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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113호 길라잡이] 세상이 바뀌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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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19. 3. 7.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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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113호 길라잡이 2019.3.14.]


세상이 바뀌는 날

차한비 (ACT! 편집위원)


  지난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이하여 서울에서는 제35회 한국여성대회가 열렸습니다. 광화문 광장을 가득 채운 시민들은 밤이 올 때까지 성평등한 세상을 바란다고 외쳤습니다. 낙태죄를 폐지하라고,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고, 성별 임금격차 해소하라고 목소리를 모아 요구했습니다. 어느덧 익숙해진 구호가 들려왔습니다. “가해자는 감옥으로, 피해자는 일상으로.” 그 자리에 서서 미투운동 1년 동안 과연 무엇이 얼마나 바뀌었는지 곰곰이 생각해야 했습니다.


  영화감독 김기덕은 한국여성민우회에 3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김 감독의 <인간, 공간, 시간 그리고 인간>을 개막작으로 초청한 유바리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민우회가 개막작 선정 취소를 요구하자 명예훼손을 주장한 것입니다. 한편 <테이블 매너>, <오목소녀> 등의 영화에 출연한 배우 정요한의 성폭력 가해가 고발되기도 했습니다. 그는 이른바 ‘남성 페미니스트’로서 발언하던 영화인이었으며, 최근까지 한 유튜브 채널의 촬영과 편집을 진행하며 활발히 활동했습니다. 성접대를 강요받았다고 폭로하며 목숨을 끊은 고 장자연 배우의 10주기가 돌아왔고, 고인의 동료였던 윤지오 배우가 검찰에 출석하여 증언했습니다. 작년 12월 폭행, 마약, 그리고 성범죄 의혹이 제기된 클럽 버닝썬은 수사과정에서 연예인 승리의 성매매 알선, 정준영의 불법촬영영상 유포, 경찰 유착 등의 혐의가 불거지며 연일 뉴스를 도배 중입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는 ‘정준영 동영상’이 실시간 검색어 1위로 오르내리고 피해 여성 연예인을 추측하는 2차 가해가 난무합니다. 


  바로 여기가 2019년 3월의 대한민국입니다. 상식 없고 이치에 어긋나며 인권을 짓밟는 일이 눈뜨면 매일 일어납니다. 더 이상 누구에게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암담해지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하지만 끝나지 않습니다. 놀랍게도 폭력이 공고할수록 연대의 두께는 두터워집니다. 폭력이 벌어지고 은폐된 자리가 너무 가까워서, 폭력은 타인의 사건이 아니라 나의 문제로 돌아옵니다. 우리는 서로의 용기라고 외치던 사람들은 어제도 오늘도, 그리하여 내일도 존재합니다. 배우 정요한의 성폭력 가해를 주장하며 사건을 공론화한 고발인은 “뒤늦게라도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용기를 준 다른 피해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앞으로는 “피해자에서 고발자로 위치를 바꿔 맞서 싸우”겠다고 다짐했습니다. 


▲ 사진 출처: 픽사베이 https://pixabay.com/ko/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ACT! 113호 역시 빼곡합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며 쓸 수 있는 글을 썼습니다. 모두 다른 이야기인 것처럼 보이지만, 한 곳에 모아놓으니 그럭저럭 어울리는 조합입니다. 폭력에 게을러지지 않도록 거듭 고민하는 사람, 작은 변화를 시도하는 공간, 오랫동안 묵묵히 제자리를 지켜낸 카메라를 찾아가고자 노력했습니다.


  [이슈와 현장]이 첫 번째로 도착한 곳은 용산참사 10주기를 맞이하여 지난 1월 개최된 미디어활동가 포럼입니다. 당시 활동 증언과 현장에서 마주한 갈등, 현재 활동가로서의 고민을 갈무리합니다. 두 번째 현장은 2019 미디어교육자 워크숍입니다. 고영준 교육자의 소개로 워크숍 참여자들의 우려와 희망을 전해 듣습니다. 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 전문위원으로 참여했던 박채은 활동가의 글도 싣습니다. 그는 ‘블랙리스트’라는 정책범죄가 작동한 일련의 과정을 복기하며, 진상규명만큼이나 어려운 과제가 여전히 남아있음을 지적합니다.


  [미디어 인터내셔널]에서는 해외의 다양한 OTT 서비스를 소개하며 영향력과 방향성을 질문하고, [리뷰]에서는 제44회 서울독립영화제 최우수장편상을 수상한 <졸업>(박주환, 2018)을 들여다봅니다. 영화는 상지대학교 사학비리 투쟁을 10년 동안 기록한 다큐멘터리로, 언론에서는 누락된 얼굴과 목소리가 담겨 있습니다. [인터뷰]에는 두 명의 인물이 등장합니다. 정소희 활동가와 민지연 기획자는 각각 다른 곳에서 다른 일을 하지만, 보다 많은 사람과 건강하게 즐기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애쓴다는 공통점을 지닙니다. 지면을 통해 두 사람을 만나주시길 바랍니다.


  [페미니즘 미디어 탐방]에서는 공부·번역·출판·교육·장학사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왕성하게 활동 중인 ‘문제해결집단’ 전기가오리를 찾아갑니다. 페미니즘 철학을 공부하고 번역하고 출판한 강은교, 김혜연 님과 대화 나눕니다. [작지만 큰 영화제]에 실린 페미니스트 영화/영상인 모임 ‘찍는페미’ 안정윤 운영위원의 글에는 지난 1월 개최된 서울여성독립영화제를 기획하며 공유했던 문제의식과 다음 영화제를 상상하는 포부가 담겨 있습니다. 


  [나의 미교이야기]에서는 2017년부터 인천의 청소년들과 청소년미디어제작단 <심(心)수봉 프로젝트>를 진행해온 안나영 교사의 애정 어린 시선을 만나볼 수 있고, [작지만 큰 영화관]에서는 지난 2월 17일 폐관한 춘천의 ‘일시정지시네마’와 한 차례 휴관했다가 재개관 2년을 맞이하는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을 방문합니다. 춘천과 강릉의 거리만큼이나 극장이 떠안은 고민들이 가깝게 느껴집니다. 함께 읽으며 극장과 영화, 그리고 관객의 관계를 생각해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재미와 교육적 효과를 동시에 챙기는 [학습소설]은 미디어 리터러시를 이야기합니다. 본격적인 내용은 (하)편에 시작된다고 하니 미리 읽어두시기를 추천합니다. ‘여성 활동가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졌을까?’ 라고 묻는 박혜미 전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프로그래머의 [Me,Dear]도 놓치지 마시길 바랍니다. 이외에도 많은 분들의 참여와 도움으로 113호가 완성되었습니다. 편집위원을 대신하여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끝으로 올해 한국여성대회에서 성평등디딤돌상을 수상한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한사성)의 수상소감을 공유하며 길라잡이를 맺습니다. 어쩌면 세상이 바뀌는 날, 우리가 믿는 세상에 가까워지는 그날은 매일 다시 시작되는 오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조금 바뀐 세상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모든 운동이 자기 소멸을 목적으로 하는 것처럼, 저희 또한 한사성이 더 이상 필요치 않은 세상을 바랍니다. (..) 이 폭력이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임을 모두가 알게 될 것입니다. 세상은 더 이상 피해자는 죽는다고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씻을 수 있는 상처, 나갈 수 있는 감옥을 만들어나갈 것입니다. 우리가 상상하는 새로운 상식이 당연해지도록 치열하게 고민하고 더 크게 말하며 거침없이 행동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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