홍대에서 열었던 눈 밝고 귀 맑았던 분들이 주축이 되어 서울시에서 공간을 할애 받고 공공을 위한 서비스를 기획하고 그 안의 아이템을 뚱땅뚱땅 만들고 모으고 오가는 소녀 소년 청년 장년을 맞이했던 살뜰한 미디어 센터지요. 저는 거기서 제 비디오를 틀며 사람들의 반응을 먹고 자랄 수 있었고, 어떤 이는 거기서 낯선 나라의 생소한 영상을 보며 디자인의 꿈을 키울 수 있었고, 또 어떤 이는 거기서 편집의 기술을 배우며 자신의 여가를 강화시킬 수 있었죠. 그 운영진이 받은 대가는 그 노력과 초기 비용에 비해 얼마 되지도 않았던 걸로 압니다.

 

 

그렇게 1년. 활력연구소는 어이없게 문을 닫습니다. 서울시 문화과에서 당연한 듯 '공모 입찰' 카드를 던지고 이전에는 전혀 상관이 없던 단체에 운영권을 줘버린 거죠. 그리고 다음 해 그 단체의 상징적인 우두머리로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이 취임하지요. 십만원 비디오의 용자 勇子 들은 이 기막힌 사태 앞에서 이렇게도 싸워보고 저렇게도 버텨보지만 결국 담담하고 애틋한 성명을 읊고는 뿔뿔이 흩어집니다. 활력연구소 운영진도 아닐 뿐만 아니라 그런 공공의 공간의 필요나 책임에 대해 문외한이었던 저마저도 화들짝 놀라서 그리고 왠지 많은 것이 역겨워서 그 이후 다른 이들이 운영하게 된 그 공간에 발길을 끊었습니다만, 한번은 ‘얼마나 쇄신된 모습으로 운영을 하려 했기에 힘들게 텃밭을 일군 주체들을 쫓아버렸나' 하고 들른 적이 있습니다. 딱 두 가지가 달라졌더군요. '활력연구소' 라는 기발한 작명이 '오재미동' 이라는 쑥스러운 간판으로 바뀐 거. 그리고 그 전에는 세로로 세워져있던 디자인 잡지들이 가로로 뉘어져 있는 거.

 

 

아, 실은 더 큰 무엇이 바뀌어 있었습니다. 자발적으로 드나들던 창작자며 시민들의 발걸음이 예전만하지 못했던 것. 그건 오재미동의 운영진이 잘못을 해서가 아니라 어떤 자율과 활력의 아우라가 사라진 때문이겠죠. 저는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나는 내가 의천검을 쥔 것처럼' 이라는 비디오를 찍고 편집했어요. 무슨 쉘 실버스타인 동화 제목 마냥 저에게 아낌없이 내주기만 했던 공공 영역의 실종을 첫사랑을 지키지 못한 회한으로 좀 어리게 은유를 한 중편입니다. 
 

 


 
3. 근데 그렇게 첫사랑을 앗아간 악덕과 오류가 다시금 더 뼈아프고 원통하게 찾아왔네요. 제가 첫 전입신고를 한 인디스페이스 - 우리가 처음으로 주소를 등록하고 길어진 서사를 선뵈고 기약해온 우리의 ‘첫' 독립영화 전용관이 그 역사를 일단 정지한다고 합니다. 저는 효과적인 반격을 함께 하진 못하고 또 이렇게 속절없이 자판을 두드립니다.

 

 

실은 언제부턴가 (특히 지난 2년간) 이 마당을 둘러싸고 참 요상한 시비들이 많았습니다. 심지어 이미 통례적인 어휘로서 시민권을 획득한 ‘독립영화' 라는 용어를 가지고도 말들이 많았지요. 언어에 대한 시비는 감각에 대한 시비입니다. 따라서 이미 익숙해진 감각들의 균형을 흔들고 그 자리들을 새로이 배치하는 건 예술이 복무할 덕목이긴 합니다. 허나 그건 소외된 감각과 권리들을 위한 운동이어야지, 가진 사람이 더 가지기 위해, 또는 딱히 그 분야에 애정을 기울여온 역사와 수고가 없는 이들이 전리품을 챙기기 위한 막후의 거래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다행인지 요행인지 ‘독립'이나 ‘인디'라는 이름에 대한 시비가 별 호응을 얻지 못하자 어떤 이들은 더 간단한 방법을 택하나봅니다. 주소를 가져가는 겁니다. 우리의 서사를 위해 구축한 최소한의 마당이, 그 이름이, 그 주소가, 어떤 이들에겐 옥션에 올려놓을 부동산쯤 되나 봅니다.

 

 

어떤 분들은 ‘공모 입찰 경쟁이 뭐 어떠냐.' ‘자본주의 사회에서 합리적인 판단이다' ‘지금까지의 운영하던 이들보다 소외된 다른 이들도 있지 않겠느냐' 하실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생각해봅시다. 공공 미디어로서의 영화에 대한 개념 자체가 전무할 때 저런 사업들을 기획하고 발의하고 초기의 고난을 감수하며 일궈온 이들이 시네마테크와 독립영화판의 인력들입니다. 그러니까, 고전 영화를 보고 얘기 나누는 시네마떼끄의 필요, 독립영화 전용관을 통해 관객을 만날 수 있다는 전망, 영화 전공이 아닌 시민들도 촬영과 편집을 배우며 창작을 꿈꾸는 포부 등등등. 그런 공공의 가치를 개척해온 소중한 기운들을 속된 말로 ‘쌩까고' 그때그때 정권의 인사에 의해 자리를 잡은 사람의 소견과 기준으로 시네마떼끄와 독립영화 전용관의 운영 주체를 들었다 놓았다 하는 게 정말 합리적인 행정일까요?

 

 

어쩌면 지난 1년, 2년의 사업성과를 가지고 왈가왈부할 수도 있을 겁니다. 허나 이런 공공의 사업일수록 사람들로부터 인지도를 획득하기까지 진득한 낙숫물이 필요합니다. 당장 어떤 회고전이나 기획전의 흥행은 좀 기대에 못 미칠 수 있지만 그런 기운들이 댓돌을 조금씩 뚫는 낙숫물 역할을 하는 것이지요. 뭣보다 이런 사업은 눈에 보이는 수치 외에 그 예술매체의 수명과 폭을 넓히는 아카이빙과 교육적 효과라는 긍정적인 외부성을 평가해야 합니다. 가는 길도 생소했던, 낡지만 고마운 공간들에서 영화의 역사와 범위에 대한 고민을 꾸준히 해온 분들이 개인적인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무언가를 꾸준히 모으고 틀어왔기에 ‘독립영화전용관' 또는 ‘시네마테크'라는 공간과 어휘가 알려진 것이고, 사람들이 찾아가기 시작한 거고, 보이지 않는 커뮤니티가 생긴 것입니다.

 

 

힘들지만 보람 있게 일궈놓은 그 영토를 무심히 수거해가는 논리는 활력연구소 때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합리적으로 경쟁해서 이기라' 는 거죠. 아니 그런데 무엇을 위해 누구를 이기라는 걸까요? 수용자를 위한 공정한 서비스 경쟁을 유도하는 것 같지만 용산 재개발의 논리나 다를 것 없습니다. 재개발의 논리가 시민을 인격이 아닌 보증금의 단위로 본다면, 이런 공공 문화공간을 대충 접수하려는 기득권의 논리는, 시민을 문화의 수혜자로 보는 게 아니라 자기네 한 해 업적으로 치환할 몰개성의 숫자로 보거나 그 공간과 예산을 사적인 전리품과 논공행상의 대상으로 보는 경우가 많지요.

 

 

부연합니다. ‘지금 누리고 있는 정당한 몫을 지키기 위해, 나아가 그 몫을 누군가에게 전리품으로 바치는 것이 아닌, 공유할 권리가 있는 예술의 친구들, 연대해야할 시민들과 함께 누리려 할 때' 비로소 정치도 예술도 시작된다더군요. 당신이 마련한 주소지를 경로로 창작과 리뷰을 해왔던 우리들은 이제야 내 할 몫들을 깨달았지만 조금 늦은 듯도 합니다. 언제까지 계속될 줄 알았던 (그래서 조금 방심했던) 우리의 동거가 일단 이렇게 한 챕터를 끝내네요. 분하고 또한 죄송합니다. 죄송하고 또한 고맙습니다. 이제 당분간 당신을 만질 수 없고, 우리가 함께 지내던 자취방에도 오를 수 없게 된 걸 깨닫는 지금에야 당신의 소중함을 새삼 절감합니다. 진부하죠? 어떤 진실들은 너무 진실하다보니 진부할 때가 있지요. 늦었지만 사랑합니다.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잊지 않기 위해

 

나는 살았다고

 

세상은 마중과 배웅의 사이에 있는

 

무수한 주소들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있다고


- 그가 남몰래 울던 밤을 기억하라, 김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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