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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위에 영화처럼 둥근 달이 뜨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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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19. 11. 27.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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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옥상 이곳저곳을 돌아보며 이 영화제를 지속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영화를 좋아하는 마음도 있지만, 매년 늦여름 우리를 기다려주는 관객과 원주옥상영화제에서 상영하고 싶다는 감독님들의 응원과 지지도 큰 힘이 된다. 지역에서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고, 그 작은 가능성이 빛을 받아 많은 사람이 독립예술영화·단편영화를 즐기기를 바란다."

 

[ACT! 117호 작지만 큰 영화제 2019.12.16.]


머리 위에 영화처럼 둥근 달이 뜨면


고승현(원주옥상영화제 사무국장)



  원주옥상영화제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영화제를 만들면 어떨까?” 하는 막연한 상상 속에서 출발했다. 2017년 3월 22일, 청년들은 어디서 무슨 영화를 어떻게 상영할지 수많은 회의를 진행하며 장소를 탐방했다. 드림랜드의 물 빠진 수영장에서 상영할까? 주차장에서, 아니면 공원에서 상영할까? 다양한 장소를 돌아보던 와중 구도심의 한 옥상이 눈에 띄었다. 바로 1회 영화제가 열린 구도심의 미로예술시장 옥상이다. 그 뒤로 영화제 이름도 자연스레 ‘원주옥상영화제’가 됐다. 


우리가 처음 옥상에서 만난 관객

  첫 회 영화제를 준비하며 프로그램에 관해 많은 고민을 거쳤다. 호러 장르, 19금 장르 등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지만, 결국 우리는 지역에서 보기 힘든 독립예술영화·단편영화 위주로 프로그래밍을 결정했다. 각자 보고 싶은 영화를 추천하고 다함께 관람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가 영화를 통해서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정리하고, 무엇보다 독립예술영화에도 어렵지 않고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작품도 많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더불어 야외에서 진행하는 영화제인 만큼, 불특정다수 관객을 고려하여 보편성을 갖추고자 했다. 이는 현재도 유효한 기준으로 매년 영화제 상영작을 검토할 때마다 지켜 나가는 원칙이다. 

  매주 진행하는 회의 속에서 말로만 주고받던 상상을 실현해나가며, 원주옥상영화제 기획단원들은 기쁨과 설렘을 느꼈다. 1회 영화제 당시 생각 외로 관객이 많이 오지 않자, 기획단원들은 시장으로 뛰어 내려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홍보 책자를 나눠주기도 했다. 간절함 덕분인지 영화제 기간 입소문이 나며 관객은 700여 명이 왔고, 예상했던 그림보다 더욱 따뜻한 반응을 보내주셨다. 그때 마주한 응원은 지역에서 영화제를 여는 일에 여전히 원동력이 되어준다.

 

▲ 2017 원주옥상영화제



누구를 위한 영화제일까?

   2회 영화제를 준비하며 가장 큰 고민은 장소였다. 1회 영화제 개최 장소였던 미로예술시장이 건물안전 문제로 영화제를 진행하기 어렵다고 판단하며 다른 공간을 찾아야 했다. 아쉬운 마음으로 미로예술시장을 떠났다. 새로운 장소를 알아보던 과정에서 여러 기준을 세웠는데, 그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 ‘구도심’이었다. 원주에 다양한 옥상이 있지만 우리는 ‘구도심 문화 활성화’ 취지를 포기할 수 없어 미로예술시장 인근 원주문화원에서 2회 영화제를 열었다. 지역 청년들, 즉 시민으로 구성된 원주옥상영화제 기획단은 영화제 개최를 위해 7주 동안 집중교육을 받으며 역량을 강화해나갔다. 1회 때도 교육을 진행했지만, 이번에는 서울독립영화제 김지은 사무국장을 초빙하여 영화제와 좀 더 밀접하고 깊이 있는 커리큘럼을 구성했다. 프로그래밍·홍보 마케팅·초청·부대행사 등에 관해 교육 받으며, ‘영화제’라는 이름에 걸맞게 관객·감독·자원봉사자를 포함한 참여자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한 방향을 모색했다. 많은 관심과 기대를 받는 만큼 우리의 역량 역시 그에 발맞춰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후로도 시민기획단은 매년 역량 강화 워크숍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영화제의 상을 구체적으로 그려가고 있다.

  2회 영화제를 맞이하면서 예산과 조직체계에 큰 변화를 겪었다. 강원영상위원회의 지원 사업 공모를 통해 예산은 1회보다 약 4배 정도 증가했다. 예산이 확대되며 기획단 내부에서 단기 스태프를 채용하여 영화제에 집중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 생계 활동을 병행하는 시민기획단 여건상 실제로 일을 진행하는 인력은 부족했기 때문이다. 원주영상미디어센터에서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주었지만, 우리가 낸 아이디어를 실행해줄 인력이 센터 스태프 한 사람이라는 것은 영화제를 준비하기에 과중이 심했다. 단기 스태프가 영화제를 중점적으로 운영하는 위치를 맡으며 미디어센터와 협력체계를 견고히 해나갔다. 예산확대와 단기 스태프 구조를 통해 영화제는 내부적으로 상을 갖춰 나가고, 시민기획단으로 활동하는 영화 활동가들이 정성적인 성취감뿐만 아니라 정량적인 성취감도 얻어갈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하였다. 사실 예산이 늘어나긴 했지만, 배급료·초청료·인건비·임차료 등 정당하게 지급해야 하는 부분을 채웠기에 규모는 이전과 비슷했다. 

  그렇게 열심히 준비한 2회 영화제가 열렸다. 전체 기간 중 절반인 이틀 동안 비가 왔다. 세상에 그런 무력감도 없었다. 천재지변은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고 극복할 수도 없다. 우천 대책을 세우지 못하기도 했지만, 우리가 준비한 모든 야외 구성을 포기하고 실내로 들어가기에는 아깝다는 욕심도 생겼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5mm로 예보된 강우량은 뻥튀기가 되어 90mm가 되어 있었지만, 당시 기획단은 야외에서 영화제를 강행했다. 우중 속 영화제에서 나름대로 낭만과 운치를 즐겼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결국 관객을 위한 영화관람 환경을 적절하게 조성하지 못했다는 반성이 들었다. 우리가 좋아서 시작한 영화제이고 우리의 만족감을 위해 출발했지만, 과연 이 영화제가 우리를 위한 것인지 고민도 늘어났다. 영화제를 완성하는 주체는 관객이기 때문이다. 예산이 증가했지만 관객 수는 1회보다 줄었고, 정신없던 현장은 기획단 내부에서 일종의 트라우마로 기억되고 있다.

 

▲ 2018 원주옥상영화제



여럿이 함께, 계속하기 위해 필요한 것

  3회 원주옥상영화제의 키워드는 ‘지속성’이었다. 어떻게 하면 영화제를 오래, 꾸준히, 즐겁게 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지속성은 곧 안정적인 자본 조달과 이를 유지·운영할 수 있는 인력구성에서 뒷받침 된다고 생각한다. 본래 원주옥상영화제의 자본금은 원주영상미디어센터와 전국미디어센터협의회에서 도움을 받고, 강원영상위원회의 공모사업에서 일부를 확보하는 구조였다. 공모사업은 안정적이지 못하므로 지속성을 위해서는 개선 방향을 찾아야 했다. 3회 영화제는 원주지역 거점 대학인 상지대학교에서 개최하며 대학교의 후원을 받았고, 원주밝음신협에서도 후원을 받았다. 민·관·학을 아우르는 자본구조를 통해 새로운 활로를 열 수 있도록 기반을 다져놓은 것이다. 더불어 기획단 공개모집을 통해 새로운 청년을 만나기 위한 방향을 모색했다. 기존 기획단이 쌓아온 경험과 지식을 토대로 ‘지속성’에 관해 고민하며, 정동진독립영화제 박광수 프로그래머와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설승아 사무국장을 초청하며 특강을 열었다. 지역에서 오랫동안 영화제를 진행해온 앞선 사례를 돌아보며 우리를 비추어 보는 시간을 가진 것이다. 내부적으로 고민하는 단계를 넘어 외부적으로 발신할 자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영.사.다.방’(영화를 사랑하는 다양한 방법) 포럼을 진행하기도 했다. 영화활동가들이 모여 서로 고민을 나누며 향후 방향과 계획을 점검했다. 

 

▲ 2019 원주옥상영화제

 

  대학이라는 공간적 특성과 청년들의 땀과 노력이 결실을 본 덕분에, 3회 영화제는 가장 많은 관객 수와 높은 만족도를 이뤄냈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그치지 않을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원주옥상영화제는 현재 규모를 유지하기도 버겁다. 그만큼 청년들이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나가는 과정이 쉽지 않은 것이다. 예산, 인력구성, 내부 운영 구조, 안정적인 장소 등 여러 갈증이 해소되지 못한 채 남아 있다. 그럼에도 매년 옥상 이곳저곳을 돌아보며 이 영화제를 지속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영화를 좋아하는 마음도 있지만, 매년 늦여름 우리를 기다려주는 관객과 원주옥상영화제에서 상영하고 싶다는 감독님들의 응원과 지지도 큰 힘이 된다. 지역에서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고, 그 작은 가능성이 빛을 받아 많은 사람이 독립예술영화·단편영화를 즐기기를 바란다. □

 


글쓴이. 고승현(원주옥상영화제 사무국장)

- 원주에서 영화를 상영합니다. 조그마한 극장을 가지는 것이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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