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들을 기리며 추모하던 이 장면에서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소소하게 제창하던 노래가 있었다. “사람은 흘러서 어디로 가는가. 그렇게 흘러서 이르는 무렵에 꽃으로 피어나게 해주고 싶네.” 뿌연 안개로 뒤덮인 혼탁한 세상 속에 배회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흘러서 어디로 가는 걸까."
[ACT! 123호 리뷰 2020.12.16.]
사람들은 흘러서 어디로 가는가 -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리뷰
김서율(자유기고가, 문화유랑자)
김미례 감독은 노동과 노동자를 향해 카메라를 들어왔다. 레미콘 운수 노동자들의 투쟁 과정에 카메라를 가까이한 <노동자다 아니다>(2003)에서 2007년 홈에버노조 파업 투쟁의 기록을 담은 <외박>(2009), 그리고 은퇴한 KT 노동자의 <산다>(2013) 등에 이르는 영화들이 그의 이력을 채워왔다. 이처럼 한국의 노동 현장을 들여다보던 감독의 작업을 살펴본다면, 바다 건너 일본에서 전범 기업들을 향해 연쇄 폭파를 감행한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이라는 단체를 다루는 프로젝트는 이전의 영화들과 궤를 달리하는 결과물로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은 한국과 일본 일용노동자의 처지가 별반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된 감독의 문제의식으로부터 출발한 영화다. 이는 도입부에서 당시 한국에서 건설 일용노동자인 아버지에 관한 다큐멘터리인 <노가다>(2005)를 제작하고 있었다는 감독의 내레이션으로 알 수 있다.
한편 이전에 그의 카메라가 담았던 대상은 한국의 노동자들이었다. 그런데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의 경우에는 일본 내에서도 잊힌 존재가 된 단체와 활동가들이었다는 점에서 전과는 다르다.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을 구성했던 ‘늑대’, ‘대지의 엄니’, ‘전갈’이라는 각 부대의 일원들은 1974년 8월 30일, 도쿄 미쓰비시중공업 본사 폭파를 시작으로 1975년까지 제국주의를 기반으로 성장한 자본가들과 식민자에 대한 투쟁을 전개했다. 그러나 목표했던 성과를 이룩하지 못하였고 끝내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어떤 이는 사망했고 누군가는 지명 수배로 어딘가를 떠돌고 있으며 복역 중인 자와의 면회는 허락되지 않았다. 당시 전선에서 활동했던 당사자들을 섭외하는 데에 있어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다. 영화를 기획한 감독이나 완성된 영화를 관람하는 이들 모두가 마주할 또 다른 난관은 여타 무장 투쟁으로 발생한 인명 피해에 관하여 어디까지가 정당한 폭력인지, 피해자와 가해자의 구도는 어떻게 설정되어야 하는지 등을 둘러싼 해묵은 논쟁에서 여전히 자유롭기 어렵다는 점이다. 영화는 이에 대한 답안을 명쾌하게 제시하지 않는다. 만약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의 무장 테러가 촉발한 문제에 집중하여 영화에 다가가려 한다면, 반대로 영화와 점점 멀어져만 갈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가야 할 점이 있다. ‘동아시아’와 ‘반일’, 그리고 ‘무장전선’이라는 용어들을 결합한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이라는 단체명이다. 1970년대 팽배했던 제국주의와 전 지구적 자본주의의 문어발식 확장에 대항하여 무장 투쟁을 불사했던 성격 못지않게 ‘동아시아’와 ‘반일’이라는 지리학이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들 부대원은 단순히 무장을 앞세워 체제 전복을 통한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 움직인 것은 아니다. 전후 거대 자본과 제국주의의 후광을 업은 채 성장하는 분위기에 취한 나머지 좀체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던 당대 일본 정국에 대한 비판을 즉각 실천으로 옮기려 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의 부대원들은 자국 일본을 넘어 아시아 전반에 위력을 떨쳤던 일본이라는 제국주의를 관통하는 핵심 주체에 대한 비판적 사고를 더욱 폭넓게 구상하고 확장하려 했다. 늑대 부대원 다이도지 마사시는 패전 후 1948년 본래 아이누족이 거주하던 아이누모시리를 식민지화하여 탄생한 훗카이도 구시로에서 태어났다. 그는 자신을 36년간 조선의 침략, 식민 지배를 시작으로 대만, 중국, 동남아시아 등도 침략하고 지배했던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자손이며 이를 인식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그가 남긴 말들은 영화에서 역사학자 후지이 다케시의 목소리를 통해서 전달된다). 당시 이러한 한국 내 움직임들을 바라보며 일본의 조선에 대한 침략 식민 지배를 반성하는 자신에게 동기 부여가 되었다는 다이도지 마사시의 말이 덧대어지면서 한국에서 전개된 운동들의 자료 화면들도 제시되는데, 4.19 당시의 영상이나 재일조선인 문세광이 광복절 기념식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저격했다는 푸티지가 삽입된다. 엄니의 부대원인 에키타 유키코는 최종 의견진술서에서 자신이 팔레스타인혁명을 만나면서 배운 혁명에 관한 태도를 언급하기도 한다.
하지만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을 보며 무장 투쟁을 둘러싼 문제에만 집중하는 것만큼이나 연대 의식을 내비친 당대 일본 내 활동가들의 마음가짐에만 주안점을 두고서 영화에 접근하는 것도 영화를 흥미롭게, 천천히 들여다보게 하는 방법은 아닌 것 같다. 수많은 관련 자료와 인물이 등장하나 영화는 이들을 한데 수렴하려 들지 않는다. 특정 시점 혹은 중심인물을 통하여 개별 사건과 인물 구체적으로 하나하나 짚고 상세히 파고 들어가지 않는 영화에서 정보는 종종 제시, 열거되는 것으로 보인다. 부대원의 이야기나 그들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는 이들에 관한 내용이 진척되려는 찰나에 불쑥 암전되어 다른 장소의 다른 인물로 곧잘 넘어가곤 한다. 사건 당시의 영상과 이미지를 직접 불러들이기보다는 현재의 광경으로부터 역사를 추적해간다. 영화는 과거 당시 상황에 대한 사실 정보들로 빼곡히 채워가기보다는 점차 여백이 많아지는 인상을 준다. 이 같은 여백을 메우는 건 기차와 철도길, 도시의 전경, 울창한 숲과 안개 서린 대지와 바닷가의 풍경이다. 여러 인물과 장소를 쉴 새 없이 오가지만 특정한 지표를 통해 극을 구축하기보다는 인물의 지리를 느슨히 그려가는 영화는 이런 식으로 일종의 지정학적 감각을 체현하고 있는 듯하다. 정리되지 않은 정보를 머릿속에서 조립하고 구성하려 들기보다는, 판단을 중단한 채로 영화를 따라가면서 지형을 상상해보게 된다. 영화를 붙잡게 만드는 건 바로 이러한 지점이다.
한편 도시, 숲, 항구 등의 풍경이 화면에 드리울 때 등장하곤 하는 내레이션은 과거와 현재의 역사에서 겉도는 이들을 조명하는 영화의 정서와 긴밀히 조응한다.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은 사건과 연루된 내부자의 시각만으로 역사를 재구성하여 진실을 규명하려는 영화가 아니다. 김미례 감독은 보이스오버에서 ‘나’라는 인칭을 명시한다. 그런데 주관성이 깃든 평어체가 아닌 상황을 담담히 진술하는 건조한 경어체를 구사한다. 이는 특정한 관점을 주지하기 어려운 외부인의 자리에 놓인 감독의 심중을 반영한 듯하다. 영화에서 내레이션으로 등장하는 사람은 김미례 감독을 포함, 감독의 작업에 조력하며 늑대 부대원 다이도지 마사시의 전언을 전달하는 목소리를 담당한 역사학자 후지이 다케시, 그리고 대지의 엄니 부대원 당사자인 에키타 유키코 세 사람이다. 각기 다른 결을 가진 이들의 음성은 현재의 도시 전경과 자연 풍경에 중첩된다. 도시에서 일상을 거니는 평범한 다수의 인파처럼 이들 역시 각자 사회의 한 편에서는 보통의 구성원들일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특정한 역사 안에 귀속된 존재로서만 기능하게 될 때, 그리고 이들의 목소리가 평범한 존재로 기록될 수 없는 자들이 풀어놓는 음성이 될 때, 이들의 존재와 목소리는 무심히 흘러가는 풍광과 접속하지 못한 채로 부유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여러 인물과 장소를 가로지르던 영화의 종반부을 장식하는 건 대지의 엄니 부대원 에키타 유키코가 2017년 3월에 출소하는 대목이다. 이전까지 극에서는 과거를 복기하는 목소리로 등장했던 에키타 유키코는 정작 현재의 모습을 드러낸 카메라 앞에서는 별다른 말을 보태지 않는다. 그리고 영화는 유키코의 출소 두 달 후 늑대 부대원인 다이도지 마사시가 도쿄구치소에서 다발성 골수암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자막과 내레이션을 통해 알려온다. 구치소에 격리되었던 주요 부대원인 이들에게 청산되지 못한 문제들은 여전히 괄호 쳐진 미완의 상태로 남았다. 오랜 세월 격리되었다 바깥세상에 나온 인물에게 카메라를 잠시 가까이했던 영화는 다시 안개가 자욱한 풍경을 비추고, 이어 ‘늑대여 이루지 못한 꿈을 계속 좇아’라는 문구가 등장하며 막을 내린다. 여기서 2004년 8월 오사카 가마가사키의 인력시장에 죽은 동지들을 추모하는 현장을 비추던 도입부를 떠올려본다. 노동자들을 기리며 추모하던 이 장면에서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소소하게 제창하던 노래가 있었다. “사람은 흘러서 어디로 가는가. 그렇게 흘러서 이르는 무렵에 꽃으로 피어나게 해주고 싶네.” 뿌연 안개로 뒤덮인 혼탁한 세상 속에 배회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흘러서 어디로 가는 걸까. □
글쓴이. 김서율
- 이것저것 오만군데에 관심이 많다. 주변부에서 조용히 보고 듣고 돕는 게 생업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망상에 빠지곤 한다. 내 말은 줄이고 싶었다. 한동안 그런 생각을 굳히고 싶었다. 뭘 쓰지 않고 싶었다. 특히 영화에 관해서는 점점 더. 그런데 어쩌다 쓰게 되었다.
분주하게 자리를 마련함 - 영화 <SFdrome : 주세죽> 리뷰 (0) | 2021.03.09 |
---|---|
백구가 보내는 안부 - 영화 <개의 역사> 리뷰 (0) | 2021.03.09 |
영화 쓰는 마음 둘러보기 (0) | 2020.12.15 |
미련이 많은 사람은 어떤 계절을 남보다 조금 더 오래 산다 - <남매의 여름밤> (0) | 2020.09.29 |
지금 여기에서 민주노조를 생각하다 - <깃발, 창공, 파티> 리뷰 (0) | 2020.08.03 |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