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76호 / 2011년 9월 30일
‘지역 운동 속 미디어 운동을 꿈꾸다 - 권용협 평상필름 대표 |
인터뷰 진행 및 정리: 스이(ACT! 편집위원회) |
그를 만났다. 부산 지역 미디어 운동의 전설적인 존재. 부산에서의 퍼블릭 액세스 운동, 미디어센터 설립 운동, 대안매체 운동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고 중심적인 역할을 해왔다는 권용협 평상필름 대표(두둥!!).
그런 그가 각 지역의 퍼블릭 액세스 네트워크를 위한 또 다른 운동을 시작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름하여 "복(福)지갈구 화(畵)적단" 프로젝트. 마침 8월 말, 부산에서 지역 활동가들의 회의가 있다는 소식에 부산으로 내려가 인터뷰를 청했다. 시간이 여의치 않아 설렁탕 집에서 가졌던 10분 간의 인터뷰는 서울에 돌아와 50분에 걸친 전화 인터뷰로 이어졌다. '지역 운동과 함께 하는 미디어 운동'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지역 미디어 활동가의 소중한 목소리를 들어보자.
스이: 평상필름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려요.
권용협 (이하 권): 평상필름은 생긴 지 한 10년 정도 된 부산 지역의 영화 제작 집단이죠. 평상필름이 미디어 운동을 하기로 결정했던 것은 대략 6년 전쯤이었던 것 같아요. 미디어운동의 핵심이 뭘까 고민하다가 ‘누구나 미디어를 활용할 수 있고 콘텐츠를 생산하는 것이 쉬워지는 것', 이 정도로 생각했는데 미디어센터운동의 방향과 비슷했던 거죠. 이렇게 알게 된 것이 전국미디어운동네트워크(이하 전미네) 같은 타 지역 식구들이었어요.
타 지역 운동가들을 알게 되면서 지역 미디어운동의 가장 큰 목표는 우리 같은 사람들이 많아지는 거다, 라고 생각을 하게 되었죠. 그걸 많아지게 할 수 있는 방안을 중심으로 활동했고 평상필름 멤버들 외에 어떻게 더 모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 시작했고요. 실제로 그렇게 모으는 과정에서 필요한 것이 노는 물, 즉 '액세스 채널'이었죠. 그래서 액세스 채널 운동도 같이 했고, 실제 부산에서 액세스 채널을 열었을 때는 본격적으로 한 개의 채널을 특정해서 건강하고 필요한 액세스 채널을 만들기 위한 운동을 같이 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규합된 사람들이 현재 20-25명 정도인데, 저널리즘적인 지향을 가진 사람들, 영화감독, 미디어 교육 등의 지향을 가진 사람 등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어요. 평상 필름 멤버들이 그렇게 많이 거쳐 갔는데, 지금은 멤버가 아니지만 평상 필름 활동을 하던 친구들이 지금은 사회적 기업을 하거나 라디오, 케이블 TV 등에서 액세스 채널을 운영하기도 하고 제작을 하는 사람도 있죠.
정리하자면, 평상필름의 정체성은 영화 제작 집단이었는데, 그 동안 미디어운동을 중심적으로 고민하지 않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평상필름이 지향하는 방향과도 일치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미디어운동에 참여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약 6-7년 동안 이어져왔던 겁니다.
스이: 평상필름의 대표적인 프로젝트인 [낙동강의 피눈물]은 언제 시작되었나요.
권 : 2008년 7월부터 시작을 했죠. 그걸 작품화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그 뒤의 이야기입니다. 지금 [낙동강의 피눈물]은 후반 작업 중인데, 다른 일들이 많아서 일정이 계속 늦어지게 되어 기대하시는 많은 분들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입니다. 오는 10월 8일 4대강 그랜드 오픈 식에 맞춰서 해야 한다,는 압박이 많이 있어서 열심히 작업 중입니다. 평상필름의 진짜 사업은 그거고, 그 외의 사업은 아까도 말했듯이 부산 지역의 미디어운동 사업을 하고 있는 거죠. (*주1)
스이: 부산 지역의 미디어운동은 어떻게 진행되어 왔나요.
권: 2004년 부산 미디어 센터가 건립된 이후에도 지역의 미디어운동 진영에서는 보다 나은 발전 방향을 위한 개입방법을 논의했어요. 서울 활동가들과도 이러한 논의를 공유하고 조언을 구했죠. 또 부산 지역에서 영향력 있는 인사들을 접촉해서, 제도권 내의 인사들과도 폭넓은 교류를 가졌죠. 이 분들로부터 우리의 실천력을 인정받으면서, 이러한 제도권 인사와 자연스럽게 역할 분담이 이루어졌던 겁니다.
부산 엠비씨(MBC)의 퍼블릭 액세스 채널 같은 경우, 민주언론시민연합(이하 민언련)이 개입한 결과 편성된 것이었어요. 2004년에 생겨난 부산시청자미디어센터 역시 다른 지역과는 구별되는 독특한 구조가 생겨났습니다. 미디어센터의 운영위원회는 센터 외부 인사가 5인 이상 참여하도록 했고, 독립 기구로서의 지위를 부여했던 것이죠. 이 과정에서 시민 제작자 양성을 위한 제작지원 프로그램에 외부의 미디어 활동가들이 강사로 참여하게 되었어요. 이렇게 정책적, 기술적 측면에서 역할을 담당하면서 미디어 활동가의 존재감이 뚜렷해졌고, 제도권 내부에서의 활동이 당연시되었습니다. 더불어 제작지원 프로그램에 당연히 부산시가 지원해야 한다는 인식이 생겨나면서 결국 부산시와 부산MBC, 지역 내 미디어 활동가들이 자연스럽게 협업하는 구조가 되었던 거죠.
뿐만 아니라, 미디어 활동가들은 제작지원을 위해 마을 공동체 같은 풀뿌리 조직으로 들어갔습니다. 지역 미디어 운동 방향을 설
정하고 미디어교육이나 제작지원 사업을 진행하려면 시민사회 단체와 마을 공동체 간의 연결 고리가 필요해요. 이 둘을 연결하는 코디 역할을 제가 주로 맡아 해왔어요. 5-6년이 지나면서 제작지원팀의 인원도 현재 20여 명 정도로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현재는 영상 활동을 하고 있는 시민 제작자들을 대상으로 미디어 품앗이를 제안하고 있습니다. 시민 제작자들의 논의 구조를 만들어 보려는 시도인데, 미디어센터 수료생이나 시민 제작자들의 경우 공공성을 추구하는 세력이라기보다는 일종의 탈정치 세력이기 때문에 이들을 전체적으로 포괄하는 것이 쉽지는 않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도권 내부의 교육 시스템, 인력구조와 제도권 외부 활동가들 간의 접촉면을 넓혀가려고 해요. 그에 대한 필요성이 확립되고 이를 충분히 공유하는 것이 현재의 과제입니다.
스이: 아까(복지갈구화적단 회의 중) 말씀을 잠깐 들어보니 퍼블릭 액세스 운동이 다른 지역보다 조금 나은 상황이라고 하던데 그 이유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권: 네, 맞아요. 가지고 있는 요소를 어떻게 활용하고 배치할 것인가에 있어서 전략을 잘 세웠던 것 같아요. 소위 '컨트롤 타워(Control Tower)'(...라고 하면 좀 건방지긴 한데), 즉 전체를 하나의 판으로 바라보고 운동 전략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일원화된 공간, 분위기가 있었다는 점에서 운동의 지형이 태생적으로 좀 달랐죠. 평상 필름이 처음부터 중심 역할을 했었고 제가 그 제안자 역할을 해왔는데, 반대 의견이나 동의하는 의견을 수렴해서 결정하는 방향이 제가 처음에 제안했던 방향과는 다를지언정, 어쨌든 전반적으로 공유하는 것이 가능했던 이런 것이 특징이죠.
다른 지역의 경우 산재한 미디어운동 단체들이 각자의 방향을 정했다면, 부산은 후발 주자였다는 점에서 운동 방식이 많이 달랐어요. 미디액트를 중심으로 미디어센터 건설운동, 채널확보운동과 같은 실천적 방향이 이미 그려져 있었기 때문에 지역에서 경험적으로 고민하기보다 가시적인 의제에 적극적으로 결합하고 공유할 수 있었던 거죠.
그렇게 의제가 정해진 상황에서 부산 지역의 다양한 주체들 - 민언련, 개인 독립영화감독, 관심 있는 대학생 등등 - 이 모여서 미디어운동의 시기나 초점 등을 논의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면서 전체적으로 논의하고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 관례화되었어요. 뛰어난 1인의 주도가 아니라 중지(衆智)를 모으는 ‘컨트롤 타워' 같은 개념의 논의 방식이 만들어진 것이죠.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모두 경험치가 동일한 선상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서로 균등한 성장을 도모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새로운 멤버를 영입해서 결합하게 되었을 때도 경험치의 차이가 별로 없어서 주인의식을 갖고 참여할 수 있었어요.
정리하면, 컨트롤 타워식의 논의 구조에 기반 한 정책의 투명성, 전망 논의 등에 대한 고른 참여도, 주기적인 워크숍 혹은 토론회 등이 부산 지역만의 정책이나 구현 방식을 논의할 수 있었던 요인이 되었던 겁니다.
스이: 컨트롤 타워라는 말이 약간 생소하기도 한데, 부산 지역의 미디어 운동 단체들이 갖고 있는 모임의 형식에 대해 좀 더 설명해주세요.
권: 제작지원팀, 플로그티비(PlogTV), 미디토리 등 각자 자기 운동의 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1-2개월마다 한 번 쯤 모여서 점검, 평가, 고민 공유, 불만 토로 등의 자리를 갖습니다. 뭔가 강제력이 있다거나 공식적인 권위가 있는 정식 모임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소통 구조이죠. 서열화 된 체계가 있는 것도 아니에요.
스이 : 부산 지역은 조금 보수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는데 , 퍼블릭 액세스 논의가 담당 기관 등과 가능했던 것을 전략을 잘 세웠기 때문이라고만 볼 수 있을까요 ?
권 : 물론 퍼블릭 액세스 채널이 출범할 당시 사회 정치적 분위기가 좋았던 점은 있죠 . 채널의 정체성 역시 분위기가 굉장히 좋았는데 , 이명박 정부 들어오면서 방송국 내부에서는 약간 난감해하는 지점도 없지 않아 있어요 . 게다가 부산 지역에서 퍼블릭 액세스 채널이 지역 내 공론장 역할을 실질적 , 적극적으로 해내지 못했거나 잘 안되거나 하면서 ( 사실 별도의 평가가 필요한 부분이긴 하지만 ) 지역 주민들의 관심도가 떨어지게 되었어요 .
초반 진행했을 때의 분위기나 관심도를 많이 상실해가면서 사람들은 퍼블릭 액세스가 미디어 활동가의 운동 영역인 것 마냥 인식하게 되었어요. 액세스운동은 지역시민사회운동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추진해왔지만 그게 잘 안 되었던 것이죠.
부산 지역 뿐 아니라 타 지역 역시 이 비판에 있어서는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갖고 있습니다. 퍼블릭 액세스를 지역 사회 미디어운동 활동가들만의 의제가 아니라 지역 사회 내에서 중요한 운동 방향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거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실제로 액세스 채널을 통해서 말하는 공공적인 의제들이 영향력을 갖고 지역 사회의 중요한 의제가 될 수 있는 루트를 마련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현재 부산 지역의 액세스 채널만으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한 6년 전부터 했어요. 물론 보수적인 지역적 분위기 탓도 있지만 그게 큰 요인인 것 같지는 않아요. 고민 끝에 대안 매체를 만들자는 제안을 했었죠. 주변에서는 실패 가능성이 높다고 만류가 많았어요. 시행착오 사례가 많기도 하지만, 2년 전부터 준비해왔어요. 첫 시도는 실패했지만, 올해 다시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스이: 플로그티비(PlogTV)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권: 네. 올해 2월에 부산 지역의 미디어 활동가 집단이 영상을 중심으로 운영하는 지역 대안 매체, 즉 PlogTV를 웹상에서 개국이라는 형식으로 진행했죠. 아직 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니에요. 내부적으로 개혁, 정리하면서 대외적으로 인지도를 높여야 하는 과제가 있죠. 다만 최근 한진 사태에 적극적으로 결합하면서 외부적 인지도는 많이 올라가게 되어서 의도하지 않게 도움을 좀 얻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지역 사회 내에서의 인지도는 아직도 타 지역에 비해 오히려 낮아요. 타 지역에서의 인지도 역시 미디어 활동가를 중심으로 높아졌을 뿐이고요.
지역 사회 내에서 공론장 역할을 하고 싶은데, 이를 위해 필요한 프로세스를 기획하고 있는 단계입니다. 그 프로세스 중에는 아까 말했듯이 일원화된 논의 체계가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있어요. 이런 논의 체계 안에서 전략을 세우고 조직 내부의 개혁적 모델화, 홈페이지 등 플랫폼의 정확한 모델화, 콘텐츠의 지속성과 안정성, 탐사 보도력 등을 추구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이런 지표들을 중심으로 워크숍도 개최하고 필요하면 내부에서 교육도 진행하구요. 다른 분들의 의견도 청취하러 다니면서 이런 작업들을 총체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지금 부산 지역의 미디어 활동가 그룹 안에서는 PlogTV를 활성화시켜서 공론장의 역할과 지역 사회 대안매체로의 기능을 하도록 하는 것이 핵심전략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합의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예산, 인력, 각자의 지향에 맞는 업무 분담 등 객관적인 여건을 어떻게 조성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계속 논의가 필요하지만 말이죠.
부산 지역의 또 하나의 특징은 어떤 방향으로 가자는 이야기를 투명하게 논의하는 풍토가 되어 있어요. 이런 풍토는 일원화된 컨트롤 타워의 기능을 할 수 있는 전제 조건이기도 하고 - 경험상 PlogTV를 운영하면서 그 중요성을 인식해가고 있는데 - 다양한 지향을 가지고 모인 사람들의 집합이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정체성, 즉 살아있는 공동체성에서 출발한 거죠.
스이: 개인적인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은데, 미디어운동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되셨나요.
권: 사실 전혀 미디어운동에 참여할 생각이 없었어요.(웃음) 학교 다닐 때는 풍물패 활동을 했고, 영화 같은 영상매체보다는 연극처럼 직접 인간을 대면하는 형식을 좋아했었죠. 그런데 영화감독이 꿈이었던 친구가 자리 잡는 것을 돕고 싶어서 독립영화운동에 첫발을 들이게 되었어요.
서울 중심이라기보다는 지역 위주로 독립영화운동을 해오던 중에, 지인의 소개로 미디액트를 알게 되었어요. 미디액트에 찾아갔는데, 당시 부산미디어센터 건립이 시도되고 있는 중이라는 이야기와 함께 부산에서 영화운동을 하면서 그것도 모르냐는 핀잔을 듣게 되었죠. 궁금해져서 민언련과 언론 관련 대학원에 있던 선후배들을 찾아다녔어요. 이 일을 계기로 민언련에 가입하고, 선후배 공부 모임도 만들었죠. 그리고 제가 속해 있던 평상필름을 설득하기 시작했어요. 영화 운동이 위주인 단체이긴 하지만 미디어 운동도 중요하다, 이런 식으로. 평상 필름은 애초부터 '사람들이 영화를 감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모두가 영화를 만들게 하자'는 주의였기 때문에 쉽게 공감을 얻을 수 있었죠. 그 때부터 평상필름의 운동 방향이 급전환되어 미디어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저는 중간에 기회가 오는 대로 그만두고 싶었어요. 그런데 마음에 들 때까지 자리가 잡히지 않더라고요.(웃음) 물론 새로운 멤버가 영입되면서 운동 가능한 영역이 점차 확대되고 있는 것도 있지만, 하고 싶은 일들이 아직도 남아 있어요.
예를 들어 PlogTV의 경우, 지역사회에서 영향력을 갖는 대안 매체를 만들고 싶어요. PlogTV가 영역별, 계층별 네트워크를 형성하면서 질적으로 보장된 콘텐츠를 생산해낸다면 뭔가 반향을 일으킬 수 있는 지역적 인지도와 영향력을 갖게 되겠죠. 우리 지역만의 의제를 발굴하면서 제도권의 정책 수립, 실행 단계 등에 개입할 수도 있게 되는 겁니다. 지역 의제에 주민 참여력을 높이기 위한 시도이기도 하죠. 더 나아가 중앙에 의한 지역경제 수탈 구조(예를 들어 롯데 기업, 에쓰오씨(SOC) 사업 등)를 극복하고, 지역에서 괜찮은 일자리를 만들고 싶은 꿈도 있습니다. 서비스 판매업이나 자영업에 편중되어 있는 현재의 지역경제 상황에서는 인력이 외부로 유출될 수밖에 없는데 이런 것들을 막아야겠다는 생각이죠.
케이비에스(KBS)에서 벤처 기업을 지원하는 것처럼 PlogTV도 지역 내 청년 벤처기업에 대해 네트워크를 연결해주거나 펀딩 구조를 마련해주는 것 같은 지원을 하고 싶어요. 현재 지역 방송은 생색내기용으로 지원하고 있지만, PlogTV의 경우에는 인큐베이팅된 기업이 이후 지역 공헌 기업으로 성장하면서 지역사회 안의 주요 토대를 구축하는 것까지 내다보고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지역경제구조 구축 노력을 시민 사회단체나 야당과 함께 추진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일이 끝나면 은퇴할 예정이에요. (스이: 은퇴를 못하실 것 같은데 (웃음)) 음, 생각보다 멀지는 않아요. 지역 논의 구조가 안착화 되어 있고, 사업도 생각보다 빨리 진전되고 있습니다. 비슷한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큰 힘이죠. 우리가 상상하는 대로 움직이는 실험 정신이 부산 지역의 가장 큰 자산이에요. 괜찮은 모델이라고 생각합니다. (웃음)
스이: 방금 전에 말씀하신 것도 그렇고, 예전에도 '퍼블릭 액세스 운동이 지역 내 소통 구조를 위한 운동이 되어야 한다'는 취지의 글을 쓰시기도 하셨죠. ( ACT! 61호 "퍼블릭 액세스 지역 말고 또 어디 쓸 때가 있나?"(권용협, 2009.09) ) 지역에서 미디어운동가로 활동하시면서 중앙과 지역의 관계에 대해 고민이 많으셨던 것 같은데,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시는지 좀 더 듣고 싶습니다.
권: 그렇죠. 아무래도 지역에 대한 고민이 많아요. 조심스러운 이야기이긴 하지만 서울도 중앙으로서의 역할 뿐 아니라 지역 운동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1년, 5년, 10년 뒤의 운동 지형에 대한 밑그림, 프로세스, 이를 위한 논의력, 정보 취합력 등을 어디서 갖출 것인가, 누가 검증할 것인가 등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야 해요. 미디어 활동가가 어떤 프로세스로 움직일 것인가에 그치지 않고 그 지역사회가 가야 하는 방향을 제시하는 운동이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 미디어 활동가도 지역운동 방향에 참여해야 하고 이런 과정에서 나오는 의견들을 미디어운동의 관점에서 검증하고 다시 정리할 필요가 있어요.
그런데, 현재 각 지역의 미디어운동은 지역사회의 흐름과 무관하게 움직인다는 인상을 갖고 있습니다. 물론 반박이 있을 수 있지만, 서울 지역의 미디어 운동가가 타 지역의 미디어 센터로 옮겨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현재 구조는 문제가 많다고 생각해요. 지역의 운동 방향과 배경을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운동하면 문제가 있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말이죠. 전체 지역 운동에 대한 틀이 갖춰지고 콘텐츠나 유통 방식에 대한 지역별 고민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 같은 중앙 주도의 미디어운동 방식은 - 물론 중요하지만 - 현재 지역에서의 핵심 사업이 무엇인지 파악하지 못하고 진행되었던 것 같아요. 미디어 센터의 지역별 진출에 주력하면서 그 외의 중요 사업에 대해 역량을 쏟지 못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충분히 논의할 인력이 있는지 등을 살펴보지 않았던 거죠.
전미네의 경우 서울 지역 활동과 중앙 활동의 두 가지 역할을 해야 합니다. 물론 서울에서 지역운동을 하는 것은 쉽지 않을 거라 생각해요. 게다가 중앙으로서의 역할을 하려면 굉장히 부지런해야 해요. 각 지역별 현황, 특수성, 발전 경로 등을 파악하고 지역 간 시행착오 사례를 다른 지역에도 전달하고, 지역별 컨설팅을 해주는 등 매개 역할을 해야 하니까요. 소위 '미디어 활동 그룹 내의 미디어' 역할을 해야 하는 거죠. 전 가끔 전미네 사람들에게 '서울을 떠나라!'는 말을 농담처럼 해요. (웃음)
중앙과 지역 관계에 대한 논의들은 예전에도 있었는데 지속적으로 이어지지 못했어요. 상당히 민감한 주제이기도 하고, 서울의 상황이 쉽지 않은 것은 모두 알고 있으니까요. 게다가 중앙에서 추진한 미디어운동이 각 지역에서 큰 기반이 되어줬던 것은 사실이에요. 부산 지역의 경우에도 미디액트가 큰 역할을 했고 이를 기반으로 부산 지역 미디어운동은 자기 발전 경로에 대해 고민할 수 있었던 거니까요. 그래서 저 역시 서울의 중앙으로서의 고민에 대해 고마운 마음과 채찍질하고 싶은 마음이 동시에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의 지역운동이 가장 난항을 겪고 있는 상황은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스이: 현재 추진되고 있는 지역 제작자 네트워크 프로젝트 "복지갈구화적단" (이하 '화적단')는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권: 재작년 쯤 대구의 이경희 활동가와 제가 함께 이야기하면서 떠오른 아이디어였어요. 그 때 허경 씨가 전미네를 떠난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당시 전미네는 가시적 사업이 일단락되고 미디어센터운동이 정체되는 한편, 퍼블릭 액세스 지원금이 축소되고 공동체 라디오 사업이 난항을 겪으면서 약간 소강상태에 있었거든요. 이런 상태를 돌파하기 위해 콘텐츠 제작을 제안했던 건데, 이러한 시도의 필요성에 서로 백분 공감했어요.
올해 초 제작지원비 축소에 대응하기 위해 퍼블릭 액세스 회의를 오랜 만에 하게 되면서 콘텐츠를 공동으로 제작해보자는 제안을 공식적으로 했고, 많은 사람들이 동의했어요. 아이디어의 숙성 시간을 2달 정도 거치면서 퍼블릭 액세스 구조의 재건을 도모하려는 움직임으로 발전되었죠. 즉, 지역별 퍼블릭 액세스 운동의 현황을 공유하는 데 그치지 않고 꾸준히 콘텐츠를 생산하고 이를 전미네가 주도하는 전국적 유통망을 통해 공유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거예요. 이런 움직임은 전미네의 인지도와 영향력을 높이기 위한 시도이기도 해요. 지역 간 콘텐츠를 공유하면서 전미네의 필요성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죠.
논의를 계속해오던 2-3달 쯤 전부터 지역의 중요한 퍼블릭 액세스 운동 방향 혹은 중요한 방법론으로 제시하자는 의견이 있었어요. 사람들을 규합하고 콘텐츠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퍼블릭 액세스 운동 자체가 지역의 중요한 의제 설정자로 자리매김하는 거죠. 각 지역 사회의 목적에 따라 변형된 콘텐츠를 생산하고 더 나아가 미디어 운동까지 해보자는 움직임으로 발전되었던 겁니다. 이와 같은 경우 가장 많은 지역의 의제를 포괄할 수 있는 주제로서 '복지'가 떠오른 거구요.
사실, 부산은 '화적단'이 딱히 필요하지는 않은 상황이에요. 지금까지 비슷한 활동을 계속해왔고, 지역 사회와의 접촉면을 계속 넓혀가려는 계획도 가지고 있었거든요. 단지 지역에서 유통망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전미네와의 동반성장을 위해 전국적 유통망을 동시에 구축해보려는 시도인 거죠. '화적단'에 참여하는 것이 전체적인 방향에는 보다 부합한다는 합의가 (지역 내 활동가들 사이에서) 이뤄진 상태입니다.
스이: '화적단' 프로젝트의 전망은 어떻게 보고 계신가요?
권: 저야 '화적단'이 잘 되길 바라고 있지만, 난항이 많죠. 이번에 부산에서 열렸던 회의에서 '지역별 책임자를 정해서 각 지역에 맞게 목적을 설정하고 보다 많은 참여를 위해 설득 작업에 들어간다,' 까지는 정리가 되었어요. 이 사업이 각 지역의 상황에 맞게 안착할 수 있는 지가 관건으로 보입니다.
본격적인 성과물은 내년쯤부터 나올 것 같고요. 한 지역에서 나온 성과물이 공유되면 곧 이어 다른 지역에서도 벤치마킹이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모범 전파가 빠르다는 것이 미디어 운동의 특성이니까요. 이렇게 한 번 가능성이 보이면 계속 운동이 이어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갖고 있습니다. 다만, 아까도 말했던 것처럼 서울에서 중앙의 역할을 충실히 해서 이러한 움직임에 힘을 실어주어야 할 것입니다.
스이: 오늘 긴 시간 인터뷰 감사합니다. ^^
권: 네, 감사합니다.
*주1
- [낙동강의 피눈물]은 평상 필름 블로그와 팟캐스트를 통해 볼 수 있습니다.
- 평상필름 http://www.psfilm.net/blog/archives/category/allaboutpod/bloodri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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