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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20호 공동체라디오] 영주 공동체라디오 준비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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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20호 / 2005년 4월 29일 

 

 

영주 공동체라디오 준비 상황


 이 성 순( 영주FM방송 본부장 lssoon-3313@hanmail.net )


 서둘러 마련한 시범사업 계획서.

전화 한마디에  승용차를 몰고 단숨에 영주로 달려 온 것이 정확히 2004년 10월9일이었다. 영주에 라디오 방송을 유치하고 싶은데 도와달라는 동양대학교 이도선 부총장님의 전화를 받은 뒤였다. 침 집에서 쉬고 있을 때라 곧장 달려와서 보니 사정이 너무나 급박했다. 소출력 라디오 방송 시범사업자 공모의 마감시한이  겨우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날로 총장실 옆에 방 하나를 비워 전화와 컴퓨터를 가설하는 한편 몇몇 교수들과 교직원들을 동원해 임시 추진 팀을 구성했다. 그리고 인터넷을 뒤져 구체적인 공모내용을 숙지하고 소출력 라디오 방송에 관한 각종 자료를 모우다 보나  하루해가 지나갔다. 가장 시급한 것은 시범사업의 주체가 될 비영리 법인을 만드는 일인데 몇몇 사회단체를 찾아 소출력 라디오에 대해 설명하고 출연을  설득하면서 돌아다니다보니 또 하루해가 지나갔다.
마감 닷새를 앞두고 이렇게 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고 업무를 분담해 한쪽에서는 신청서를 작성하고 다른 한쪽에선 컨소시엄 구성에 필요한 사회단체들을 설득하기로 했다. 신청서 작성은 교수들의 도움을 받아 겨우 마감시간을 맞출 수 있었으나, 법인설립은 시간 내 맞출 수가 없어 일부 사회단체 대표들의 개인 승낙만 받아 서류에 첨부해서 제출했다.

이상과 현실의 차이.


시범사업 계획서를 접수시킨 뒤에는 시간적인 여유가 생겨나 시범사업에 대한 설명회는 자신 있게 마쳤다. 그리고 방송위원회의 현장 실사 팀이 방문했을 때도 영주FM의 청사진을 자랑삼아 설명하기도 했다.그러나 문제는 시범사업체로 승인된  이후에 일어났다. 가장 적극적이던 영주시가 시의회의 반대로 출연이 어렵게 되는 등 출연을 약속한 단체들이 하나 둘 자체의 사정으로 난색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부터 화려한 꿈을 꾸어온 영주 FM은 위기를 맞았다. 필요한 자금의 2-30% 밖에 확보할 수 없다는 결론이었다. 그래서 영주시내에 새로 사옥을 짓는 일도, 7-8명의 사원을 채용하는 일도, 그리고 하루 24시간의 방송계획도 모두가 물거품이 되었다. 맥이 풀리고 의지마저 꺾인 꼴이 되었다. 그동안 대학에서 마련해 준 Guest Room에서 기숙하며 방송사 유치를 주도해온 나는 나 스스로가 도움은커녕 오히려 짐이 될 것 같아 이후의 모든 것을 대학 판단에 맡기고 집으로 되돌아가 버렸다. 지금 생각하니 정말 무책임한 행동이었음을 자책하지 않을 수 없다.

다시 시작한 영주 FM 방송


다시 방송사 창업에 뛰어든 것은 그로부터 석 달이나 지나서 이다. 동양대학 이재철 기획홍보 실장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다시 동양대학을 찾았을 때는 대학본관 3층에 한 칸을 빌어 스튜디오를 마련하고 방송위원회로부터 지원 받은 돈으로 장비수주까지 마무리한 상태였다.

추진상황은 예상한 바였지만 어떻게 하던 우리 손으로 영주에 방송사를 세운다는 의지만은 예상 밖이었다. 인구 8만 도시에 방송사는 물론이고 변변한 문화시설 하나 없는 영주지역에 이 기회마저 놓칠 수 없다는 추진위의 의지가 눈에 보이는 듯 했다. 바로 지역주민의 소망이며 고향에 대한 애정이었으리라.그도 그를 것이 2-30년 전만 하더라도 안동보다 앞서갔던 영주가 지금은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낙후되어 지역주민들은 문화적으로 소외감을 느끼고 있던 터였다. 바로 지역민의 열의가 영주 FM이 있어야 할 존재이유라고 생각하고  다시 한 번 뛰어보기로 다짐하게 되었다.

뜻이 있으면 길은 있다.
 

최근까지 30여년을 방송사에서 생활해 온 나이지만 할수록 어려운 게 방송인 것 같다. 더군다나 방송 가청지역 밖에 연주소를 마련하는 일이라든지, 정전 등 예기치 않은 방송 사고에 대비해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예비 장비도 하나 없이, 또 직원이 아닌 지역주민이나 자원봉사원에 의해 운영되는 방송이라는 것은 상상조차 해보지 못했던 일이다. 연주소가 마련된 동양대학은 영주시내에서 10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풍기읍내에 위치해 있어 이곳은 거리상 라디오로 방송을 들을 수 없는 곳이다. 그러나 요즘은  “뜻이 곳에선 길이 있다는 말”을 실감한다. 또 “생각을 달리하고 마음을 바꾸면 불가능도 가능으로 바꿀 수 있다”는 진실을 체득하게 되었다.  주어진 여건을 최대로 활용하자는 사고의 전환으로 극복되고 있다.
연주소가 영주 시내가 아닌 풍기에 위치하고 있어도 광케이블로 전송해서 영주에서 송출되는 이상 문제 될 것이 없으며 오히려 학교의 시설과 인력을 이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고 거리상 지역민의 접근이 어려운 점은 영주시내 요소요소에 협력업체와 연락사무소를 둠으로서 해결될 수 있을 것 같다.
또 예비 장비 문제는 일조의 기우인지도 모른다. 모두가 최신 장비라서 고장이나 사고가 날 확률도 거의 없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그리고 또 우리만이 해당되는 사항이 아닐  것이니까 추후에 여유가 있을 때 준비하기로 마음을 돌렸다. 
자원봉사자도 지역에 애향심이 살아있는 한 어렵지는 않을 것 같았다. 처음 모집공고를 냈을 때 일반인들은 거의 없고 학생들만 20여명 나서서 프로그램 진행을 우려했는데 교육과정에서 적임자를 고르고 지역에 방송경력자나 DJ경력자를 수소문해서 그럭저럭 콘텐츠를 마련할 수 있었다.

“개구리가 어릴 적 일을 모른다”고 했던가, 나는 요즘 개구리 시절을 연상하며 혼자서 쓴 웃음을 지을 때가 종종 있다. 60년대 후반에서부터 70년대 전반까지 트란지스터도 귀할 때 나는 기자생활을 했었다. 당시의 최고 장비는 진공관으로 이루어진 녹음기, 소위 “아이스케이크 통“라고 불리던 큼직한 외국산 릴(reel) 녹음기, 그것도 하나밖에 없는 이 녹음기가 혹시나 다칠세라 승용차 안에서도 감사안고 취재에 나섰던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은 그래도 부자라 생각된다.
다음 문제는 음원이다. 우선 대구에 있는 지상파 방송의 후배들에게 협조를 당부해 CD 1,000여장을 구해 프로그램 재작연습에 이용하고 있다. 그리고  다행히 학부형 가운데 어느 독지가가 3만여 곡의 음원을 희사하겠다고 제의해 왔고 또 다른 채널을 통해 1만5,000여곡 등 모두 4-5만곡의 음원을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다소 부족하지만 우선 방송을 하는 데에는 지장이 없을 듯하다.

앞으로의 과제


영주FM의 앞으로의 과제는 프로그램을 어떻게 잘 만드느냐에 있다. 지역민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지역민들로부터 사랑받는 방송이 되느냐에 달려 있다. 우리나라도 방송 청취자의 수준은 상당히 높다고 본다. 따라서 아마추어들의 방송이 청취자들이 요구하는 수준만큼 프로그램을 제작하기란 사실상 어려울 것으로 본다. 그렇지만 지역방송이 진솔하게 그 지역민들의 의견을 성실히 반영하는 등 차곡차곡 신뢰를 쌓아갈 경우 사랑받는 방송이 되리라 믿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정직하고 성실한 방송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지역에 애정을 갖고 지역발전에 이바지해야 한다고 본다. 따라서 영주 FM은 방송이외에도 많은 일을 하려고 한다. 각종 문화행사를 유치하고 이벤트 사업을 유치해서 이 지역의 문화적인 갈증을 씻어주는 한편 방송사 자체의 자활의 길도 모색해야 한다.
영주 FM방송은 아침7시부터 밤 10시까지 하루 15시간 방송할 예정이다. 방송 프로그램은 선비골의 특성을 살려 명상프로인 ‘소백산의 꿈’을 비롯해, 생활정보 ‘선비골의 맥박’과 ‘영주 라디오 복덕방‘ 상담프로인 ’그건 이렇습니다. 그리고 음악프로인 ‘노래따라 마음따라’, ‘뮤직 포 유’ 등이 준비되어 있고 주말에는 교양프로 ‘영주 영주인’과 ‘영농교실‘ 그리고 오락프로인  ’열린 노래방’ 등이 방송된다.그리고  현재 광역 지상파 라디오들도 시도하지 못하는 라디오 드라마를 주말을 이용해 지방에서 시도해 본다는 야심찬 꿈도 갖고 있다.
영주 FM은 며칠 전에 체신청을 통해 실용적 시험방송 허가와 함께 89.1MHz의 주파수를 배정 받았다. 이제 이 주파수에 맞춰 송신설비와 안테나를 조정해서 설치하고 곧바로 시험방송을 할 예정이며 가능하면 5월 중순에 개국할 목표로 모든 준비를 하고 있다. 방송을 실시하면서 서서히 후원회와 전속 합창단 모집 등 다양한 콘텐츠를 실현할 계획도 새우고 있다. 그 실현은 언제 될지도 모르지만 서둘지는 않을 방침이다.“뜻이 있으면 길은 항상 열린다”고 믿고 있으니까 잘되리라 믿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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