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6일 토요일, 서울 인디스페이스에서 10.29 이태원참사 1주기를 담은 <별은 알고 있다>의 마지막 순회 상영회가 진행되었다. 전국 순회 상영회는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 협의회와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인디스페이스가 공동주최하였고 한국어 자막 및 수어 자막, 문자해설 자막을 갖췄다. 상영이 끝나고 제작진과 이태원 참사 유가족과의 대화가 진행되며 수어 통역도 제공되었다. 2023년 11월 21일에 출발한 <별을 알고 있다> 전국 순회 상영은 전국 18개 도시를 돌며 수백 명의 관객들과 함께 뜨거운 연대의 마음을 나눴다. 10.29 이태원 참사 1주기 다큐멘터리 〈별은 알고 있다〉를 제작한 권오연 감독과 빼갈 프로듀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세영 각자 본인과 영화 <별은 알고 있다>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오연 10.29 이태원참사시민대책회의 미디어팀에서 활동하는 권오연입니다. 1년간 유가족분들이 특별법을 제정하기 위한 투쟁을 해오셨고, 미디어팀이 그 과정을 옆에서 기록 촬영했어요. 1주기가 되는 시점에 지난 1년간의 활동들을 정리하고 특별법 개정의 필요성을 설득할 수 있는 영상을 제작하면 좋겠다고 해서 <별은 알고 있다> 다큐멘터리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빼갈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미디어팀에서 2023년에 팀장으로 활동한 빼갈입니다. <별은 알고 있다>에서는 프로듀서를 맡았습니다. 저는 연분홍치마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연분홍치마는 용산 참사, 세월호 참사, 쌍용차 투쟁, 박근혜 퇴진 행동, 밀양 송전탑 반대 등 각종 시민대책회의의 미디어팀에 계속 참여해왔어요.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가 꾸려지기 시작했던 2022년 말에 연분홍치마 김일란 감독님이 연락을 받으셨어요. 미디어팀으로 합류해달라고 제안이 들어온 거예요. 내부 논의를 통해서 제가 합류하게 됐고요.
오연 저는 연분홍치마 활동가는 아니고, 당시 작품 조연출을 하고 있었는데요. 연분홍치마 사무실을 함께 쓰면서 다른 일들도 같이 해왔었어요. 빼갈이 2023년 미디어팀 팀장을 맡게 되었고 팀을 꾸리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 합류했습니다. 저에게 이태원 참사는 파악하기 어려운 참사였던 것 같아요. 세월호 참사와 마찬가지로 충격이 컸어요. 집이 이태원이랑 굉장히 가깝거든요. 그날 저도 지인들을 만나고 밤늦게 헤어졌는데 11시쯤 재난 문자를 받고 급히 집으로 갔어요.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집에 가려고 하는 사람들이랑 귀갓길이 겹쳤죠. 그때 정말 얼이 빠진 것 같은 표정인 사람들이 너무 많았어요. 그리고 전화 너머로 그런 얘기들이 들리더라고요. “큰일 난 것 같다. 근데 잘 모르겠다. 나 일단 집에 가고 있다.” 우리 일처럼 느껴졌어요. ‘당장 월요일부터 어떻게 일상을 살아가야 하지? 참사를 목격했거나 다시친 분들은 당장의 월요일이 너무 두렵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때까지만 해도 참사의 내용이나 구조적 원인에 관해서 전혀 모르는 상태였는데 ‘이태원에서, 그곳을 즐기러 나온 사람들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다’라는 사실 자체가 두렵게 느껴지는 거예요. 이 참사를 주변에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뭐라도 같이 하고 싶었어요.
빼갈 저는 2014년부터 19년까지 이태원에서 직장을 다녔어요. 할로윈 행사가 열리면 회사로 들어가기가 어려워서 발길을 돌린 적도 있어요. 그런 공간이다 보니 애착과 동시에 ‘매년 그토록 많은 사람이 방문하던 곳인데 왜 이번에는 이런 참사가 발생했을까?’라는 의문도 생겼어요. 더불어 퀴어로서 제게 이태원이 갖는 의미도 컸던 것 같아요. 퀴어들이 고향처럼 느끼는 공간에 이상한 낙인이 찍혀버리는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싶었죠.
한비 이태원은 시대를 거듭하며 두들겨 맞는 느낌이에요. 올해 미디어팀 팀장은 오연님이 되셨는데 어떤 활동 계획이나 미디어팀으로서의 활동이나 이런 게 궁금한데요.
오연 특별법이 이제 막 통과됐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결정을 앞둔 시점이다 보니, 새로운 계획을 세운다기보다는 투쟁을 잘 마무리하는 데 집중하려고 해요. 법안이 통과되고 공포되고 시행될 수 있도록 2023년 말부터 지금까지 활동을 쭉 이어오고 있고요. 이 시점이 지나가면 입법 외에도 다양한 활동이 필요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가 이태원 참사를 어떻게 기억하고 또 애도해야 할지 이야기해야 하니까요. 대중과 어떤 이야기를 나눠야 할지 고민이 많아요. 이태원이 익숙한, 그곳의 문화를 향유했던 세대가 현재 미디어팀으로 활동 중이거든요. 저희는 이번 참사로 이태원을 처음 알게 된 사람들이 아니라, 저마다 이태원이라는 공간에 얽힌 기억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에요. 근데 이태원 참사에 관심을 갖고 함께 활동하는 분들 대부분이 저희 같지는 않아요. 세대의 차이도 있고 법안 투쟁을 이어 가는 과정에서 ‘공간에 대한 기억’을 이야기하는 것은 후순위로 좀 밀려난 듯한 느낌이 있는데요. 그것을 주제로 끌어와야 우리가 이태원 참사를 현재 진행형으로 이야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올해는 그러한 연결을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한비 곧 영화 작업을 시작하겠구나 싶네요. 아무래도 지금까지는 활동 성격상 짧은 호흡의 영상들을 제작하는 데 집중했을 텐데,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해왔는지 소개해 주신다면요.
빼갈 처음 했던 작업은 ‘이름 영상’이었어요. 정부에 의해 이름 없는 분향소가 세워지고 이태원에 대한 낙인이 계속되다 보니까 처음으로 희생자들의 이름을 공개하고 얼굴을 공개하는 것이 무척 중요한 의미를 가졌어요. 유가족분들이 큰 용기를 내셔서 가능했던 일이고요. 49제에 맞춰 희생자의 이름과 얼굴을 공개하는 영상을 만들었고 참사 100일, 1주기에도 진행했어요. 주로 매진하는 분야는 기록 활동이에요. 투쟁을 옆에서 지켜보며 기록하고, 집회 티저 영상처럼 때마다 필요한 영상을 제작해요. 1주기 때는 ‘이렇게 행동해 주세요’의 쇼츠라든가 짧은 온라인 영상들도 기획하고 만들었습니다.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에 속한 다른 부서와의 협업을 통해 진행하는 일도 있어요. 예를 들어서 시민들이 남긴 포스트잇을 정리하는 부서가 있는데, 그곳과 연계해서 ‘포스트잇 읽기 영상’을 제작했어요. 이번 다큐멘터리 제작도 시민대책회의에서 먼저 제안을 했던 거에요.
세영 그럼 영화에 대해서 좀 더 궁금한 것들을 여쭤보면요. 제목이 되게 감성적이게 느껴진 부분이 있는데 어떻게 제목을 <별은 알고 있다>로 짓게 되었나요?
오연 영화에 등장한 어머니 아버지들, 언니, 삼촌, 이모 등 가족들의 이야기인데요. 인터뷰는 했지만 영화 안에 넣지 못했었던 부분들이 많아요. 유가족분들이 분향소에 갈 때마다 희생자분들에게 말을 거신다고 해요. “엄마 오늘은 국회 국회에 가.”, “오늘은 행진해.”, “너를 생각하고 너와 함께한다는 마음으로 같이 하고 있어.” 날이 춥든 덥든 매일 밖에서 투쟁하고, 욕하는 사람들 앞에서 버틴다는 게 참 버겁고 힘들잖아요. 어떻게든 용기를 내려고 계속 희생자들한테 말을 걸면서 다짐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은폐된 진실을 알고 있다’라는 뜻이 아니라 ‘별이 된 이들이 알려주는 길을 따라가고자 하는 마음이 아니면 어떻게 이 힘든 일을 해낼까’라는 뜻으로 지은 것 같아요. 상영회를 다니고 관객들과 만나며 차츰 의미가 더해졌어요.
세영 제작하시는 과정에서 큰 책임감과 사명감을 두 분이 짊어지셨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면서 도움 주신 분도 정말 많고, 궁금했던 거는 편집 컨설턴트로 연분홍치마도 나오고 또 많은 자료 화면과 인터뷰와 그리고 또 투쟁 화면 기록들 등 촬영부터 제작 과정이 어땠는지요? 어떤 과정으로 이뤄졌고 기억에 남는 것들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빼갈 저희가 기록을 꽤 성실히 해왔고, 각자 전문 분야가 있어요. 클로즈업을 잘하는 친구, 투쟁 현장을 잘 포착하는 친구, 먼 곳에서 롱샷을 잘 찍는 친구들, 성실히 기록하는 사람들이 있고요. 영화의 많은 부분은 미디어팀의 기록으로 이루어졌어요. 많은 소스 안에서 장면들을 골라내는 것이 어렵거나 부족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자료 화면으로 진행한 부분은 당시 현장 영상이에요. 그 상황은 저희가 찍지 않았으니까 뉴스를 많이 사용했고요. 국정조사 같은 경우에는 중간에 쫓겨났어요. 국민의힘에서 촬영을 못하게 했고, 국회 본회의장에서는 아예 촬영을 할 수 없거든요. 그런 경우에 자료 화면을 쓰다 보니 조금 많아 보였던 것 같아요.
그리고 연분홍치마 차원에서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미디어팀 활동을 하는 것이다 보니 동료들에게 구성과 내용, 영상적인 면에 관해 조언을 부탁드렸는데요. 기꺼이 책임감을 갖고 귀중한 조언을 많이 해주셔서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한비 인터뷰이 섭외 과정은 어땠는지, 그와 관련해 제작진 내부에서 결정한 기준이나 원칙은 뭐였는지 궁금해요. 참여자가 이름과 얼굴을 공개하고 또 가족에 관해 말하다 보니, 준비하는 입장에서 고려해야 할 것이 많았을 텐데요.
오연 저희가 인터뷰를 열다섯 분 정도 했어요. 이 다큐멘터리는 개인 작업이라기보다는 상황실과 협업하며 진행했던 인터뷰였기 때문에 섭외 자체가 어렵지는 않았어요. 워낙 언론에서 반기지 않는 경우가 많았기에 가족분들도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셨고요. 할 수 있는 한으로, 최선을 다해 인터뷰에 임해주신 것 같아요. 2시간 넘게 인터뷰한 분들도 많았어요. 참사 당일부터 지금까지의 풀스토리를 다 들었는데 서로의 이야기를 그렇게 세세하게 들으신 적은 없을 것 같아요. 수다 떨듯이 말할 수는 있어도 처음부터 끝까지 듣게 되지는 않으니까요.
그렇게 듣다 보면 누구의 이야기가 더 중요하다는 게 없는 거예요. 얘기들이 비슷해 보이지만 되게 다른 디테일과 감정선이 있고 가장 문제라고 느끼는 지점이 각자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개인의 생각이라든지 공식 언론 인터뷰에는 충분히 담길 수 없던 지점을 많이 알게 돼서 그런 것에 더 주목하고 싶었는데, 사실 그렇게 하기는 어려웠어요. 시간의 한계도 있고 어떤 한 명의 인물 다큐처럼 보이지 않아야 된다는 기준이 있었거든요. 참사 1주기인 시점에서 어떤 한 분의 이야기를 조명하는 방식으로 해서는 안 된다, 공공의 일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방향으로 가자는 의도였어요. 유가족들의 투쟁이 함께 이루어 내는 변화를 보여주고자 했기에 특정 인물에게 초점을 맞추지 않는 방식으로 편집했던 것 같아요.
여력이 되고 시간이 된다면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담아낼 수 있고 그런 작업들이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이번에 1주기 때도 YTN이랑 KBS, 뉴스타파에서도 방송 다큐이 많이 나왔잖아요. 근데 독립영화 쪽에서는 아직 이태원 참사와 관련된 작업이 없어요. 1년이라는 시간이 영화 한 편을 만들기엔 너무 짧으니 그럴 수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현장에서도 팔로우하는 카메라가 딱히 없거든요. 그런 지점들이 아쉬워요. 개인 창작자들이 있으면 또 다른 관점으로 이태원 참사에 대한 얘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작업하는 분들이 계실 수도 있길 바라며 내년에는 작품들이 나오길 기대합니다.
한비 찍다 보면 더 파고들고 싶다는 욕망이 생기잖아요. 거기서 멈추고 편집 과정에서도 균형을 염두에 두느라 두 분도 아쉬움이 클 것 같아요. 후속 작업이 나오면 좋겠네요.
빼갈 다양한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지는 상황이었다면, 유가족분들이 주인공이 되는 작업이 많이 있다면 그렇게까지 분량을 공정하고 공평하게 담아내야 한다는 강박은 느끼지 않았을 거예요. 근데 상황이 그렇지 않다 보니 가족분들한테는 한 작품이 되게 소중한 기회인 거예요. 그래서 다들 서로서로 분량을 나눠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오연 맞아요. 가족분들이 되게 조심스러워하셨어요. 작품 보고 나서 자신의 분량이 너무 많은것 같다고 걱정하시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한비 두 분은 언제 가장 힘드셨어요? 참사 현장 가까이에서 활동하다 보면 마음을 추스리기 어려운 순간이 분명히 찾아올 텐데, 한편으로는 정해진 기한 내에 결과물을 만들어 내기로 약속한 입장이었잖아요.
오연 저는 차라리 시작할 때가 제일 어려웠어요. 오히려 목표가 정해지고 나서, 어떤 사람들과 함께하면 되고 무엇을 하면 된다는 방향이 정해지고 나니 괜찮더라고요. 무엇보다 마감이 닥치니까 힘들 새가 없었어요. 작업 기간이 너무 짧았거든요. 2023년 10월 29일, 그러니까 1주기가 마감일이었는데 작업을 7월에 시작했어요. 시간이 촉박했죠. 미디어팀을 시작할 때부터 1주기에 맞춘 다큐멘터리 제작을 계획했던 것이 아니에요. 처음엔 단순히 기록을 목표로 미디어팀이 결성됐는데요. 지난 여름부터 다큐멘터리 제작에 대한 얘기가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어요. 유가족분들 중에서도 영상업과 방송 쪽에서 종사하시던 분들이 계시거든요. 영상을 통해 이야기하는 것의 중요성을 짚으시며 먼저 제안을 해주셨어요. 다큐멘터리가 나오면 이렇게 상영회를 열고 시민들과 만나는 활동을 할 수 있잖아요.
이태원 참사 이전에는 미디어 활동을 해본 경험이 없다 보니 초반 세팅이 어려웠어요. 개인 작업과는 다른 맥락으로 접근해야 하니까요. 어떤 목적으로 영화를 만들지, 그러한 목적으로 영화를 만든다는 건 결국 어떤 영화를 만든다는 것인지 스스로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어요. 그 과정에서 세월호 참사 관련 다큐멘터리를 포함해 다양한 투쟁 현장에서 제작된 다큐멘터리를 되게 많이 찾아봤어요.
빼갈 저는 인터뷰했던 순간들이 제일 쉽지 않았던 것 같아요. 유가족 분들이 가장 힘들었던 순간에 관해 말씀하시잖아요. “내 딸 생일이 11월 1일이야. 미역국을 끓여두고 기다렸어. 그런데 딸은 오지 않았고 장례를 다 치르고 나니까 미역국은 다 쉬어 있었어. 그다음부터 미역국을 못 먹겠어.” 이런 얘기를 들을 때 감정적으로 추스르기 어려웠는데 그거를 영화에 넣을 수는 없었어요. 그분들의 슬픔을 전시하는 것이 목표는 아니기 때문에 인터뷰 내용이 어떤 맥락에서 들어가야 될 지에 대한 거리두기가 정말 힘들었던 것 같아요. 이 고통이 얼마나 큰 지에 대해서 얘기를 했으면 좋겠다 싶기도 하다가도 그것들이 사실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도달해야 될 지점은 아닌 부분이기도 해서 균형 맞추는 게 쉽지 않았던 것 같아요.
세영 이태원 참사를 다루고 있는 작품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내비치셨는데 1주기쯤에 맞춰서 뉴스타파나 KBS 등에서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한 45분에서 50분 내지의 작품들이 또 나왔고, 파라마운트 플러스에서는 <크러시>라는 작품이 나왔는데요. 작품마다 목표, 특성, 다루고 있는 지점이 다르다고 느껴졌어요. 그 작품들을 혹시 보셨는지 <별은 알고 싶다>와 다른 작품들과의 어떤 관계성 혹은 어떤 식으로 읽혔는지 이런 것도 좀 궁금했거든요.
오연 저도 다 봤어요. 다 겹치지 않고 다른 지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 좋았습니다. <크러시>를 좋게 봤어요. 생존자들의 얘기를 가장 구체적으로 담은 영화라는 생각이 들고 현장에서의 그 공포감, 두려움이 감각적으로 느껴지는 거예요. 친구를 찾아다니는 마음과 1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생사를 오가는 그 시간이 너무 잘 느껴져서 인상 깊었어요. 구체적인 감정과 경험을 들은 적이 드물어서 그런 내용들을 접할 수 있었던 점이 좋았습니다.
다만, CCTV 영상을 비롯한 현장 영상을 사용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고민이 많이 들긴 했어요. 너무 무분별하게 쓰지 않았나 싶고, 영상 자체가 너무 자극적인 거예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우리가 이 참담한 현실을 피하지 않고 직면하는 것이 맞는지, 다른 방법은 없는지. 한편으로는 그러한 영상들이 과연 참상을 기록하려는 목적으로 찍힌 것인가 싶기도 하고요.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누가 어디서 찍었는지도 모를 수많은 영상을 구경하고 있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거예요.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했을 거고요. 그러니까 내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는 채, 바깥에서 지켜보고 있는 거잖아요. 그것이 얼마나 끔찍한 참사였는지, 그 안에서 희생자가 얼마나 큰 고통과 두려움을 느꼈을지는 우리가 사후적으로 생각하게 된 것이지 당시에는 몰랐으니까요. 바깥에서 그저 구경하는 듯한 느낌을 강하게 받아서 이걸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고민되더라고요.
그리고 KBS에서 만들었던 이태원참사 관련 방송도 생존자분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인상 깊었어요. 특히 159번째 희생자였던 재현님 얘기를 들으면서 가깝고 사랑했던 사람을 잃은 마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저희는 자식이 없잖아요. 그러다 보니 친구나 연인을 잃은 분들의 마음에 너무 공감이 되는 거예요. 한편, YTN 기자님은 촬영하면서 내내 만났어요. 저희보다 현장에 많이 가셨을 정도로 성실하게 취재하셨어요. 그래서 가족들 얘기를 이렇게 풀어내실 수 있었구나 싶더라고요. 뉴스타파는 저희랑 영상 공유하는 사이에요. 뉴스타파에서 국회 영상 공유해 주면 저희 기록 영상 보내드리고, 그렇게 현장에서 계속 만났던 분들이라 동료 같은 느낌이 좀 드는 것 같아요.
세영 <별은 알고 있다> 보고 다른 매체에서 나온 것들을 봤는데 모든 걸 한 번에 같이 보면 이제 좀 더 이렇게 퍼즐이 맞춰진다고 해야 되나. 다른 매체에서 만든 영상들은 다른 스타일과 다른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 연계해서 보면 되게 좋겠다 이런 생각은 좀 들었습니다. 2024년 1월 6일 인디스페이스에서 했던 게 마지막 상영회지요? 상영 활동은 마무리 된건가요?
오연 전국 순회 상영은 10.29이태원참사시민대책회의 상황실에서 대관 상영을 진행했어요. 시민과 만나는 일종의 광장 같은 자리를 영화관에서 만들었던 건데요. 안동, 부산, 사천, 대전, 대구 등 18곳을 도는 전국 순회 상영이었어요. 서울 인디스페이스에서 시작해서 전국을 돌고 다시 인디스페이스에서 마지막 상영하고 끝나는 일정이었습니다. 별개로 지금도 공동체 상영 신청을 받고 있어요. 단체나 학교, 일터에서 신청해 주시면 상영하실 수 있게끔 파일을 보내드려요. 저희가 공간 대관을 지원해드릴 수는 없지만 상영 후 토크나 GV에는 함께하고 있어요. 제작진도 가고, 유가족분들 섭외도 도와드려요.
세영 상영회 갔을 때 제가 본 상영본에는 이제 수어 통역 영상까지 있었어요. 화면 소리 정보나 또 음성 해설 자막과 수어 통역 그것까지 있어서 사실 되게 정보량이 많고 그런 영화다 보니까 만약에 자막이나 이런 자료가 많이 없으면 곱씹으면서 보기가 힘들었을 것 같은데 오히려 그런 자료들이 있으니까 저한테 도움이 많이 됐거든요. 그래서 혹시 상영회 하시면서 화면 해설 자막이나 수업 통역 영상이나 이런 걸 넣으신 거에 대해서 어떤 관객 피드백이 있었나 이런 게 좀 궁금했거든요.
오연 그걸 언급해 주시는 분들이 몇 분 계시긴 했었어요. 이렇게 문자 해설을 하게 된 이유가 있는지 여쭤봐 주시는 분들도 계셨고요. 공동체 상영 신청받을 때도 수어 자막 버전 필요하면 말씀해 주시라고 체크하는 항목이 있거든요. 수어 통합 버전으로 상영한 적도 있고요. 저희 상황실 멤버 중에 인천인권영화제 스탭분이 계신데 상영회를 위해서 꾸려진 상영팀에도 같이 계시기도 해요. 인천인권영화제에서 첫 번째 상영을 했는데 영화제에서 폐막작 한정으로 수어 통합 버전을 제작해주셨어요. 사실 내부적으로 자막을 제작할 여력은 없었는데, 인천인권영화제에서 수어 버전을 제작해주셔서 너무 다행이고 감사했습니다.
세영 상영회랑 GV에 대해서 여쭤보고 싶은 게 엄청 많이 이제 두 분이서 다니셨을 텐데 그런 거예요. 기억에 남는 순간과 질문이 있는지요?
빼갈 각 지역마다 분위기가 달랐는데요. 광주는 시민 행사 같은 느낌으로 진행됐어요. 5.18 민주화운동 희생자 유가족분들이 광주에서 릴레이 걷기를 쭉 해오셨는데 그분들이 참석해 주셨고요, 함께했던 시민들과 수녀님들도 오셨어요. 세종 상영회의 경우, 충남 지역에서 간담회 자리가 처음으로 마련된 상황이었어요. 유가족분들이 굉장히 힘있게 말씀하셨던 기억이 나요. 제게 깊이 남은 장면은 남인순 의원의 후원 상영회였는데요, 의원님 지역구인 송파구에 신애진 님이라는 희생자분이 계세요. 그날 상영회에 애진 님 남자친구가 왔어요. 두 분이 무척 끈끈한 사이였던 것 같아요. 근데 또 남자친구 부모님도 같이 오신 거예요. 어머니들이 만나서 펑펑 우시더라고요. ‘조금씩 연결되고 있구나’라고 느꼈던 순간이라 소중하게 남아 있어요.
오연 지역에 가면 서울이랑 분위기가 좀 다른 것 같아요. 이태원이 서울에 있기도 하고, 현재 모든 활동이 서울 중심으로 진행되다 보니 아무래도 서울 관객은 이해도가 높아요. 훨씬 가깝게 받아들이고 관련 내용을 꽤 상세히 알고 있어요. 근데 지역에 가면 정보 격차를 확연히 느껴요. 다들 공감하는 마음으로 오시는 건데 정보의 양이 절대적으로 적은 거예요. 예를 들면 “놀러 갔다 죽은 사람들을 왜 국가가 책임져야 하냐고 말하는 사람한테 뭐라고 반박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며 고민을 털어놓으시는 거죠. 이 영화를 통해 유가족의 마음을 처음 알게 됐다는 반응이 많기도 했고요. 그런 순간이 인상 깊게 남았어요. 한 번은 산청에서 상영회를 연 적이 있어요. 동네도 작고 영화관도 작은 곳이에요. 별로 기대하지 않고 갔는데 사람이 너무 많이 와서 다 못 들어갈 정도라는 거예요. 진짜 감사했죠. 모든 상영회에 유가족분들이 참석하셨고 간담회처럼 대화 나누는 자리를 마련했는데요, 그렇게 여럿이 이야기를 주고 받을 때 가장 힘을 얻으시는 것 같아요. 지켜보며 뿌듯했습니다. 어떤 분이 그러시더라고요. 참사 이후 왠지 마음이 어려워서 관련 집회를 나간다든지 분향소에 간다든지 해본 적이 없었다, 이 상영회에 참석한 것이 참사 이후 내가 한 첫 번째 행동이다. 그렇게 영화를 통해 이태원 참사를 마주하기 시작했다는 반응을 접할 때 보람을 느껴요.
세영 앞으로의 계획이나 소망을 들려주신다면요.
빼갈 적지 않은 이에게 이태원은 가장 친한 친구,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한 추억이 있는 공간이에요. 살아남은 사람들의 죄책감, 그들이 어떻게 버티고 있는지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보고 싶어요.
오연 일단 미디어팀 활동을 계속할 거고요. <별은 알고 있다>는 특별법 제정과 진상규명에 초점을 맞춘 영화인데 만들면서 많이 고민했어요. 과연 무엇을 진상 규명해야 하나. 특별법이 제정되고 책임자 처벌하고 진상 규명하는 그 과정은 너무 중요한데, 또 그것만으로는 안 될 것 같아요. 왜냐하면 이태원 참사 이후 사람들의 반응에 꾸준히 주목했거든요. 우리가 죽음을 대하는 태도가 너무 가벼워진 것 아닌가 싶어요. 세월호 참사 때만 해도 ‘폭식 투쟁’하는 일베를 보면서 굉장한 충격을 받았잖아요. 근데 지금은 그걸 마치 당연하게 여기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분향소 앞에 와서 조롱하는 이들, 집회할 때마다 노래 시끄럽게 틀어놓고 훼방 놓는 이들이 계속 있거든요. 그들을 접하는 것이 유가족들에게는 진상 규명을 못하는 상황만큼이나 큰 상처라고 봐요. 그로 인해 생존자라든지 그 현장을 목격했던 사람들이 밖에 나오기가 더 어렵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우리가 현상황을 어떻게 이겨내야 하는지, 나는 현재의 미디어 환경을 어떻게 바꿔 나가야 하는지 고민하는 중이에요. 다른 창작자들과 함께 이러한 고민을 나누는 자리를 조만간 마련해 보고 싶습니다.
■ <별은 알고 있다> 공동체 상영 신청 https://forms.gle/xqFCp4Q85v9AMuhS6
■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전화 02-723-5300(참여연대)
이메일 people4itaewondisaster@gmail.com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1029act.net/
텔레그램채널 https://t.me/itaewondisaster
유튜브 https://www.youtube.com/@1029itaewonTV
■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 협의회 인스타그램 @10.29_itaewon_offic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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