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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여름에 즐기는 낭만 가득한 영화 축제, 무주산골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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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19. 8. 9.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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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이번 호에서 다뤄볼 영화제는 어찌 보면 ‘작지만’이라는 말이 조금은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영화제가 처음 생겨난 당시는 물론, 지금도 다른 영화제에 비교하면 경쟁 대신 낭만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분명 이 영화제는 ‘작지만 큰’ 영화제입니다. 2013년부터 시작해 점차 많은 관객들에게 입소문이 알려지며 널리 퍼지고 있는 무주산골영화제의 이야기를 ACT!를 통해 들어보았습니다.


[ACT! 115호 작지만 큰 영화제 2019.8.14.] 


초여름에 즐기는 낭만 가득한 영화 축제, 무주산골영화제


김희진 (무주산골영화제 프로그램홍보팀장)


▲ 무주산골영화제


  “초여름에 즐기는 낭만 가득한 영화 축제, 무주산골영화제”
  이 한 줄이 사람들에게 알려지기까지 많은 고민과 의문이 있었다.

  무주산골영화제는 ‘영화’와 ‘소풍’을 콘셉트로 2013년 전라북도 무주군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당시 무주군은 2만 5천여 명 인구가 읍면동리 단위로 첩첩산중으로 흩어져있는 산골 중 산골이었다. 무주군민 대부분은 고령의 어르신들이었고 영화를 볼 수 있는 극장 시설은 하나도 없었다. 와이파이는 없는 곳이 더 많고, 도시에는 흔한 프랜차이즈 커피숍 하나 여기서는 찾기가 어렵다. 타지에서 오는 버스도 많지 않고, 무주군 내 어디를 가든 차로 30-40분 이동은 기본이다. 당시 무주에서 영화제 개최 한다는 것은 무주를 둘러싼 첩첩산중만큼이나 힘들고 어려운 시도였다. 

  아무리 봐도 답 안 나오는 ‘무주’에서 영화제를 해 보자! 라고 결정하게 된 믿는 구석은 아이러니하게도 ‘무주’다. 무주는 예로부터 근교의 진안, 장수와 함께 ‘무진장’ 지역으로 알려진 산골이지만 한국에서 반딧불이를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청정지역이다. 높은 빌딩 하나 없고, 사방이 산과 나무들로 말 그대로 둘러싸여 있다. 깨끗한 공기란 이런 것이란 걸 매 순간 느끼고, 더위를 식혀주는 것은 에어컨 바람이 아니라 나무 그늘서 부는 솔솔바람이라는 것을 깨닫고, 해가 지면 하늘에 가득한 별들이 쏟아질 거 같은 비현실적 경험을 할 수 있는 모든 순간이 도시에서 온 영화제 스태프들은 신기했고, 새로웠을 것이다. 이 경험이 모여서 어떤 확신을 만든 것 같다. 잠시 현실을 떠나 활력을 얻고 돌아오는 ‘소풍’과 ‘영화보기’를 결합한 ‘영화 소풍’을 콘셉트로 누구나 편안하게 즐기는 소박한 영화제를 만들고 싶다는, 그리고 그것이 통할 거라는 확신.

▲ 무주산골영화제


입소문은 언제나 고맙습니다

  무주산골영화제는 매년 70여 편의 영화가 상영된다. 극장에서 상영되었지만 하루 이틀 만에 극장에서 내려가거나 극장에 걸릴 기회조차 얻지 못한 좋은 독립영화와 예술영화들이 5개의 섹션 속에 고루 분포되어 있다.


  한국 독립영화의 현재와 미래를 살펴볼 수 있는 경쟁 섹션인 ‘창窓’. 다양한 주제를 새롭고 독창적인 시선으로 담아내어 영화의 미학적 지평을 넓힌 국내외 영화와 동시대 영화 미학의 최전선에서 서 있는 감독의 작품을 소개하는 무주 셀렉트: 동시대 시네아스트, 한국영화를 이끌어갈 차세대 배우를 선정해 집중 조명하는 넥스트 액터 프로그램이 있는 ‘판場’ 섹션,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운동장 중 하나로 손꼽히는 故정기용 건축가가 설계한 등나무운동장에서 진행되는 ‘락樂’ 섹션. 해발 700m 덕유산국립공원 중턱, 무주구천동 33경의 한가운데 위치한 대한민국 단 하나밖에 없는 아름다운 숲속 극장인 ‘숲林’섹션. 무주군민과 영화제 관객들에게 무주군이 가지고 있는 문화콘텐츠를 소개하는 마을로 가는 영화관인 ‘길路’섹션이 대표 섹션이다. 또한 산골콘서트, 산골토크, 산골미술관, 산골공방, 산골소풍 등 무주산골영화제만의 특 색있는 이벤트가 영화제 기간을 축제의 장으로 채우고 있다.


  무주산골영화제를 찾는 관객들은 영화를 보러 와서 도리어 영화적 경험을 하고 돌아간다고 한다. 선착순 무료입장 덕에 영화 한 편 보자고 30분 혹은 한 시간씩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경험에, 해질 때까지 등나무운동장 잔디밭에 돗자리 깔고 누워서 음악 듣다가 40분씩 버스 타고 들어간 덕유산 대집회장에서는 두꺼운 옷 꽁꽁 싸매고 찬바람 맞으며 35mm 필름 돌아가는 소리에 취해 영화를 보고….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사서 고생이라 하겠지만 관객들은 이 경험을 잊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인생 영화제’ ‘완벽한 하루’ ‘근심 걱정 고민이 사라지는’ ‘잊을 수 없는’ 등의 수식어들이 영화제 이름 앞에 자리 잡았고 해를 거듭할수록 사람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2015년 전국적으로 전염병 ‘메르스’가 번지기 시작하면서 각종 행사가 줄줄이 취소되던 때가 있었다. 영화제도 취소와 개최 사이에서 고민하던 중 결국 개최를 하게 되었고, 메르스 때문에 관객들이 오지 않을 거란 예상과는 달리 상당히 많은 관객이 영화제를 찾아주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영화제 관객이 지속해서 늘고 있고, 올해는 특히 무주군 인구수보다 많은 관객이 영화제를 찾았다. 고마운 일이다. 작은 영화제는 예산·인력 등의 문제로 광고나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진행하기에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은데 관객들의 이런 긍정적인 입소문은 하나하나가 소중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 무주산골영화제


“Hi, how are you doing today?” 
“I’m good. Thank you for asking.”

  무주산골영화제 조지훈 프로그래머가 예전에 토론토국제영화제 출장을 갔을 때 겪은 일이다. 마지막 영화를 보고 12시가 넘은 시각에 허기를 달래러 들어간 식당에서 피곤한 기색이 역력해 보이는 직원이 주문을 받으러 터벅터벅 다가와 “Hi“라고 건넨 인사에 프로그래머는 “Hi, how are you doing today?”라고 물었고 직원은 고개를 돌려 잠시 프로그래머를 바라보더니 미소와 함께 “I’m good. Thank you for asking.”이라고 답했다. 프로그래머는 그날 “물어봐 줘서 고맙다”던 직원의 답변이 이상하게 마음 깊숙이 남았다고 한다. 무심코 던진 안부 인사가 누군가에겐 예상치 못한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순간이었다. 


  무주산골영화제는 또다시 초여름에 즐기는 낭만 가득한 영화 축제를 준비하고 있다. 프로그래머를 포함한 사무실 식구들 모두 이 작은 영화제가 그날 “오늘 하루는 어땠나요?”라고 무심한 듯 위로의 마음을 담아낸 질문과 “질문해줘서 고맙다”던 대답 같은 영화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내년 영화제를 고민한다.


  지금, 이 순간도 어느 도시에서는 새로운 영화제가 만들어지고 있다. 일 년 동안 국내에서 열리는 영화제를 나열해 보면 그 수는 90여 건이 넘는다. 그 많은 영화제 중 무주산골영화제가 당신의 영화제 리스트 안에 들어가 있길 바란다. 내년에도 여전히 5개의 섹션, 70여 편의 영화, 토크, 콘서트가 선보일 것이다.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조금은 설레는 맘으로 기대해 주셔도 좋다. □

 


 

글쓴이. 김희진
무주산골영화제 프로그램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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