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더 많은 이야기를 보고 들어야 한다. 위성지도와 스트리트뷰를 통한 여행으로 현장을 방문하고 당시의 기억을 소셜미디어에 공유하는 것보다 더 내밀한 대화가 필요하다. 참사 유가족들이 투쟁 과정에서 그랬던 것처럼, 유경근이 팟캐스트를 진행하며 앞장선 것처럼, <세월>은 더 내밀한, 더 큰 목소리의, 더 많은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참사에 관한 사적인 이야기들이 밧줄 다발처럼 엮일 때, 그것이야말로 연대의 장소를 지탱할 수 있는 도구이자 무기라고, <세월>을 보고 난 뒤 생각하고 있다."
[ACT! 130호 리뷰 2022.06.11]
연대의 장소를 찾아서 - <세월> 리뷰
박동수(ACT! 편집위원)
현대인의 취미 중엔 이런 것이 있다. 구글이나 네이버 등의 포털서비스가 제공하는 지도를 통해 다른 지역을 여행하는 것. 이 여행의 장점은 단순히 방구석에서 국토대장정을 떠날 수 있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포털의 지도 서비스가 제공하는 스트리트 뷰(구글), 거리뷰(네이버) 등의 서비스는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 단순히 지역을 여행하는 것을 넘어 대안적인 시간여행이 가능하다. 2017년 세월호가 인양된 이후 4월이 돌아올 때면 위성지도를 켜 목포신항을 검색해본다. 세월호는 여전히 거기에 있다. 구글 지도에는 목표신항 주차장이 “세월호가 보이는 주차장”으로 저장되어 있다. 이곳에서 스트리트뷰를 켜면 시민들이 달아둔 노란 리본들 너머 저 멀리 여전히 서 있는 세월호를 볼 수 있다.
매년 돌아오는 4월이면 소셜미디어엔 2014년 4월 16일의 기억을 꺼내 적은 글들이 등장한다. 자신이 직접 연관된 사건이 아님에도 2014년 4월 16일의 일상은 외상적이며 비일상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다. 시간을 조금 되돌려보자. 2014년에 대학에 입학해 OT를 앞두고 있던 나에게 2월 17일 경주 마우나리조트 붕괴사고는 여전한 충격으로 남아 있다. 2003년 초등학생이던 나에게 9시 뉴스는 지하철 출입구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는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다. 기억할 수 있는 거대한 참사들과 함께 미처 기억하지 못하는 참사들, 국가권력에 의해 희생된 사람의 이름들이 머릿속을 맴돈다.
장민경의 <세월>은 세월호 참사 유가족이자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대표인 유경근이 다른 사회적 참사의 유가족을 인터뷰하는 팟캐스트 “세상끝의 사랑”(*주1)을 진행하며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1999년 씨랜드 화재참사 유가족이자 한국어린이안전재단 대표인 고석, 2003년 대구지하철참사 유가족인 황명애, 그리고 1987년 민주화운동 중 사망한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이 영화의 주인공으로 출연한다. 여기서 이한열 열사 어머니의 등장을 다소 뜬금없게 여길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 영화에 주요하게 등장하지 않은 팟캐스트의 다른 게스트를 옮겨본다. 삼풍백화점 붕괴참사 유가족, 용산참사 생존자, 스텔라데이지호 침몰사건 실종자 가족, 고 백남기 농민의 유가족, 메르스 감염 희생자 유가족, 제주 특성화고 실습생 고 이민호 군의 유가족…. 유경근의 팟캐스트와 장민경의 <세월>은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민중총궐기에서, 노동현장에서, 방역을 방치하던 국가로부터 국민이 죽음을 맞이한 모든 사건을 사회적 참사라 부르려 한다.
유경근은 세월호 참사 이후의 활동들을 이야기하며, 5.18 전야제에 광주를 찾는 것이 조심스러웠으나 거리행진을 하던 오월 어머니들을 만난 뒤 마음이 바뀌었다고 말한다. 광주를 찾고 5.18 유가족을 만나는 것이 어떤 정치적 제스처로 느껴졌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5.18 유가족은 세월호 참사 유가족을 환대해주었다. <세월>은 팟캐스트 “세상끝의 사랑”이 창출해낸 그러한 순간을 포착해내려 한다. 유가족만이 나눌 수 있는 이야기, 직업인이자 부모, 형제, 자매였던 이들이 활동가로 변화하게 된 순간의 이야기, 국가에 의해 구조받지 못하고, 길바닥에서 죽임을 당하고, 치료받지 못한 사람을 가족으로 둔 이들의 이야기.
참사 현장은 이내 사라진다. 세월호가 인양되었다고는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약속했던 진상규명은 완수되지 못했다. 구글 스트리트뷰로 볼 수 있는 세월호의 모습은 방치에 가깝다. 대구지하철참사 당시의 모습은 일부 보존되어 있으나 그곳은 더이상 투쟁현장이 될 수 없다. 씨랜드 화재참사 현장은 버려진 공터가 되었다. 더 나아가 참사의 희생자들은 가족의 죽음을 사건 현장에서 추모할 수 없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진 자리엔 대통령 당선인이 사는 초고가의 아파트가 들어서고, 공권력의 이름으로 죽임당한 이들이 쓰러진 길거리는 순식간에 “정상화”된다. 가까스로 찾아낸, 사건 현장과 멀찍이 떨어진 공원 등지에 위령비나 추모비를 세우기조차 쉽지 않다. 이미 세워진 추모비를 찾아 추모식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대구지하철참사 추모식을 준비하던 황명애의 말을 빌리자면, “전쟁”을 감수할 태세를 취해야 한다.
참사 현장은 멀끔하게 정상화되거나 방치된다. 추모의 장소를 찾아내려면 자본의, 부동산의, 공정의 논리에 맞서야 한다. 그러므로 <세월>에 등장하는 유가족들이 찾아낸 대안적 추모의 장소는 물리적 장소가 아니다. 그들이 대화하며 만들어내는 가상의 시공간, 연대의 이름이 자아내는 각별한 정동의 시공간이다. 그곳은 안산 화랑유원지, 대구 팔공산의 ‘대구 시민안전테마파크’ 서울 송파구 어린이안전 공원, 시 외곽에 위치한 망월동 묘지공원처럼 사건과 분리된 공간으로 존재하지만, 그곳은 오히려 위성지도를 통한 대안적 시간여행으로 현장을 찾는 것과 유사하다. 연대를 통해 현전하는 추모의 장소는 유가족 간의 대화가 발생하는 그 공간이다.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추모의 장소가 비록 현장을 벗어났음에도, 수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마련될 수 있었던 이유는, 손으로 만지고 발로 디딜 수 있는 물질적 공간에 앞서 존재한 연대의 장소가 있었기 때문이다.
<세월>의 마지막 장면은 영화가 촬영된 2018년~2019년 사이 벌어진 새로운 참사에 연대하는 유가족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노동 중 사망한 김용균의 추모제에도 <세월>의 주인공들은 자리한다. 어쩌면 이것은 사회적 참사로 유가족이 된 이들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연대일지도 모른다. 국가가 방기한 비리, 허점 가득한 제도, 시스템의 구멍, 공권력 남용으로 인해 세상을 떠난 이들이 있다. 한순간에 가족을 잃은 이들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또 다른 유가족이다. 때문에 배은심은 광화문 광장에서 투쟁하던 유경근을 찾았고, 유경근을 비롯한 세월호 유가족은 5월의 광주를 찾았다.
<세월>을 보는 관객 대다수는 영화 속 유가족에 온전히 이입할 수 없을 것이다. 영화가 전제하는 것은 유가족을 가장 가까이서 이해할 수 있는 존재는 다른 유가족이라는 것이다. 이는 이 영화의 허점일 수도 있다. 동시에 이 영화와 유경근의 팟캐스트는 유가족이 아니고서야 느낄 수 없는 이야기를 가능한 전달하려 한다. 우리는 더 많은 이야기를 보고 들어야 한다. 위성지도와 스트리트뷰를 통한 여행으로 현장을 방문하고 당시의 기억을 소셜미디어에 공유하는 것보다 더 내밀한 대화가 필요하다. 참사 유가족들이 투쟁 과정에서 그랬던 것처럼, 유경근이 팟캐스트를 진행하며 앞장선 것처럼, <세월>은 더 내밀한, 더 큰 목소리의, 더 많은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참사에 관한 사적인 이야기들이 밧줄 다발처럼 엮일 때, 그것이야말로 연대의 장소를 지탱할 수 있는 도구이자 무기라고, <세월>을 보고 난 뒤 생각하고 있다.
*주
1) 팟캐스트 “세상끝의 사랑” 링크 https://www.podbbang.com/channels/15668
글쓴이.박동수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해서 영화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계속 보고 듣고 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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