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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108호 Me,Dear] 나의 목소리가 너에게 닿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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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18. 3. 6.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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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108호 Me,Dear 2018.03.14.] 


나의 목소리가 너에게 닿기를 

우야(ACT! 편집위원) 


  1997년 여름. IMF 외환위기가 오기 바로 전, 워크맨을 선물 받았다. 오디오 스피커로 들을 때와는 다른 소리를 감각하며 새로운 세상을 만난 것 같았다. 시간과 장소에 관계없이 애니메이션 세계명작 카세트테이프를 들으면 동화 속 세상으로 빨려 들어갔다. 폭풍우에 떨기도 하고, 마녀에게 쫓기기도 하며 새로운 세상을 모험하기에 바빴다. 글로 읽었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현장감에 '소리'의 매력을 알게 됐다. 그리고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지만 목소리에 연령, 성별, 성격, 체형 등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러면서 목소리의 중요성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그로부터 10년 후, 2007년. 시민 누구나 방송을 통해 말 할 수 있는 공동체라디오를 알게 됐다. 연령, 성정체성(성별정체성/성적지향), 장애, 학력, 병력, 경제력, 직업, 출신지역, 혼인여부, 가족형태,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범죄전력 등에 상관없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싶은 누구나 모두 방송에 참여할 수 있는 '모두의 방송국-공동체 라디오'에서 활동하면서 대중미디어가 담아내지 못하는 수많은 목소리를 들었다. 목소리를 내는 것이 내가 세상에 존재한다고 알리는 것임을 깨달으면서, '주파수는 시민의 것'을 외치며, 보고 듣는 것을 넘어서 말해야 한다는 알렸다. 


  그해 12월 대통령 선거가 있었고, 그 결과가 나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느끼며 대통령 한 명의 권한과 책임이 모든 국민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다음해인 2008년 봄에는 국회의원 선거가 있었다. 그해는 관악 공동체라디오에서 활동하며 매니페스토 캠페인을 진행했다. 트럭에 방송장비들을 실어 이동식 스튜디오를 만들고 후보자들의 공약을 더 많은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목소리를 제대로 내는 것이 중요한 만큼 목소리를 제대로 듣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 노력과는 별개로 겨울이 될 무렵 광화문에서 명박산성을 마주했고, 2009년이 되자마자 용산참사가 일어났다. 누군가의 삶이 안전하지 못함을 보며, 나의 삶도 불안해졌다. 안전한 세상을 위해 무엇이라도 해야 했다. 용산에 함께 가자고 말을 건네준 언니를 따라 용산참사 현장 뒷 편 레아 호프자리에 열린 촛불방송국으로 갔다. 행동하는 라디오 '언론재개발'을 함께 만들며 현장을 기록하고 더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으려고 했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그 목소리를 전하려고 했다. 그 과정 속에서 나의 안전을 위해 현장에서 도망치듯 나왔지만 미디어가 현장에 바로 반응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몸으로 배웠다. 


  대중미디어와 대안미디어는 단어 한자 차이인데 담아내는 목소리들이 달랐다. 원래도 그랬지만 더 이상하다는 것을 감지했을 때, 2010년 MBC가 총파업에 들어갔다. 대중미디어를 믿지 못하는 대중들은 가짜 뉴스가 아닌 진짜 뉴스를 찾기 시작했다. 대중미디어에서는 나오지 않는 이야기들은 팟캐스트를 통해 들리기 시작했다. 시사/정치 팟캐스트가 1위를 달리는 것을 보며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 변화를 감각하고자 한다는 것을 알았다. 

  2012년 서울에서부터 '마을의 목소리는 우리가 내자, 우리의 목소리는 우리가 내자'며 '마을미디어'가 시작됐다. '마을'이라는 삶의 공간을 중요한 배경으로 삼는 '공동체미디어'로, 지역공동체, 생활공동체뿐만 아니라 이슈로 모인 주제공동체까지 모두 포괄하며 공동체의 소통과 이슈를 담아내고 있다. 마을미디어 중에서도 '마을라디오' 활동이 가장 활발하다. 2015년부터는 서울 마을라디오 연합방송제가 따로 열릴 정도로 마을에서 '라디오'로 목소리를 내는 시민들이 많아지고 있다. 


  사실 '마을라디오'는 주파수를 가지고 송출하는 '라디오'는 아니다. 송출의 형태는 '팟캐스트'이지만 그렇기에 더 쉽고 더 빠르게 더 많은 곳에서 '마을라디오'를 할 수 있었다. 요즘 뜨고 있는 콘텐츠랩 비보의 대표, 연예인 송은이의 첫 시작도 팟캐스트였다. 여성 예능인을 방송국에서 불러주지 않자 직접 기획해서 <송은이 김숙의 비밀보장>이라는 팟캐스트 콘텐츠를 만들었다. 팟캐스트 순위 1위를 기록하자 SBS 러브FM 개편 때, '송은이 김숙의 언니네 라디오'프로그램을 맡게 됐다. 이는 대중미디어에서 여성 예능인의 목소리를 낼 수 없었을 때, 가만히 있지 않고 대안미디어를 통해 여성 예능인의 목소리를 냈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지금 그레잇, 스튜핏을 외치고 있는 김생민도 사실은 2017년 <송은이 김숙의 비밀보장>에 게스트로 출연한 것을 계기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비밀보장 고민상담 코너에서 김생민과 경제 상담을 진행하였고, 이후 청취자들의 좋은 반응을 얻게 되며 <김생민의 영수증>이 단독 팟캐스트로 분리 되었다. 팟캐스트 상위권에 랭크되면서 KBS에서 팟캐스트를 15분으로 편집하여 TV방영을 시작했고 정규 편성이 됐다. <김생민의 영수증>이 좋은 반응을 얻었던 것은 청취자의 생활을 잘 듣고, 잘 이해하려 했고, 청취자의 생활에 맞는 대안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김생민이 하는 모든 말은 '청취자'에 맞춰져 있었다. 




  라디오는 대화다. 대화는 '마주 대하여 이야기를 주고받음'이라고 사전에 나와 있다. 말하는 사람, 듣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말하는 사람이 듣는 사람이 되고, 듣는 사람이 말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대화이다. 잘 말하기와 잘 듣기가 공존했을 때, 좋은 라디오가 된다. 나는 무엇을 말하고 싶고, 누가 들어주길 바라는지를 알며 목소리를 내야 하는 순간에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 누군가가 나의 목소리를 대신 내주기를 기다리다 보면, 목소리를 제대로 내야 할 때를 지나칠 수 있다. 자신의 목소리는 자신이 낼 때, 가장 크게 멀리 퍼진다. 


  하지만 지금은 대화가 어려운 시대다. 말하는 사람은 많아졌지만 듣는 사람은 별로 없다. 또, 말하고 듣기 보다는 그저 보기가 편한 시대가 됐다. 시대가 변하면서 미디어 환경도 변했다. 공영방송보다 개인방송이 더 유명하기도 하고, 실시간으로 방송 시청률보다 다시보기 조회수가 더 중요해지고 있다. 10년 전에는 3사 드라마 총국에서 회당 방송시간을 72분 내로 (현재는 67분 축소 합의)합의하는 것이 관건이었다면 지금은 72초 웹드라마가 유행할 정도로 드라마도 2~3분 클립으로 올리는 등 짧은 영상콘텐츠에 점점 익숙해지고 있다. 이런 사실들을 감각하면서 '목소리 콘텐츠 – 공동체라디오, 마을라디오'를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수많은 미디어 콘텐츠가 쏟아지고 있는 지금. 아직도 공동체 라디오의 출력은 1W에서 멈춰있지만, MBC는 '다시 만난 좋은 친구'로 돌아왔고, KBS는 "공영방송 KBS는 건강한 민주주의를 형성해야 하며 장애인, 노약자, 여성 등 사회적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라고 말하며 정치와 자본으로부터 'KBS 독립선언'을 하겠다는 사장 후보가 나왔다. 서울 마을 곳곳에는 마을라디오가 울려 퍼지고 있으며, 더 많은 시민들이 마을라디오를 통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1인 미디어 시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채널은 많지만, 공동체의 소통과 이슈를 중심으로 하는 미디어는 많지 않다. 1인분의 목소리들을 모아야 할 때다. 목소리를 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나의 목소리에 반응하는 사람들과 공명할 때다. 팟캐스트로 퍼져나갔던 목소리들을 모아서 '주파수'에 실어야 한다. 주파수는 정부, 방송국, 기업에서 전유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의 목소리를 키울 수 있는 마이크이자 스피커이다. 마을 곳곳에서 주파수를 타고 목소리가 흐를 수 있도록 '주파수는 시민의 것'을 함께 공명하는 자리를 만들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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