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지난 1월 말, 서울시 성동구 성수동에서는 ‘서울여성독립영화제’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영화제 하나가 막을 올렸다. 전문적인 극장에서 열린 영화제는 아니었지만, 텀블벅 후원이 빠르게 100%를 채울 정도로 많은 관객들과 영화인들의 관심을 모은 행사였다. ‘여성’과 ‘독립’을 동시에 내건 영화제는 어떤 고민과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을까. 서울여성독립영화제를 함께 기획한 페미니스트 영화/영상인 모임 ‘찍는페미’의 안정윤님이 ACT! ‘작지만 큰 영화제’ 코너로 글을 보내주었다.




    [ACT! 113호 작지만 큰 영화제 2019.03.14]


    여성이 만들고 여성이 향유한다 : 서울여성독립영화제


    안정윤(찍는페미 운영위원, 행사팀장)


    ▲ 서울여성독립영화제가 개최된 성수동 ‘카우앤독’에 걸린 영화제 현수막의 모습.



    더 많은 여성 영화인들을 위하여


      2016년 10월 창립한 이후 ‘찍는페미’는 수많은 상영회를 개최해왔다. 배우 메릴 스트립이 주연으로 등장한 영화들을 모은 상영회, 페미니즘 시각으로 보는 다큐멘터리 상영회, 개개인의 여성을 위한 상영회, 신체단련 상영회 등은 여성 영화인들이 제작한 영화 혹은 ‘여성영화’를 보다 많은 관객들 앞에 선보이기 위해 기획한 행사들이었다. 그리고 2018년 하반기, 우리는 다시 한 번 여성영화 상영회를 기획하고자 의기투합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내, 단순한 ‘상영회’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스쳤다. 남성 중심적인 한국 영화계 내에서 여성 영화인들이 설 자리를 실질적으로 넓혀 주려면 그 자체로 담론을 형성할 수 있는 행사가 필요했다. 영화제는 그러한 목적에 부합하는, 아주 좋은 행사 포맷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알다시피 영화제는 신진 감독들이 투자자와 제작자의 이목을 끌 수 있는 자리, 작은 영화들이 대중과 평론가를 만나고 주목받을 수 있는 자리, 그래서 그들이 메인 스트림으로 나아갈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해주는 자리이다. 

      한국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영화제들이 존재하고 있으나, 그러한 영화제들이 여성 영화인과 여성영화들에도 공평한 기회를 제공하고 있느냐 하면 선뜻 그렇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한국 영화계라는 기울어진 운동장 위에서 여성 독립영화인들에게만 허락된 자리가 있었으면 한다는 바람으로 ‘서울여성독립영화제’를 시작하게 되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처음이었던 우리는 너무나도 서툴렀고,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 제1회 서울여성독립영화제에서 가진 GV의 모습



    서울여성’독립영화제’


      서울여성독립영화제는 어느 공공기관, 어느 기업에서 어떤 재정적 지원도 받지 않은 채 제로 베이스에서부터 시작했다. 거대 자본에 의존하지 않았으니 (동시에 ‘못했으니’) 그야말로 ‘독립영화제’인 셈이다.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던 초반의 희망찬 분위기와는 달리, 시간이 지날수록 ‘영화제’라는 이름이 감당해야 하는 자본의 벽이 좀처럼 넘을 수 없는 산처럼 느껴졌다. 우리가 하려는 모든 일 앞에는 돈이라는 장애물이 놓여 있었고, 영화제 준비를 위해 노력과 시간을 쏟아붓는 활동가들에게 최소한의 임금조차 지급할 수 없었다. 여성 영화인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활동하는 ‘찍는페미’에서 정작 활동가들의 노동에 대한 보상은 제공해줄 수 없다는 현실이 큰 심적 부담감으로 다가왔다.

      일정 수준 이상의 자본이 확보되지 않았기 때문에 영화제를 진행하는 데 있어 필수적인 요소라 할 수 있는 극장 공간 대여에도 많은 애로사항이 있었다.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같은 멀티플렉스 극장은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는 공간이었고, 우리의 프로젝트를 긍정적으로 검토한 독립 극장들이 낮게 책정해준 금액 역시도 우리가 확보할 수 있는 예산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큰 금액이었다. 결국 우리는 ‘극장’이라는 공간을 포기한 후 프로젝터와 스크린, 단차가 갖추어진 상영공간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이와 동시에 관객들에게 양질의 상영 환경을 제공하는 것 역시 불가능에 가까워졌다. 


    ▲ 1월 25일부터 27일까지 개최된 제1회 서울여성독립영화제의 상영시간표. 

    최근 국내외 영화제에서 호평받은 여성 감독의 작품인 

    <벌새>, <기프실>, <천에 오십 반지하> 등의 작품이 상영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지키려 했던 것들


      처음 우리는 서울에서 개최되고 있는 여타의 여성영화제들과 서울여성독립영화제를 구별 지어 줄 차별점을 찾으려 애썼다. 마치 서울국제여성영화제를 떠올리게도 하고, 서울독립영화제를 떠올리게도 하는 ‘서울여성독립영화제’라는 이름이 우리에게 중압감을 떠안겼기 때문일까. 하지만 252편이나 되는 출품작들의 심사를 손수 진행하며. 그리고 토크콘서트, GV에 참석해 주실 감독님들과 소통하며, 작은 영화들을 보려 예매 댓글 창이 열리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관객들을 보며 차별점에 천착하지 않아도 좋으리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셀 수 없이 많은 여성 영화인들이, 그리고 여성 관객들이 더 많은 여성영화제의 존재를 갈망하고 있었고, 우리가 마련한 축제에 흔쾌히 참석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다른 여성영화제들과 서울여성독립영화제의 성격이 별반 다르지 않다 하더라도, 우리가 존재해야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아직까지 한국 영화계에는 더 많은 여성영화제가 필요하기 때문에, 더 많은 여성영화를 상영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더 많은 여성 영화인들이 다음 영화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후 우리는 다른 그림 찾기에 집중하는 대신 서울여성독립영화제를 찾아주시는 한 분 한 분의 영화인들과 관객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좋은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그래서 다음을 기약할 수 있는 영화제를 만들어 나가기로 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경쟁 부문 출품에 있어 다음과 같은 심사 기준을 고안했다.


    1. 연출자가 여성일 것

    2. 크레딧 절반 이상이 여성일 것

    3. 여성과 관련된 주제를 다루고 있을 것


      동시에 토크콘서트와 GV를 준비하며 영화제를 준비한 모든 팀원들이 함께 질문지를 만들었고 검토했다. 영화제가 진행되는 3일 동안에도 우리가 초대한 여성 영화인들이, 여성 관객들이 불편함을 느끼지는 않을까 항상 촉각을 곤두세웠다. 


    ▲ 서울여성독립영화제를 함께 기획하고 준비한 행사팀원들과 함께.



    제10회 서울여성독립영화제를 향하여


      그래서일까, 제2회, 제20회, 제200회 서울여성독립영화제를 바라는 여성들이 생겨났다. 여러 가지 우여곡절이 많았던 영화제였지만, 우리는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물적 자원과 인적 자원의 부족으로 다음 영화제를 개최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지만, ‘우리를 또 불러 달라는’ 여성 영화인들의 목소리, ‘또 이런 자리를 마련해 달라는’ 여성 관객들의 목소리를 외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제2회 서울여성독립영화제는 2020년 6월, 조금 더 긴 준비 기간을 가진 후 개최될 예정이다.

      제1회 서울여성독립영화제가 찍는페미 행사팀의 기획으로 진행된 행사였다면, 제2회부터는 서울여성독립영화제 그 자체가 조직과 체계를 갖추고 더 나은 영화제를 만들어보고자 한다. 하지만 우리 활동가 중 한 명이 말했듯, 쉬이 몸집을 불리는 영화제는 되지 않으려 한다. 더 많은 관객들에게 더 많은 여성 독립영화를 선보이는 것, 여성 영화인들이 설 자리를 넓혀가는 것이라는 기조를 잃지 않고 한국 영화계 내에 깊게 뿌리 내릴 수 있는 영화제로 서서히 성장해 나가려 한다. □




    글쓴이. 안정윤(찍는페미 운영위원, 행사팀장)



    -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영화 이론을 전공하며 여성주의 운동을 이어가고 있다. 2016년 11월부터 페미니스트 영화/영상인 모임 찍는페미에서, 2018년 8월부터 서울여성독립영화제에서 일하고 있다.



    Posted by ACT! actedit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