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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18호 이슈] 문화다양성 협약: 동향과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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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18호 / 2005년 2월 28일 

 

 

문화다양성 운동의 이중성 : 국내와 국제적 쟁점 

 

  문화다양성 협약: 동향과 전망
   김 희 정 (ACT!  편집위원 )  
2월 28일. 전 세계 영화인들은 아마 한 곳을 주목하고 있을지 모른다. 바로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77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렸기 때문이다. 비단 영화계에 종사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할리우드가 생산해낸 문화 컨텐츠는 이제 전 세계인의 눈요깃거리와 취향으로 자리잡았고, 우리는 이미 방대한 블록버스터와 화려한 드레스의 배우들에게 익숙해진지 오래다. 그리하여 전 세계 어디에서고 할리우드 영화를 관람하는 것은 낯선 일이 아니다. 하지만 세계 185개 국 중 88개 나라는 아직 자기 나라 영화라는 것을 만들어본 적이 없고, 문화산업이라고 불리우는 영역은 정작 단 5개의 강대국이 독식하고 있는 것이 이 세계의 현실이다. 이제 무역협상 테이블에서 '문화'를 하나의 예외 규정으로 호소하기에 문화산업은 너무나 세계화되었고, 미국의 회유는 나날이 공세적으로 변하고 있다. 그리하여 그 흐름 속에 몸을 맡기다보면 화려한 문화의 스펙트럼은 어느 새 빛을 바랠 수밖에 없다.
 
1. 유네스코의 문화 다양성 협약
유네스코와 각국 정부가 세계화에 맞서 자국의 문화를 보호하고 문화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 추진하고 있는 문화 다양성 협약은 그런 의미에서 미국을 비롯한 일부 강대국들이 주도하는 문화 제국주의에 제동을 걸고, 외국 지배에 대항해 그들 자신의 문화와 언어를 보호할 수 있도록 각국에 법적 권리를 보장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그것은 문화 독점을 통한 획일화를 극복하고, 좀더 다양한 인류의 문화가 발전할 수 있도록 개별 국가의 문화 정책을 보장해주기 위한 조치이며, 나아가 문화를 삶의 조건과 방식의 문제로 볼 때, 다양한 삶의 방식이 존중되는 인권의 보장을 위한 조치이다.
문화다양성 협약이 중요하게 평가받을 지점은 세계 각국 정부와 문화인, NGO가 서로 협력하여 시장주의에 대처해나갈 대안을 강구해냈다는 데 있다. 이는 초기에 이 운동이 시작된 방식에서도 잘 드러난다. 1998년 OECD 가입국들이 다자간투자협정(MAI) 체결을 시도하면서 당시 유럽의 문화시장을 개방하려 했던 미국의 공세에 맞서 일어났던 유럽의 문화예술계는 이 사건을 계기로 '문화다양성' 확대의 필요성을 전파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이후 다양한 국제연대, INCP(세계문화부장관회의), INCD(문화다양성을 위한 국제 네트워크), CCD(문화다양성을 위한 연대회의) 등이 꾸려지게 되었고, 국제적 차원의 운동을 벌여나가면서 2003년, 유네스코를 통한 협약 체결 추진을 이루어냈다.
 
2. 협약 체결을 위한 준비: 2차 정부간 회의 개최
2004년에 마련된 협약 초안을 바탕으로 2004년 9월 1차 정부간 회의를 거친 유네스코는 총 3차에 걸친 정부간 회의를 통해 서로간의 이견을 좁히고 정제된 협약을 만들어낼 예정이다. 지난 2월 11일 막을 내린 제2차 정부간 회의에서도 이미 제출한 의견서를 토대로 협약 내용 수정에 관한 논의를 거쳤다. 1차 회담에서는 대다수가 국가가 협약의 기본 정신에 관해서는 합의를 하면서도 정작 각 조항의 명칭이나 구체적인 내용, 적용 범위에 있어서는 각국의 철학과 이해 관계의 차이로 의견이 분분하여 생산적인 논의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따라서 이번 2차 정부간 회의는 지난하게 진행되었던 1차 회의의 부진을 만회하고, 이 협약이 반드시 올 10월에 채택될 수 있도록(그러기 위해서는 3월까지 대략의 안이 수렴되어야 한다) 당사국들간에 좀더 가시적인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초점을 맞춰 진행되었다. 아직 2차 전문가 회의에 관한 유네스코의 공식 입장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이번 회의에서도 지난 회의에 이은 논의가 계속 되었다.

먼저 미국의 지연 전략은 이번에도 계속되었다. 미국은 회의 첫날부터 협약에 포함된 '보호(Protect)' 라는 용어 사용에 문제제기를 하며, 보호 무역주의를 부추길 우려가 있으므로 표기를 삭제할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프랑스와 캐나다를 비롯한 다수의 국가는 이것이 협약의 기본 목적에 부합하는 것으로 그 중요성이 인정된다는 데 동의하면서 이에 반대했다. 또한 '문화 상품과 서비스(cultural goods and services)'의 정의에 관한 논란도 1차 회의에서 더 진전된 사항이 없었다. 특히 이번 회의의 쟁점이 될 것으로 예상되었던 19조(다른 협약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1차 회의에 이어 계속해서 난관에 부딪히면서 미국을 비롯한 당사국간의 대립이 계속되었다. 각국은 19조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데는 합의를 이루었지만 그 세부방침에 대해서는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미국을 비롯한 일본, 요르단, 에티오피아 등은 옵션 B(이 협약은 어떤 조항도 기존의 국제 협약에 따른 당사국의 권리와 의무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를 지지했으며, 대다수의 진보적인 NGO기구를 비롯하여 브라질과 베트남 등은 1번 조항을 삭제한 옵션 A(이 협약의 조항이 문화적 다양성을 심각하게 위협하지 않는 한 기존 협약에서 파생되는 당사국 권리와 의무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를 지지했다. 그 밖에 남아프리카, 베네주엘라 페루 등은 옵션 A 전체를 지지했으며,  일부국가에서는 제 3의 안을 주장하기도 했다. 어떤 방향으로 결론이 나든 이 조항은 향후 이 협약의 위상을 가늠하는 중요한 잣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2주간의 토론 결과를 모두 포함하는 통합된 초안 텍스트는 3월 중에 회원국과 정부간 기구, 비정부기구에 배포될 것이며, 이 새로운 초안을 바탕으로 5월 23일부터 6월 4일까지 개최될 3차 정부간 회의에서 다시 논의되어, 유네스코 총회에 제출할 최종안을 생산해낼 것이다.
 
3. 계속되는 미국의 개입
기술한대로 '문화다양성 협약' 제정을 지연 혹은 봉쇄하기 위해 유네스코에 재가입한 미국의 전략은 이번 2차 회의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이미 1차 회의 직후 미국은 협약에서 중요하게 채택된 내용을 수정한 안을 강력하게 제안한 바 있으며, 협약의 범위와 구체적인 내용에 이견이 있거나 입장을 정하지 못한 국가들을 회유하여 같이 행동하기를 권고해왔다. 이러한 전략은 1차 회의 이후에 문화 '무역'을 세계무역기구가 아닌 유네스코가 관여하는 것에 대해 강하게 문제제기를 했던 미국이 방향을 선회해, 1차적으로 대다수의 국가가 협약 내용에 동의하고 있는 만큼 근본적인 반대보다는 방해를 통한 대책 마련을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대다수가 협약을 동의하면서도 각국의 입장차가 분분하고, 자유 시장주의의 선봉에 있는 미국은 물론, 세계 만화시장의 절대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일본, 그리고 발리우드 필름을 전세계에 프로모션 중인 인도 등 미국을 지지하는 세력의 영향력도 만만치 않아 제대로된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 협약이 채택될지에 대해서는 좀더 두고봐야 할 상황이다. 또한 각국이 이 협약을 준비하는 동안 거쳐야 할 WTO 협상에서의 문화 분야 개방 여부도, 미국이 계속해서 다자간 협상이나 양자간 협상을 통해 광범위한 개방 압력을 넣을 것으로 보여 우려되는 상황이다. 따라서 문화 다양성이 합법적인 협약의 효력을 발휘하여 정부가 자유무역 경쟁에 대항한 각국의 문화를 보호할 수 있는, 그리고 필요하다면 보호주의적 접근을 채택할 수도 있는 하나의 규제조치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프랑스와 캐나다를 주축으로 한 국가들이 영향력을 발휘하고 좀더 조직적으로 미국의 공세에 대응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4. 세계화 시대, 문화 다양성 지키기
20세기에 커뮤니케이션과 통신 기술의 진보는 우리로 하여금 지리적 경계를 극복하고 삶의 방식에 변혁을 가져왔다. 세계는 지금 하나의 범주로 연결되어 재화뿐만 아니라 다양한 서비스, 정보, 사상의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자본이 주도한 세계화는 이러한 비물질적인 요소의 쌍방향 순환보다 일방적인 전달과 지배를 야기하고 있다. 물론 그 바탕에는 초국적 자본과 미국의 거대 이데올로기가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각국 정부와 비정부 기구, 민간단체가 조직적으로 대안을 찾고 있는 문화다양성 협약의 체결은 분명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다. 따라서 우선은 미국과 세계무역기구의 공세를 넘어 좀더 정제된 협약을 성공적으로 체결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하지만 그것이 국가 대 국가의 '문화' '산업' 차원이라는 데서 다시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한 국가의 테두리를 하나의 문화로 포괄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문화를 산업의 맥락으로 환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궁극적으로는 국가의 경계를 허물고 산업의 차원을 뛰어넘는 진정한 의미의 다양한 '공동체'의 '문화' 다양성을 살려내기 위해 연대할 수 있는 길이 필요할 것이다. 
 참고 사이트 및 문헌 www.mediatrademonitor.org
www.unesco.org
www.screenquata.org
<노동자의 힘> 41호, "문화협약과 문화다양성", 최영재<네트워커>, "문화는 교역이 아니라 교류의 대상입니다", 오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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