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함께 만드는 연대의 즐거움 - 인디스페이스 '매삼화'를 돌아보며 | |
최준영 (문화연대 대안문화센터 chobari@gmail.com ) |
2007년 11월. 미디액트에 이어 인디스페이스가 만들어진 이후 독립영화의 제작과 배급 환경은 크게 개선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몇몇 영화제를 통해서만 독립영화를 접할 수 있던 상황에서 독립영화가 상시적으로 상영되고 또 독립영화에 관심을 갖고 있던 사람들이 언제라도 영화를 볼 수 있는 독립영화상영관이 만들어진 것 자체만으로도 독립영화 배급 환경에 결정적인 변화를 불러온 것이다. 하지만 독립영화의 제작과 배급 환경 개선의 배경에는 비단 안정적인 상영 공간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독립영화 DVD 제작과 판매, ‘인디아카이브' 구축과 운영 등 지속가능한 독립영화 상영, 배급구조를 만들기 위한 인디스페이스의 다양한 활동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불과 2년 만에 문을 닫아야만 하는 인디스페이스의 현실에 안타까움과 더불어 서글픈 마음이 들기까지 한다. 독립영화전용관의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제기했던 지난 10여 년 동안의 활동과 실제 인디스페이스를 2년 동안 운영하면서 쌓은 성과가 자칫 몇몇 사람의 안일하고 정치적인 판단으로 인해 사라질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이 글의 주제에서는 조금 벗어나는 것 같긴 하지만 이 부분을 잠시 언급해보면, 2010년부터 독립영화전용관 운영주체를 ‘공모'하겠다는 영화진흥위원회의 결정은 일견 공정해 보이는 ‘공모'라는 형식을 취했으되 자칫 인디스페이스 2년의 성과를 도로아미타불로 만들 여지가 있어 보이기에 매우 우려스럽다. 특히 ‘공모 후 1년 운영'이라는 독립영화전용관 운영의 기준은, 당장의 수익이나 성과보다는 장기지속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할 독립영화 진흥정책과는 거리가 먼 기준이 아닐 수 없다. 1년 활동의 성과를 기준으로 경쟁하는 공모에서 장기지속적인 사업을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독립영화, 사회운동, 관객을 잇다
이제 이 글의 본론으로 와 인디스페이스의 ‘매삼화' 프로젝트를 돌아보자. ‘매삼화'는 매월 셋째 주 화요일에 개최하는 인디스페이스의 정기상영회를 뜻한다. 인디스페이스에서는 문화연대, 인권운동사랑방, 진보네트워크센터 등 파트너 단체들과의 공동 기획으로 매월 셋째 주 화요일에 상영회를 열어 왔다. 사실 자본이나 권력, 주류적인 사회 질서에서 ‘독립적인' 이야기와 문제의식을 담는다는 측면에서, 독립영화는 주류 상업영화들이 다루지 않는 정치적, 사회적 이슈나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 그리고 사회운동과 연계성을 갖는 주제를 다루는 경우가 많다. 인디스페이스의 ‘매삼화' 프로젝트는 이러한 독립영화의 존재 기반에 근거하여, 독립영화를 단순 상영하는 것을 넘어 독립영화와 사회적 약자들의 삶, 사회운동을 잇고 또한 이를 관객들과 호흡하게 하는 기획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 동안 ‘매삼화'에서는 어떠한 주제를 다루었을까? 사실 제목만 살펴보아도 ‘매삼화'가 어떤 의도를 갖고 기획되었는가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는데, 인디스페이스와 파트너 단체들은 정말 다양한 주제에 대한 ‘매삼화'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용산, 337가지로 표현하기'(연분홍치마), ‘의약(藥) 의악(惡) 의악!'(인권운동사랑방), ‘레즈비언 정치도전기'(퀴어문화축제, 연분홍치마), ‘MB 언론탄압, 더 많은 자유를 집어삼키다'(인권운동사랑방), ‘잠들어 있는 기타를 깨우다'(문화연대), ‘용산 철거 희생사 추모 상영회'(문화연대), ‘샘터분식, 지역 그리고 민중의 집'(문화연대), ‘CCTV님께서 보고 계시는 친숙한, 그러나 낯선 세상'(진보네트워크센터) 등. 그리고 매번 같은 형식은 아니었으나 영화와 사회운동, 그리고 이들이 말하는 주제에 공감하는 관객들이 ‘매삼화'와 함께 했다.
인디스페이스와 매삼화의 가능성
한편으로 ‘매삼화'는 인디스페이스의 필요성이 비단 독립영화계에만 한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기획이었다. 자본이나 권력, 주류적인 사회 질서에 독립적인 영화들이 안정적이고 지속적으로 제작되고 배급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된다면, 이는 결국 사회운동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다. 인디스페이스 파트너 단체로 참여한 문화연대의 경험도 그러했다. 문화연대에서는 용산참사, 콜트콜텍 노동자 투쟁, 지역운동 등을 주제로 한 ‘매삼화'를 공동으로 기획, 진행했는데, 용산참사의 부조리함을 알려내고 유가족의 고통을 나누는데 있어서, 잊혀져 가던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투쟁을 문화예술인들에게 알려내는데 있어서, 그리고 새롭게 출발한 ‘민중의 집'의 취지와 설립과정을 후원인들과 회원들에게 알려내는데 있어서 해당 영화를 통한 소통은 훨씬 수월했을 뿐 아니라 참여한 개개인에게도 더 특별한 경험을 제공할 수 있었다.
물론 ‘매삼화'의 영향력이 실질적으로 무척 컸다고는 할 수 없다. ‘매삼화'는 독립영화와 사회운동, 그리고 관객을 잇는 ‘그릇'이었을 뿐, 실제 영향력을 만드는 것은 매번의 ‘매삼화' 기획에 참여한 사회운동단체와 관객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과 1~2년 동안 진행한 몇 번의 프로그램만을 기준으로 ‘매삼화'를 양적 영향력의 잣대로 평가할 수는 없다. 오히려 그보다는, ‘매삼화'에 참여한 개개인의 사람들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매삼화'에 참여한 사람들 - 영화인, 활동가, 시민 가릴 것 없이 - 에게 ‘매삼화'에 대한 기억이 특별하지 않을 수 있을까? 통상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것은 영화 관람을 목적으로 한 개인적인 소비 행위로 그치기 일쑤지만, ‘매삼화'는 해당 주제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참여하여 영화를 보고, 토론하고, 웃고 또 울기 위해 기획되었기 때문에 “함께 한다”는 느낌을 진하게 받게 되는 것이다.
더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그렇기 때문에 나는 ‘매삼화'의 힘이 더 작지만 소중한 목소리를 담아낼 때 제대로 발휘될 수 있다고 본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또 관심 있어 하는 주제의 경우 상영관이라는 제한된 공간이 아닌 다른 방식의 활동이 기획될 필요가 있는 것이고, 그 보다는 덜 알려진(혹은 잊혀져 가는) 소중한 이야기들에 독립영화와 사회운동, 관객의 시선이 맞닿아 공감과 힘을 생성하는 것이 ‘매삼화'의 중요한 역할이었다고 생각된다. 다행히도 지난 ‘매삼화' 기획을 돌아보면 거의 대부분이 이런 취지에 부합하는 주제 선정과 프로그램 기획이 이루어졌고, 그래서 (최소한 문화연대의 경우에는) 이후 해당 주제의 운동을 진행시켜 나가는데 하나의 계기가 된 것이 사실이다.
일례로 ‘민중의 집'의 경우, ‘지역'이라는 키워드로 야심차게 출발했으나 아직 회원들이나 주민들, 그리고 사회운동 내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었으나 ‘매삼화'를 통해 태준식 감독의 [샘터분식]과 [Open-up! 민중의 집] 2개의 영상을 상영하면서 ‘민중의 집'의 건립 과정이 회원 및 여러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것이 사실이다. 상영회에 참여한 회원들도 이구동성으로 ‘민중의 집'의 설립 취지를 알리는 데 수차례의 토론회나 글보다도 영화 상영 및 실제 주인공들과 관객과의 대화가 더 효과적이었다고 말해 주었을 정도였다. 이 날 상영회 이후 [Open-up! 민중의 집] 영상이 ‘민중의 집' 홈페이지 대문에 걸렸고... ‘매삼화' 때문인지는 몰라도 현재 ‘민중의 집'은 회원 수도 비약적으로 증가하는 등 나름 지역에서 훌륭하게 자리잡아 가고 있다.
따라서 이후에라도(!) 인디스페이스의 ‘매삼화'와 같은 기획이 이루어진다면, 나는 ‘더 작은 목소리'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작은 목소리들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조명하고, 관객과 호흡할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다. 독립영화와 사회운동, 관객의 시선이 어우러져 연대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이후 활동의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게 프로그램을 기획할 필요가 있다.
매삼화 2탄을 기다리며
돌이켜보면, 문화연대는 지난 2년 동안 몇 차례의 ‘매삼화' 기획 이외에 인디스페이스와 연계한 다양한 활동을 만들어내지 못한 것 같다. 그리고 이런 뒤늦은 반성을 채 하기도 전에 인디스페이스는 기억 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인디스페이스가 이대로 문을 닫는다면, 그리고 ‘매삼화' 프로젝트가 좀 더 다양한 주제와 시선으로 사회운동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기회를 잃는다면, 이는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벌써 준비되고 있을 수도 있겠으나) 이제 인디스페이스와 ‘매삼화' 2탄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인디스페이스 파트너 단체들을 포함한 시민사회운동 진영과 독립영화계가 합심한다면 반드시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문화연대 또한 뒤늦은 반성을 만회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 터이고, 그 동안 인디스페이스와 ‘매삼화'에 함께 했던 사람들이 힘을 조금씩만 보탠다면 가능한 방안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여겨진다. ‘영화와 함께한 연대의 즐거움'을 2010년에도 느껴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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