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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19호 공동체라디오] 우리는 라디오 ‘운동’을 실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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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19호 / 2005년 3월 22일 




우리는 라디오 ‘운동’을 실천한다!





박 채 은( 미디액트 선임정책연구원 )
  방송위원회와 정보통신부가 ‘공동체라디오’ 허가 문제로 한판 힘겨루기를 하고 있을 때쯤, 지역에서 공동체라디오를 준비하는 사람들은 애를 태우면서 빨리 저 싸움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조급하고 답답한 마음이 드는 한편으로, “아니 공동체라디오 방송을 두고 방송위와 정통부가 저렇게 논의하고 토론하게 될 날이 올 줄이야” 하며 내심 흐뭇하고 뿌듯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상상 속에만 있었고, 먼 나라 얘기 같았던 공동체 라디오! 이상이 실제가 되었을 때 오는 혼돈은 그렇게 하루하루 라디오 방송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교차해 간다.
  1. 라디오 前史
 라듸오-현대과학 문명의 극치-지금 우리의 귀에는 세계의 움지김! 지구가 도라가는 소리-정치가의 가라구리, 상인의 사기! 부르주아의 배불리는 소리! 노동자의 노호하는-아수성치는 소리가 들니이것마는 들을 수 잇것마는 7,80원짜리 수화기가 없어서 못듣고 있다. …라디오는 사실상 신문을 정복하고 있다. 그것은 재언도 소용없는 명확한 사실이다. 그러나 돈없는 동무여! …낮에는 신문이고 밤에는 유성기인 라디오…우리의 생활과는 아직도 멀다…문명이 운다. 설어워한다. 라듸오가 운다. 조선의 라듸오! 그것은 우리의 것이 아니다. 조선의 라듸오-문명-그것은 정복자의 전유물이다.…잇는 사람의 작난거리가 되고 말아버린 문명의 산물  
                             - 승일(1926), 라듸오·스폿트·키네마, <별건곤>, 1월호


라디오가 처음 들어왔던 1920년대... 우리 나라의 첫 라디오 방송국은 1926년 11월 설립된 경성방송국이었다. 당시 라디오는 대체로 일본어 해독이 가능하고, 경제적으로 상류층에 속하는 계층이 소유할 수 있었던 고가의 최첨단 뉴미디어였다.
그 시대를 살아가던 한 지식인은 한탄한다. 라디오 방송국을 한국인이 주도하여 설립하지 못하는 엄혹한 정치 현실과 값비싼 수신기를 구입할 수 없었던 어려운 경제 사정...식민지 조선의 현실이었다. 이러한 상황이 해방이 되었다고 변하지는 않았다. 일본인들은 떠났지만, 그 자리를 대신 채웠던 것은 국가권력과 자본이었다.


한 나라의 방송 구조가 정착하는 데에는 사회적, 역사적 맥락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 나라의 경우, 방송이라는 근대적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이 도입되고 정착되는 과정이 불행하게도 일제 식민지 시기, 미군정기, 독재 정권 지배기였다. 이러한 역사적 조건 아래서 우리 나라의 방송 구조는 끊임없이 왜곡되어왔다.
방송이 국가 소유로 여겨지고 보통 사람들이 접근할 수 없는 전문적인 분야로 여겨지면서 라디오는 일방향적인 방송으로 남게 되었다. 또한 텔레비전 방송 도입 이후 라디오가 TV의 부수적인 요소로 전락하고 정치적 필요성에 따라 방송미디어를 중앙에서 집중통제 해왔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공동체 라디오 운동이 전혀 활성화되지 않았다.
  2. ‘시범방송’. 그것은 첫걸음이 아니라 운동의 결실이다.
 그런데 2000년 변화가 찾아왔다.
이때에 라디오를 참여적인 커뮤니케이션 매체로 활용하려는 시도가 처음으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시도는 2000년 통과된 통합방송법에서 시민들의 미디어 액세스 권리를 보장한 법안이 제도화되면서 가시화되었다. 우리 나라의 경우 1980년대 중반 이후로 TV 신문 등 매체를 감시하는 모니터 운동이 활발하였으나 매체를 직접 활용해서 수용자의 권리를 확장시키는 데에까지 나아가지는 못하였다. 그런데 1990년대 중반 국민주 방송 운동을 통해 시민들이 직접 소유한 방송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이 시기를 전후해서 외국의 다양한 미디어 운동 사례들이 소개되었고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전 세계의 활발한 공동체 라디오 운동도 국내에 소개되었다. 미디어 운동의 역사는 비록 짧지만, 세계 어디에서도 찾기 어려운 다양한 실험들이 지역에서, 현장에서 이루어졌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2000년부터 2002년까지 계속되어온 마산의 라디오 액세스 프로그램이다. 마산의 라디오 액세스 사례는 라디오를 활용한 최초의 시도였을 뿐만이 아니라 100여 편의 작품이 제작되면서 새로운 형식이 실험되고 주류 미디어에서 다뤄지지 않았던 내용들이 시민들의 입을 통해 방송되었다. 참여했던 사람들에게는 라디오라는 매체의 중요성을 인식시키게 해준 계기가 되었다. 전혀 기반이 없었던 마산에서 라디오 액세스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면서 공동체 라디오 설립 또한 불가능한 일이 아님을 보여 주었다.


2004년 11월 ‘방송위, 공동체라디오 시범방송 사업자 8곳 선정’


“라디오 방송이 도입 된지 80여년 만에 최초로...” 운운하는 것이 너무 거창할 지도 모르지만, 공동체라디오 시범방송은 한국의 미디어 史에서 획기적인 사건임엔 틀림없다. 그러나 아직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중요성을 잘 알지 못한다. 정부기관의 관료들은 특히 모른다. 그들에게 공동체라디오 방송국은 주파수 배정해야 되고, 허가 내줘야 하는 귀찮은 존재일 뿐이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었다. “당신들이 전파에 대해서 뭘 알아?”(정통부와의 면담자리에서 사무관이 내뱉은 말) 하는 권위적이고 거만한 태도에 대항해서 “그래요. 모릅니다. 당신들이 전파를 독점해 왔으니 모르는 것이 당연하지요. 전파를 사용할 수 있는 권리가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이제 이렇게 되받아칠 때가 온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견인한 힘은 무엇이었나? 단지 방송위원회와 정보통신부의 소출력라디오 활성화 합의에 따른 결과였나? 정책의 변화를 추동해 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민주적 매체에 대한 지속적인 요구와 그러한 미디어를 만들어 나가고자 하는 대중적 운동이 존재했기 때문이었고, 그러한 요구와 실천을 바탕으로 정책결정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다양한 실천과 노력들이 쌓여 공동체라디오방송이 출발하게 된 만큼, 그것을 준비하는 시범방송 사업자들의 어깨는 그만큼 무거울 수밖에 없다. 공동체라디오 시범방송사업자로 선정 된 8개 지역에서는 부지런히 방송국 만드는 작업들을 해왔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이기 때문에, 그리고 제도적으로도 미비한 부분이 많기 때문에, 설립 과정은 쉽지 않았고, 지금도 가야할 길은 멀다.
  3. 공동체라디오 제도화, 아래로부터의 힘으로 만들자.
 공동체라디오 시범방송은 제도적 차원에서나 운동적 차원에서나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공영, 민영방송이 아닌 공동체라디오라는 새로운 제3의 방송영역의 출현이 제도적 차원에서의 새로운 국면을 마련하였다면, 다른 한편으로 대중들의 참여로 이루어지는 라디오 ‘운동’이 촉발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방송위원회는 시범방송에 대한 결과 평가를 통해 공동체라디오 방송 법제화를 추진하려고 한다. 시범방송 자체가 제도화를 위한 사전 준비 단계로 고려되었기 때문에 시범방송의 결과가 이후의 제도화 과정에 핵심적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지점은 1년(더 짧게는 6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내에 시범방송이 평가된다는 사실이다. 그 기간 내에 향후 수십 년간 영향을 미칠 법, 제도적 내용들이 결정될 것이다. 그러나 시범방송에 대한 세부정책이 부재한 상태에서 모든 것을 시범방송 이후에 결정하겠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위험을 내포하게 된다. 이번에 발생한 방송위와 정통부 사이의 허가논쟁(자세한 내용은 ‘성명서’를 참조)은 그러한 우려를 입증해 주었다. 그러나, 이번 허가논쟁을 지켜보면서 보다 분명해진 것은 제도화되기 이전이더라도 개선해야 할 부분들은 계속적으로 요구해서 바꿔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각 공동체방송국들은 시범방송 기간에 다양한 공동체 구성원들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개발하고 제작하는 것에 온힘을 기울여야겠지만, 그러한 프로그램들이 제약 없이 활발하게 제작될 수 있게 하는 조건을 만드는 것에도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것은 공동체라디오가 ‘방송’만으로 그치지 않고 ‘운동’이어야 하는 이유이다. 방송을 위한 방송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한 방송, 사회적으로 소외받는 사람들의 커뮤니케이션 창구로서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전문 라디오 프로듀서의 존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 활동가가 더 필요한 것과 같은 이치이다.


공동체 라디오 방송은 방송의 민주적 토양을 제공할 수 있는 매우 귀중한 기회이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광범위한 공중의 참여에 근거한다. 이것은 정치대표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공중의 직접적인 참여를 통한 대중적 운동을 통해서 가능하다. 그리고 이것은 레이몬드 윌리엄스도 언급했던 탈자본화, 탈전문화, 탈제도화라는 민주적 커뮤니케이션 체계를 위한 세 가지 원칙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탈자본화 : 거대자본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살아남을 수 있는 조건들을 만들어 가야 한다. 상업광고를 하지 않는 비영리 방송으로서의 원칙을 변함없이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며,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도 자본의 논리에 포섭되지 않는 영역을 구축해 나갈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을 고안해야 한다. 공동체라디오 방송의 운영목적에 비추어 공적지원을 확대하라고 요구하는 한편으로, 공적지원이 모두 중단되더라도 살아남을 수 있는 비책(?)을 준비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것이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공동체로부터 신뢰를 얻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탈전문화 : 라디오는 타 매체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숙련도를 필요로 하지 않는 방송장비와 제작기술로 인해 일반 시민들의 접근이 용이하다. 이러한 라디오의 장점을 충분히 살려야 한다. 어린아이부터 나이 많은 어르신, 장애인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제작에 참여할 수 있도록 쉽게 씌여진 제작매뉴얼을 만드는 일부터 시작할 수 있다. 그리고 특정한 전문가의 의견에 의해 주도되는 위계적 구조의 제작방식이 아닌 수평적인 제작의 방식을 개발하고 확산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탈제도화 : 공동체라디오 제도화를 중요한 의제로 논의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탈제도화를 원칙으로 얘기하는 것이 모순적일 수 있겠다. 그러나 여기서 탈제도화의 의미는 이렇다. 공동체 라디오는 현재의 미디어 제도 및 이와 유사한 체계와는 다른 환경에서 비로소 활발하게 작동될 수 있다는 말이다. 제도권에 포섭되지 않는 영역, 즉 사회를 변화시키는 운동의 영역에서 작동될 때, 공동체라디오의 진가가 발휘될 수 있다. 지난 세기동안 수많은 해적방송들의 출현과 합법화된 이후에도 제도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수많은 불법적(?) 시도들이 공동체 라디오의 탈제도적 성격을 여실히 보여준다. 제도화 이전 단계에서의 공동체라디오실험이 거의 전무한 우리 나라의 경우, 제도화를 통해 안정적인 방송형태로 정착될 수 있는 가능성은 높아졌지만, 달리 얘기하면 제도 안에서의 제한된 실험들만 할 수 있는 한계도  함께 가지고 있는 셈이 된다.


미국 등 다른 나라에서 볼 수 있듯이 공동체 라디오 방송이 합법화 되었던 것은 위로부터의 변화가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지속적인 요구와 투쟁에 의해서였다. 그리고 이러한 풀뿌리 기반은 공동체 라디오 운동의 발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필수적인 요소이다. 공동체 라디오 방송을 제도화 한다고 하여도 실제로 공동체 라디오 방송이 활성화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공동체 라디오 방송국을 설립하는 움직임에서부터 올바른 정책 수립을 위한 지속적인 개입-공동체 라디오를 알리는 활동, 홍보 등-이 필요하며, 지역 사회 단체가 연합하여 커뮤니케이션 권리를 보장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 이제 8개 공동체라디오 시범사업자 만이 아니라, 다른 여러 지역, 공동체에서도 소출력라디오 전파를 쏘아 올릴 준비를 천천히 해나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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