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ACT! 104호 Me,Dear] 『독립영화』 읽기 하반기 세미나를 기다리며

전체 기사보기/Me,Dear

by acteditor 2017. 7. 4. 13:50

본문

[ACT! 104호 Me,Dear 2017.07.14]

 

『독립영화』 읽기 하반기 세미나를 기다리며

 

권은혜 (ACT! 편집위원회)


 

 (사진설명)  『독립영화』 (한국독립영화협회)



 2년 전, 한국독립영화협회(이하, 한독협) 비평분과의 유리 선배가 유학을 떠났다. 떠나기 전 선배는 자신에게 한독협에서 발행된 『독립영화』 전 권이 있는데, 가질 생각이 있느냐고 물어왔다. 책장에 꽂아두는 장식용 책 수집에 취미가 있는 나는 책장 사정은 고려하지 않은 채 흔쾌히 받겠다고 했다. 택배가 도착했다. 이미 꽉 차 있는 책장을 비우고 비워, 한 칸을 통째로 『독립영화』에 내주고 나자, 마치 세 권짜리 장편 소설을 충동구매한 후 꽂을 자리를 찾는 마냥 후회되었다. 내가 저걸 읽을까. 물론, 글을 쓸 일이 있을 때 자료로 활용하기 위함이라는 나름의 근거는 있었다. 하지만 실상 『독립영화』는 온라인 학술지 데이터베이스에서, 한독협 홈페이지에서 PDF 파일로 다운받아 볼 수 있다. 그렇게 『독립영화』 전 권은 먼지와 내가 키우는 고양이들의 털들에 묻혀 2년의 시간동안 책장 한켠에 잠들어 있었다.


 2016년 하반기, 한독협 비평분과에서는 한국 독립영화의 역사를 기술한 단행본, 학위논문을 읽는 세미나를 했다. 제안은 내가 했지만, 영화제에서 일하고 있던 상황이라 세미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했다. 이에 대한 아쉬움, 그리고 슬쩍슬쩍 눈에 밟히는 『독립영화』가 꽂혀 있는 책장의 모습이 『독립영화』를 읽는 세미나를 시작하게 했다. 어느 정도 의무와 책임감에 시작한 세미나이긴 했지만 은근한 기대가 있었다. 갖추어야 하는 형식에 맞게 쓰인 단행본이나 논문보다는 재미있고, 생생할 것이라는. 올겨울, 『독립영화』 전 권이 아카이브 되어 있는 한독협 사무실에서 비평분과의 진경씨, 상민씨와 두 차례의 사전모임을 가지며 커리큘럼을 짰다. 3월 15일, 1999년에 나온 창간호를 시작으로 하여 6월 21일, 2004년에 나온 23호를 읽는 것으로 세미나가 끝이 났다. 올 초에 나온 『독립영화』가 46호임을 생각하면 딱 절반을 읽은 셈이다. 


 세미나는 한독협 외부 사람들에게도 오픈하여 진행되었다. 내게는 기대가 되는 측면이 걱정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한국 독립영화의 성격과 역사적 흐름에 대한 정보가 없는 사람이 올 경우, 이 글들이 얼마나 이해가 될까. 단행본이나 논문들과는 달리 당시의 쟁점과 현안이 담긴 1차 자료적 성격을 지닌 이 글들을, 느슨하지만 분명한 공동체적 감각을 전제하고 있는 이 글들을 따라갈 수 있을까. 세미나를 기획한 입장에서 이러한 지점들을 충분히 설명해 낼 수 있을지, 부담감이 밀려왔다. 


 직장인에서부터 대학생, 영화 관련 일을 하시는 분들에 이르기까지 세미나에 참여한 사람들은 다양했다. 하지만 걱정과는 달리 세미나에 참여한 분들은 각자 접속할 수 있는 부분과 나름의 방식을 통하여 1999년에서 2004년 사이의 독립영화의 흐름을 이해했고 재미있어했다. 또한, 액트편집위원회에서 활동 중이기도 한 상민 씨는 ‘와이파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당시 독립영화의 현안들과 작품, 감독들에 대해 여러 지식과 정보를 공유해주었다. 진경 씨 역시, 2017년 현재의 독립영화가 당면한 현실과 당시를 비교하는 문제 제기를 많이 해주어 논의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주었다.  


 세미나가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독립영화』의 텍스트들이 가지고 있는 힘이었다. 지금은 만나보기 힘든 이효인, 이명인 영화평론가가 독립영화 전반에 관해 쓴 애정과 비판이 공존하는 글, 현재 여성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 계신 김선아 선생님의 한국 독립다큐멘터리에 대한 이지적이면서도 날카로운 시선, 평론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물론 제작자들에게도 여러 자극을 주고 계신 유운성 평론가의 촌철살인이 빛나는 글, 지금은 수원영상미디어센터에 계신 김노경 당시 시네마테크협의회 사무국장님의 고전영화와 독립영화의 가깝고도 먼 관계에 대한 고민,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에서 물러난 후 독립영화를 활발히 제작 중이신 조영각 PD님의 장편 독립영화 제작에 대한 비전, 인디스토리의 제작이사로 계신 김화범 PD님이 독립영화 정책에 관해 쓰신 글, 현재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사무국장으로 계신 원승환 당시 한독협 사무국장님이 쓰신 독립영화계가 당면한 과제들에 대한 분석과 나아가야 할 향방을 제시한 글, 예나 지금이나 섬세하고 유머러스하면서도 뼈가 있는 이송희일 감독님의 글, 가히 두 별의 대화라고 할 만한, 한국 독립영화의 역사와 지금에 대해 그 어떤 글보다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 정성일 평론가와 김명준 미디액트 소장님의 대담. 이제는 다른 위치에서, 여전히 글을 쓰거나 영화를 만들고, 영화제를 꾸려가는 선배들이 남긴 당시의 고민과 필력은 지금도 유효했으며 자극을 주었다. 


 세미나를 하며 여러 영화를 새로 보거나 다시 보게 되었다. 글을 읽고 작품을 다시 본 것은 영화에 대해, 비평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홍형숙 감독의 <경계도시>(2002)를 둘러싼 극단적인 평과 다음 호로까지 이어진 논쟁들, 김동원 감독의 <송환>(2003)이 이뤄낸 성취와 이에 대한 많은 이들의 반가운 시선. 말로만 들었던 남기웅 감독의 <대학로에서 매춘하다가 토막 살해당한 여고생 아직 대학로에 있다>(2000)와 류승완 감독의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2000)는 새로 보게 된 작품이다. 전자의 경우 세기말적 분위기와 장르의 혼합, 당시 뜨거운 이슈였던 디지털 영화 제작의 가능성을 다부지게 실험한 작품이었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의 경우, 이후 류승완 감독의 영화들의 원형이라는 확실한 느낌이 들었다. 무엇보다, 이 두 영화의 장점은 재미있다는 것이었다. 한국 독립영화의 역사를 다루는 글에서 종종 등장했던, 혜성처럼 나타나 두 편의 걸작을 남기고 사라진 배용균 감독의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1989), <검으나 땅에 희나 백성>(1997)은 언젠가 꼭 보고 싶은 작품 리스트에 올랐다. 


 『독립영화』 읽기 세미나의 또 다른 성과라고 한다면, 세미나를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한독협 비평분과에 두 명의 신입회원이 생겼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상민 씨와 진경 씨가 신입회원으로 들어온 지 거의 일 년 만에 들어온 신입회원이었다. 한 분은 이미 영화평을 쓰는 분이고, 한 분은 독립 다큐멘터리에 꾸준한 관심을 가져오신 분이라, 두 신입회원 분들의 앞으로의 활동 역시 기대가 된다. 


 “그래서, 독립영화가 뭘까?” 세미나 마지막 날 뒤풀이 자리에서 나온 질문이다. 세미나 하는 내내 글 속에서 반복된 선배들의 질문, 그러나 정작 세미나를 하는 우리의 입에서는 나오지 않았던 질문. 읽은 글들로부터 몇몇 대답들이 떠올랐다. “이제는 ‘독립’보다는 ‘영화’에 방점이 찍힌 독립영화”(이효인), “독립영화에 대한 심정적 동의나 개인적 주장 말고, 설득력 있는 정의나 합의가 존재하는가?”(최소원), “독립영화라는 질문이 그토록 중요한가. 영역을 확장하려는 노력보다 영역을 구분하려는 노력으로 보인다.”(김지현), “한국의 독립영화는 개념적이고 정치적인 입장이다. 한국 독립영화는 마치 재벌이라는 말이 그러하듯, 영어로는 번역이 불가능 하다.”(정성일), “독립영화의 대상은 역사적으로 영화라는 이름을 부여받은 것이지 원래 ‘영화’로 제한해서 시작한 것이 아니다.”(김명준), “더 이상 독립영화가 무엇이냐, 하는 질문을 던질 필요는 없다. 그저 서울독립영화제가 선택한 영화를 말하는 것이다, 라고 답하면 된다.”(유운성).


 영화는 그냥 영화지, “독립영화”라는 질문은 너무 낡은 질문이 아닐까. 지금의 독립영화는 지난 시대의 유령 혹은 인정 투쟁과 정치 투쟁의 장이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개념적인 것이라기보다는 하나의 범주 혹은 영역이지 않을까. 던져봐야 답도 없고 머리만 아플 뿐이므로, 제대로 던져보지 않았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던 질문. 이 질문이 세미나가 끝나던 날, 우리 중 누군가의 입에서 나왔고 어느새 나는 그간 읽은 선배들의 이야기를 인용하여 독립영화에 대한 내 생각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다른 이들도 그러했다. 세미나가 끝나면 늘 가던 맥줏집이었는데, 이 날의 술자리는 지하철이 끊기고 나서도 한참 동안 계속되었다.  □ 




[필자소개] 권은혜 (ACT! 편집위원회)



마음에 맞는 영화를 만나면 오랫동안 그 영화를 붙들고 있는다.

역사 기록으로서의 다큐멘터리, 실험적인 다큐멘터리 작업들에 관심이 많다. 

깊어지고 넓어져 넘치는 사람이 되고 싶다. 

ACT!와 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에서 활동 중.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