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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세와 다송의 관계로써 구조화된 <기생충>에 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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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22. 1. 12.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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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이 글은 2021년 12월 7일부터 2022년 1월 4일까지 미디액트에서 진행된 강의 ‘한 편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분석해보기’의 수료작입니다.

 

 

근세와 다송의 관계로써 구조화된 <기생충>에 관해서

 

한상훈

 

 

<기생충>(2019)은 세 개의 스테이지와 기택의 가족이 처한 상황을 간단히 소개하는 프롤로그, 기우의 내레이션으로 진행되는 에필로그가 덧붙여진 구조를 가지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해고된 문광이 초인종을 누르고 찾아오는 장면을 전후로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고 볼 수도 있다. 

 

첫 번째 스테이지에서는 기택의 가족의 위장 취업 과정이 자세히 그려진다. 갑자기 기택의 집에 수석을 들고 나타난 기우의 친구 민혁의 제안으로 기우가 연교 앞에서 기세를 앞세워 동익의 딸 다혜의 과외 선생으로 취직하고 기우에 의해 연교에게 소개된 기정이 다송의 미술 치료 선생으로 취직한다. 그리고 기정의 계략에 의해 윤 기사가 해고되고 윤 기사 대신에 기택이 동익의 운전기사로 취직한다. 마지막으로 기택 가족이 합심해서 문광을 쫓아낸 자리에 충숙이 가사도우미로 채용된다. 

 

이 부분에서 다송이 그린 자화상, 기정이 연교에게 말한 ‘블랙 박스’ 그리고 지하실로 내려가는 입구가 후경에 배치되는 쇼트들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그 입구는 불이 꺼져 있을 때는 검은 색인데 이 검은 입구는 영화의 중반에 일어날 반전의 복선이기도 하다. 문광이 이 입구로 내려가 지하 벙커가 발견되는 순간부터 이 영화의 비극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 비극은 다송의 정신적인 문제와도 연결되어 있으므로 이후의 스테이지들은 다송의 트라우마를 염두에 두고 볼 필요가 있다.

 

두 번째 스테이지에서는 갑작스러운 문광의 방문으로 인해 기택 가족의 휴가가 중단되고 지하 벙커와 그곳에 은거하고 있던 문광의 남편 근세가 드러나며 두 가족 간의 생존을 건 다툼이 벌어진다. 동익의 가족이 캠핑을 간 사이에 기택 가족이 동익의 집에서 술판을 벌이고 있을 때 불청객처럼 문광이 찾아온다. 문광을 따라 내려간 지하 벙커에 근세가 살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충숙은 경찰에 신고해 그들을 쫓아내고자 한다. 그러나 되려 기택 가족이 문광의 가족에게 약점을 잡혀 동익의 가족에게 자신들의 정체가 탄로날 위험에 처한다. 충숙의 공격으로 다시 전세가 역전되지만 마침 그때 폭우로 캠핑을 포기한 동익의 가족이 귀가한다. 기택의 가족은 문광의 가족을 숨겨놓고 몰래 동익의 집을 빠져나오는 과정에서 다송의 돌발행동으로 애를 먹는다. 도착한 반지하의 집이 폭우로 침수돼 기택의 가족은 대피소로 가게 된다. 

 

이 부분에서는 첫 번째 스테이지에서 은밀하게 암시되었던 동익의 집의 비밀이 밝혀진다. 사채업자들에게 쫓기던 근세가 문광의 도움으로 지하 벙커에 은신해 있었던 것이다. 연교가 각별히 신경을 쓰는 것으로 보이는 다송의 트라우마도 근세와 관련된 것임이 밝혀진다. 연교는 귀신이라고 말하는 근세를, 늦은 밤, 다송이 자신의 생일 케이크를 먹다가 봤기 때문에 다송이 트라우마를 갖게 된 것이다. 트라우마 치료를 위해 미술 선생으로 고용된 기정까지, 다송의 트라우마는 세 가족을 연결시킨다. 폭우로 인해 유예된 다송의 생일 파티는 세 번째 스테이지에서 비극을 낳게 되는데 다송의 생일 파티가 다송의 트라우마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근세의 등장과 다송의 트라우마

 

세 번째 스테이지에서는 동익의 집 정원에서 열린 다송의 생일 파티에서 대낮의 살인 사건이 벌어진다. 근세를 처치하러 지하 벙커로 내려간 기우는 오히려 근세가 던진 수석에 큰 타격을 입는다. 칼을 들고 정원까지 나온 근세는 눈앞에 보이는 기정을 찌르고 문광을 죽게 한 충숙을 불러내 그에게 복수하고자 한다. 그러나 정작 충숙을 이겨내지는 못한다. 차 키를 던지라고 재촉하는 동익이 죽은 근세를 들추며 역겨워 하자 기택은 근세가 들고 있던 칼을 집어들어 동익을 찌른다. 그리고는 어디론가 도망친다. 

 

이 부분에서는 다송이의 생일 파티가 근세에 의해 생긴 트라우마를 치유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또 다시 근세에 의해 트라우마 치유가 실패한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송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트라우마를 치유하지 못한 것이다. 근세가 정원에 나타남으로써 기정이 죽고, 기택은 동익을 죽인 살인자가 되어 동익의 집에 '기생'하고자 했던 기택 가족의 계획 또한 실패한다. 

 

<기생충>은 이들 가족 간에 벌어지는 소동으로부터 점점 더 심각하게 양극화되어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계급 문제에 관해 관객이 성찰해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특히 이 영화는 양극화가 되면서 부유층과 빈곤층간의 대립뿐만이 아니라 비슷한 처지에 있는 빈곤층과 빈곤층 사이에서도 불화가 발생하는 부조리한 상황을 잘 짚어내고 있다. 이는 <기생충>을 이야기하는 데 있어 가장 일반적인 설명이기도 한데 이때 다송의 트라우마가 간과되고 있는 점은 아쉽다. <기생충>에서 다송의 트라우마는 치밀한 설계와 함께 대단히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송의 트라우마 문제를, 이 영화를 두 부분으로 나누는 문광의 방문과 관련지어서 생각해보자. 문광의 방문으로 지하 벙커에 숨어 있던 근세의 존재가 드러나고, 기택 가족은 문광 가족의 처리 문제로 골머리를 앓게 된다. 근세의 등장이 기택의 가족에게 가장 큰 위기 상황을 주는 것이다. 그런데 근세의 등장이 기택의 가족에게만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다. 짜파구리를 먹으면서 연교와 충숙이 나누는 대화를 통해 다송의 트라우마가 근세로부터 생겨났다는 사실 또한 밝혀지기 때문이다. 생일날 저녁에 생일 케이크를 먹던 다송이 우연히 근세를 보고 졸도해버린 것이다. 이렇게 근세의 등장은 기택의 가족, 동익의 가족과 모두 연관되어 있으며 근세는 순식간에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가 되어 버린다. 이렇게 영화 속에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면서 그 인물로 인해 영화가 두 부분으로 갈라지는 대표적인 작품이 알프레드 히치콕의 <싸이코>(1960)인데 <기생충>은 <싸이코>와 여러모로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기생충>에서 <싸이코>의 노먼 베이츠와 같은 역할을 하는 존재가 바로 근세인 것이다. 이렇게 봉준호 감독이 직접 밝혔던 <싸이코>와 <기생충>과의 관련성은 근세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근세가 영화 속에 등장함으로써 근세의 시점에서 <기생충> 전체를 다시 바라보는 것 또한 가능해진다. 근세가 지하 벙커에 숨어 살고 있었다는 사실은 기택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근세와 기택은 모두 대만 대왕 카스테라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근세는 기택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의 모순에 의한 희생자이고 이러한 사실은 <기생충>이 조명하고자 하는 양극화의 문제와 연결된다. 

 

또한 결과적으로 보자면 동익의 가족이 캠핑을 간 것과 그로 인해 기택의 가족이 동익의 집에서 휴가를 즐기고 있었던 것도 근세와 관련이 있다. 동익의 가족이 캠핑을 갔던 것도 다송의 트라우마 치유를 위한 생일 행사 때문이었다. 연교가 다송의 트라우마 치료에 큰 관심을 갖고 있고 이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은 영화의 초반부터 여러 차례 드러난다. 기정이 연교에게 “다송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요? 1학년때?”라고 질문을 했을 때 소스라치게 놀라며 결국 눈물까지 쏟는 연교의 모습이 결정적인 근거가 될 것이다. 기정이 이 말을 할 때 화면의 후경에서 지하 벙커에 근세가 숨어있다는 비밀이 밝혀질-부엌에서 지하로 내려가는-검은 입구가 처음으로 보여진다는 것도 이미 다송과 근세가 관련되어 있다는 것에 대한 복선의 기능을 한다. 또한 이때 연교의 반응은 카메라의 급격한 이동을 통해서도 강조된다. 그리고 기정은 이때의 연교의 반응을 기우에게 다시 이야기한다. 연교가 기정이 다송의 트라우마를 짚어낸 것을 높게 사 기정을 다송의 미술 선생으로 채용했다면 이 역시 연교에게는 다송의 트라우마 치료가 중요하다는 걸 관객에게 다시 알려주는 셈이 된다. 정원에서의 살육 장면이 펼쳐지기 전에 인디언 복장을 한 기택과 동익이 나누는 대화에서도 연교가 다송의 트라우마 치료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동익은 기택에게 “그런데 이번 생일을 더 유난히 신경 쓰네. 저 사람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연교가 생일 케이크를 다송에게 전달하는 사람으로 기정을 정하는 것 역시 다송의 트라우마와 관련된다. 연교는 기정에게 “이게 뭐라고 그래야 되나. 다송이 트라우마 극복 케이크. 그러니까 이거 반드시 제시카 샘이 해줘야 돼요. 오늘의 하이라이트.”라고 말한다. 다송의 트라우마와 관련해서 기정과 근세와의 관계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영화의 초반에 기정이 연교에게 함께 열어보자고 했던 ‘블랙 박스’는 사실 근세와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기정은 다송이 그리는 그림의 우측에 보이는 검은 부분을 ‘블랙 박스’라 칭한다. 그런데 다송의 트라우마가 근세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상황에서 다송의 그림을 다시 보면 기우가 침팬지 같다고 했던 초상화의 주인공이 근세였다는 것을 추측해볼 수 있다. 그렇다면 기정이 말한 ‘블랙 박스’는 근세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도 유추가 가능하며 기정이 위장 취업을 한 상황이 이후에 근세에 의해 화를 부른다는 것-기정 본인이 근세에 의해 죽는다-을 떠올려본다면 기정은 마치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처럼 실제로 ‘블랙 박스’를 열어서 화를 자초한 셈이 되어 버린다. ‘블랙 박스’는 이미 위에서 언급했듯이 부엌에서 지하로 내려가는 검은 입구와 ‘검은 색’이라는 공통의 색깔로 연결되고 그 검은 입구를 통해 영화 속에 등장하는 근세와도 관련된다. 따라서 다송의 트라우마 치료를 위해 고용된 기정이 근세에 의해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도 <기생충>에서 다송의 트라우마가 얼마나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는지를 입증하는 강력한 근거가 된다 하겠다. 

 

이처럼 <기생충>은 다송의 트라우마와 관련해서도 치밀하게 구조화되어 있으며 이를 통해 다송의 트라우마는 영화 속에서 중요한 줄기를 이루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다송의 트라우마를 통해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상류층의 불안이다. 일반적으로 빈부 격차로 인한 사회 문제가 환기될 때 매스컴을 통해 드러나는 쪽은 근세와 같은 빈곤층이다. 상대적으로 상류층의 경우 자본주의 시스템이 그 상류층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외부적으로 알려지지 않는다. 그런데 봉준호는 <기생충>에서 다송의 트라우마와 관련하여 상류층의 불안을 다룬다. 이것은 이 영화에 영감을 준 작품으로 알려진 김기영의 <하녀>(1960)에서 김기영이 다른 방식으로 중산층의 불안 문제를 다루는 것과 맥이 닿는 측면이 있다. 다송이 집 안에 몰래 살고 있는 근세를 귀신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자본주의의 모순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이러한 모순은 상류층에게도 악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기생충>은 다송의 트라우마를 통해 비록 당장은 상류층이 빈곤층보다 우위에 있다고 하더라도 시스템의 모순으로 인해 상류층 또한 언제든 나락으로 떨어질지 모른다는 불안을 내재하면서 살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기생충>을 근세와 다송의 관계에 초점을 맞춰 말해보자면 이 영화는 근세로 인해 갖게 된 다송의 트라우마를 결국 치유하지 못하는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다송의 트라우마 치유는 결국 실패로 끝나게 된다. 그런데 트라우마 치유를 실패하게 만드는 건 근세다. 그러니까 근세에 의해 트라우마가 생긴 다송은 연교의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근세로 인해 결국 트라우마를 치료할 수 없게 된다. 이것은 악순환이다. 근세가 사라지지 않는 한 이 악순환은 반복될 것이다. 영화 속에서 근세는 죽지만 다송은 평생 근세에 대한 트라우마에 시달리지 않을까. 

 

봉준호는 이 영화 속에서 다송의 트라우마를 부각시킴으로써 적어도 상류층이 이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결코 완전한 승자의 위치를 점하고 있지는 않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물질적인 풍요가 정신적인 안정감까지 담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공고해 보이는 상류층의 토대도 언제든지 붕괴될 수 있는 가능성은 남아있다. 즉 박사장, 기택, 근세로 상징되는 세 계층 모두 시스템의 모순으로 인한 불안감을 내재하면서 살고 있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기생충>은 이렇게 양극화의 현실 속에서 상류층이건 빈곤층이건 간에 비극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다고 역설한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과 같이 <기생충> 구조를 근세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가운데 근세와 다송의 관계를 통해 상류층의 불안의 문제도 <기생충>에서 결코 간과할 없는 중요한 화두라는 것을 파악할 있다면 <기생충> 독해는 보다 다양해질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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