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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113호 작지만 큰 영화관] 일시정지시네마가 정지하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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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19. 3. 7.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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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113호 작지만 큰 영화관 2019.03.14.]


일시정지시네마가 정지하던 날


성상민(ACT! 편집위원)



  “지난 3년 동안 계속 노력했지만, 이게 한계가 아닌가 싶었어요.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지난 2월 17일, 강원도 춘천시의 커뮤니티 시네마 ‘일시정지시네마’에 만난 유재균 대표는 담담한 목소리로 폐관에 대한 심정을 풀어냈다. 지난 2016년 5월에 개관한 일시정지시네마는 이태원 극장판, 관악 자체휴강시네마와 함께 2010년대 후반 한국 곳곳에서 자생적으로 태어난 ‘커뮤니티 시네마’를 추구하는 작은 극장이었다. 한국의 엄격한 상영관 설치 규정으로 인하여 영화진흥위원회에 공식적으로 극장으로 등록되지는 않았지만, 일시정지시네마는 독립영화전용관은 물론 예술영화상영관도 없는 춘천에서 유일한 독립-예술영화 상영공간이자 지역 친화적인 움직임을 끊임없이 시도했던 문화공간이었다. 동시에 최근 주목받은 독립영화인 <초행>의 김대환 감독, <춘천, 춘천>의 장우진이 함께 뭉친 영화제작집단 ‘봄내필름’의 근원지가 춘천이라는 점에서 향후 활동에 대한 기대를 낳았던 공간이기도 했다. ACT! 역시 ‘작지만 큰 영화관’ 코너를 통해 일시정지시네마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https://actmediact.tistory.com/1245)


  그러나 2019년을 맞이하자마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찾아왔다. 2019년 2월 중순을 끝으로 일시정지시네마의 운영을 중지한다는 소식이 공식 페이스북과 블로그를 통해 전달되었다. 무엇이 일시정지시네마가 춘천에서 펼친 3년간의 도전을 멈추게 만든 것일까. 2월 17일, 춘천 일시정지시네마가 공식적으로 폐관식을 연 당일에 유재균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 일시정지시네마 폐관일



일시정지시네마의 담대한 도전, 그리고 맞부딪힌 한계들


  유재균 대표는 단도직입적으로 일시정지시네마가 처한 문제를 설명했다.


  “수익도 문제였지만, 관객수가 가장 큰 문제였어요. 지난 3년 간 일시정지시네마를 방문한 관객수는 2500여명에 불과했습니다.”


  물론 일시정지시네마가 관객개발에 공을 들이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지난 2018년 ACT! ‘작지만 큰 영화관’을 통해서 직접 들려줬던 것처럼, 단편영화 리뷰매거진 「모먼츠 필름」이나 영화 제작진과 관객이 함께 하는 프로그램 ‘퍼즈 그라운드’를 만드는 등 여러모로 관객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에 힘을 써왔었다. 그러나 결코 쉬운 과정들은 아니었다.


  “아무리 다양한 상영회를 개발하고, 프로그램을 만들어도 관객 개발은 결코 쉽지가 않더라고요. 그러면서 조금씩 자괴감이 들었던 것 같아요. 정말 우리는 춘천 지역 관객과 소통을 하고 있는 것이 맞긴 한 걸까? 독립영화, 예술영화, 사회 문제 같은 분야를 잘 몰라도 일상적으로 일시정지시네마에 함께 찾아와 영화를 보지 않아도 같이 술 마시는 게 좋은 사람을 만드는 것이 관객개발인데,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했던 거예요.”


  관객 수가 적은 상황은 유재균 대표로 하여금 향후 일시정지시네마의 운영을 지속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남겼다. 동시에 관객을 개발하지 못한 상태에서, 지원을 받는 것에 대한 의문 역시 함께 만들었다.


  “원래 일시정지시네마를 만들면서 세웠던 계획은 제 본업인 영상제작 활동을 꾸준히 하면서, 부업으로 일시정지시네마를 하자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어느 순간 일시정지시네마가 제 안에서 걸림돌처럼 느껴질 때가 점차 생기더라고요. 열심히 노력해 예비 사회적기업 인증도 받았지만, 사람이 없는 사회적기업이 과연 얼마나 의미가 있나 싶더라고요. 게다가 3년 간 2,500명밖에 안 드는 공간에, 무얼 믿고 공무원이나 공공기관을 설득할 수 있어요. 지금 이 상태로 지속하다가는 안 될 것 같아서, 여기서 접기로 했습니다.”


▲ 3년 동안 함께했던 일시정지시네마의 공간들

그리고 폐관에 대한 아쉬움이 가득 담긴 관객의 소감문.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재균 대표는 일시정지시네마의 문을 닫은 이후로도 꾸준히 영화 활동을 이어나갈 의지를 표출했다. 그는 독립서점을 비롯하여 춘천에 생긴 다양한 문화 공간을 기점으로 활동을 이어나갈 계획을 성명했다.


  “강원대에 다니면서 처음으로 시네마테크가 뭔지를 알게 되었어요.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교수님 부탁으로 학내 시네마테크를 운영했죠. 그때 영화 상영의 재미를 알게 되었죠. 하지만 학교를 다닐 때는 물론이고, 지금도 관객을 모으는 건 쉽지가 않더라고요. 하지만 일시정지시네마를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고, 꼭 영화관이 아니더라도 할 수 있는 것들이 많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난 3년 간 춘천에 독립서점이 3곳이 생겼어요. 일시정지시네마의 이름으로 책방 순회 상영도 두 차례 정도 했습니다. 앞으로도 독립서점이나 지역 미술계 등과 함께 상영 활동을 해보려고 합니다.”


  동시에 유재균 대표는 극장 직원 중 한 명이 일시정지시네마 폐관 이후 원주에서 커뮤니티 시네마를 만들려 한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폐관 당일까지 일시정지시네마에서 근무하던 고승현 씨는 원주영상미디어센터 모두에서도 함께 활동하고 있었다. 고승현 씨는 일시정지시네마에서 겪은 경험이 소중한 도움이 되었다고 소회를 들려주었다.


  “원주는 원래 춘천이나 강릉 못지 않게 극장이 많았던 곳이에요. 그러다 멀티플렉스가 생기더니, 구도심에 있던 모든 극장들이 문을 닫았죠. 아무리 멀티플렉스가 편해도 이렇게 극장이 사라져야 하는 걸까, 그런 고민이 들었죠. 극장에 대한 애착이 많았어요. 그러던 중에 일시정지시네마를 알게 되어 함께 일하게 되고, 최근에는 원주시민미디어센터 모두와 함께 옥상영화제 활동을 하게 되면서 실무적 감각을 키웠어요. 2020년을 목표로 원주에서 커뮤니티 시네마를 만드려고 합니다.”


▲ 많은 관객들이 일시정지시네마의 마지막을 함께 하기 위해 방문했다.



많은 관객들이 함께한 일시정지시네마의 폐관일


  유재균 대표와의 인터뷰를 마친 후, 일시정지시네마의 마지막 상영이 시작되었다. 2018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으로 작품을 공개한 박배일 감독의 <라스트 씬>이었다. <라스트 씬>은 2018년 문을 닫게 된 부산 국도예술관, 2016년부터 2017년까지 휴관한 뒤 가까스로 재개관한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을 비롯해 ‘마지막 상영’(라스트 씬)을 맞게 된 독립-예술영화 전용관의 이야기를 그린 다큐멘터리다. 작지만 소중한 영화상영공간의 마무리를 함께할 작품으로는 이보다 더 적절할 작품이 없었다. 영화 상영이 끝난 후 박배일 감독은 일시정지시네마에 대한 평소의 감정을 GV에서 이야기했다.


  “언제가는 꼭 와봐야지, 그렇게 다짐했던 곳이었어요. <소성리>를 일 주일 동안 풀타임으로 상영한다길래 너무나도 반갑고 신기했거든요. 그런데 처음 오는 날이 오늘이 될 줄은 정말 몰랐네요. 극장 폐관식날 상영하라고 만든 영화가 절대 아닌데, 씁쓸하기도 하고 슬픕니다. 정말 한국은 공간이 너무 쉽게 사라지는 것 같아요. 역사가 쌓이기는커녕 바로 사라지고 없어집니다. 어딘가에 정착하거나 의미를 남겨두지 못하고 계속 공중에 떠다니는 것이 한국 사회의 현실이라 생각합니다.”


▲ 일시정지시네마의 마지막 상영작 

<라스트 씬>의 박배일 감독이 관객들과 GV를 함께 했다.



  박배일 감독의 GV가 끝난 이후, 본격적으로 일시정지시네마의 ‘폐관식’이 시작되었다. 유재균 대표와 인터뷰를 할 때만 해도 여유로웠던 일시정지시네마는 금세 많은 사람들로 메워졌다. “이럴 거면 진작에 많이 왔으면 얼마나 좋아요! 꼭 이런 날에 사람들이 많이 오더라.” 유재균 대표는 폐관식에 찾은 많은 관객들에게 웃으면서 농담을 던졌다. 하지만 그 농담은 오래가지 못했다. 유재균 대표는 점차 폐관에 대한 소회를 남기면서 서서히 눈물을 흘렸다. 유재균 대표의 눈물에 많은 이들이 그동안 수고가 많았다는 의미가 담긴 박수로 화답했다.


  “솔직히 말해서, 유재균과 일시정지시네마가 동일시되는 것이 두렵기도 하고 무서웠어요. 저는 그렇게 역량이 뛰어난 사람도 아닌데, 대표라는 이름으로 너무 제 자신이 일시정지시네마와 같은 존재로 여겨지는 것 같아서 미안했어요. 관객이 많지 않아도 이 공간을 계속 유지했던 건 모두 직원 여러분 덕분입니다. 제 이름이 아니라 일시정지시네마를, 그리고 구성원들을 기억해주세요. 마지막으로, 문을 닫게 되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 일시정지시네마의 유재균 대표가 끝내 눈물을 참지 못했다.



  유재균 대표의 폐관 인사가 끝난 이후로는 일시정지시네마와 함께한 관객, 그리고 일시정지시네마와 같은 전국 각지의 커뮤니티 시네마 대표들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유재균 대표가 직접 일시정지시네마를 꾸준하게 찾은 단골 관객이라 소개해준 한 관객은 일시정지시네마가 춘천에서 소중한 장소였다고 소회를 밝혔다. “여기가 아니면 춘천에서 볼 수 없는 영화, 감독, 배우들이 무척 많았어요. 일시정지시네마 덕분에 지난 3년이 너무 알찼습니다. 갑작스럽게 사라져서 그저 안타까울 뿐이에요. 그간 정말 고마웠습니다.”


  광화문에서 ‘에무시네마’를 운영하는 김상민 대표는 일시정지시네마를 유쾌하며 열정이 많았던 공간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몇 번 사업을 같이 진행하며 정말 유쾌한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영화의 즐거움으로 생동하는 모습에서 감명도 받았고요. 비록 일시정지시네마는 잠시 정지하지만, 영화에 대한 열정은 결코 멈추지 않을 겁니다.”

  이태원에서 ‘극장판’을 운영하는 권다솜 대표는 커뮤니티 시네마에서 관객이 가지는 중요성을 말하며, 일시정지시네마의 지난 3년을 격려했다. “극장판은 직원을 두지 않고 저 혼자서 스스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까 유재균 대표의 말이 결코 남일 같지 않아요. 도망치고 싶은 순간이 한 두 번이 아니에요. 관객이 적으면 적은대로, 많으면 많은대로 기분이 이상해요. 극장은 잠시 쉬지만, 관객으로라도 계속 교류하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신림동 고시촌에서 ‘자체휴강시네마’를 운영하는 박래경 대표는 일시정지시네마가 자신에게 던졌던 메시지를 말했다. “극장판 이후로 조금씩 커뮤니티 시네마가 생기고 있지만, 여전히 소수입니다. 그런 점에서 일시정지시네마가 문을 닫는다는 것은 몇 안 되는 동종업계가 문을 닫는 소리와도 같습니다. 그간 일시정지시네마의 모습을 통해 커뮤니티 시네마를 위해 노력하는 이가 더 있다는 확신을, 그리고 용기를 가졌습니다. 비록 극장을 문을 닫지만, 앞으로도 많은 활동 부탁드립니다.”


▲ 일시정지시네마의 마지막을 함께하기 위해 온 전국 각지의 커뮤니티 시네마 대표들. 왼쪽부터 에무시네마의 김상민 대표, 이태원 극장판의 권다솜 대표, 자체휴강시네마의 박래경 대표, 곧 원주에서 커뮤니티 시네마를 기획 중인 일시정지시네마의 직원 고승현 씨.



  이들의 회고사를 끝으로 일시정지시네마는 공식적으로 모든 상영과 행사를 마치고 문을 닫게 되었다. 일시정지시네마가 사용하던 공간은 영상스튜디오가 인수해 일반 사무실로 바뀔 예정이다. 유재균 대표가 인터뷰나 회고사에서 밝혔던 소회처럼, 커뮤니티 시네마의 상황은 절대 녹록하지 않다. 공간 임대 문제로 문을 닫아야 했던 부산 국도예술관, 수익과 지원 정책 문제로 약 일 년 간 문을 닫아야 했던 강릉 독립예술극장 신영의 사례는 독립-예술영화전용관이 자생적으로 버티기 어려운 현실을 보여주는 사건들이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 사업을 받는 극장들도 점차 어려운 상황에서, 정책의 대상에도 속하지 않은 커뮤니티 시네마들의 상황은 더욱 열악할 수밖에는 없다.


  2019년, 영화진흥위원회는 올해를 한국 영화 100주년으로 선언하며 다양한 행사와 프로그램을 계속 이어나갈 예정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한국 영화 100주년을 맞은 이 순간, 일시정지시네마의 폐관 선언은 한국 영화가 양적이나 산업적으로는 성장했어도 질적이나 다양성, 공공성의 측면으로는 점차 양극화 상태에 놓이고 있는 상황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어떠한 정책이, 어떠한 관심이 한국 영화에 필요한 것일까. 어떠한 움직임이 지금과는 다른 대안적인 환경과 모습을 만들 수 있을까. 더 이상은 이런 ‘폐관’ 소식이 들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확실한 움직임이 요구된다. □


▲ 일시정지시네마의 마지막 상영이 끝난 뒤, 상영관의 모습. 

그리고 3년간 함께한 유재균 대표와 전현직 직원들의 단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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