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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112호 작지만 큰 영화관] 관객들의 쉼터가 되는 극장, 모퉁이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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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18. 12. 5.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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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부산에 있는 독립예술영화관의 수가 얼마인지 아시나요? CGV 아트하우스나 롯데시네마 아르떼와 같은 멀티플렉스 산하의 극장을 제외하면 이제는 영화의전당에 속한 시네마테크나 인디플러스밖에 남지 않은 상황입니다. 국도예술관, 아트씨어터 씨앤씨 등을 비롯한 독립예술영화관이 사라진 지금, 부산의 원도심에는 상설 극장은 아니어도 관객극장을 표방하며 다양한 활동을 모색하는 ‘모퉁이극장’이 있습니다. 관객이 중심이 되는 영화 운동을 펼치는 모퉁이극장이 들려주는 이야기, ‘작지만 큰 영화관’ 코너를 통해 함께 살펴보고 가세요.



[ACT! 112호 작지만 큰 영화관 2018.12.14. ]


관객들의 쉼터가 되는 극장, 모퉁이극장


변혜경(모퉁이극장 운영팀)



관객들아 모여라!


  먼저 ACT! ‘작지만 큰 영화제’ 코너를 통해 모퉁이극장을 소개할 수 있어 기쁘고 반갑다는 말을 전한다. 모퉁이극장은 부산 중구 원도심 40계단 앞에 자리한 ‘관객극장’이다. 관객극장이라는 다소 낯선 용어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모퉁이극장 초기에 만든 자료집에 게재된 글로 시작하고자 한다.


  모퉁이극장은 에른스트 루비치의 ‘모퉁이 가게’에서 이름을 빌려왔습니다. 난이도 높은 영화와 비평들도 중요하겠지만, 마치 동네 가게에서 자연스레 삶이 묻어나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먼저 귀 기울이고 싶습니다. 문득 상영관을 나와 떠밀리듯 발걸음을 내리는 좁은 층계참에서, 때론 극장을 나서 홀로 돌아가는 쓸쓸한 귀갓길에서, 여기와 저기서 마주치고 스쳐가는 순간들, 흥분과 불안, 망설임과 깨달음, 무언가를 말하고 싶은 간지럼과 끓어오름, 그 소중한 ‘일상의 모퉁이’들을 기꺼이 공유하고픈 관객들에게 열린 ‘동네극장’이 되려고 합니다.


  2012년에 모퉁이극장의 문을 열기 전, 창립 멤버들은 인문학 공동체 운동을 오랫동안 함께 했었다. 관성에 젖은 일상을 스스로의 주체화를 통하여 새로운 생활문화를 만들어 보고자 모인 실험적 공부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생활문화운동이 모퉁이극장의 밑거름이 되었던 것 같다. 천만 관객이라는 숫자로 호명되는 익명의 관객들, 전문가의 담론과 취향을 따르는 것이 당위가 되어버린 관객들 속에서도 각자의 방식으로 영화를 향유하며 살아가는 관객들은 영화문화의 다른 주체가 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소위 ‘씨네필’은 아니지만 영화를 좋아하는 마음이 가득한 이들, 영화로 무언가를 해보고 싶은 알 수 없는 갈망으로 끓어오르는 이들을 고유한 실명의 관객으로 만나고 싶었다. 관객들의 영화문화도 영화인들의 것만큼 가치 있음을 보여주고 관객들이 영화에 감응된 특별한 순간들을 간직하고자 했다. 관객들이 영화의 주인공이 되는 세상, 이제껏 드러나지 않던 관객들의 목소리를 상영하고 기록하며 복원하는 ‘시네마-피플-테크’를 꿈꾸며 모퉁이극장은 아쉬움과 목마름으로 찾아온 관객들에게 응원의 손길을 건네고자 했다.    


▲ 모퉁이극장에서 매년 개최되는 관객영화제의 현장. 



모퉁이극장의 관객운동


  작고 소박한 공간에 관객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관객들의 연대로 생겨날 관객문화의 새로운 풍경들을 상상하는 일은 즐거운 일이었다. 영화를 보고 난 감흥을 참여한 모든 관객이 발화하는 자리는 GV와 어떻게 다를까. 서로 ‘영화친구’가 되어 함께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나눈 시간들이 쌓이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각양각색의 관객들이 뭉친다면 영화계에 어떤 응원을 보낼 수 있을까. 이런 질문과 상상들이 관객들을 만나면서 이어졌고 관객들 저마다 향유하는 영화문화를 결집시키며 관객운동을 시작했다.


  모퉁이극장의 관객운동은 기존 관객운동과 강조점이 다소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제작이나 배급에 관객이 참여하여 상업영화로부터 소외된 독립예술영화를 지키는 상영 중심의 운동이 아니라, 관객을 영화의 주인공으로 보고 관객들이 만들어가는 ‘관객문화’를 통해 관객의 자리를 당당히 세워보려는 ‘관객주체 운동’이다. 


  이러한 관객문화, 다시 말해 ‘관객들의 영화문화’를 응원한다는 의미로 모퉁이극장을 ‘관객문화응원단체’라고도 부른다. 영화 같은 일상을 살아가는 멋진 관객들을 만나고 어울리면서 함께 좋은 관객이 되어보자는 것이다. 이러한 관객운동은 영화의 감흥을 글과 말, 그림 등 자신만의 언어로 표현할 줄 아는 관객, 내가 좋아하는 영화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필요한 영화를 소개해 줄 수 있는 관객, 극장이 영화를 보는 공간이거나 후원의 대상이라는 차원을 넘어 곁에 있는 관객들과 함께한 시간들로 충만한 장소가 되어 극장의 운명에 동참할 수 있는 관객, 영화계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며 해결에 참여하는 관객들로 함께 살아가기를 희망하는 운동이다. 


관객운동의 주인공, 관객문화활동가  


  2012년의 봄, 관객에게도 동등하게 지면을 주자는 취지의 ‘관객지면운동’으로 시도했던 「영화의 관객들(Citizen of Cinema)」이라는 제호의 관객문화 영화잡지 발간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하지만 「영화의 관객들」을 발간한 경험은 부산의 독립영화 정기상영회와 실험영화 상영회를 개최하면서 만난 관객들과 함께 그해 겨울 부산독립영화제의 모든 영화들을 25인의 관객리뷰단이 쓴 리뷰, 기획좌담, 단평, 베스트 10 선정, 모퉁이영화상 선정을 통해 조망한 관객잡지 「모퉁이극장」을 세상에 선보일 수 있는 지반을 만들었다. 이 작은 성과에 힘입어 관객리뷰단 활동이 현재까지 계속 이어져 부산국제단편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의 영화들을 ‘글’이라는 형식에 얽매지 않고 관객들마다 고유한 방식으로 접근하는 관객-비평 작업을 지속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 관객잡지를 추구하는 잡지 「모퉁이극장」의 창간호 발간식 모습.



  관객리뷰단을 통해 숨어 있는 관객들의 역량을 확인하면서 좀더 적극적으로 관객운동을 이끌 관객들의 연대체가 필요함을 느꼈다. 영화 상영회 참가, 리뷰 제작과 같이 행사 때만 단발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운동의 취지에 공감하며 지속적 참여를 통해 관객운동을 풍성하게 채우고 변화를 주도 관객들을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고민했다.


▲ 관객문화교실 수료식 모습.



  모퉁이극장은 2015년부터 운영한 ‘관객문화교실’을 통해 관객운동의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관객이라는 자의식을 갖고 영화친구를 사귀며 관객운동을 일상에서 실천하고 나누는 활동을 함께 배운 이들을 ‘관객문화활동가’라고 불렀다. 이들은 적극적인 관객들로 모퉁이극장에서 개최하는 크고 작은 시민중심 영화제를 직접 운영한다. 관객문화교실 수료 후 데뷔무대인 ‘애프터시네마 클럽’, 해외작가 특별상영회, 일상에서 문화다양성에 대한 문제들을 돌아보는 ‘시네엔두루’, 중구 원도심 지역민들의 친목과 교류를 다지는 40계단 관객극장과 40계단 달빛영화관 야외상영회, 동시대 실험영화를 소개하는 ‘엑시코너스’, 청소년 프로그래머들이 만드는 ‘상상영화제’, 그리고 모퉁이극장의 메인 프로그램인 <관객영화제> 등 다양한 상영회를 통해 영화제의 기획을 함께하고 현장 실무를 도맡으면서 관객운동의 주체로 활약하고 있다.


  해를 거듭하면서 모퉁이극장이 만드는 시민 중심 영화제도 많아지고 관객문화활동가들의 수도 늘어나 이제는 60여명에 이른다. 관객문화활동가들의 활동무대는 이제 모퉁이극장 바깥으로까지 넓어졌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다이빙벨>이 상영된 것을 꼬투리잡아 정부가 영화제에 개입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 1인 릴레이 시위와 응원 캠페인을 하며 부산국제영화제 지키기에 동참했고, 국도예술관 등의 사라진 이후 척박해진 부산의 영화 상영 환경 개선을 위해 추진되고 있는 부산독립예술영화 전용관 설립추진운동에도 관객문화활동가들이 관여하고 있다. 또한 부산국제영화제를 포함해 부산에서 개최되는 다수의 영화제에 게스트, 진행자, 리뷰단으로 참여하여 영화제를 응원하는 것은 물론 지역의 문화예술작가들과 협력하여 영화를 매개로 한 전시인 <극장전>을 함께 만들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곳곳에서 활동 중인 시민들의 영화 커뮤니티를 비롯한 다양한 시민단체과 교류하며 이들의 활동과 연계된 시민영화제를 만드는 데 협력하는 등 관객운동의 외연을 넓히고 있다.


▲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의 원도심 부대행사로 열린 ‘커뮤니티 BIFF’에서는 

모퉁이극장의 관객운동의 성과를 보여줄 수 있었다,



관객연대의 지속을 꿈꾸며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의 원도심 부대행사로 개최된 ‘커뮤니티 BIFF’는 모퉁이극장에게는 새로운 도약의 시간이었다. 전국 각지의 14개 시민영화 커뮤니티가 참여한 ‘커뮤니티 시네마’ 섹션과 전국 영화활동가 포럼을 표방한 ‘어크로스 더 시네마’ 섹션을 통해 모퉁이극장이 그동안 일구어온 시민 중심 영화제의 성과를 담아내고 시민 관객들의 역량을 확인하는 무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퉁이극장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기존에 모퉁이극장이 받던 지원 프로그램도 내년이면 중단될 예정이고, 재정과 자원이 부족한 상황은 여전히 우리의 걸음을 멈칫거리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들과 만들어낸 경이의 시간들이 좀더 전진하여 관객문화가 만개할 순간들을 기다리는 마음만은 변함없다. 관객들의 갈증을 잠시 축일 수 있는 쉼터이기를 바라며 시작된 모퉁이극장은 앞으로도 언제나 그때처럼 관객들과 함께 걷고 있을 것이다. □





글쓴이. 변혜경 (모퉁이극장 운영팀장)



영화를 좋아하는 마음이 흐르다가 모퉁이극장에 닻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숨어있는 걸작과 멋진 관객들을 만나는 즐거움이 일상의 소소한 행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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