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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26호 미디어교육] 역전 떨꺼둥이, 미디어 반란을 일으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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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전 떨꺼둥이, 미디어 반란을 일으키다!

                                                                                                             

                                                                                                   장 호 경 (영상활동가)

 

  

부쩍 날씨가 추워졌다. 이렇게 찬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쯤이면 각 방송사에서는 앞다투어 노숙인 문제에 대한 르포물들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서울역 찬 시멘트 바닥에서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짐승처럼 잠을 청하고, 술에 취해 싸움을 하거나, 지나가는 ‘선량한’ 시민들에게 해코지를 하는, 이 사회의 골칫거리. 무한경쟁 시대의 낙오자들. 

 

“일 하기 싫어하는 게으른 인간들!”

“저런 것들은 다 강제수용 해 버려야 돼!”

 

이것이 우리 사회가 바라보는 노숙인들의 모습이다. 방송에서 이게 문제다 저게 문제다 뭔가 그럴싸하게 포장해서 정부 정책의 문제점들을 지적해도, 그것을 본 사람들의 머리 속에 박히는 건 이 사회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불쌍한 진상들일 뿐이다.

그러나 그것은 정부가, 이 자본주의 사회가, 그리고 그들과 암묵적 동지관계인 주류 미디어가 만들어 놓은 ‘덫’에 걸린 우리의 다른 모습일 뿐이다.    

 


가난한 이의 밤

 

내가 노숙인 아저씨들을 처음 만난 건 작년 여름이었다. 빈곤 문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할 무렵, 우연히 7박 8일 동안 진행되는 여름빈민현장활동을 촬영하게 되었다. 그 때 빈활에 참가한 노숙인 당사자 모임 아저씨들이 내가 처음 만난 노숙인이었다. 나 또한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였기에 처음 대면하는 노숙인분들이라 두렵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어떻게 대해야 할지, 호칭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처신할 바를 몰라 잠시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그 와중에 “아저씨들은 될 수 있으면 얼굴 안 나오게 찍으세요.”하고 부탁하시는 노실사 (노숙인 복지와 인권을 실천하는 사람들) 문헌준 대표님의 말씀은 나를 더욱 더 긴장시켰다.

새삼 이렇게 아저씨들과의 첫 대면을 꺼내놓는 이유는 바로 그 때의 내가 모르고 있었던 것, 그리고 경험해보지 못했기에 감히 안다고 말하지 못하는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다. 그것은 바로 거리에서 가난한 밤을 보내야만 하는 노숙인들의 삶이다.

사회 양극화가 화두다. 대통령까지 스스로 나서서 빈곤의 문제, 사회 양극화의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난리다. 그것은 요즘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빈곤의 문제가 단순히 개인의 문제로 치부해버릴 수 없는 문제라는 걸 저들 스스로 말해주는 것이다.

대개의 노숙인들도 그러한 구조적인 문제에서 탄생한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가난해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기 때문에 저숙련, 저임금의 불안정한 노동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지금은 잘 대접받지 못하는 사향산업 종사자인 경우가 많다. 그러한 노동시장에서의 배제는 결국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기 몸 하나 뉘일 방 한 칸도 가지지 못한 노숙인으로 전락하게 만든다. 그렇지 않은 경우라 해도 개인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건 마찬가지다. IMF 이후 경기침체와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인한 사업실패, 실직, 그로 인한 가정해체, 도시개발로 인한 주거지 상실 등등 사회의 다양한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배제와 소외의 고리, 고리 마다 노숙인들의 사연이 담겨져 있다.

그러나 사회에서 이것은 어디까지나 그들 개인의 책임일 뿐이다. 그들이 게을러서, 이 경쟁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바보라서 그렇게 된 거라고 손가락질하고, 미디어에서는 그것을 은근히 부추긴다. 술에 취해 역사를 어지럽히는 모습을 반복적으로 보여주고, 먹고, 입고, 자고,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모든 기본권에서 배제된 노숙인들이 어떻게 하면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이들을 잘 관리할 수 있을 것인가에만 촉각을 곤두세운다.

실제로 당사자들을 만나보면 카메라에 굉장히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쉼터나 쪽방을 왔다 갔다 하며 노동하면서 열심히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꼭 저런 것만 보여줘서 사회적으로 ‘노숙자’하면 격리시켜야 할 대상으로 여겨지도록 만드냐는 것이다. 또 가끔 인터뷰 같은 걸 해도 자기들 마음대로 내용을 바꿔버리고 아주 다른 쪽으로 묘사를 해 놓는다는 것이다. 주류 미디어에 비춰진 자신들의 모습이 너무나도 왜곡되어 있는 것에 분노하고 있었다.

 

 

반란이 시작되다 

 

이번 노숙인 미디어 교육은 노실사와 문화연대에서 공동으로 진행하는 노숙인 문화체험 워크샵의 한 부분으로 미디액트의 찾아가는 미디어교육으로 이루어졌다. 노숙인 문화체험 워크샵은 문화로부터 배제된 노숙인들에게 문화체험의 과정을 통해 사회와 소통하는 기회를 마련해보자는 취지에서 시작되었다. 영상 교육 참여자분들은 노숙인 당사자 모임 여섯 분, 비전트레이닝센터(알콜 치료센터)에서 한 분, 모자가정쉼터에서 한 분 이렇게 여덟 분이었다.

그런데 막상 교육 준비 과정에서 만난 참여자분들은 이미, 앞서 말한 주류 미디어에 대한 거부감에서부터 출발하고 있었다. 지하철 역사를 중심으로 한 시끄러운 ‘그림 되는’ 노숙인들의 모습이 아니라 정말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다른 노숙인들, 자신들의 진짜 모습을 이야기하고 싶어 했다. 이거야 말로 정말 ‘그림 되는’ 교육 아닌가. 자신이 직접 카메라를 들고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단순한 체험이 아닌 실천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이 샘솟았다.

 

 

 

- 교육 과정

그러나 언제나 결론으로 가기 위한 과정은 그리 만만치 않다. 특히, 기대가 클 때는 더욱 그러하다. 이번 교육은 총 8회차, 4주에 걸쳐서 실시되었는데 이 기간 동안 기초 영상 이론에서부터 촬영, 편집, 완성까지 가기에는 터무니없이 짧았다. 또한 총 8명의 당사자분들 가운데 컴퓨터를 그나마 조금 만질 줄 아는 분은 세 분, 컴퓨터 켜고, 끄는 것조차 모르는 분들도 계셨다. 게다가 한글에 서투신 분에 아예 모르시는 분까지... 그리고 영어는 사용 금지. 막막했다.

욕심내지 않고 천천히 가기로 했다. 어차피 기술을 가르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니 표현할 수 있는 아주 기본적인 것들만 이야기하기로 했다. 당사자분들이 카메라나 컴퓨터에 질려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데 부담을 느끼시지 않도록 편안한 수업 분위기를 만드는 것에 더 집중했다. 그리고 노숙인인권공동실천단 송화영 활동가와 프로메테우스의 강준상 기자님까지 영입해서 거의 1:1로 진행되었다.


- 촬영과 완성

수업이 진행되는 가운데 기쁜 일이 있었다. 교육 참여자분 가운데 남산에서 거리 노숙하시는 두 분이 노실사에서 운영하는 사랑방으로 들어가시게 된 것이다.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외관상 보기 안 좋다는 이유로 거리 정비에 들어간 남산 측의 외압에 며칠간 잠자리 걱정을 하시더니 전화위복이라고 사랑방으로 들어가시게 된 것이다.

이렇게 노숙인들은 주거가 일정치 않고, 연락처도 불분명하기 때문에 생활적인 면에 있어서도 안정적이지 못하다. 사람을 모으는 일도, 챙기는 일도 그리 쉽지 않다. 다행히 이번 교육에 참여하시는 분들은 앞에 두 분을 제외하고는 다 쉼터나 사랑방에서 생활하시는 분들이고 워낙 열심히 하셔서 그런 걱정이 기우로 작용하긴 했지만 그래도 촬영 실습을 할 때는 조심스러웠다. 카메라를 일주일 동안 빌려드리고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에 맞추어 촬영을 해오시게 했다. 대개가 밤에 활동하시는 일이 많고 쉼터 같은 경우도 워낙 변수가 많은 곳이라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 역시 기우였다. 촬영해 오신 내용물들을 보고 있자니 내가 너무 관성에 젖은 것이 아닐까하는 반성이 들었다. 물론 촬영은 엉성했지만 다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인지에 대한 고민들을 많이 하신 듯 했다.

여기서 잠깐! 많은 사람들이 노숙인에 대해 갖고 있는 가장 큰 편견 중의 하나, 노숙인들은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숙인들도 노동을 한다. 단순 노무직에서 경비, 각종 아르바이트, 여러 종류의 다양한 비공식 노동들까지. 그 중에 하나가 바로 고물이다. 리어카를 끌고 여기 저기 폐지나 신문, 박스들을 주워 파는 것이다. 1킬로에 50원 60원 하는 것들을 주워 팔고, 담뱃값에 차비 정도 버는 수준이다.

촬영해 오신 것들 중에는 이렇게 밤마다 고물을 하는 노숙 동료의 모습을 찍어오신 분, 노숙인 당사자 모임이 속해 있는 노숙인인권공동실천단의 활동 모습을 찍어오신 분, 꽃이나 새, 할머니, 아이들 같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담아오신 분, 대개가 가정 폭력을 피해 온 사람들의 쉼터이기 때문에 외부에 공개하기 어려운 쉼터의 생활을 찍어오신 분, 고아로 자란 자신의 꿈인 가족들의 나들이 모습을 찍어오신 분,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아주 솔직하게 담아오신 분... 정말 다양하고 소중한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었다.

그리고 힘들었던 편집 과정을 거쳐 드디어 완성!

내부 시사회를 할 때는 모두가 들뜬 기분으로 서로의 작품을 보며 같은 노숙 동료임에도 알지 못했던 서로의 속사정들을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역전 떨꺼둥이, 미디어 반란을 일으키다!

 

교육이 끝나고 미디액트에서 영상 시사회를 가졌다. 당사자분들 주변의 지인들과 노숙인 문제에 관심이 있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8주 동안의 결과물을 보았다. 반응은 좋았다. 영상 하나 하나에 담겨진 당사자들의 목소리에 저마다 투박한 진솔함이 담겨 있었기에 그 어떤 잘 만든 다큐멘터리보다도 큰 힘이 있었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씩 교육을 같이 했던 사람들이 모여 정기 모임을 갖고 앞으로의 활동 계획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했다. 영상을 어떻게 써먹을 수 있을지에 대해 같이 의논도 하고 공부도 하는 그런 모임이다. 11월달부터는 프리미어도 배우기로 했다. 교육할 때는 윈도우 무비메이커로 교육을 했는데 좀 더 세밀한 작업을 할 수 있는 걸로 가르쳐 달라고 하신다. 또 쉼터나 노숙인 당사자 모임 같은 자신이 속한 공간에서 영상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다음에는 무슨 이야기를 할까 고민도 하고 계시다.

 사실 이번 교육의 비공식적인 목표 중에는 노숙인 당사자 활동가들을 양성하고자 하는 바도 컸다. 노숙인 운동이 당사자 주체의 운동으로 그 힘을 키워나갔으면 하는 바램으로, 영상이 하나의 운동의 매개체로써 그러한 계기를 마련해 줄 수 있다면 그걸로 좋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언제나 그렇듯 경험하기 전에 머리 속에서만 열심히 그리고 재단하는 뻔한 로드맵일 뿐이다.

내가 머리 속으로 이런 뻔한 로드맵을 그리고 있을 때 당사자분들은 한글도 모르면서 훌륭한 제목을 만들어내고, 영어의 대문자와 소문자도 구별하지 못하면서 REC/STOP 버튼을 번갈아 가며 누르고, 컴퓨터도 켤 줄 모르면서 편집 과정을 소화해냈다. 그리고 당장 없어질 지도 모르는 누추하지만 소중한 공원 한 구석 자신의 잠자리를 걱정하면서 카메라를 들었고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자신의 결과물을 보며 슬쩍 눈물을 훔쳤다. 당사자분들로 하여금 그런 열정을 가지게 한 각자 각자 마다의 그것이 내 뻔한 로드맵에 기름칠을 하고 제대로 된 길로 갈 수 있도록 안내해 주지 않을까.

우리의 8주는 ‘반란’이라고 이름 붙이며 거창하게 시작됐다. 앞서, 그것이 다 이루어진 것처럼 이야기했지만 사실 뭐 이름처럼 대단한 ‘반란’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8주의 과정 동안 무엇이 제대로 됐으리라는 생각은 애초에 욕심이다. 그러나 그 열정 하나 하나가 반란이 되기 위한 그 무엇은 됐으리라.

편견은 ‘다름’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러나 그것은 제대로 된 출발이 아니라 가도 된다는 신호가 떨어지지 않은 예측출발이다. 그리고 편견을 깨는 것은 바로 그 ‘다름’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고, 그것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그 동안 사회 속에서, 주류 미디어 속에서 천덕꾸러기로, 역전의 무법자로, 관리해야할 대상으로 여겨져 왔던 노숙인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꺼내 놓았다. 걔네들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도 좀 들어봐 달라고. 이제 막 1라운드를 끝내고 다시 2라운드를 준비하고 있다.

한 10라운드쯤 가야 그나마 예측출발이라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한 20라운드쯤 더 가면 정말 ‘반란’을 일으킬 수 있지 않을까? 사회로부터, 가진 자들로부터 빼앗긴 자신들의 권리를 당당하게 되찾아올 수 있는 그런 진짜 ‘반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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