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 110호 Me,Dear 2018.7.31.]
못다 한 말
최은정(ACT! 편집위원)
편집위원들의 소소한 이야기를 쓰기로 한 ‘Me,Dear’ 코너. 늘 내 순서가 되면 생각한다. 이 코너 이제 없애자고 할까? 그리고 이어지는 깊은 한숨. 하아-. 뭘 쓸까 한참 고민하다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못다 한 말들을 남기기로 했다. 시간이 좀 흐른 후 나의 관리자 권한을 마구 남용해 삭제해버릴지도 모를 넋두리에 가까운 말들을.
살면서 자연스레 끊어지는 인연은 허다하지만, 영영 볼 수 없다는 건 좀 다르다. 뭐 평소 자주 만나는 것도 아니었으니 그냥 멀리 산다 생각하면 그만이지만. 빈자리를 남긴 계절들은 어김없이 돌아오고 그 계절의 시작에 황망하고 먹먹한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건 떨치기가 쉽지 않다.
촬영이 어렵다는 말에 연습을 덜 해서야 라고 말했던 버스 맨 뒷자리, 나선의 미세한 각도까지 따지며 이미지에 대해 열변을 토했던 생고기집, 언제나 정갈하게 정돈된 렌즈들, 손때 묻은 PD150 카메라, 아무렇게나 묶은 회색 머리, 같은 자리를 지키던 사람의 낡은 검은 모자, 각종 투쟁 배지로 가득했던 가방, 농담조차도 골똘히 생각하다 심각한 얼굴로 대꾸해 흐려진 분위기들.
다른 사람에겐 관대해도 자기에겐 엄격했던, 생활비 몇 십만 원도 없으면서 투쟁 승리에 더 보람을 느꼈던, 제일 먼저 카메라를 들고 제일 나중에 카메라를 내려놓던, 편집컴퓨터 앞에서 숱하게 밤을 새우면서도, 생색 한 번 제대로 못 냈던, 사람들.
늘 경계한다. 비슷하게 살지 않으면 잘못된 건 아닌가 하는 생각, 누군가 더 해내길 바라는 기대를. 의심도 해본다. 그 사람들이 모범답안이라고 말하는 걸 방관하고 있진 않은가, 나름의 이유와 목적이 있는 다른 실험들에 무관심하진 않는가. 최선이 아니라 완벽을 바라진 않는가.
하지만 빈자리를 마냥 처박아 둘 수는 없는 노릇. 보잘 것 없는 일이라도 할 건 하고 남길 건 남겨야겠지. 손에 안 잡히는 뭔가를 쫓으며 스스로 연대하고 실낱같은 희망을 쌓아야겠지, 사라진 안전망을 대신할 조금은 강제적이고 정기적인 시스템이 필요하겠지, 이 일이 또 다른 부담과 의무가 아닌 서로를 챙기고 보살피는 것이 돼야겠지, 뭐 쉽지는 않겠지.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다른 할 일을 찾게 만든 사람들. 그 사람들이 끝까지 진지하게 던진 질문에 최대한 가볍게 답하고 싶다. 함께 할 수 있는 필요한 무언가를 절대 무리하지 않으며 한 번 찾아보겠다는 것 정도로. 좀 많이 오래 걸릴 수는 있다는 걸 전제로. □
(음, 역시 이 넋두리는 틈을 봐서 몰래 삭제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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