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20호 / 2005년 4월 29일
사연 많은 플레이어의 세계 (上) 金 土 日 ( 22세기형 엔터테이너, www.449project.com ) 지난 글들에서도 몇 차례 언급했었던 것이지만 레코드라는 존재는 그것을 가치 있도록 만들어주는 레코드플레이어와 결코 떨어뜨려놓고 생각할 수가 없다. 생각해보면 초창기의 레코드 판매는 레코드 자체보다도 그 플레이어를 팔기 위한 아이템에 지나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당시의 광고들에 따르면 사람들이 레코드를 사기 위해서는 ‘축음기 파는 집’을 찾아가야 했었다. 에디슨의 포노그래프의 경우 자가(自家) 녹음을 주요한 기능으로 삼았던 까닭에 플레이어 위주의 판매 경향은 더욱더 분명했다. 레코드가 그 자체로 매력적인 상품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축음기가 발명된 후 조금 더 시간이 지나고서부터였다. 닭과 달걀의 관계와 같은 이야기지만, 레코드가 대중화되려면 플레이어의 보급이 일반화되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다. 레코드의 대중화가 이루어지는 계기들은 역사적으로 볼 때 여러 국면이 있었다. 거기에는 카루소와 같은 매혹적인 콘텐츠의 등장도 있었고 전기녹음 방식의 도입이라는 음질 향상의 측면, 그리고 대중들의 소비 능력의 진전과 같은 여러 요소들이 있었다. 그리고 매력적인 플레이어의 등장 역시 그러한 여러 계기들 가운데 어느 요소 못지않게 중요한 하나로 손색이 없다. 플레이어가 가장 극적으로 변모하는 순간이라면 그건 아마도 ‘포터블’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나오는 순간일 듯 하다. 레코드의 역사에서 포터블 플레이어가 처음으로 대중화에 성공하기 시작한 것은 1차 대전 기간, 병사들의 참호 속에서부터였다. 교착된 전선을 이탈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참호 속에 쪼그려 앉아 딱히 할 일도 없었던 병사들 앞에 나타난 포터블 축음기는 대단한 선물이었다. 축음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참호 속에서의 가장 멋진 오락이었다. 전쟁이 끝난 후 이러한 경험과 성과를 기반으로 포터블 플레이어는 축음기 시장에 돌풍을 일으켰고 레코드의 대중화에 커다란 힘이 되었다. 1차 대전 당시 참호에 군수품으로 보급되었던 것은 영국의 데카[DECCA] 축음기 회사 제품이었지만 전쟁이 끝나자마자 수많은 축음기 제조업자들이 포터블 축음기 제조에 나섰다. 한편, 병사들이 포터블 축음기를 가지고 다니면서 즐겨 듣는 습관은 이후에도 지속됨에 따라 세계 대전 이후 미국의 대중음악이 전 세계로 퍼져나갈 수 있는 계기도 마련이 되었다. 미군이 진주했던 세계의 각 지역에서 미군들이 가지고 온 포터블 레코드를 통해 미국의 대중음악이 울려 퍼지게 되었고 많은 나라들의 경우 그로 인해 대중음악의 저변이 교체되는 결과를 경험하기도 하였다. 포터블의 위력은 새로운 미디어가 등장할 때마다 함께 나타난다. 포터블이라는 자체가 매력적이거나 혹은 아주 실용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새롭게 등장하는 레코드 미디어마다 포터블의 등장을 계기로 세력의 역전을 꾀하였다. 물론 세력의 역전은 업계에 놀라운 부를 선사해 줄 것이었다. 앞서도 살펴보았지만 카세트가 LP를 누르고 레코드 미디어의 최강자가 된 데에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 낮은 기술적 문턱 등의 요소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SONY사(社)의 워크맨[WALKMAN]의 등장이야말로 어쩌면 가장 극적인 순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워크맨의 열풍은 그 자체로 카세트의 열풍을 의미했던 것이고 이것은 플레이어의 차원에서 보자면 ‘포터블’의 극한으로 여겨졌다. 사람들은 워크맨이 열어준 신세계에 감탄을 연발하였고 그 신세계를 향한 교통수단은 카세트였던 셈이다. 워크맨의 등장으로 인해 이제는 포터블이 아니라 ‘휴대용’이라는 개념이 더 잘 어울리게 되었다. 물론 ‘포터블’을 번역하면 ‘휴대용’이 되는 것이지만 설탕보다 슈가가 달고 건물보다 빌딩이 높은 것처럼 이 두 언어 역시 서로 다른 어감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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