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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18호 돌고돌고돌고] 아! MP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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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18호 / 2005년 2월 28일 

 

 

아! MP3~

 (1)

 

 

金土日 (22세기형 엔터테이너, www.449project.com)

 

 

 

1999년부터 2000년에 걸쳐, 인터넷을 가장 뜨겁게 달구었던 존재는 주지하다시피 <냅스터 Napster>였다. P2P라고 불리는 파일 공유 기술의 존재와 의미, 힘을 대중적으로 전파하고 각인시켰으며, 오프라인의 수많은 법령과 강제들이 냅스터로 인해 한 순간에 우스갯거리가 되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은 냅스터의 미래가 온라인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라고 떠들어댔다. 그러나 냅스터가 문을 닫은 지도 벌써 5년쯤은 더 된 것 같은데 미래가 결정되기는커녕 질서는 점점 더 복잡하고 우발적인 문제들과 만나야 했다.

 

 

자유로운 정보공유 문화는 점점 위축되어 가는데 정보공유의 당대적 키워드라고 할 수 있는 P2P는 비교적 보수적일 가능성이 있는 법원으로부터 지속적으로 ‘정당한 것’으로 판결을 얻어내고 있다. 그럼에도 정보공유의 문화가 계속 위축되고 있는 것은 오프라인의 낡은 논리가 인터넷으로 자꾸만 기어들어오기 때문인 것만은 아니다. 외려 한심하게도 오프라인에서보다도 더욱 낡고 치졸한 논리를 만들어서 온라인에 적용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그 논리의 핵심은 ‘온라인에서는 사적 영역 없다’는 걸로 표현될 듯 하다. 간단히 말해서 P2P와의 싸움에서 연전연패한 구시대의 피플들이 최후의 수단으로 ‘눈 가리고 아웅’보다도 유치한 ‘P2P 없다’ 전술을 채택한 것이다. 개인 블로그건 싸이건 홈피건 간에 남의 것 퍼다 놓으면, 사적으로 복제를 실행하면 반칙이라는 것이다. 아니 사적 복제란 것은 없단다. 범죄자란다.

 

 

사적 영역이란 무릇 저작권법상 창작자들의 이익 보호가 소비자의 정당한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하지 못하도록 법적으로 자유로운 복제와 향유의 공간으로 규정된 곳이다. 그러나 업자들은 이러한 최소한의 법령을 어길 수는 없으나 소비자들의 정당한 권리를 빼앗으려는 의지에 대해서는 눈꼽만큼도 변화가 없는 까닭에 이처럼 ‘P2P 없~다’ 혹은 ‘사적 영역 없~다’와 같이 말도 안 되는 플레이를 펼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꼭 한 가지 알아두어야 할 것은 온라인은 복제를 통해 생성되는 세계란 사실이다. 네트워크 세계라는 것 자체가 누군가의 서버에 있는 정보가 나의 접속과 동시에 내 PC를 통해 복제되는 순간 생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심한 것은 이처럼 말도 안 되는 ‘눈 가리고 아웅’ 전술이 요즘 먹혀들고 있다는 것이다. 어이가 없다. 저작권법이 넘어서는 안 될 선을 자꾸 넘으려 하고 있다. 그리고 가끔은 진보 혹은 개혁적인 것처럼 자신을 드러내는 창작집단들도 이러한 말도 안 되는 플레이에 슬쩍 편승하려는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있어 어이없음은 두 배가 된다.

 

 

말이 길었다. 이러한 논란과 사회적 혼란이 음악적 영역에서는 모두 MP3를 그 표상으로 삼아 왔기에 서두에 시절타령을 좀 길게 늘어놓았다. 죄송. MP3는 이처럼 당대의 모순과 갈등을 집약적으로 보여줄 뿐만 아니라 음악적 영역에서 보더라도 역사적인 모순과 갈등, 그리고 진보의 다양한 내력을 제 한 몸에 그득그득 채워둔 존재라 할 수 있다. 의미가 적지 않은 놈이라 이 말이다.

 

 

열을 살짝 식히고서 좀 건조한 분위기로 돌아가자. 이젠 <지식in>, <지식발전소>등을 통해 누구나 접속 가능한 정보가 되어버린 것이 MP3의 유래와 역사 등이다. 따라서 지금 그걸 여기 써야 되는 거야, 말아야 되는 거야. 킁킁. (ㅡ,.ㅡ;)  장난쳐서 죄송. 거기다 썰렁하기까지 하므로 두 배 죄송.

 

 

MP3을 풀어쓰면 <MPEG Audio Layer-3>이 되고, MPEG을 풀어 쓰면 <Moving Picture Experts Group>이 된다. 즉, MP3라는 것은 효율적인 동영상 압축을 위해 MPEG에 의해 개발된 오디오 레이어 가운데 세 번째의 것이란 말씀. VIDEO 한 편을 CD 한 장에 집어넣을 목적으로 고안된 것이었으므로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MP3 주연 무협 드라마’는 딱히 의도된 건 아니었던 셈이다. <비아그라>와 같은 다른 ‘위대한 발명’들 역시 그러했듯이 말이다. 오늘날 MP3로 표상되는 어떤 것을 위해서는 World Wide Web, Hypertext, P2P, 고속통신망 등의 조건들이 더 필요했다.

 

 

 

MP3의 출생

 

 

 

흔히 MP3의 음질을 두고 CD급의 음질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는 그리 타당한 이야기는 아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한다면 5백 원짜리 온보드[On board] 사운드카드와 5백만 원짜리 오디오카드의 해상도가 같지 않은 것과 같은 이치라 하겠다. 같은 16Bit, 44.1MHz, stereo의 스펙이라 하더라도 소리의 차이는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한편, CD급이라는 표현은 최상급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현재 상대적으로 가장 무난한 수준이란 말뜻이기도 하다. MP3의 음질이 엄밀히 말해서 CD의 음질과 동등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어쨌든 ‘그 정도면 됐다’ 쯤은 된다고 볼 수는 있는 것이다. 어차피 오디오 매니아가 아닌 다음에야 보통 사람들이 음악을 듣는 환경은 대개 거기서 거기이며 오디오 장비들도 거기서 거기인 까닭이다. 전철에서 길에서 이어폰으로 듣는 음악은 CD와 MP3의 구별을 논하기엔 어딘가 쑥스러우며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10만 원 전후의 CDP들의 경우 CD의 해상도를 온전히 구현해 내기에는 한참 딸리는 오디오 기기인 까닭이다. 더구나 테이프를 통해서도 음질에 대한 불만 없이 즐거운 음악 생활을 유지한 사람들이라면 MP3의 음질은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MP3를 만드는 기술의 핵심은 음향심리학이다. 사운드는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파일 압축 기술에 의한 압축 가능성이 거의 없는 까닭에 용량을 줄이려면 사람의 심리를 이용한 기술적 적용이 필요했다. 예컨대 총소리를 듣고 나면 한동안 귓구멍이 멍하고 띵한 것이 다른 소리들이 잘 들리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큰 소리 뒤에 등장하는 작은 소리들은 잘 들리지 않는다거나, 또 큰 소리가 날 때 그 인접 주파수의 소리들은 거의 색깔을 드러내지 못한다거나 하는 등의 생리적인 반응과 청각적 습관을 응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못 듣는다’고 판단되는 부분, 사실상 못 듣는다기보다는 청각이 소홀하게 다루는 범위의 소리들을 과감하게 삭제해 버리는 처리법을 사용한다. ‘든 사람은 몰라도 난 사람은 안다’고 했던 것처럼 소홀히 했던 부분이 삭제되는 순간 어떤 사람들은 ‘허하다’고 말하게 되고 어떤 사람들은 ‘괜찮네’라고 말하게 되며, 허한 것과 괜찮은 것 사이에서 별 영양가 없는 자랑과 구박이 무한루프식 논쟁의 형태로 벌어지곤 한다.


이처럼 MP3는 편의성과 경량성을 주요한 장점으로 취하는 반면 사운드의 질적 발전에 역행하는 단점을 지닌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편의성은 양적 발전을 가져오게 마련이고 그것은 결국 전체적인 질적 발전으로 귀결되게 마련이다. MP3와 마찬가지로 사운드의 일시적인 질적 하락을 통해 양적 성장을 이루고 그를 통해 궁극적으로 재도약을 이루는 과정은 사운드의 역사에서 늘 반복되어 왔다. 릴테이프가 LP와 카세트테이프에게 쫓겨난 것이 그렇고 LP가 CD에게 자리를 내준 것이 또 그러하며 심히 과감하게 말하자면 아날로그가 디지털에게 자리를 물려준 것이 또 그러하다. 그러나 이 오랜 과정을 통해서 궁극적으로 사운드의 질이 하락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

 

* 다음 호에 <아! mp3 (2)>가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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