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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멍굴영화제를 알고 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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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19. 10. 5.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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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불편한 영화제'를 자처하는 너멍쿨영화제. 청년들은 왜 스스로 영화 한 편 보기 힘든 시골에서 힘든 영화제를 만들기로 자처했을까. 불편해도 마음만은 행복한 영화제를 만드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찾아보자. - 성상민(ACT! 편집위원)

 

[ACT! 116호 작지만 큰 영화제 2019.10.17.] 

 

너멍굴영화제를 알고 계시나요?

 

허건(너멍굴영화제 프로그래머)

 


  2016년 겨울. 대학에서 함께 역사를 전공했으나 각자 다른 길을 선택한 귀농청년과 독립영화 감독은 우연히 술자리를 함께 하며 한 여름 밤 귀농청년 텃밭 너멍굴에서 조그만 상영회를 꿈꾸었다. 전북 완주 너멍굴은 ‘넘은골(산 넘어 골짜기)’이란 뜻으로 마을 중심에서 벗어나 가로등불 전선주가 닿는 마지막 지점을 넘어서야 찾을 수 있는 공간이다. 얼마 전까지 사람도 살지 않고, 농사도 짓지 않던 이 땅에 귀농청년이 들어와 손수 초가집을 지으며 자기만의 세상을 만들고 있었다. 가끔 고라니와 멧돼지가 내려와 외식을 하고 가기도 하는 이곳은 청정 100% 자연의 공간으로 영화감독의 눈에는 매우 매력적인 공간이었다. 

▲ 제1회 너멍굴영화제 (2017, 전북 완주) 


  그 해 여름, 상영회에 대한 소식이 일파만파 청년들의 낭만을 자극하더니 서울과 완주의 열두 명의 친구들이 너멍굴에 모이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오랜 구직생활에 지쳤고, 누군가는 단조로운 일상생활이 지겨웠다. 청년들은 자비를 보태고 재능을 기부하며 상영회를 조금씩 키워갔고 결국 영화제라는 거창한 목표를 삼기 시작하더니 2017년 늦여름 제1회 너멍굴영화제가 개최되었다. 관객은 주로 지인 위주였지만 100여명의 관객들이 놀거리도, 볼거리도 부족한 공간에 모여 독립영화를 감상하고 옹기종기 모닥불에 모여 앉아 별 쏟아지는 밤을 즐겼다. 교통수단도 마땅치 않고, 편의시설도 없어 불편함 가득한 축제였지만, 관객들은 “몸은 불편해도 마음은 편하다”며 깜깜한 골짜기 속 고립된 세상에서 흥겨움에 취했다. 이후부터 ‘불편한 영화제’를 모토삼아 너멍굴영화제의 꿈은 무럭무럭 자라났다. 

▲ 제1회 너멍굴영화제 (2017, 전북 완주) 


무엇이 되지 않더라도 괜찮은, 여기  

  무엇인가를 만들어 나가는 기쁨과 단 하루의 불편함에 맘껏 즐겨주는 관객들 덕분에 2018년 제2회 너멍굴영화제의 추진 계획은 더욱 힘을 얻게 되었다. ‘무엇이 되지 않더라도 괜찮은, 여기’라는 슬로건을 걸고 팀을 꾸려 1회의 엉성한 모습이 아닌 제대로 된 영화제를 만들어보고자 청년들은 다시 뭉쳤다. 운영팀은 너멍굴 공간조성과 후원단체 및 예산 확보에 힘을 쏟았으며, 프로그램팀은 영화제에 어울리는 영화선정과 다채로운 프로그램들을 기획하였다. 홍보팀은 홈페이지를 만들고, SNS와 각종 매체를 통해 관객 모객을 하였는데, 1회 너멍굴영화제 진행 과정을 담은 단편 다큐멘터리 <불편한 영화제>가 국내 영화제들에 소개되면서 전국의 많은 관객들이 영화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 결과 2회 영화제는 200명이 넘는 관객들이 참여하고, 100여명의 관객들이 작은 골짜기에서 텐트촌을 형성해 숙박하는 등 성황리에 끝났고 청년들은 대성공을 자축하게 된다.  

▲ 제2회 너멍굴영화제 (2018, 전북 완주) 


‘낭만’과 ‘재미’만을 쫓기에 너무 커져버린 영화제

  2회 영화제의 성공으로 여러 매체에 소개되고 많은 관심을 받게 되었지만, 오히려 이른 성취가 청년들의 마음속에 부담을 주었다. 너멍굴이라는 공간에서 청년들이 할 수 있는 최대치의 능력을 발휘했기 때문인지, 지난 2년 넘는 기간 동안 시간과 자비를 털어 영화제를 꾸려가던 청년들은 지치기 시작했고, 하나 둘 3회에 함께 할 수 없음을 통보해왔다. 특히나 더 이상 자신의 논밭을 놀릴 수 없던 귀농청년은 본래의 농사일로 돌아가고자 하였기에 3회부터는 영화제가 계속되더라도 장소를 바꿔야만 했다. 영화제가 계속되기를 꿈꾸던 청년들이 하나씩 본연의 자리를 찾아 빠지기 시작하자, 제3회 너멍굴영화제는 행사를 치룰 수 있을지에 대한 의심마저 들었다. 

  귀농청년과 함께 너멍굴영화제를 최초 기획했던 영화감독 또한 변해버린 상황을 크게 실감하고 있었다. 영화제를 운영하기 위해서, 또 스텝을 꾸리고 행사를 진행하기 위해서 더 이상 ‘낭만’과 ‘재미’만을 팔 수 없었고, 현재의 영화제 상황이 여전히 남아있는 청년들의 시간과 노력을 보상해주기에도 분명 한계가 있었다. 이제 지금껏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이뤄냈던 너멍굴영화제의 순수한 모습만을 고집하기보다는 지속가능성과 비전을 따져보아야 할 시간이 찾아 온 것이다. 

▲ 제2회 너멍굴영화제 (2018, 전북 완주) 


제3회 너멍굴영화제, 그리고 낭만서커스!

  하지만 일련의 이유들에도 지난 2년 간 영화제를 잘 즐기고 간 관객들, 또 이제 너멍굴영화제를 알게 되어 올해 많은 기대와 관심을 주는 관객 분들을 쉽게 실망시킬 수는 없었다. 남아있는 청년들끼리라도 제3회 너멍굴영화제를 꾸려갔고 너멍굴이라는 장소를 벗어나 행사를 치루기에 적합한 장소를 찾아보았다. 그런 동료들이 남아서였을까? 영화제를 준비해가며 바쁜 일에 빠져나간 청년들도 하나 둘 다시 합류하고, 1회 영화제의 감독님과 관객 분들 또한 제3회 영화제를 여는데 큰 지지와 도움을 주기 시작했다. 

▲ 제3회 너멍굴영화제 (2019, 전북 완주) 


  1년 뒤든, 10년 뒤든. 마치 짧은 축제를 마치고 떠났지만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서커스단의 모습처럼 너멍굴영화제가 기억되길 바란 청년들은 제3회 영화제의 컨셉을 ‘낭만 서커스’로 잡았다. 비록 이번에도 어김없이 행사 날 북상한 태풍 링링과 함께 온갖 변수에 힘겨워했지만, 급급하게 실내로 장소를 바꿔 진행함에도 태풍을 뚫고 150명가량의 관객 분들이 영화제를 찾아와주었다. 지난 3년간 이처럼 영화제의 모습은 시시각각 변화했지만, 그래도 다시 찾아오는 사람들을 보면 누구나 마음 속 철 지난 ‘낭만’들을 그리워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너멍굴영화제는 이렇게 당분간 휴식을 선언했지만, 현재 이 모든 과정을 장편 다큐멘터리로 제작 중이다. 지난 너멍굴의 모든 추억들이 누군가의 마음속에 깃들어 다시 새로운 ‘낭만’의 불을 질렀으면 한다. □


글쓴이. 허건

- 대학에서 역사를 공부했고, 2015년부터 영화를 만들어오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재미를 느끼는 이야기의 원형을 찾는 것이 꿈입니다.
그와 비슷한 의도로 너멍굴영화제도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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