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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22호 공동체라디오] 아날로그 시대의 공동체 라디오, 디지털 시대의 시민미디어 - 공동체 라디오 정책에 대한 비판과 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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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22호 / 2005년 6월 30일

아날로그 시대의 공동체 라디오, 디지털 시대의 시민미디어



- 공동체 라디오 정책에 대한 비판과 제언
 
박 채 은 ( 미디액트 선임연구원 )
 
1. 서론 - 디지털 시대의 ‘공동체 라디오방송’
2. ‘소출력 라디오방송 시범사업’ 추진 과정의 문제
3. ‘공동체 라디오방송’을 둘러싼 쟁점과 정책 비판
4. 결론
 
1. 서론 - 디지털 시대의 ‘공동체 라디오방송’
 
디지털 시대에 대한 낙관적 전망들, 장밋빛 환상들이 쏟아져 나온다. 테이크아웃 TV라는 DMB방송은 방송 광고에서부터 버스정류장 광고안내판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존재를 알릴 수 있는 모든 곳에 나타나 사람들에게 새로운 방송서비스를 누려보라고 외친다. 단 한사람도 정부청사 앞에 가서 “지금 보는 TV가 워낙 화질이 안좋으니 디지털로 바꿔라!”고 외친 일도 없건만 이제 수년 내로 모든 아날로그 TV는 고물이 될 판이다(김명준, 2005). 멀쩡한 TV도 고물로 만들어 버리는 이 희한한 법칙이 지배하는 뉴미디어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해방적이고 민주적인 가능성에 대한 전망은 새로운 매체 기술의 도입 시기마다 있어왔다. “현대 미디어 역사에서 매 단계-전화, 사진, 영화, 라디오, 텔레비전, 위성-는 유사한 도취적 예측들을 불러일으켰다. 이 모든 것들이 계몽의 시대로 인도할 것이라고 기대되었고, 이 모두가 민주주의에 대한 약속으로 가득 찬 것처럼 보였다. 오용과 부패보다는 항상 가능성을 상상하는 것이 더 쉬웠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Erik Barnouw) 새로운 미디어 기술 도입 시기마다 공공성/시청자복지는 산업론자든, 공공론자든 모두 중요한 근거로 얘기하는 개념들이다. 그러나 그 사이에서 소외되는 것은 수사학 속에만 존재해왔던 시청자, 시민으로 불리우는 보통 사람들이다. 미디어정책에 있어서 시장성을 내세우는 산업론자의 논리는 자본의 독점화를 심화시키고 자원의 공평한 분배를 가로막으며, 이에 반해 공공성 논리를 내세우는 사람들은 공공성의 구체적 내용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제, 디지털 뉴미디어 시대의 공공적인 매체정책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우선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던져야 한다. 디지털시대의 ‘공공성’을 철학적으로 어떻게 규정하고, 정책적으로 어떻게 구체화시킬 것인가? 자본에 집중된 방송 및 전파 자원을 어떻게 재분배 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구체적 연구와 탐색이 이루어지지 않고 미디어 정책들이 입안되고 집행되고 있는 현실은 참으로 안타깝다. 최근에 사업자가 결정된 DMB의 경우도 새로운 방송서비스의 출현, 시장의 확대 차원에서만 정책적 검토가 이루어졌지, DMB에서의 공공성 구현에 대한 정책적 논의는 실종되어 버렸다.
아날로그 시대부터 미디어 공공성을 확보할 수 있는 유력한 대안이었던 공동체 라디오가 이제 시범방송 개국을 앞두고 있지만, 우리 사회에 시민미디어에 대한 관심은 부족하다. 디지털 뉴미디어 시대에 아날로그 라디오 같은 매체는 구식유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인터넷 라디오가 이렇게 활성화되어 있는데 굳이 전파를 활용한 공동체 라디오가 꼭 필요한가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인터넷이라는 매체는 아직까지 모든 이들에게 보편적인 미디어는 아니다. 디지털 디바이드(digital divide)의 문제가 항상 제기 되고 있으며, 이용하는 대상층도 폭넓지 않다. 또한 이동수신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라디오에 비해서 매체 활용도가 떨어진다. 우리 주변을 조금만 돌아보라. 버스를 타면 버스기사 아저씨는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고 세상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노동자들이 작업하는 공장에서도 라디오 수신기를 통해 소리가 흘러나온다. 사람들이 아날로그 라디오를 듣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제 아날로그 라디오는 더 이상 돈벌이가 될 수 없다는 것이 ‘라디오 무용론’을 얘기하는 사람들의 진짜 이유일 것이다.
이 글은 공동체 라디오 시범사업 추진 과정의 문제점 및 현안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서, 거시적이고 장기적 관점에서 공동체 라디오 정책의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그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공동체 라디오를. 단순히 소규모의 방송국 몇 개 허가 내주는 것으로 국한시켜서 사고해서는 안된다. 방송정책, 전파 정책 등 디지털 시대의 공공성을 확보하는 철학적 관점 및 구체적 실현 방안을 모색하고 실험하는 것으로 공동체라디오 정책이 자리매김 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디지털 방송 시대에도 공동체 라디오 방송을 어떻게 보장하고 활성화시킬 것인지에 대한 정책연구가 필요하다. 디지털 라디오에서 주파수 활용도는 아날로그 라디오보다 월등하게 커진다. 디지털 라디오 환경에서도 특정 대역은 비영리 방송을 하도록 보장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공동체라디오 추진 주체, 관계 기관인 방송위, 정통부, 미디어운동을 중심으로 하는 시민사회 영역이 참여하는 공론의 장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2. ‘소출력 라디오방송 시범사업’ 추진 과정의 문제
 
1) 시범사업 정책방안의 근본적 한계
2004년 11월 16일 방송위원회는 소출력라디오 시범방송사업자로 전국 8개 지역을 선정하였다. 시범사업 허가추천 대상자로 선정된 8개 지역은 수도권의 관악, 마포, 분당, 비수도권 지역의 충남 공주, 경북 영주, 대구(성서), 광주(북구), 전남 나주지역이다. 방송위가 공동체 라디오 시범사업을 추진하게 된 데에는 공동체라디오 방송이 상업주의로 치닫고 있는 기존 방송 미디어의 한계점을 극복하면서 시청자 권리 실현을 위한 방송 개혁의 계기임과 동시에 시민 참여적인 방송 구조를 만들어내는 출발점이 될 것으로 기대되어왔기 때문이었다. 시민사회운동 진영의 지속적인 도입 요구와 국민의 정부부터 국정과제로 제시되어 왔었던 것을 방송위가 전향적으로 검토하고 세부 기획안을 마련해 나가면서 공동체라디오방송은 국내에서 최초로 실현될 수가 있었다.
선정된 8개 시범지역에서는 지역 주민 자원봉사자들을 모집하고,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주민교육을 진행하고 있으며, 프로그램 편성 계획을 논의하고, 설립기금 마련을 위한 후원회를 조직하는 등 각 공동체를 형성하는 지역밀착형 동네방송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 이렇게 지역에서 공동체 라디오 설립을 위해 애쓰고 있지만, 시범사업의 정책적 준비 미흡으로 인하여 시범방송사업자들이 피해를 보고 있는 게 사실이다.

방송법과 전파법에 공동체라디오 방송이라는 별도의 규정이 없이 출발하다 보니, 시범방송임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법제적 틀에 기대어 갈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었다. 공동체 라디오 방송을 어떻게 규정할 것이며, 복잡하고 까다로운 허가절차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부족했다. 이는 시범사업에 대한 여론 수렴 기간이 부족했다는 것에서도 드러난다. 과연 ‘소출력 라디오 시범사업’ 추진에 따른 수용자들, 일반 시민들에 대한 탐색이 제대로 이루어졌는가. 2004년 7월 방송위가 주최한 전문가 토론회가 끝나고 미디액트 공동체라디오연구팀은 다음과 같은 의견서를 발표했었다.
“소출력 라디오 시험방송이 임박한 현 상황을 볼 때, 이제야 이러한 토론회가 열렸다는 데에 대해서는 시기적으로 늦은 감이 들기도 한다. 더욱이 소출력 라디오 방송에 대한 명확한 개념과 정책이 세워지지 않은 상태에서 더욱이 8월 초로 예정되어 있는 시범방송 공모를 시행하는 것 또한 무리가 아닐 수 없다. ...이번에 열린 전문가 토론회로 그칠 것이 아니라 실제 소출력 라디오를 운영할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공청회가 지속적으로 이어져 다양한 의견들을 종합해 볼 수 있는 자리가 계속해서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나진아, 조두영, 2004)
시범사업 과정에서 발생할 수도 있는 문제점에 대한 대비가 부족하기도 하였다. 이는 시범사업 주무 기관에서 시범사업에 대한 정책 집행 프로세스를 현실 속에서 구체적으로 고민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허가문제와 출력 문제에 있어서 시범사업 추진 이전에 관계기관과 정책 합의가 마무리되지 못하여 그 피해가 고스란히 시범사업자들에 돌아갔다. 모든 시범방송에 대한 준비와 책임을 시범방송 사업자들에게만 전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2) 허가 문제

매체/기술 정책에서 ‘부처할거주의’ 또는 ‘부처독단주의’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은 이미 꾸준하게 지적되어왔다.(김평호, 2003) 관련기관의 비타협적 태도는 이번 시범방송을 통해서도 확인되었다. 지난 3월을 전후해 방송위와 정통부 간의 공동체 라디오 방송국 허가 형태를 놓고 갈등이 있었다. 몇 차례의 실무협의를 가졌지만, 어쨌든 이것이 현행 방송법이나 전파법 상에 온전히 규정되어 있지 않다보니 서로 지상파방송사업자가 되어야 한다, 실용화시험국이 되어야 한다는 원칙이 충돌한 것이었고 합의를 도출하는데 애를 먹었다. 사실 이 문제는 공동체라디오 시범방송을 시작하기에 앞서 방송위와 정통부 사이에 협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발생하게 된 일이었다. 3월 16일 정통부는 시범사업자와의 구두합의한 내용, 실용화 시험국으로 하되 방송국 허가를 빠른 시일 내에 내준다는 약속을 지금까지 지키지 않고 있다. 4월 초 가장 먼저 실용화시험국을 허가를 받은 분당FM의 경우, 6월 말이 된 지금까지 지상파방송사업자 허가를 받지 못하였다. 허가문제 논의 당시 정통부는 전파 혼신 및 전파 환경 조사를 위해 길어도 2개월 안에는 조사를 마치고 지상파방송사업자로 허가를 내주는 것을 약속했었다. 그러나 정통부는 다시 말을 바꿔 8개 지역 전파환경을 측정하고 난 이후 분석 결과를 가지고 방송국 허가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하고 있다.
3월 허가 논란 당시, 정통부가 이 안을 제시했다면, 시범사업자들 중 누구도 선 실용화시험국, 후 지상파방송사업 허가에 동의하지 않았을 것이다. 8개 시범방송 지역 전체의 전파환경을 측정 한 후에 허가 여부를 결정한다는 정통부의 주장은 방송국 허가를 내주지 않으려는 의도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허가는 개별 시범방송 사업자에 대한 허가이지, 8개 사업자 전체에 대한 허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미 시범방송 사업자들을 수차례에 걸쳐 개국 일자를 번복하고 있으며, 이제 지역 주민들로부터의 신뢰도 점점 상실하고 있다. 이에 대한 책임을 온전히 시범방송사업자들이 지고 있는 것은 부당한 처사이다. 방송통신융합, 규제기관의 통일이 괜히 나오는 얘기가 아니다. 방송사업 허가와 주파수 배정이 분리되어 현행 구조에 뭔가 변화가 있기 전까지는 이러한 문제는 끊임없는 논란이 될 듯 하다. 그러면서 방송국 허가 지연 때문에 8개 시범방송사업자들도 그렇지만 언제 우리 방송이 나오나 목놓아 고대하고 있는 공동체의 주민들에게 고통이 전가되고 있다.
이러한 방송위와 정통부의 갈등은 방송, 통신 융합을 위한 통합적 규제기구 구성에서 주도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싸움의 일부이며, 최근 IPTV를 둘러싼 방송위와 정통부의 갈등도 이러한 싸움의 연장선상에 있다.


3) 주파수 할당 및 출력 문제

주파수 할당 및 출력 문제는 이미 지난해 전문가 토론회에서도 드러났다. 소위 방송 정책 연구자나 전문가, 실무자들 중 어느 특정한 지역에서 쓸 수 있는 가용 주파수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나진아, 주두영, 2004) 방송위는 주파수 확보 문제에 부실하게 대응해 왔고, 주파수 사용 현황 및 가용 주파수 현황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고 적극적으로 방안을 찾아야 할 정통부는 자기 역할을 다하고 있지 않다. 

현재 전파법에서 소출력라디오는 1W 이하의 출력으로 제한되어 있다. 이 규정 때문에 시범방송 허가 조건에서 출력은 1W 이하로 결정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1W의 출력으로는 지역공동체를 대상으로 하는 방송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데 있다. 대구성서공동체라디오에서 실험한 결과, 1W의 출력으로 도달 가능한 전파 범위가 반경 500m~1km였다. 이는 고층건물이 있을 경우 더 협소해진다. 고층아파트와 산이 많은 한국의 지형과 도시 특성을 고려한다고 할 때, 시범방송의 1W 출력으로는 지역방송으로서의 의미를 전혀 살릴 수 없다. 최소한 지역방송으로서의 정체성을 살리기 위해서도 방송권역의 현실화는 반드시 필요하다. 이번 시범방송 기간에 기존 방송국으로부터 받는 혼신에 대한 기술적 검토를 비롯하여 앞으로 공동체 라디오 방송에 대한 주파수 간섭 현상을 검사하기 위해서도 시범방송 기간 내 1W 이상의 출력에 대한 실험도 이루어져야 한다. 지역 주민들이 들을 수 있어야 공동체 라디오 방송이 아니겠는가.
방송위와 정통부는 허가문제를 두고 더 이상 싸우고 있을 때가 아니다. 두 기관 모두 시범사업을 통해 향후 공동체 라디오 방송의 본격적인 출발에 대비하여 관련 제도를 정비하는 노력과 아울러 공동체 라디오 방송의 기술적 특성들을 분석하고 조사하는 작업을 별도로 진행해야 한다. 특히, 전파간섭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이며, 주파수 확보를 어떻게 할 것이며, 주거밀집형, 농촌형 등 지역별 특성에 따른 적정 출력 검토 등, 방송위와 정통부가 해야 할 일은 많다. 시범사업자들에게는 많은 것을 요구하고 규정을 지키길 강요하면서, 정책 추진 기관이 해야 할 일들은 미뤄두고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3. ‘공동체 라디오방송’을 둘러싼 쟁점과 정책 비판
 
공동체 라디오 방송 모델의 국내 정착과 시민참여적 라디오방송국들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공동체 라디오 방송에 대한 정책의 기본원칙 및 방향이 수립되어야 한다. 시범방송정책을 집행하는 차원보다 보다 거시적, 장기적 관점에서 ‘공동체라디오’ 정책에 대한 비판적 분석과 접근이 필요하다. 새로운 방송 모델을 도입함에 있어, 새로운 방송에 대한 개념과 원칙, 그리고 거시적 차원의 의미에서부터 구체적 실현 방안에 대한 논의가 심도깊게 논의되어야 하며, 이는 정책의 추진되었을 때 정책의 직접적 당사자인, 방송 운영 주체 및 수용자들에 대한 책임 있는 정책 집행을 가능하게 한다. 
여기서는 시범방송을 넘어서 앞으로 공동체라디오 방송 정책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대안들을 제시할 것이다. 우선, 라디오 디지털 전환과 전파 정책의 문제는 뉴미디어 환경에서 공동체 라디오와 같은 시민미디어 영역을 보장하고 강화하는 정책들이 어떻게 가야하는지를 제시할 것이며, 제3방송영역의 제도화와 이에 따른 차별적 규제방안의 필요성을 제기할 것이다. 아울러 공동체 라디오 방송에 알맞은 출력과 시설 마련, 지원정책의 강화 등의 문제들도 함께 언급할 것이다.


1) 라디오의 디지털 전환과 전파 정책의 문제

DMB 사업이 본격화되면서 라디오의 디지털 전환 문제는 오히려 관심의 초점에서 벗어나 버렸다. 몇몇 학자들은 원래 아날로그 라디오의 디지털 전환을 목적으로 추진되던 DAB가 DMB로 급격하게 전환되는 정책적 변경이 오랜 숙고이기 보다는 자본의 요구와 디지털 TV의 이동수신이라는 눈앞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즉흥적 정책이었다고 비판한다.(김평호, 2003) 현재의 지상파 DMB는 기존 라디오의 디지털 전환이 아닌 신규서비스이다. 이 신규서비스라는 의미는 DMB가 기존에 구상하고 있던 라디오의 디지털 전환과는 다른 매체, 다른 서비스라는 뜻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우선적인 문제는 지상파 라디오 방송의 디지털 전환의 수준과 내용을 어디에 맞출 것인가, 더 근본적으로는 라디오 방송의 디지털 전환을 과연 추진할 것인가의 두 가지이다. 결국 현재의 흐름대로라면 장기적 관점에서 라디오 방송의 디지털 전환은 DMB 사업의 성패에 의해 좌우되거나, 별도의 비용으로 새롭게 디지털 전환을 추진해야 하는 문제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조건에서 공동체 라디오 방송은 일정기간 아날로그를 통한 실험을 준비해 나가야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어떻게 변화할지 모를 디지털 전환 과정에서의 문제를 대응해야 되는 과제를 안게 되었다. 전파의 효율적 사용이라는 애초의 전파정책의 목적은 디지털 시대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준비되어야할 전파의 디지털 전환에 대한 구체적 계획을 가지고 있지 않음으로 해서, 이보다 더 중요한 문제인 디지털 시대의 공공성 확보와 보장에 대한 논의를 진전시키는 것을 어렵게 하고 있다.
방송위원회의 2004년 12월 ‘방송용 주파수의 효율적 활용방안 연구’에서는 전파정책의 목표가 80년대 ‘주파수혼선방지 및 간섭배제’에서 현재는 ‘주파수 이용의 경제적 효과의 극대화’에 있다고 했다.(박구만, 김도연, 2004) 특히 전파법 개정의 방향이 전파자원의 배분에 시장기능을 적용하여 자원배분 최적 및 이용의 효율성을 도모하며, 전파분야의 각종 규제를 철폐함으로써 전파이용 산업을 활성화하고 국민의 편의를 최대한 제고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전파정책을 시장기능에 완전히 내맡겼을 경우에 공공성, 공익성 보장을 어떻게 할 것인가?
시장 메커니즘을 도입한 전파정책이 전체 사회의 이익보다는 특정 사용자의 개별적 이익을 목적으로 이용된다면, 의도와는 달리 주파수 이용에 따른 전체 사회의 공익의 증가가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주파수는 우리 사회에서 경제적인 가치와 더불어 사회, 문화적 가치들도 가지고 있다. 전파법에서 말하는 공공복리란 단순히 경제적 이익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주파수가 어떤 가치들을 가지고 있으며, 어떻게 우선 순위를 매겨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시장 메커니즘에 따른 주파수 배분은 결국 사회문화적 공익성을 실현시킬 수 있는 공공적 주파수가 줄어드는 상황을 초래한다. 이러한 주파수 정책의 복합적인 목표지향에 따라, 국가에 따라서는 상업적 주파수 이용과 비상업적 주파수 이용을 분리해서 규제하는 방식을 취하거나, 시장 메커니즘 할당 방식과 정부의 사회문화적 목표를 고려한 직접적인 할당 방식을 병행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특히, 방송주파수의 경우는 공익적 목적을 위한 방송 주파수를 예비적으로 할당하는 정책을 취하기도 한다.(김지성, 2005)
태국은 이미 2000년 방송위원회 및 정보통신위원회 법 26조에 전파의 일정 부분을 민중쪽으로 할당할 것을 명문화하고 있다.

: “...라디오 및 텔레비전 방송에 관한 마스터 플랜을 짤 때 그리고 방송국을 허가할 때, NBC는 국가 영역, 민간 영역 그리고 시민 영역 간 적절한 비율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NBC는 전파의 20%를 시민 영역에 반드시 할당해야 한다. 시민 영역이 미처 준비가 안 된 경우 NBC는 충분한 지원을 통해 시민 영역이 적절한 비율의 전파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시민 영역은 이윤이 아닌 공공의 이익을 위해 운영되어야 한다.”
디지털 전환에 대비하여 남는 주파수를 어떻게 재배치 할 것인지에 대한 계획과 함께, 공동체가 직접 운영하는 공동체라디오 방송국에 대해 가용 주파수의 일정 부분을 할당하는 것도 필요하다. 디지털이든, 아날로그이든 기술적 표준이 어떻게 바뀌어 가더라도공동체 라디오 방송과 같은 시민참여적이며 소외계층을 위한 미디어에 대한 필요성은 줄지 않을 것이다.

2) 제3의 방송영역의 제도화와 차별적 규제 정책의 필요성

방송통신융합 환경에서 ‘방송’에 대한 재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기술적 형태로 방송을 규정짓는 문제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적 차원에서 방송의 내용적 측면들이 어떻게 새롭게 범주화되고 개념화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더욱 필요하다.
외국에서 제3의 방송영역으로서 규정되고 있는 시민 섹터, 공동체 방송 섹터, 민중 섹터 등의 새로운 범주화의 노력은 디지털 시대에서도 사회문화적으로 중요한 컨텐츠들을 어떻게 생산할지 그리고 분배할지에 대한 차원에서부터, 현재의 거대 중앙 방송 자본과 통신자본의 틈새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는 대안적이고 참여적이며, 공공적 성격을 담보하는 방송을 어떻게 보장하고 활성화할 것인지에 대한 차원까지 연결되는 문제이다. 현재의 방송통신정책은 ‘경쟁’이라는 시장주의적 원칙을 내세우며 자본의 논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만 재편되고 있다. 학자들은 앞으로 다원적 미디어 영역간의 균형 발전을 유도하는 것이 필수적인데, 거대 지상파 사업자나 시장 선점 사업자의 횡포로 인해 새로운 방송미디어들이 고사하고 시민미디어 영역은 슬럼화될 수 있는 가능성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고 지적한다.(최영묵, 2003)
공영, 상업영역이 아닌 제3 방송영역의 필요성은 참여민주주의에 대한 시민들의 요구와 필요가 증대하고 있는 정치적 배경과 맞물리면서, 새로운 공적영역의 확산과 공공성 확보의 대안으로 적극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이미 전 세계의 많은 나라(독일, 미국, 호주, 태국, 남아공 등)에서 공동체 라디오와 같은 방송영역을 제3의 방송으로 규정하고 있다. 지역 공동체가 직접 운영하는 방송 모델의 도입은 향후 한국의 방송모델을 현재의 공영, 민영 이원체제에서 보다 다원화된 구조인 공영, 민영, 공동체 방송의 3원 체제로 전환함으로서 지방 분권 및 주민 자치의 개념을 기본적인 방송 모델로 개념화하는 실질적인 근거가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공동체라디오에 대해서 전파법시행령에만 일부 언급되어 있고 그마저도 매우 제한적으로 규정하고 있는(이정택, 2003) 현행 전파법과 방송법을 개정해야 한다. 특히 공동체 라디오만의 독자적 규정이 아닌 공동체 라디오를 포괄한 공동체 방송미디어에 대한 별도의 규정을 마련함으로써 기존의 방송체제와는 다른 원칙과 내용을 담은 차별적 규제 정책이 시행되어야 한다.

우선, 출력이 적은 공동체 라디오는 상대적으로 청취자에 대한 영향력이 적기 때문에 기존 지상파 방송사업자와는 다른 완화된 기준을 적용하고 허가 절차 등을 간소화 해야 한다. 현재 라디오방송국 허가절차는 추천신청(방송위) -> 허가신청(정통부) -> 심사 -> 시설설치, 검사, 합격 후 운영하도록 되어 있어 그 절차가 매우 까다롭다. 이러한 허가절차를 시민이 참여할 수 있는 비영리적 공동체 라디오에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즉, 전국을 대상으로 하는 대출력의 기존 지상파라디오사업자와 협소한 방송권역에 송출되고 소출력인 공동체라디오방송의 면허는 구분되어야 한다. 특히, 앞으로 공동체라디오에 대한 허가 기관은 단일화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03년 방송법 개정안 내용 중 소출력 라디오 방송 법안에서는 방송위원회 사업 허가 -> 정보통신부 장관 준공검사로 허가를 단일화하고 간소화하는 방안이 제시되기도 하였다.
두 번째로 운영주체의 요건을 완화해야 한다. 이번 시범사업에서는 방송국 설립주체를 ‘법인’으로 한정시켰다. 방송국의 운영을 위해서는 법인이라는 법적 위상이 필요하겠지만, 이러한 설립주체 요건이 공동체 라디오 방송의 활성화에 장애가 될 수 있다. 몇몇 지역은 재정의 열악함 때문에 법인 허가를 받는데 큰 어려움을 겪었다. 시민사회 영역의 재정 실정에서 송신소와 연주소의 건물 임대료를 부담해야 한다는 사실과 법인 설립을 위해서는 일정 금액 이상의 자금을 확보해야 한다는 사실이 애초부터 공동체 라디오 방송국 설립에 대한 접근을 어렵게 하고 있다. 특히 대학이나 지방자치단체와 연계하지 않은 시민사회단체들로만 구성된 컨소시엄 주체의 경우, 재정 확보의 문제는 방송국 자체를 설립하고 운영할 수 있느냐를 가름하는 결정적인 요소가 되기 쉽다. 공동체 라디오 방송은 기존 방송사업자와는 다르게, 사업 주체가 자체적으로 모든 방송국 설립 및 운영에 대한 재정 확보를 반드시 갖출 필요는 없다. 설립주체 요건이 완화되어야 더 많은 사람들이 저렴한 비용으로 방송국을 설립하고 공동체에 복무하는 방송을 만들 수 있다.
세 번째는 심의문제이다. 다미디어?다채널 시대, 미디어 융합 시대에 방송 내용 심의는 매체별, 채널 특성별로 차별화되어야 한다. 특히 지상파방송과 유료채널인 케이블방송 및 위성방송, 그리고 새롭게 등장할 데이터 방송에 이르기까지 매체별로 접근비용과 사회적 영향력이 상이하다는 점에서 심의 차별화는 필수적이다.
그런데, 그동안 ‘심의 차별화’를 둘러싼 논의에서 적극적으로 고려되지 못했던 방송영역이 존재한다. 이는 앞서도 지적했듯이 방송프로그램의 성격과 매체의 특성이 기존의 방송과는 전혀 다른 방송영역, 즉 공동체 라디오와 같은 ‘시민미디어 영역’이다. 시민미디어영역은 방송의 전문화와 독과점화가 가중되면서 방송의 주인이라는 시청자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기존 방송에서 점차 소외되어가는 것을 방지하고 적극적으로 시민들의 방송참여를 보장하기 위한 방안으로 제기되었다. 이러한 목적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시민미디어 영역에 대한 차별화된 심의가 필수적이다. 심의기준을 완화하거나 간접광고 청소년 보호 등을 목적으로만 부분 심의를 하는 것을 검토해 볼 수 있다.

네 번째는 편성관련 규제 완화이다. 공동체라디오 방송에 대한 편성기준의 차별화가 필요하다. 공동체 라디오 방송국의 편성의 방향의 차별성은 상업라디오 방송이나 공영 라디오 방송국에서 일반적으로 청취할 수 없는 음악, 공동체 내의 특수집단을 위한 프로그램, 심층적인 대담프로그램, 공동체 내의 사회, 정치, 문화, 경제적으로 소외된 계층의 필요에 부응하는 프로그램 등 대안적인 프로그램을 제공하는데 맞추어져 있다.(이수영, 1999) 편성차별화는 다양성, 지역성, 상호작용성이라는 3가지 핵심적 가치를 중심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이러한 원칙을 보호하기 위해서 공동체 라디오 방송에 대해서는 지상파 방송 프로그램 규제(국내제작 100분의 80이상, 국내제작 대중음악 100분의 60이상)에 대한 예외를 인정해야 한다.
다섯 번째는 무선종사자 문제이다. 현행 법령에는 지상파사업자의 경우, 방송국 연주소와 송신소에 각각 2명의 무선종사자를 둘 것을 강제하고 있다. 이는 소출력인 공동체 라디오 방송의 규모에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연주소와 송신소가 거의 같은 곳에 설치되는 현실과도 동떨어진 규정이다. 공동체라디오방송국의 경우, 무선종사자 1인을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3) 공동체라디오 방송의 방송권역 및 적정 출력 문제
방송법에 공동체 라디오를 규정하면서 ‘소출력 안내방송’과 ‘공동체 라디오방송’을 각기 구분하여 정의하여 차별화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이만제, 2004, 방송법개정안, 2003)
<소출력 안내방송과 공동체라디오방송 비교>


구분 소출력 안내방송 공동체 라디오방송
운영 주체(허가대상) 편의 시설 운영자 비영리 공동체 단체
서비스반경(출력) 1~2km(1W 이하) 5~10km(10W~20W)
운영 기간 상시, 한시 상시
서비스 내용 안내방송, 음악방송 공동체뉴스, 종합편성방송
허가 조건 이용자 편의 증진 비영리, 비상업적 운영
공동체 이익에 복무
허가기관 정통부 방송위 허가추천, 정통부 허가
향후 단일 기구에서 일괄 관할하는 것 필요
규제 간접광고, 청소년 보호 심의 방송 관련 규제(예외조항)
면허기간 1년, 한시 3년
위 표에서 볼 수 있듯이, 소출력 안내방송과 공동체 라디오 방송은 운영 주체 및 방송 목적 그리고 출력에서 가장 큰 차이를 보인다. 출력에 있어서 현행법 상 소출력 라디오는 1W 이하를 의미하는데, 이 출력은 소출력 안내방송에 적합하다. 공동체 라디오 방송은 방송서비스 수혜지역의 범위를 고려하여 1W 이상의 출력을 허가해 주어야 한다. 규제를 목적으로 최대출력을 제한하는 것보다 공동체의 방송권역 내에서 원활한 서비스가 이루어질 수 있는 출력을 10W~20W 출력 내에서 출력을 허가하는 것이 바람직 할 것이다.
주파수 확보 방안 : 이미 소출력 라디오 방송을 허가 하고 있는 많은 나라에서는 공동체 라디오에 의한 전파 간섭이 거의 없다는 것이 밝혀졌다. 특히 10W에서 100W에 이르는 소출력 라디오 방송을 허가하고 있는 미국에서는 정규출력 방송국에 배정된 근접 주파수 대역을 활용을 하더라도 방송 권역이 좁아 간섭이 문제되지 않는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기도 하였다. 일본의 경우 특정 주파수 대역을 확보하여 간섭이 없도록 배정하는 방안을 채택하고 있다(76.1, 76.2, 76.3, 76.4, 76.5MHz를 소출력 라디오용으로 고시). 호주도 FM방송 일부대역(87.5~88.0MHz)을 공동체 라디오 방송에 할당하고 있다. 영국과 미국은 FM라디오방송 전대역에 공동체라디오방송을 허가하고 있으며, 기존 FM방송국을 보호하기 위해서 방송국간 최소 이격거리를 유지할 수 있게 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2001년 전파연구소에서는 소출력 FM 안내방송의 현장 실험을 실시하였으나 출력, 안테나 높이 등의 여러 가지 제약 속에서 이루어졌다. 따라서 소출력 시범 서비스 기간 동안 운영될 방송국을 이용하여 충분한 시간을 갖고 다시 한번 정밀한 현장 실험을 실시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이러한 현장실험을 통해 우리나라 지형에서의 방송 출력과 안테나 높이에 따른 방송구역 산정이 필요하다. 특히 고층건물이 많은 도심 지역과, 평야 지역, 산악 지역 등을 구분하여 소출력 라디오의 전파 환경을 분석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실내 수신에 관한 실험도 실시하여 방송권역에의 최대한의 가청 구역을 확보하는 방안을 연구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이 기간 동안 기간 방송국과 소출력 방송국간의 상호간섭 분석이 필요하다. (이정택, 2004) 
1년이라는 시범사업 기간은 기술적 검토 뿐만 아니라 운영 및 프로그램 제작 방식 및 시민 참여 구조에 대한 다양한 모델 실험이 행해져야 하기 때문에, 실제 방송이 가능한 지상파방송사업자로의 허가를 내준 다음에도 계속적으로 정통부가 추진해야 될 프로젝트이다.
시험방송을 통한 측정 및 분석과 별도로, 시범방송 이후 공동체 라디오 방송 법제화를 위한 가용 주파수 확보를 위한 조사도 병행해야 한다. 법제화 되고 나서, 지금처럼 가용 주파수가 없다고 발뺌하는 것은 주파수의 효율적 분배과 공평한 분배의 책임이 있는 정통부의 직무 유기이다. 정통부는 지역별로 가용 주파수 분석을 위한 실험조사를 진행하고 이를 통해 공동체 라디오 방송용 주파수 정책을 수립해 나가야 한다.


4) 소출력에 적합한 시설 장비 및 관련 기술 개발의 문제

방송위원회는 또한 향후 설립될 공동체라디오 방송에 대해서는 시설 장비는 하지 않고, 제작비 지원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 제작비 지원 규모가 더 커지고 운영에 대한 지원까지 보태진다면 어느 정도는 바람직한 지원 방향일 수 있다. 그러나 전제가 있다. 현재의 시범사업에 적용된 방송국 설비 및 장비 규모가 반드시 재조정되어야 하는 것이다. 방송위원회의의 차등적인 지원 규모와 자체 예산 확보 능력에 따라 8개 사업자들마다 빈부의 격차가 있기는 하지만 현재 최소 8-9천만 원 이상의 방송국 설비 및 장비가 구축된 상태이다. 공동체 라디오방송은 기존 거대 주류 방송사와 같은 방송시스템과 설비를 구축할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시범사업을 시작하는 8개 지역의 대부분이 기존 방송 설비와 거의 비슷한 수준에서 흉내를 내며 장비를 구축하였다. 사실 참조할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앞으로 시설 장비에 대한 지원이 없는 상황까지 고려한다면, 시민사회단체들이 모여 공동체 라디오 방송국을 하고자 할 때, 적어도 1억 원 이상의 돈을 자체적으로 마련해야 한다면 사실 하지 말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공동체 라디오 방송국의 설비와 장비는 몇 백 만원에서 많아야 2-3천 만 원 규모로도 음향장비 및 오토파일 시스템, 편집시스템 등의 구축이 가능하다는 사실은 해외의 수많은 사례들을 통해 확인되고 있다. 즉, 공동체라디오 방송국이 기존 FM방송국 시스템이나 스튜디오를 흉내 낼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스튜디오만 놓고 보더라도 최소한의 인테리어와 방음 공사만 하면 어디서든 구현할 수 있다. 공동체라디오 방송에 맞는 저렴하면서도 방송 품질을 보장할 수 있는 독자적인 기술 시스템이 시급히 마련되어야 할 부분이다.


5) 방송 운영 안정화를 위한 투자와 지원정책의 문제

지원정책의 문제는 공동체 라디오의 성패를 좌우할 수 있는 관건이다. 공동체 라디오 방송국의 재원이 주로 자발적인 지역 공동체 구성원들로부터 나오는 것이라 할지라고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공동체 라디오 방송국의 발전을 위해서는 최초의 제도화 단계에서부터 철저한 대비를 해둘 필요가 있다. 
현재, 시범사업에 대한 지원은 장비에 대한 50%지원과 제작비에 대한 지원으로 이루어진다. 공동체 라디오방송은 비영리적 방송이기 때문에 상업광고는 하지 않는다. 사업을 통한 수익이 발생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운영에 대한 공적지원이 절실하다. 특히, 아직 사업 초기인만큼 지역에서의 홍보도 부족하고, 앞서의 방송권역의 제한 때문에 후원이나 협찬고지도 한계가 있다. 시범사업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하여 안정적 운영을 위해서 방송발전기금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특히 소출력의 공동체라디오 방송이 안정적이고 지속적으로 운영되려면 자원봉사자들을 적극 활용하는 것과 동시에 상근 인력이 반드시 확보되어야 하기 때문에 방송 운영을 위한 최소 인력에 대한 예산 지원 역시 포함되어야 한다.
실제로 우리보다 먼저 공동체 라디오 시범사업을 진행했던 영국에서는 공동체라디오방송을 법제화하면서 공동체 라디오 펀드(Community Radio Fund)를 조성하여, 방송국 운영에 필요한 핵심인력에 대한 지원을 명시하고 있다. 세부적으로는 자원활동가 조직 담당자, 방송국 기금모금 담당자, 행정 담당자, 운영 담당자, 재정 담당자에 대한 인건비를 부분적으로 지급하고 있다. 이 뿐만 아니라 주민들을 교육하는 인력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지원도 하고 있다.
호주의 공동체방송 재단(Community Broadcasting Foundation)은 전국적 차원에서 공동체 라디오 방송국의 재정적 운영을 지원하고 감독하는 기구이다. 이 기구는 정부기금을 관리, 지원할 뿐만 아니라 재정지원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기금심사위원회를 두고 신청서를 심의하고 그 결과에 따라 공동체 방송재단 이사회에 인준을 권고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제작비에 한정하고 있는 현재의 기금 지원 계획을 더욱 확대해서 공동체 라디오 방송국의 안정된 운영과 활성화를 촉진시켜야 한다. 시민사회 영역의 공동체 라디오 방송국의 경우 이러한 공적 지원이 전제되어야만 상업광고에 의존하지 않는 다른 형태의 재원 운영 모델이 만들어 질 수 있으며, 이를 통해 공동체 라디오 방송의 의의를 십분 발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재정지원은 학교, 지자체 등 공공기관의 지원이 있는 방송국보다는 재정여건이 어려운 방송국에게, 소득수준이 높은 지역보다는 상대적으로 인구가 적고 지역 경제규모가 제한된 지역에게 우선순위를 부여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방송광고의 문제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외국의 경우 안정적 운영을 위해 제한적인 광고를 허용하고 있으나, 광고가 자칫 공동체라디오 방송의 비영리적 성격을 약화시킬 수도 있고, 상업성을 강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는 항상 주의해야 한다. 
현재 아무런 지원 정책을 하고 있지 않은 정보통신부는 공동체 라디오에 대한 직접지원과 간접지원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우선 직접 지운은 디지털 전환 문제와 맞물려서 공동체 라디오 방송국이 디지털 방송 방식으로 출발, 운영되는 것을 지원하기 위해 정보통신부의 정보화촉진기금을 공동체 라디오 방송국들에게도 배분하는 정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이수영, 1999) 미국의 경우에는 공동체 라디오 방송의 디지털 방송으로의 이행을 위해 공공 방송 부문에 편성된 펀드는 공동체 라디오와 TV에 지원하는 정책을 취하고 있다. 간접지원은 전파현장 실험과 가용주파수 현황 분석을 통해 공동체 라디오방송을 위한 주파수 대역 분석에 대한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한다. 그것이 정통부가 말로만이 아니라 진정으로 공동체 라디오 방송의 활성화하겠다는 약속을 책임 있게 집행해 가는 모습일 것이다.
 
4. 결론 - 공동체라디오를 위한 ‘운동’의 필요성
 
기술과 산업의 논리, 경제의 논리에서 출발하는 미디어는 태생적으로 그러한 방식의 콘텐츠를 선호하고 보편화시킬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가진다.(김평호, 2003) 공공적 목적과 사회문화적 변화를 추동하는 미디어에 대한 고민은, 그렇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자본의 논리가 아닌 다른 논리에 의해서 출발해야 하며, 그것이 가능하기 위한 대안적 매체 정책이 나와야 한다. 그러한 정책과 제도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 시민사회영역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앞서 제기한 공동체 라디오 방송의 정책적 쟁점들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공동체 라디오 방송의 정착을 위해서 필수적 조건들이다. 문제는 그러한 쟁점들이 아무런 노력 없이 평화롭게 해결되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이미 수개월 동안 방송위와 정통부의 갈등 속에서 공동체라디오 방송의 방향이 갈팡질팡 해오지 않았는가. 
다른 여러 나라 사례에서 보듯이 공동체 라디오 방송이 합법화 되었던 것은 위로부터의 변화가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지속적인 요구와 투쟁에 의해서였다. 특히, 결론을 대신하여 미국의 공동체라디오 활동가들이 보여준 실천들은 아직 초기 과정에 있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줄 수 있을 것이다.

1996년 미국 텔레커뮤니케이션 법의 제정으로 인해 1934년 법의 제한(한 회사가 소유할 수 있는 라디오 방송국을 단일 시장에서는 최대 2개, 전국적으로는 최대 20개로 한정)을 모두 삭제해버렸다. 즉 단일 시장 내에서 한 회사가 최대 8개의 방송국을 소유, 전국적으로는 무한대로 설립할 수 있도록 보장한 것이다. 결국 상업 방송의 이윤만을 최대로 보장할 수 있게끔 법은 개정되고 지역 방송국이 설 수 있는 여지들은 봉쇄되었다. 
Stephen Dunifer를 비롯한 소출력 라디오 운동가들은 90년대에 들어서 FCC와의 법정 투쟁을 가속화시키면서, 소출력 라디오 방송국의 면허를 허가 받기 위해 애썼다. 법정 투쟁, 시위, 컨퍼런스, 미디어 캠페인 등의 다양한 운동을 진행시켜 나갔다. 1998 10월 4, 5일 수백명의 활동가들이 워싱턴 D.C에 모여 전국 소출력 라디오 컨퍼런스를 개최하고 FCC정책과 기업에 항의하는 활동을 전개했다. 또한 주말에는 새로운 라디오 방송 정책이 논의되는 자리에 활동가를 파견하였으며, 12번 이상의 인터뷰가 이루어졌고, 결국 워싱턴포스트지, NPR, MSNBC 등에 보도되었다. FCC와 NAB를 항의 방문하였으며, NAB 깃발대신 해적 라디오 깃발이 세워지는 일이 벌어졌고, 두 명이 체포되었다.
법정 밖에서는 소출력 라디오 사업자들이 규정을 수정하기 위한 청원활동을 전개하였다. 이 청원을 통해 소출력 방송은 2차 서비스 방송사업자(secondary service stations)이며, 기존의 구조화된 형태의 방송사업에 순응하지 않는 형태의 방송이라고 자신들을 규정하였다. 민주적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전국 변호사 조합 위원회(The National lawyers Guild Committee for Democratic Communications; CDC)는 소출력 라디오 운동을 비상업적이며, 자기 결정적이고, 공익적인 운동이라고 표현하는 입장을 제안했다. CDC 구성원들은 모든 사람들이 문화와 정보에 대해 자기 결정의 원칙에 입각한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을 갖는 권리를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결국, 상업 방송국들의 엄청난 의회 로비에도 불구하고 이런 운동의 결과로 2000년 4월 FCC로부터 소출력 라디오 방송국 설립의 허가를 받았다.

미국의 사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특징은 다음과 같다.
미국의 우선 첫 번째는 소출력 라디오가 합법화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전국적으로 위험을 무릅쓰고 전파를 쏘았던 많은 풀뿌리 운동이 뒷받침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적극적인 실천과 FCC 등 규제기관에 대한 로비 활동도 소출력 라디오 방송을 합법화 시키는데 큰 동력이 되었다. 지역 사회 활동가들이 FCC 규제에 저항하는 무면허 방송을 시작하고 이 방송을 둘러싼 법적 투쟁을 촉발하여 이슈를 표현의 자유의 문제로 끌어 올리고 지역 시민단체들은 FCC 로비를 통해서 필요한 정책적 내용을 확보할 수 있었다.

법정 투쟁 이외에도 매우 다양한 방법으로 소출력 공동체 라디오의 필요성을 알려나갔다. 이는 FCC정책의 변화를 요구하는 행동이기도 하였지만, 미국 전역에 커뮤니케이션 권리를 확보하는 차원에서 소출력 라디오 운동을 알려나가는 홍보 전략이기도 하였다. 그러한 전략에는 시위, 컨퍼런스, 미디어 캠페인 등의 다양한 운동이 포함되었다. 또한 재단의 도움을 받아서 뉴욕타임즈와 같은 매체를 이용하여 광고를 하기도 하였다. 2000년에 뉴욕타임즈에는 소출력 라디오를 지지하는 전면광고가 실렸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미국의 상원의원들이여, 감히 자본의 입장에 서서 이 법안을 지지하려 하는가? 당신이 이 법안을 지지한다면 그것은 범죄와 다름없다.” 이러한 활동은 단지 시민사회단체의 역량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공공성 있는 활동에 자금을 지원해 주는 재단들이 소출력 라디오 운동에 결합함으로써 막강한 FCC와 상업 방송과의 대항해 나갈 수 있었다.
세 번째로 직접 민주주의를 옹호하는 다양한 세력들이 소출력 라디오 운동을 매개로 결합되었다. 다양한 정치적 지향을 가진 사람들이 <라디오를 훔쳐라! Steal this radio!>와 같은 라디오 운동 단체에 참여하여 활동을 하고 있다. 또한 민주적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전국 변호사 조합 위원회(The National lawyers Guild Committee for Democratic Communications; CDC)는 소출력 라디오의 법적 위상 및 정당성을 알려나가는 데에는 기여하였다.
이렇게 미국의 소출력 라디오의 역사는 풀뿌리에서 비롯된 적극적인 실천과 다양한 집단의 연대를 통해 상업 방송국들의 무순한 로비에도 불구하고 FCC 정책의 변화를 이끌어 냈다. 이러한 경험은 공동체 라디오 운동 경험이 전무한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미국의 사례에서 보듯이, 이러한 풀뿌리 기반은 공동체 라디오 운동의 발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필수적인 요소이다. 현재 우리 나라의 경우 라디오 액세스 경험과 인터넷 라디오가 활성화 되어 있기는 하지만, 외국과 같은 공동체 라디오 운동의 경험은 이제막 걸음마 단계이다. 이런 조건에서 상위법에서 공동체 라디오 방송이 제도화 된다고 하여도 실제로 공동체 라디오 방송이 활성화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공동체 라디오 방송국을 설립하는 움직임에서부터 올바른 정책 수립을 위한 지속적인 운동-공동체 라디오를 알리는 활동, 홍보 등-가 필요하며, 지역 사회 단체가 연합하여 커뮤니케이션 권리를 보장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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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10회 연속 화요 공개세미나> - '뉴미디어 난개발! 그 현실과 대안' 中 제5회 '공동체라디오 방송을 통한 시민 미디어 활성화 방안'에서 발표된 발제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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