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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27호 돌고돌고돌고] [삼천포기행] DRM, 조낸 막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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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 acteditor 2016. 8. 17.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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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포기행] DRM, 조낸 막는 거다.
 
金土日 (www.449project.com / 22세기형 엔터테이너)
모순(矛盾)
 

 

리눅스를 개발한 리누스 토발즈의 모습이다. 사람들은 이 사람을 해커라고 부르기도 한다. 컴퓨러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해커와 크래커를 구별하는데, 저널에서 통용되는 해커들은 사실상 크래커라고 불려야 한다는 거다.

이 단어, 다들 잘 알고 계시리라 믿는다. 한문이나 국어 시험 때 종종 등장하는 어휘이자 내 마음 안에도 항상 우글득시글대고 있는 어떤 것들을 표현해 주는 고사성어(故事成語)니 말이다. 이 뿐이랴. 이해관계가 얽히고설키는 인생의 모든 길목에서 우리는 이 단어를 마주하게 마련이다. 막는 자가 있으면 뚫는 자가 있는 법. 수천 년에 이르도록 이 말이 쓰이는 것은 세상이 다 그럴 만한 까닭이다.

혹시, DRM에 대해 알고 계시는가? 잘들 모르실 게다. DRM은 PC와 온라인을 비롯한 여러 가지 디지털 장치들이 손쉽게 복제되고 전파되는 것을 막기 위해 고안된 어떤 자물쇠 세트 같은 걸 말한다. [Digital Rights Management]를 줄여서 부르는 이름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막는 자’에 해당되는 것인데, 당연히 그 맞은편에는 ‘뚫는 자’가 서 있다. 일반 신문이나 보통 사람들은 그 뚫는 자를 일컬어 ‘해커’라고 한다. DRM을 음악에 빗대어 단순하게 말하면 ‘돈을 내지 않으면 음악을 못 듣게 하겠다’는 어떤 족쇄 같은 거다.

DRM은 소비자들을 제약하는 의미 이외에 경쟁사와의 배타적 패권싸움이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 가령 세계시장에서 가장 성공한 온라인 음악가게 애플의 아이튠스[iTunes]의 경우 거기서 구입한 음원은 같은 회사의 플레이어인 iPod로만 들을 수 있다. FairPlay라는 이름의 애플 고유 DRM 때문이다. 따라서 음악 청취자들이 iTunes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iPod라는 고가의 기기를 덩달아 구매해야 한다. 실제 애플은 공격적인 이벤트 등을 통해 음원 사업 자체로는 손해를 보고도 iPod를 통해 커다란 영업 성공을 이루었다. 마치 영화관이 관람료보다 팝콘을 팔아서 더 많은 돈을 버는 것과 비슷하기도 한데, Apple은 이처럼 DRM을 이용한 독점적 비즈니스를 통해 경쟁 상대들을 제압하고 전 세계 시장의 80% 이상을 석권하였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 구닥다리 테이프 시절, 호환마마같은 DRM의 호환성 걱정은 해 본 일이 없다.

자본의 입장 혹은 음원 제작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DRM이야말로 완전 소중한 자물쇠였겠지만 그들과의 이해가 엇갈리는 상당수 청취자들에게는 완전 짜증의 족쇄가 바로 DRM이기도 하다. 굳이 공짜가 아니라도, 그냥 편하게 삼성에서 사서 엘지로 듣고 소니에서 사서 파나소닉으로 듣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했던, 또 CD로 사서 PC로 듣고 MP3로 코딩하여 듣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웠던 청취자들에게 DRM은 커다란 불편함과 불이익을 안겨주는 것이었다. 또한 DRM이 장착된 CD는 오로지 CDP에서만 돌아가기도 했다. iTunes와 iPod의 관계처럼 특정한 사이트에서 구매한 음원은 특정한 기기만을 요구했다. DRM은 호환성이라는 소비자 권리 존중의 가치보다 독점이라는 개별 기업가의 권리를 향해 자꾸 걸음을 내딛으려 했다. 물론 사람의 욕심 때문이었다. 음원 권리자들이 그들의 제한적 권리를 무제한적으로 영원히 통제하고 싶어 하는 욕망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댓가로 불편함을 치루고 있는 많은 이들에게 업계의 DRM은 지나친 욕심으로 느껴졌다. 방패를 뚫고자 하는 창의 끝도 더욱 날카롭게 벼리어져 나갔다.

 
DRM, 묶는 능력에 문제가 있다
 

“뚫렸다!”는 탄성 혹은 탄식. 요즘 들어 뉴스 제목에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단어다. DRM을 향한 업계의 노력이 강화되면 강화될수록 이런 제목의 뉴스는 더욱 빈번하게 들려온다. 개발 속도에 박차를 가하면 가할수록 뉴스의 이런 헤드라인 역시 더욱 빠르게 등장한다. 업계에서 보면 ‘재앙’ 카테고리의 뉴스지만 네티즌들에겐 ‘훈훈한 감동’ 카테고리다.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게 되었다’는 뉴스가 오랜 인고의 세월 끝에 나타나곤 하지만 기쁨도 잠시, ‘허사가 되었다’는 뉴스가 1분 후 동점골처럼 등장하는 것이 요즘 세상이다.

 

Start부터 출발하면 미로를 찾는 데 오래 걸리지만 선물부터 역으로 찾아나가면 미로가 쉽게 풀린다. 어렵게 만들어진 DRM이 쉽게 뚫리는 이유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온라인에서의 복제 문제가 냅스터로 대표되었던 것처럼 음악 산업에서 DRM이라는 것은 오래도록 중요한 화두로 등장했다. 일반 CD에 담겨 있는 에러 정정 코드를 제거해서 음반의 복제시 열화가 뒤따르도록 했던 것이 오디오CD에서의 소극적 DRM이었다면 CDP가 아닌 PC등의 장치로는 아예 읽어 들이지도 못하게 만들었던 Sony 레코드 등의 DRM은 지나치게 적극적인 방패질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DRM들은 소비자의 권리 제약을 논하기도 전에 정말 어이 없이 뚫려버리고 말았으며, 그건 이런 식이었다. 하나는 DRM이 걸린 CD를 CD드라이브에 넣을 때 문이 사르르 닫히는 순간 스페이스바를 한 번 치는 방법이었다. 허탈. 또 하나는 CD를 뒤집어 놓고 뒷면의 가장자리를 유성펜으로 쭉 그어 주는 것이었다. 또 허탈. 적잖이 웃긴 상황이지만 이렇게 해서 엄청난 투자를 통해 만들어진 최근의 오디오CD DRM들은 모두 무력화되고 말았다.

 
DRM, 묶는 매너에 문제가 있다
 

 

저작물의 권리를 지킨다는 것은, 공정 이용의 권리를 지키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많은 DRM의 개발 과정을 보자면 이러한 원칙에 대해서는 안중에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회적 합의가 건강하게 이루어질 턱이 없는 원인은 편향된 DRM의 개발 과정 속에도 깊이 숨어 있다.

음악이나 영화는 물론 방송까지도 디지털로 옷을 갈아입게 되면서 DRM을 전방위적으로 관철시키려는 업계의 욕망은 날로 커져가고 있다. 이건 단지 욕심의 차원은 아니고 자칫하면 자신들의 기반이 완전히 무너질까 하는 걱정도 담겨 있는 것이다. 그러나 DRM의 무리한 적용은 곳곳에서 소비자들의 권리와 충돌하고 있다. 지난해 프랑스에서는 DRM 장착 오디오CD가 소비자들의 정당한 사적 복제의 권리를 침해한 것이라며 소송이 진행되어 지금 판결을 기다리는 중이다. 소비자의 권리보다 자본의 이익을 노골적으로 편드는 미국에서도 올 여름 방송사들이 DRM을 통해 시청자들의 프로그램 녹화 권리를 통제하겠다고 크게 오바했다가 완전 낭패를 보기도 했다. DRM은 아니지만 일본에서는 지난해 음반 회사들이 자신들의 음원을 특정 사이트에서만 서비스하겠다고 했다가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법의 제재를 받기도 했다. 독점 공급은 소비자들의 불편을 가중시킨다는 이유였다. 이러한 소송은 곳곳에서 Apple의 iTunes를 향해 벌어지고 있기도 하다.

음반사들이 소비자의 권리를 가장 우습게 여긴 사례는 요 며칠 사이에 등장했다. DRM을 가장 강력하게 추진해 왔던 Sony에서 유성펜 긋기에 얻어맞은 이후 절치부심 끝에 지난 10월에 등장시킨 새로운 DRM이 바로 그것이다. 방패가 창을 당하지 못하니 급하게 트로이목마를 적진에 투입한 것이다. 그러나 이건 바로 지난주에 ‘무효’ 처분을 당하고 말았다. 아마 DRM 사상 가장 불명예스런 일이 되었을 텐데, Sony는 전 세계의 음반 소비자들에게 사과 성명을 발표하고 ‘없던 일’로 하자고 했다.

 

소니가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을까. 디지털 시대, 디지털이 재산이요 미래라면 소니는 디지털 시대의 강도가 되어버린 것이다.

Sony가 윤리적으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던 거다. 그게 세계적으로 훌륭한 발명이든 아니든, 법조문의 구속력이 미치든 말든 업자의 최소한의 양심으로서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는 것인데 말이다. Sony는 눈앞의 이익을 위해 소비자들의 PC에 함부로 악성 코드를 심는 파렴치한 방법을 택했던 거다. 그들이 지난달에 만든 DRM 장착 CD는 PC로 구동시키는 순간 ‘rootkit’이라는 악성 코드를 ‘주인 몰래’ 개인 PC에 심어버리도록 만들어 둔 것이다. Sony가 소비자들에게 넘겨준 CD의 복제 권리를 다시 빼앗아 올 수 있도록 고안된 것이라는 점도 문제였지만 ‘rootkit’이라는 프로그램은 타인 PC의 사적 정보를 노리는 온라인의 무법자들에게 더 없이 좋은 보호막으로도 악용되는 것이었다. 누군가가 Sony의 DRM이 걸린 CD를 샀다면 그는 자신의 개인 정보를 모두 도둑맞을 가능성까지 덤으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받아야 했던 것이다. 다행히도 어느 해커에 의해 이러한 Sony DRM의 정체가 밝혀지고 안티바이러스 회사들이 그들의 DRM을 바이러스로 분류해 버리자 Sony는 부랴부랴, 혹은 눈물을 머금고 또 다시 DRM을 철수시켜야만 하는 슬픈 처지가 되었다.

 
DRM, 인간을 먼저 생각하는 거다.
 

아무리 방패를 만드는 게 운명 같은 일이라 하여도 막아서 될 일과 막아서는 안 될 일들이 있는 법이다. 국내의 경우 몇 십억 덩치의 소리바다와의 싸움이 끝나기도 전에 음반 제작자들은 몇 백억 덩치의 벅스뮤직과 싸움을 벌여야 했다. 그리고 그 싸움이 끝나기도 전에 수천억 덩치의 MP3폰과 싸움을 벌여야 했다. 지금은 벅스와의 분쟁도 해결되고 이동통신사와도 지엽적 차원의 분쟁만이 남아 있어 행여 안심할 지도 모르지만 그보다 더욱 엄청난 규모를 자랑할 거대 공룡과의 싸움이 또다시 다가오는 중이다. 디지털 방송이 자리 잡으려는 것이다. 디지털 전송,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채널 숫자, 디지털 플레이어의 캡춰 기능이 이제 새로운 삼각편대가 되어 음반 산업에 융단폭격을 가할 것이다. 세상엔 막아야 하지만 도무지 막을 수 없는 일들도 있는 거다. 사람들은 그런 걸 순리(順理)라고 부르기도 한다.

 

아직 소리바다까지는 못 갈지라도 최소한 푸른바다[Blue Ocean]까지는 같이 힘을 합쳐 힘차게 노 저어 전진해야 하지 않겠는가.

일반 사람들의 상상력과 생활의 습관을 통제하겠다는 발상은 지극히 위험한 것이며 손에 총과 칼을 들고 있지 않은 이상 성공 가능성도 지극히 낮다. 통제의 야심에 맞서 전 세계에서 무차별적으로 겨누어지는 수천만 창끝을 버텨낼 방패를 만들 능력이 없다면 야심을 버리고 타협과 상생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 순리다. 자유로운 복제 문화가 일상화된 시기, 패키지를 고집하지 않고 온라인의 망망대해에서 그야말로 ‘블루 오션’을 개척했던 게임 회사들은 통제와 독점의 DRM만을 갈망하는 음악업계의 좋은 반면교사가 될 수 있을 거다. 또한 개발된 소프트웨어를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이들과 상업적으로 사용하는 이들을 분류하여 개인용은 제한 없이 사용을 인정하고 상업적 용도로 쓰는 이들로부터 돈을 받는 메커니즘을 구현한 몇몇 소프트웨어 회사들도 피를 흘리지 않는 진정한 장수의 면모를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 디지털 시대, 참된 DRM은 무언가를 꽁꽁 묶어 금지를 통해 의사를 관철시키는 방패 만들기를 통해서가 아니라 창과의 화해를 도모하는 열린 마음을 통해서 관철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을 배제하는 DRM은 결코 인간 사회에 뿌리내릴 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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