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대 초, 영국 다큐멘터리 산업 정책에 대한 두 개의 중요한 보고서가 발행되었다.
「Keeping it real: towards a documentary film policy for the UK (현실을 직시하기: 영국 다큐멘터리 영화 정책을 향하여)」(2020)와 「Making it real: A Policy Programme for UK Documentary Film (현실화하기: 영국 다큐멘터리 영화를 위한 정책 프로그램)」(2021)가 그것이다. 이 두 보고서는 영국 다큐멘터리 영화 위원회(DFC) 출범의 기반이 되었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다음 기사 참조 : 영국 다큐멘터리의 미래를 함께 만들자! - 다큐멘터리 영화 위원회(DFC) 활동과 연구보고서에서 주목할 것들 )
첫 번째 「Keeping it real」은 약 200명의 다큐멘터리 제작자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영국 다큐멘터리 현황을 살펴보고, 시사점을 정책 제안 형태로 정리한 보고서이다. 이듬해 발행된 두 번째 보고서인 「Making it real」은 앞선 보고서의 방향을 참고하여 이를 구체적인 정책으로 제안했다. 「Making it real」는 아래와 같이 7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①다양성, 형평성 및 포용성(DEI), ②다큐멘터리 부문의 성장, ③훈련, 교육 및 연구, ④자금 조달 및 제작, ⑤방송, ⑥유통 및 상영, ⑦스크린 헤리티지/아카이브.
본 글에서는 위의 보고서 중 ‘⑥유통 및 상영 파트’에서 제안한 영국 다큐멘터리 유통 배급에 대한 정책 아이디어를 정리해보고, 이를 참조해서 한국 다큐멘터리 유통 현황과 이를 개선하기 위한 고민을 정리해봤다. 일독과 다양한 의견 부탁드린다.
[ACT! 독립 미디어 세미나 2024.09.13]
다큐멘터리 배급 및 상영 지원 방안 모색
- 영국 다큐멘터리 정책 보고서 [Making it Real: A Policy Programme for UK Documentary Film]을 중심으로
재연
2020년 「Keeping It Real: Towards a Documentary Film Policy for the UK」에서 촉발된 영국의 다큐멘터리 업계 이해관계자들의 자문과 인터뷰를 바탕으로 대안을 마련하여 정리한 2021년 출간물 「Making it Real: A Policy Programme for UK Documentary Film」(이하 「Making it Real」)에서 제시하는 상영 및 배급 부문의 대안은 어떨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상영업자와 배급업자(더 나아갈 수 있다면 제작업자)를 필두로 하여 여러 관계자와의 네트워크 형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영업자, 특히 영화관 경영을 하는 상영업자와 극장 개봉을 준비하는 영화 배급업자는 어떻게 공생의 관계를 구축할 수 있을까? 영화관 상영업자는 극장 수익을 많이 낳을 것이라 예측되는 대중 상업영화를 최대한 많은 회차에 편성하려고 할 것이고 배급업자는 당연히 회사가 배급하는 영화가 프라임 타임에 그리고 최대한 많은 회차에 편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흥행이 보증된’ 상업영화이기에 프라임 타임에, 그리고 많은 회차에 배치될 수밖에 없는 것은 순리인지, 아니면 프라임 타임에 편성되었기에 그 영화는 흥행할 수밖에 없는 결과를 안고 가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한편으로 이러한 생각도 든다. 독립영화는 국민의 문화 복지 차원으로 마땅히 누려야 하는 문화 향유에 해당하진 않을까.
이 틈바구니에서 독립 다큐멘터리는 어떻게 한 틈을 차지할 수 있을까? 혹은 이러한 고민도 든다. 박스오피스로만 측정되는 현 한국 영화시장의 성과 지표에서 벗어나면 독립 다큐멘터리도 그것의 성과 달성에 있어 한 부문을 차지할 수 있을까. 스크린 쿼터만이 대안인 것일까. 이러한 고민에서 출발하여 「Making it Real」이 고안한, 영국에서의 다큐멘터리 상영 및 배급 부문에 대한 대안을 살펴보았다.
「Making it Real」은 총 11가지의 사항을 제시한다.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Making it Real」이 제시하는 대안은 영국 영화 시장 및 영국의 다큐멘터리 시장에 초점을 맞춰 고려한 대안이며 여기서는 상영업자를 영화관 상영업자에만 한정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미리 밝힌다. 11가지 중 가장 핵심적인 대안을 압축하자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배급 및 상영 이해관계자 간의 워킹 그룹 조직하여 다큐멘터리에 국한된 링-펜스(Ring-Fence) 지원 자금 마련하는 것. 또한 실질적으로 상영 자체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방안으로는 영국영화협회인 BFI가 구축한 BFI FAN(BFI Film Audience Network)의 필름 허브(FILM HUB)와 같은 견고한 자체 네트워크를 활용할 필요를 제시한다. 뿐만 아니라 그들 역시 극장 흥행 지표를 넘어선 성과 지표를 고민하고 있다.
1) 배급 및 상영에 관한 워킹 그룹 소집
장기적인 접근을 위해 다큐멘터리 배급업 대표자와 영화관 상영업자, 영화제 프로그래머 및 큐레이터, 관객 개발자를 구성원으로 조직할 것을 제안한다. 극장 및 광범위한 개념에서의 다양한 상영자들뿐만 아니라 공영방송업과의 조율도 포함된다. (*주1)
2) 다큐멘터리 상영 및 배급을 위한 링-펜스(Ring-Fence) 펀드 마련
“BFI의 5년 계획 BFI2022의 미래 관객 개발 전략에서 £9.2m가 연간 상영 및 배급 활동 지원에 할당”되지만 “다큐멘터리 배급 및 상영을 위한 자금은 없다”는 것에 주목하며 “영국 영화 산업이 압도적으로 극영화 중심적인 특성을 감안할 때, 이러한 자금의 대부분은 극영화, 영화제 및 프로젝트 지원에 사용된다고 봐도 무방하다”는 것. 그러므로 위의 워킹 그룹이 조직적으로 다큐멘터리에 국한된 링-펜스 자금 확보에 참여할 것을 권고한다. (*주2)
3) 개봉 시스템 및 구조의 현대화
PSB, SVOD와 동시 개봉을 고려하는 방안도 제시한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극장 흥행 수입으로 측정되는 성과 지표에서 벗어나 디지털 다운로드, 스트리밍 플랫폼, 비극장 라이선스 수입과 같은 극장 외 수입을 성과 지표에 포함하는 방안을 제안한다. 이를 통해 “다큐멘터리 영화의 경제적 가치를 높게 표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주3)
4) 다큐멘터리 상영 편성 업체에 재정적 인센티브 제공
BFI 자체 네트워크 FAN(Film Audience Network)의 필름 허브가 지원하고 있는 독립영화 상영 편성 인센티브 제도 등 재정적 지원 제도를 참고로 하여 상영 편성 자체에 다큐멘터리의 영향력을 키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주4) BFI는 ‘National Lottery’ 기금을 기반으로 한 ‘BFI Film Audience Network’, 즉 ‘BFI FAN’을 조직하여 필름 허브라는 이름으로 지역마다의 8개의 상영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각 지역 필름 허브는 특정 1개 업체 및 기관이 주관하여 운영되고 있으며 회원에는 영화관뿐만 아니라 영화제, 크로스-아트를 상연하는 장소까지 다양하게 포괄하여 조직된다.(*주5)
그중 Watershed가 주관하는 South West의 Cinema Incentive Scheme 2024가 인상적인데 풀타임, 파트타임 상영 장소를 구분하여 각각 영화관이 영국영화, 독립영화, Specialised film(*주6)을 상영할 때 리워드를 제공하는 포인트 기반 지원 제도이다. 이는 2023년 수치를 기준으로 멤버십 내, 연간 100편 이상(2024년에는 70회로 하향 조정됨)의 상영회를 개최한 장소(파트 타임 장소)이거나 연간 250편 이상 상영하는 상시적인 상영관(풀타임 장소)에게 해당되는 지원 체제이며 전년도 상영 비율에 따라 £250에서 £2,000 사이 규모의 선불 지원금이 제공된다. South West의 멤버십은 무료이다. 더불어 이전 데이터 대비, 같은 시기에 영국 독립영화, 국제영화(International cinema titles)의 상영 횟수가 증가하면 1포인트를 제공, 비주류 영화(작품 리스트 제공) 상영 시 상영마다 1포인트를 제공하는 등의 추가 보너스 포인트 제도도 제공한다.(*주7)
또 다른 필름 허브인 South East의 ICO(Independent Cinema Office)에는 'Film Exhibition Fund'가 있으며 금액 £3k를 기준으로 £3k이상 지원 체제와 £3k이하 지원 체제를 나누어 제공한다. 이 역시 필름 허브 South East 회원 대상으로 신청 가능하며 “회원은 프로그래밍, 마케팅, 관객개발, 접근성 및 관련 제반 비용에 대한 지원을 신청할 수 있다.”(*주8) 이렇듯 각 허브는 지역별로 나뉘어 각기 고유한 제도를 마련하고 시행하고 있다. 다만, 「Making it Real」은 BFI의 필름 허브 역시 단기적인 지원 전략이라고 보며 영화관에 직접적으로 장기적인 자금 지원이 필요하다고 본다. 고유한 지역적 맥락에 따라 조율이 가능해야 더 다양한 관객 개발이 이뤄질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주9)
한국의 경우엔 모두가 잘 알다시피 스크린 쿼터제가 있다.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19조 한국영화의 상영의무에 따르면 "영화상영관 경영자는 해마다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연간 상영일 수의 5분의 1이상 한국영화를 상영하여야 한다."(*주10) 여기엔 한국 영화 전체가 적용된다. 한국독립영화에 한정하여 스크린 쿼터제와 유사한 적용을 받는 제도는 독립 영화관 및 예술영화관인 전용상영관의 규정을 살펴볼 수 있다.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38조 전용상영관에 대한 지원에 의거하여 ‘영화진흥위원회가 인증하는 예술영화·독립영화’로 인증받은 영화, 애니메이션 영화, 청소년관람가영화, 소형 영화, 단편영화를 상영일 수의 100분의 60이상 상영하는 전용상영관은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주11) 이때, 전용관 지원사업 보조금을 받기 위해서 예술영화전용관은 영화진흥위원회가 "예술영화 및 독립영화로 인정한 작품을 연간 실제 상영일수의 60%이상 상영, 연간 실제 상영일수의 20% 이상으로 한국 독립·예술영화를 상영”해야 하며 “한국 독립·예술영화 의무상영일수의 70% 이상 독립영화를 상영" 해야 한다.
독립영화전용관은 “위원회가 독립영화로 인정한 작품을 연간 실제 상영일수의 60% 이상 상영”해야 한다.(*주12) 다만, 대부분 한국독립영화의 극장 개봉은 영화진흥위원회 및 이에 상응하는 공공기관의 개봉지원사업에 의존하고 있으며 개봉 지원작이 발표되는 분기를 기준으로 한국 독립영화 개봉 일정이 다소 쏠리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어쩐지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편성에 어려움이 있다 보니 극장 수익이 보장되기 어려워 개봉지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해 여러 독립영화 간의 무의미한 경쟁이 촉발된다.
언뜻 영국과 한국의 지원 사업은 유사해 보이지만 시작점에 있어서 지원 사업의 성격이 다소 다르다. 쿼터제의 적용을 받는 한국의 경우 규제적인 성격이 강한 반면, BFI FAN의 필름 허브는 자발성을 유도하는 보상적인 성격이 강하다는 점은 주목해 볼만 하다. BFI FILM HUB와 같은 보상 체계로 이뤄질 수 있는 데에는 멤버십을 기반으로 한 BFI FAN과 같은 자체 네트워크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역의 고유한 특성에 맞게 차별화된 BFI FAN과 같은 커뮤니티와의 협업은 다큐멘터리 관객 개발을 고유하고 점진적으로, 아래에서부터 가능케 할지도 모른다.
결국 「Making it Real」이 제시하는 대안을 따라가다 보면 ‘네트워크 구축’이라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한국에서도, 꾸준히 시행되고 있는 각 기관의 단기적인 횟수별 공동체상영지원 정책에서 더 나아가 BFI FAN의 필름 허브와 같이 극장뿐만 아니라 장소를 기반으로 한 상영자의 멤버십을 구축하여 장기적인 관객 개발을 낳을 수 있는, 상시적이고 고정적인 네트워크 형성이 필요로 해 보인다. 전국독립영화전용관네트워크나 모두를위한극장 공정영화협동조합, 지역영화네트워크, 전국의 독립영화협회뿐만 아니라 이미 잘 마련된 전국미디어센터를 통한 협업 혹은 전국의 작은영화관과의 공생을 고민할 차례가 되었다. 극장 안으로 다큐멘터리를 끌어오기 위해선 물론, 강력하게는 규제적인 차원에서 지원 정책 마련도 필요하다. 그러나 다큐멘터리가 상영 분야에 있어서 자생하기 위해선 자체 커뮤니티를 구축하고 이를 활용하는 장기적인 관객 개발이 중요할 것이다. BFI FAN의 네트워킹을 통한 지원 체제는 분명 미래 관객개발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
지금 당장, 시장 논리에 의해 극장 안 상영 및 흥행 부문에서 다큐멘터리가 가치를 인정받기 힘들 수밖에 없다면, 우리 역시 장기적인 관점에서 극장 밖에서 우리의 자생지를 확보해야 할 것이다. 이미 많이 논의되었듯 관객 개발과 같은 비전을 가진 지원 체제 마련뿐만 아니라 Doc Society의 임팩트 측정 지표와 같은 극장 흥행 수익 이외의 성과 지표 체계를 구축하여 다큐멘터리 지형만의 성과를 측정할 수 있어야 할지도 모른다. 다큐멘터리가 어떻게 해야 극장에서 안정적인 편성이 가능한가에서 출발했던 고민에 대한 해답은 오히려 극장 밖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
*주
1. 「Making it Real: Making it Real: A Policy Programme for UK Documentary Film」, p. 53.
2. 같은 책, pp.54-55.
3. 같은 책, pp.58-59.
4. 같은 책, p.55.
5. BFI FAN
6. The Bigger Picture 에 게재된 기사 ‘Article: Beyond the Multiplex: Audiences for Specialised Film in English Regions’ 에서 서술된 Specialised film 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산업의 정의에 따르면 소규모(small-scale) 영국 영화, 외국어 영화, 다큐멘터리, 비관습적인 내러티브, 주제 또는 영화적 기법을 가진 영화와 아카이브 등 주류 밖의 영화로 이해된다.”
7. Watershed의 Cinema Incentive Scheme 2024
8. ICO의 Film Exhibition Fund 2024-25
9. 「Making it Real: Making it Real: A Policy Programme for UK Documentary Film」, pp.55-56.
10. 국가법령정보센터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시행령
11. 국가법령정보센터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12.영화진흥위원회, <2024년 전용관 운영지원 보조사업 수행가이드> 5쪽. 영화진흥위원회 예술영화전용관 운영지원 사업 안내
참고자료
글쓴이. 재연
영화사 직장인. 열심히 배워나가고 있다.
[웹진 ACT! x 독립미디어세미나] "독립 다큐멘터리 네트워크" 기사 모음 (4) | 2024.09.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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