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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105호 Me,Dear] 그럼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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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17. 8. 29.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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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105호 Me, dear 2017.9.11]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주현 (미디액트 마을공동체미디어지원실)

 

 


 얼마 전 극장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그럼에도 불구하고>(김영조 감독, 2015)를 다시 봤다. 작년 부산평화영화제에서 우연히 본 뒤에, 서울에서 친구들과 다시 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극장개봉을 했다. 사회적인 이슈를 직접적으로 다루는 영화는 아니라서 배급이 쉽지는 않겠다고 생각했는데, 운 좋게 배급사를 찾았다고 한다. 좋은 영화를 더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부산 지역 청년들이 힘을 모아 협동조합으로 만든 작은 배급사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김영조 감독, 2015) 포스터

 

 

 

 하루에 단 한번 영화가 상영되는 극장에는 나를 비롯한 관객 몇 명이 띄엄띄엄 앉아있었다. 다시 본 영화는 처음 봤을 때만큼의 놀라움은 덜 했지만, 여전히 울림을 주는 부분이 있었다. 영화는 부산 영도 지역에서 살고 있는 몇몇 인물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곧 문을 닫는 영도 조선소에서 용접공으로 일하는 노동자, 한국전쟁 때 가족을 잃고 그때부터 점을 보러다니다 영도다리 밑 점바치 골목에 자리를 잡은 점집 할머니, 어렸을 때 얻은 장애로 말을 잘 하지 못하는 해녀, 늙은 강아지를 업고 다니는 할머니. 영화는 각자의 사연을 가진, 평범하면서도 기구한 삶을 살고 있는 인물들을 통해서 좁게는 영도라는 지역, 넓게는 한국 사회의 변화를 은유해서 보여준다.

 

 나에게 왜 이 영화가 오래토록 남았는지에 대해 생각했다. 영화는 재개발이라는 어쩌면 독립다큐멘터리에서 흔하디흔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이것을 다루는 방식은 독특한 지점이 있다. 변화, 상실, 죽음의 그림자가 영화 내내 드리워져 있지만, 그럼에도 영화의 전반적인 정서는 결코 비장하지 않다. 때때로 쓸쓸함이나 먹먹함이 아주 잠깐 영화를 스칠 때도 있지만, 자신들의 앞날을 서로 점을 봐주며 죽을 날에 대해 거리낌 없이 얘기를 하고, 자신들이 출연한 화면을 보면서 밤새 깔깔거리며 “나중에 우리 죽고 사람들이 이거 보고 웃겠다” 농을 던지고, 부산시장에게 다가가 자신들이 왜 쫓겨나야하냐며 이야기를 들어달라는 주인공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과 삶 앞에서 초연하고 당당하다. 다큐멘터리 특히 사회적 약자를 다루는 이런 종류의 영화가 대상화의 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그 당당함을 사려 깊게 지켜주는 카메라가 좋았기 때문이다. 최근에 일련의 사건을 겪으면서 그 정서와 태도가 종종 떠올랐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 한 장면

 

 

 약 3년 간 영도 지역을 촬영한 영화는 마지막에 영도다리 개발이 처음 진행될 때의 모습과 현재의 모습을 비교해서 보여준다. 이번에 개봉한 버전은 지난번에 봤을 때와 달리 개발이 끝난 영도 지역의 모습이 한 컷 더 추가되었는데, 그 장면은 기존에 있던 마지막 장면에 더해서 개발 정책의 허망함을 더욱 크게 부각시킨다. 부산 지역에서 꾸준히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어 온 감독이 아니면 포착하기 힘들었을 장면을 보여준다.

 

 영화를 함께 본 친구들과 종로거리를 함께 걸으면서 수다를 떨다가 이 영화의 제목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제목이 너무 추상적이라 영화의 구체성에 대해서 아무 것도 말해주지 않는다는 얘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관용어는 논리적으로는 맞지 않는 상황에서의 의지를 드러내기 위해 흔히 사용한다. 나도 꽤 자주 사용하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제목을 지은 이유는 알 것 같다.


 영화가 개봉한지 3주 지났는데 아직 관객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상영해주는 곳이 몇 곳 없으니 어쩔 수 없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래도 힘들게 개봉한 만큼 더 많은 관객들이 봤으면 좋겠다. 나도 더 많은 친구들과 함께 이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홍보력과 기획력이 부족해서 별 도움이 되지 못해서 아쉽다. 요즈음 미디액트 15주년 행사를 준비하면서 다큐멘터리 아카이빙과 다큐멘터리 활용교육에 대한 발표를 준비하고 있는데, 해외에는 이런 사업이 공적영역에서 지원되고 있어서 훨씬 체계적이다. 원하는 주제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쉽게 찾을 수 있고, 그 다큐멘터리를 활용해서 학생들과 토론을 할 때의 가이드북도 있다. 한국에도 이런 활동과 시도가 다양하게 진행되면 좋겠다. 영화를 홍보하는 글을 쓰려고 했는데, 결국은 미디액트 15주년 행사를 홍보하는 글이 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좋으니 시간될 때 한번 보시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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