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2019년 4-5월, 2018년에 개관한 두 개의 독립-예술영화전용관이 각각 개관 1주년을 맞게 되었습니다. 같은 전남 지역에서 개관했지만, 모든 상황들이 전부 제각기 다른 두 개의 작지만 큰 영화관. 이 두 영화관들은 어떤 과정을 거쳐 개관했고, 지난 일 년을 어떻게 보내왔을까요? 서로 다른 처지에 놓여 있지만, 마음만은 같은 두 영화관의 이야기. 함께 만나보시길 바랍니다.
[ACT! 114호 작지만 큰 영화관 2019.05.25]
광주독립영화관 개관 1년과 광주영화의 변화
윤수안 (광주독립영화관 GIFT 관장)
2018년 4월 11일, 광주독립영화관이 드디어 개관을 하게 되었다. 광주 지역의 영화인들이 모여 이뤄낸 성취였다. 이전부터 광주에는 많은 영화단체와 영화제들이 각자의 존재 근거에 따라 활동하고 있었다. 영화라는 장르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마니아 집단부터 영화를 수단으로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다양한 시민사회단체까지. 그러나 그 다양성을 존중하며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쉽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광주국제영화제가 광주시가 지급한 운영비를 부정하게 사용한 것이 문제가 되자 당시 광주 문화계로부터 주변인 취급을 받았던 광주 영화인들은 연대하여 부조리를 바로잡기 위한 투쟁을 펼쳤다. 그 과정에서 영화인들은 단체를 결성하고, 그동안 주춤했던 지역 영화 활성화에 대한 논의를 다시 시작하였다. 9개 영화단체의 연대체인 사단법인 광주영화영상인연대(이하 연대)는 그 과정에서 탄생하게 되었다. 그리고 연대는 영화의 불모지 광주에서 ‘광주영화’를 선포하였다. 동시에 ‘다양한 영화를 보고 교육받고 제작할 수 있는 광주영화 시스템’을 우리 지역에서 실현하기로 합의하였다.
그동안 광주에서 창작으로써의 영화는 철저히 외면당했다. 저예산 영화를 만들기 위한 촬영, 조명, 사운드 장비를 대여할 수 있는 곳도 없었고 영화 제작 교육 또한 거의 없었다. 광주시청자미디어센터는 시청자참여프로그램을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제작 장비와 교육의 성격이 다르다. 지자체의 지원도 인프라도 부족하였다. 수백억 원의 예산을 굴리는 광주아시아문화중심도시(ACC) 조성 사업의 논의에서도 항상 영화는 빠져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영화를 직업으로 삼으려는 청년들은 광주를 떠나갔다.
그러나 이러한 광주의 영화 현실 속에서 연대는 더욱 단단해졌다. 광주에 맞는 영화정책을 만들기 위해 광주 영화인들은 수차례의 세미나와 수십 번의 모임과 워크숍을 가지며 광주영화의 그림을 그려나갔다. 그런 광주 영화인들의 활동에 광주광역시 문화산업과도 움직였다. 영화진흥위원회의 독립영화전용관 사업 공모에 광주광역시와 함께 신청하였고, 마침내 광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이 위탁받아 관리하던 광주영상복합문화관 6층에 독립영화관을 개관할 수 있었다. 개관하던 날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드디어 ‘광주영화’를 시작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구나. 시민에게 굳게 닫혀있는 영상복합문화관은 그렇게 문을 열게 되었다.
광주독립영화관, 지난 1년 동안에 해온 일들
광주독립영화관은 비록 개관한지 1년에 불과하지만, 그 사이에 많은 일들을 펼쳐나갔다. 그 첫 번째 일은 시민 공모를 통해 극장명을 지은 것이었다. 수많은 공모작 중에서 선정된 극장의 정식 명칭인 ‘광주독립영화관 기프트(Gwangju Independent Film Theater)’는 ‘영화선물’이라는 의미를 지니며 관객들과 만났다.
가장 기본적으로 광주독립영화관이 해온 일은 ‘독립영화 개봉영화관’으로서의 소임이었다. 설, 추석 연휴를 제외하면 단 하루도 쉬지 않고 하루에 4회차 프로그램을 정기적으로 상영하였다. 또한 기획전을 통해 수십 명의 영화인들을 초청하여 영화에 대한 깊이 있는 대화를 하였다. 여기에 광주에 쉽게 소개되지 않는 다양한 작품들을 상영하기 위해 서울독립영화제 단편영화 섹션, 한국 애니메이션 기획전 등을 개최하는 것은 물론 또한 청소년영화제, 여성영화제, 독립영화제를 유치하여 지역의 독립영화의 저변을 확장시켰다. 또한 세월호 기획전, 5.18 기획전, 통일영화-여성영화-광주영화 기획전을 비롯한 사회적인 메시지가 있는 작품들은 단체 관람과 공동체 상영을 유도하기도 하였다.
동시에 광주독립영화관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광주 지역에 정착하며 지역 영화인들의 사랑을 받았던 광주극장과 상영 생태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하였다. 이를 위해 광주독립영화관은 반드시 한국 독립영화만을 트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동시에 영화 상영을 넘어, 청소년 영화교육과 정재형 동국대 교수의 재능기부를 통한 실험영화 교육을 진행하여 영화 인력을 육성하려고 하였다. 이렇게 지난 1년간 다양한 활동을 펼치며 1만여 명의 광주시민들이 이곳에서 다양한 영화를 보고 행사에 참여하였다.
광주의 척박한 영화 현실
광주독립영화관은 단순한 극장이 아니다. 광주 지역 영화를 활성화시킬 전초 기지이다. 그동안 광주에서 영화는 소비와 오락의 장르였지만 이제 창작과 자아를 발견하는 매체로 영화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광주의 영화인들의 노력만으로는 버거운 벽이 존재한다. 바로 기득권과 행정의 벽이다. 광주의 문화 행정은 문화산업, 문화예술, 문화관광으로 나눠진다. 이 중 영화는 ‘문화산업’의 영역에 속한다. 문화산업을 집행하는 기관은 광주시의 출자기관인 광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이다. 진흥원은 게임, 애니메이션, 첨단영상, CG, 영상콘텐츠, 영화, 음악, 스토리 등 문화콘텐츠 전반의 사업을 기획하고 집행한다.
하지만 이 조직은 주로 국비 매칭 사업을 수주 받아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때문에, 단기 국비 사업을 수행하기에 바쁘다. 인력이 채용되더라도 단기 사업이 주를 이루고 있어서 사업이 끝나기도 전에 더 좋은 취업처가 생기면 인력들은 빠져나가게 된다. 이러한 구조 때문에 진흥원의 기존 직원들도 사업을 온전하게 진행하기에 큰 어려움을 겪는다. 이런 상황에서 광주지역의 영화정책과 비전을 이 조직에 맡기는 것은 무리다.
그래서 광주 영화인들은 광주의 영화 정책을 우리 연대에 맡길 것임을 주장한다. 이는 절대 무리한 주장이 아니다. 진흥원이 애초에 할 수 없는 사업이면, 민간에 넘기라는 것이다. 상업영화는 그대로 진흥원이 맡고 지역 영화는 정책을 세우고 사업을 집행하는데 민간에 전문가들이 많고 수행능력이 되기 때문에 맡기라는 주장이다. 아니면 애초부터 지역영화산업을 위한 센터를 만들어 광주광역시가 직접 운영하면 될 일이 아니었나.
이러한 복잡한 관계에도 불구하고 광주독립영화관은 광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이 위탁 관리하는 광주영상복합문화관 6층에 위치해있다. 이 때문에 광주독립영화관은 분명 독립적인 공간임에도 영화상영 이외에는 많은 제약을 받고 있다. 영화관의 로비는 비좁고 사무공간은 더욱 비좁다. 안쪽의 교육공간으로 쓸 수 있는 넓은 공간을 사용하면 좋겠지만, 철문으로 굳게 닫힌 채 출입을 금하고 있다. 뻔히 쓰지 않는 방치된 공간을 관리라는 이유로 개방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처음 광주영상복합문화관이 지어질 때만 해도 일본의 센다이미디어테크처럼 시민들을 위한 영상창작, 미디어도서관, 교육 공간, 시네마테크 공간으로 기대했으나 거의 10년째 방치되어왔다. 현재는 한국콘텐츠진흥원과 연계한 ‘콘텐츠코리아랩’ 공간 조성을 통해 소수 창작자들만이 이용하는 공간이 되고 말았다. 광주영화영상인들에겐 애증의 공간이 되고 말았다.
광주독립영화관의 도전이 만든 변화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주독립영화관은 단순한 상영관을 넘어서 시민들이 자유롭게 영화를 배우고 소통하고 만들 수 있는 영화센터의 비전을 가지고 있다. 5월 초부터 시작되는 영화비평가 양성 교육은 70여명 가까이 신청하여 시민들의 영화 글쓰기에 대한 열망이 확인되었다. 이후 전문 영화인 양성 교육, 청소년영화교육과 동아리 운영, 시민영화교실, 지역 영화잡지 발간, 광주영화페스티벌, 시민사회 네트워크 등 다양한 사업들이 준비되어 있다.
이러한 사업을 좀 더 원활하기 추진하기 위하여, 지역영화인들과 전문가들이 장기적으로는 광주영화센터 준비위원회를 결성하여 광주시민들의 영화 플랫폼으로 광주영상복합문화관을 앞으로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논의에 들어가야 한다는 바람을 가진다. 동시에 영화진흥위원회도 지역영화 활성화를 위해 지역에 좀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최근 영화진흥위원회가 실시한 지역영화 실태 조사 사업에서, 사업을 위탁받은 조사 기관은 단순히 이메일을 통한 설문지 하나로 모든 조사를 끝마치려고 했다. 적어도 지역에 내려와서 현재 지역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단체들이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 최소한의 현장조사를 해야 하는데 그럴 계획은 없다. 설문조사만 가지고 도대체 어떻게 지역 상황을 알겠는가? 오히려 이러한 조사가 지역영화 상황을 왜곡시킬 수가 있다. 영화진흥위원회는 진정성을 가지고 지역영화사업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3년간의 연대 활동들은, 그리고 연대가 만든 광주독립영화관의 1년 간 활동은 지역에서 점진적인 변화를 이끌어 냈다. 광주독립영화관을 통해 광주지역의 마을영화를 활성화시켰다. 광주 지역의 다양성 영화지원사업을 이끌어 내어 1년에 10여 편의 지역영화가 제작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었다. 그러한 결과로 광주 지역 최초로 허지은, 이경호 감독의 단편 <신기록>이 청룡영화상, 미장센단편영화제을 비롯한 유수 영화제에서 수상할 수 있었다. 영화 인프라도 점차 개선되고 있다.
물론 광주독립영화관 개관으로 모든 것이 완성된 것은 아니다. 광주독립영화관은 지역영화 활성화를 위한 마중물일 뿐이다. 영화는 특정 전문가 집단의 전유물이 아니다. 누구나 영화를 만들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이곳을 중심으로 많은 시민들이 영화인으로 재탄생하고 자신들의 삶이 풍요로워졌으면 한다. 앞으로 그 길에 광주영화영상인연대가 함께할 것이다. □
글쓴이. 윤수안
- 광주독립영화관 GIFT 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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