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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24호 미디어교육] 여성농민, 일 저지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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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24호 / 2005년 9월 1일 

 

 

   여성농민, 일 저지르다!

 조 운 정   ( 부여 여성농민 미디어교육 참여자 )


다소 선정적이고 도발적인 제목으로 우리는 미디어센터에서 실행하는 ‘찾아가는 미디어 교실’의 한 달 간의 교육생이었다. 우리는 농촌에 거주한다는 것과 농사를 크게 혹은 작게 짓고 있으며 농촌의 평균 연령 대에서 다소 비껴나 꽤 젊은층에 속한다는 공통점을 지녔다.나는 십년 전 결혼과 함께 농사를 짓기 위해 시골로 왔으나 지금 생각하면 제대로 농사일을 한 적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아이를 낳고 키우고 살림하면서 농사에 별 재미를 붙이지 못했다. 아이들 키우면서 남편이 하는 일을 도와주는 정도였다. 그러다가 찾은 것이 아이들 독서지도이다. 지금은 나름대로 보람을 느끼며 열심히 일하고 있다. 다만 농사를 지을 때나 독서지도를 할 때나 엄마로서 집안일이나 아이들을 소홀히 할 수 없으므로 늘 고민한다.

      


교육생인 우리는 가끔씩 만나 수다도 떨며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시원함을 함께 한 동지이기도 했다. 농사를 지으면서 또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농촌이라는 테두리에서 느끼는 어려움과 가정에서의 문제까지 선배인 언니들이 다독여주며 힘을 얻었다. 미디어교육을 한다고 해서 친목으로만 흐르던 우리 모임이 무엇인가를 할 기회가 오는구나 라는 기대도 갖게 되었다.사실 미디어라는 말은 자주 들어 생소하지는 않았지만 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 같았다. 순전히 정에 이끌려 시작한 일이었다. 인터넷 활용도 가르쳐준다고 해서 단순한 생각으로 다가섰는데 구체적인 기획안과 커리큘럼을 보니 시간 낭비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첫 수업이나 들어보고 결정하자는 생각으로 수업에 임했다. 그러나 첫 수업은 가슴을 뒤흔드는 무언가를 느끼게 했다.

첫 수업은 미디어를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포토에세이 작업으로 시작했다. 옛날 사진을 가져와서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색 바랜 사진 속에는 촌스런 머리 모양이며 옷차림이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그때의 추억을 고스란히 떠올릴 수 있었다. 전지에 사진을 붙이고 사진설명을 곁들여 짧은 포토에세이가 만들어졌다. 초등학교 1학년생 만들기 시간처럼 흥분하고 들떠 있었다. 이렇게 첫 수업은 시간가는 줄 모르게 지나가고 의구심은 즐거움으로 바뀌었다. 충분한 동기부여가 된 셈이었다.         

영상물을 찍으려면 카메라를 다룰 수 있어야 하므로 조작 방법에 대해 공부했다. 디지털카메라는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아 낯설지 않았지만 비디오카메라는 조금 사는 집(?)의 물건들인지라 아무거나 누르면 안 될 것 같은 조심스러움이 있었다. 어색함도 잠시였다. 둘씩 조를 이뤄 가까이서도 찍어보고 멀리서도 찍어보며 카메라 앞에서 어색한 포즈를 취했다. 난 찍히는 것 보다는 찍는 것이 좋았다. 한 조를 이룬 은심이가 실제 모습보다 훨씬 예뻐 보이는 것도 신기했다.네 컷으로 표현한 이야기를 만들 때는 어떻게 찍느냐에 따라 촬영하는 사람의 의도와는 다르게 엉뚱한 해석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화장실 가는 장면을 표현한다면 화장실로 달려가는 여러 장면으로 하는 것보다 화장실 팻말 하나만 보여주면 보는 사람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영상물은 무엇을 어떻게 찍느냐에 따라 무수한 해석을 가져올 수 있고, 함축되어 살아있는 한 컷을 잡기 위해서 많은 노력과 수고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촬영 전 기획 구성만 확실하게 하면 시간과 노력을 아낄 수 있고 기획의도에 충실한 작품을 만들 수 있음을 알았다. 카메라 앵글 속에 담겨진 사진 한 컷은 또 다른 의미로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농촌드라마를 분석하면서 왜곡되어 보여지는 여성의 역할에 답답함을 느끼기도 했다. 공공방송에서 여성의 역할을 한정되고 의존적인 모습으로 보여 그것을 시청하는 사람들이 그것이 일반적인 이야기인양 느끼게 하는 것은 여성의 지위를 축소하려는 의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카메라 조작이 익숙해질 무렵 우리에게 과제가 주어졌다. 3~5분 정도의 영상물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처음 선생님께서 설명했을 때 ‘만들 수 있을까’하는 막연함이 있었다. 영상으로 표현할 만한 꺼리를 찾지 못하고 고민만 했다. 기획의도를 밝히고 구성안을 잡기까지 무수히 헤매야 했다. 잡아놓은 구성안도 수정에 수정을 거듭한 끝에 내 이야기, 내 주변이야기를 좀더 구체적으로 들어가고자 노력했다.

     


나는 우리 마을을 찍기로 했다. 미디어 영상교육을 통해 앞서 만들어진 작품들 중 자신의 동네를 영상에 담은 것이 내 마음을 끌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아름다운 우리 마을을 알리고 싶은 마음도 있어서였다. 내가 사는 마을은 오지마을이다. 처음엔 적응되지 않던 마을의 고적함이 이젠 나와는 뗄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사방을 둘러싼 산속에 띄엄띄엄 자리 잡은 집들, 그 속에 깊숙이 들어가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이야기로 담고 싶었다. 풍경 위주의 사진들은 한가한 시골의 모습을 담을 수 있지만 치열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왜곡할 수 있어 부적당했다. 우리 마을에 사는 한 인물을 정해 그 사람의 일상을 찍어보기로 하고 가까이 사시는 할머니 한 분을 정해 부탁을 드렸다. 할머니께서는 자기같이 못난 사람을 왜 찍느냐고 만류하셨지만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하셨다. 그리고 틈나는 대로 찾아가 할머니를 따라 다니며 찍었다. 찍은 사진 중에 추리고 밤새 편집하고 음악까지 입히니 그럴듯해 보였다. 제목을 내가 사는 마을 이름을 붙여 “자명골의 7월”이라 정했다.

 농촌은 대다수가 노인이다. 그리고 혼자 사시는 노인들 또한 많은 수를 차지한다. 우리 마을 또한 그렇다. 소외되는 농촌에서 더욱 소외되는 것이 혼자 사시는 노인들이기도 하다. 평생 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도시에 가서 산다는 것도 그들에게는 힘든 것이다. 내가 촬영한 할머니도 평생 농사를 짓고 지금도 언제 올지 모를 자식을 위해 텃밭을 가꾸시는 분이다. 누구에게나 어머니가 있고 어머니는 내 마음의 고향이기도 하다. 어머니의 마음이 담겨있는 영상물을 만들려고 노력하였다.영상물 시사회를 하면서 우리는 참 뿌듯했다. 뭔가 어려운 일을 해낸 기분이었다. 함께 모임을 한 사람들과 다 같이 하지 못해 아쉽기는 했지만 지속적으로 미디어에 대해 공부를 하면서 역량을 넓히고 싶다. 기회가 되면 공동으로 기획하여 영상물을 만들고 싶다. 다만 제작에 필요한 기구들을 갖추고 있지 못해 어려움이 있겠지만 뜻이 있는데 길이 있으리라 믿고 정기 모임을 통해 관심을 높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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