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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24호 미디어인터내셔널] 라틴 아메리카 미디어 역사의 새로운 국면, 텔레수르 CNN과 알 자지라 사이, 혹은 그 너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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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틴 아메리카 미디어 역사의 새로운 국면, 텔레수르

 CNN과 알 자지라 사이, 혹은 그 너머로...

 

 

 김 희 정 (ACT! 편집위원)

 

 

나치의 만자(卍)가 덧칠해진 성조기가 화면에 펄럭이면서 방송의 시작을 알리는 나레이션이 흐른다. “제국의 압제에서 벗어나 우리의 기억과 역사를 회복합시다.” 곧 이어 목소리는 반제국주의를 부르짖는 합창과 음악에 겹쳐지고 화면이 어두워지면서 개국의 메시지를 띄운다. "텔레수르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1)

 

텔레수르 첫 방송 현장2005년 7월 24일 정오를 알리는 시계와 함께 라틴 아메리카 미디어 역사에 새로운 전기가 될 텔레비전, 텔레수르가 첫 파일럿 방송을 시작했다. 남부의 텔레비전(Televisora del Sur)이라는 이름으로 개국한 이 방송은, 벌써부터 라틴 아메리카의 '알 자지라'라는 평가를 받으며 향후 CNN과 BBC world service, 그리고 최대 히스패닉 채널인 UNIVISION에 대응할 만한 대안 미디어로 부상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문화제국주의에 대항한 전쟁을 시작하다

 

알려진대로 텔레수르는 베네수엘라, 아르헨티나, 쿠바, 우리과이 4개국이 주도하여 출자한 다국적 채널이다. 라틴 아메리카 혁명가 시몬 볼리바르 탄생 222주년을 기념하는 기획의 일환이며 차베스의 야심작으로 알려져 있지만, 애초 이 프로젝트의 제안자는 카스트로였다. 피델 카스트로는 하바나에서 개최된 언론 포럼에서 라틴 아메리카 사영 미디어의 심각성을 역설하면서 민중의 CNN, 라틴 아메리카의 CNN의 필요성을 피력하였고, 차베스가 이끄는 베네수엘라의 주도하에  “상업적인 미디어 제국에 의해 왜곡된 라틴 아메리카의 이미지와 목소리를 되찾는 동시에 라틴 아메리카의 시각으로 남부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탄생하였다.

 

 당분간 '차베스TV'라는 별명을 벗기기는 힘들 것으로 보이지만 어쨌든 베네수엘라 공보장관의 목소리를 빌어 "문화 제국주의에 대항한 전쟁의 새로운 깃발을 꽂은 것"으로 평가받는 텔레수르는, 정치적 격변기에 있는 라틴 아메리카에서 유럽과 미국에 기반한 미디어의 이데올로기적 공세에 대한 일종의 방패막이자 해독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주체 및 운영 구조

 

라틴 아메리카의 통합을 지향하는 다국적 채널이긴 하지만 텔레수르의 실질적 개국 주체는 베네수엘라 정부이다.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정권은 개국에 필요한 초기자본 250만 달러 가운데 70%를 부담했고 그 나머지 30%를 아르헨티나와 우르과이 등이 공동 부담했다. 이를 바탕으로 텔레수르의 지분은 베네수엘라가 51%, 아르헨티나 20%, 쿠바 19%, 우르과이가 10%를 갖는다. 하지만 종자돈의 대부분이 베네수엘라 정부에서 출자되었다는 점에서 편집권과 채널의 독립성에 대한 우려는 무시할 수 없다. 이에 텔레수르의 제작본부장 아아로니안은 국가가 운영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철저히 지킬 것이라고 밝혔다. 다국적 채널을 방증하듯 주요스탭진도 각국의 진보적 저널리스트들로 골고루 배치되었고, 설립 재정을 제외한 2차 재정은 정부가 아닌 다른 스폰서와 각종 투자 유치를 통해 운영상의 독립을 이룰 것이라고 밝혔다.

 

  베네수엘라가 이처럼 텔레수르에 상당한 투자를 하게 된 데는 차베스 정권의 미디어 정책에 크게 기인한다. 지난 몇 년간의 급격한 정치 변동과 불안 속에 차베스 정권은 그 누구보다 대안 미디어의 필요성을 절감했고, 지속적으로 공동체미디어에 대한 지원을 해왔다. 하지만 실상 소규모 대안 공동체 미디어가 일반 대중에게 전달되는 비율을 5-7%에 불과하다는 현실적 한계를 직시하지 않을 수 없었고, 대륙을 관통하는 좀더 대중적인 미디어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물론 지역의 풀뿌리 미디어에 대한 지원에서 거대 미디어 설립으로 눈을 돌린 것에 대한 평가도 뒤따르겠지만, 어쨌든 베네수엘라 역사상 처음으로 석유산업에서 얻은 수익을 민중에게 환원하고, 그 일부를 라틴아메리카 통신통합 프로젝트 진흥에 활용한 것은 고무적이다.

 

프로그램 구성 및 수급

 

 현재 파일럿 방송을 내보내고 있는 텔레수르는 9월부터 본격적인 24시간 방송을 시작한다. 텔레수르가 계획하고 있는 프로그램의 영역은 뉴스, 다큐멘터리, 영화, 여행, 스포츠 등 다양하다.  먼저 뉴스 프로그램은 라틴의 시각으로 라틴 아메리카의 거대한 다양성을 반영하는 관점을 드러내는 데 초점을 맞추는 동시에, 상업 미디어의 레이더에서 빠르게 사라지는 주제들을 사안의 긴박성에 상관없이 그들만의 아젠다로 보도한다. 특히 라틴 아메리카의 시각으로 대륙 곳곳의 뉴스를 전하기 위해 8개의 라틴 아메리카 주요 도시(보고타, 브리질리아, 부에노스아이레스, 카라카스, 멕시코시티, 하바나, 몬테비데오, 라파스)와 워싱턴DC에 지국을 두고 독립매체의 통신원을 활용하고 있으며, 지역의 공동체미디어나 독립 프로덕션도 텔레수르와 유기적인 관계를 맺으면서 뉴스 생산에 참여할 예정이다.

 

 또한 현 라틴아메리카 사영 미디어의 컨텐츠가 대부분 폭력과 섹스가 난무하는 오락과 쇼, 스포츠로 채워져 있음을 직시하면서, 라틴 아메리카 대륙의 본질을 보여주는 각지의 예술, 문화 프로그램을 심층적으로 방영한다. 영화, 음악, 연극, 스포츠, 과학기술, 여행 분야를 다루게 될 프로그램 가운데 특히 라틴 아메리카의 오늘을 살아가는 민중의 삶과 투쟁의 현장을 담은 다양한 다큐멘터리의 방영은 주요한 사업 중 하나다. 텔레수르는 <No Hollywood>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방영할 비-할리우드 영화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작품을 라틴 아메리카 내부에서 수급할 예정이다. 고전, 혹은 현대의 라틴 아메리카 영화와 젊은 감독들의 실험적인 다큐멘터리를 방영하는 동시에, 독창적인 작품을 만들고도 매스매디어의 벽을 넘을 기회가 없었던 무수한 다큐멘터리스트들의 창작물을 연속적으로 방영할 계획이다. 이러한 새로운 컨텐츠를 위해 제작팀은 채널 출범과 함께 'the Factory of Latin-American Contents (FLACO)'라는 프로젝트를 기획하여 존재하는 라틴 아메리카의 시청각 다큐와, 영화 및 독립 프로덕션을 하나로 종합하여 창작자 및 작품을 발굴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제작방식과 영상 구현 방식에 있어서의 변화도 추구한다. 제작본부장 아아로니안은 새로운 채널, 진보적인 컨텐츠의 구현과 관련한 계획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우리는 다양한 방식으로, 이를테면 스타일과 어조, 카메라 무브먼트 등등에서 상업 방송과의 차별화를 시도할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친밀한 어조를 사용하여 시청자들과의 교감을 시도할 것이다. 물론 상업 방송에서처럼 과격한 방식을 취하지는 않을 것이다. 출연자들이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차별화를 할 것이다. 그들은 기자이지 프롬프터를 읽는 인형이 아니다. 우리의 생각은 저널리즘을 제대로 구현하는 것이다. 우리는 카메라에 움직임을 주고, 거리에서 살아 있는 방송을 할 것이며, 새로운 앵글을 시도할 것이다”

 

 차베스TV or 알 볼리바르 or 미완의 실험?

 

라틴 아메리카 미디어운동의 역사에서 텔레수르의 출범은 분명 새로운 국면이다. 대륙의 진보적인 미디어활동가들은 텔레수르의 방송 시작을 저널리스트들의 오랜 숙원이요, 민중들의 투쟁의 성과물이라고 평가했다. 텔레수르 지지자들은 이 채널이 남미의 알-자지라가 되어주기를 바라는 반면, 반대파들은 여전히 차베스의 프로파간다용이라고 맹비난하고 있다. 순조로운 첫 출발을 보인 텔레수르의 실험은 과연 성공을 거둘 수 있을까?

 

우파 세력의 공세

방송국 채널이 출범하기 전에 이미 이 텔레수르는 워싱턴을 비롯한 북미 유럽에서 반미 선전의 도구라는 비난을 받으며 맹공격을 당했다. 미국은 방송이 출범하기도 전에 자국 내에서 베네수엘라로 신호를 보내 방송할 수 있는 방송국 설립이 가능하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고, 베네수엘라 자국 내 반차베스 세력은 그들이 장악한 사영미디어를 활용하여 차베스가 언론을 통제하고 있다고 연일 고발하고 있다. 또한 라틴 아메리카에서 가장 친미적인 정부로 꼽히는 콜럼비아는 뚜렷한 원인을 밝히지 않은 채 자국의 텔레비전 방송(Telecapital TV)이 텔레수르 신호를 위성으로 수신하는 것을 막음으로써 암묵적으로 미국의 움직임에 동조하고 있다. 콜럼비아의 경우는 텔레수르가 콜럼비아의 반군 게릴라 지도자였던마누엘 마루 란다Manuel Marulanda를 비롯한 좌파 지도자들을 조명한 프로그램을 내보낸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지만, 어쨌든 라틴 아메리카의 통합을 지향하며 더 많은 방송 권역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텔레수르 채널의 입장에서는 콜럼비아를 비롯한 여타 라틴 아메리카 국가를 어떻게 끌어들일 것인지를 두고 고심하지 않을 수 없다.

 

민중을 위한, 민중에 의한 거대 미디어의 가능성

일부 진보 진영에서도 또 다른 시각에서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텔레수르 프로젝트는 수십년 동안 싸워온 민중을 위한 분명 매우 의미있고 중요한 성과물이지만 그들은, 진정한 민중의 채널을 지향하는 방송이 "정부와 연계된 일차원적인 이데올로기적 공세와 스탈린적 뉘앙스, 그리고 낡은 좌파적 레토릭"만 풍기고 있지는 않은지 반문한다. 비평가들은 베네수엘라 미디어 정책과 공공문화 정책이 강력하게 카스트로-차베스에 호의적인 편향을 흘러가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그것이 미제국주의의 이데올로기 공세와 정확히 대척점에 위치하면서 동일한 레퍼토리를 강요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한다. 진보 진영의 목소리가 다양하게 분출되지 못하고 좌파 정부의 깔대기로 걸러질 수 있는 위험성을 경계해야 한다는 말이다. 어쨌든 좌파 미디어의 대변자를 자임함으로써 텔레수르의 이러한 현실적 한계는 분명 끊임없이 경계해야 할 약점이다.

 

그래서 여전히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이 되풀이된다. 텔레수르는 과연 그들의 수혜자에게 비판적인 방송을 할 수 있을까. 아하로니안 제작본부장은 말한다. “차베스는 그 자신이 뉴스거리를 만들지 않는 이상 텔레비전에 출연하지 않을 것이다.”  텔레수르의 시작은 일단 장밋빛이다. 하지만 과연 이 채널이 일개 좌파 정권의 목소리가 아닌 진정한 라틴 아메리카 민중의 목소리를 담아낼 수 있을지...텔레수르, 그 미래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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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http://www.guardian.co.uk/international/story/0,3604,1535981,00.html에서 발췌

 

참고 사이트

http://news.bbc.co.uk/2/hi/americas/4713361.stm

http://www.midiaindependente.org/en/blue/2005/08/326554.shtml

http://www.venezuelanalysis.com/news.php?newsno=1697

http://66.102.7.104/search?q=cache:ia-t9vVoC60J:www.vheadline.com/readnews.asp%3Fid%3D44011+telesur&hl=ko%20target=n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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