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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32호 디지털뉴미디어] FTA 이전에라도... 미디어 공공성과 다양성을 갉아먹는 미디어/통신 자본의 공세

이전호(78호 이전) 아카이브/뉴미디어

by ACT! acteditor 2016. 8. 16.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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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 이전에라도... 미디어 공공성과 다양성을 갉아먹는

미디어/통신 자본의 공세

 

 

조동원(jonairship@gmail.com www.gomediactio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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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활동가가 왜 우리는 정부와 자본이 뭔 일을 저지르면 대응하기에만 바쁘냐고, 앞서서 대안적인 흐름을 만들어내지는 못하냐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그거야 우리에게 그들처럼 힘과 돈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같이 움직이며 만들어나가는 사람도 많지 않기 때문이라고 필자 역시 혼잣말처럼 대꾸해본다. 무엇보다도 현 정세 속에서 자유무역협정(다음부터 FTA로 줄임)을 둘러싼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항하는 동시에 그 대안을 만들어내야 할 텐데, 이 역시 많이 힘겹다.

FTA 때문에 영화 시장은 말할 것도 없고 방송 시장이 외국 자본에 무방비 상태가 되어 버리는 것은 아닌지, 통신 시장은 이미 충분히 열려진 상태에다가 이 참에 추가 개방까지 갈 수도 있다면 통신 시장 개방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응할지, 방송과 통신이 합쳐진다고 수 년 째 난리 속인데 통신 시장을 통해 자연스럽게 방송 시장이 잠식되는 건 아닌지, 오히려 그렇다면 FTA를 저지시키고 방송 문화의 다양성과 공공성을, 정보통신을 통한 인류 지식과 정보의 보편적이고 공적인 접근을 위한 민중의 권리를 더욱 강화할 수는 없는지, 아주 중요하고도 복잡한 문제들이 산적해 있기만 하다.

아예 미디어 공공성과 다양성을 이 참에 씨게 밀어붙여 FTA가 아니라 그 할아버지가 와도 끄떡없는 상태가 되도록 할 수는 없을까. 그러고 보면, 현재 미디어 - 정보통신 영역과 관련한 “FTA저지를 위한 시청각 미디어 부문 공동대책위원회”(다음부터 시청각 미디어 공대위로 줄임)를 중심으로 FTA에 대한 수세적인 대응을 넘어 보다 적극적인 대안을 만들어나가는 흐름이 별로 보이지 않아 살짝 아쉽다(물론, 시청각 미디어 공대위 구성과 운영, 그리고 각 참여 단위에서의 여러 가지 피치 못할 사정들이 있을 테지만 말이다). 시청각 미디어 공대위를 비롯해 여러 다양한 미디어 - 정보통신 운동 진영이 보다 적극적인 대안 마련은 힘들더라도 혹여 놓치고 있는 부분들이 있다면 어떻게든 함께 대응해야 할 것 같아, 이 글에서는 FTA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몇 가지 현안들을 짚어보고 싶다.

 

통신 시장의 개방 문제

통신 시장 개방이 이번 FTA 협상 과정에서 어떻게 진행될 지, 그 결과가 어떠냐에 따라 각각 어떠한 영향이 있을 것이고 또 이후 어떠한 대안을 만들어 나가야 할 지, 현재로서는 그 어디에서도 본격적으로 다뤄지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사실 한국의 통신 시장은 이미 오래전부터 개방되어 있었다. 한국의 정보통신정책이 1980년대부터 자유화라는 정책 기조로 추진되어 왔고, 1990년대 후반 세계무역기구(WTO)의 기본 통신협정 최종 양허를 낸 이후 자발적으로 최종 양허 내용보다 더 빠른 속도를 내며 개방해 나갔다. KT를 비롯해 기간통신서비스에 대한 외국인 소유 지분 제한이 벌써 49%에 이르는 등 이미 선진제국들의 수준으로 개방한 상태이다 보니, 이번 FTA에서 통신 서비스는 별 쟁점이 아니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미무역대표부(USTR)가 의회에 제출한 이른바 ‘협상 통보문’을 볼 때, 통신서비스 및 부가통신서비스의 기술 중립 보장, 부가통신서비스 제공에 필요한 플랫폼 접근 보장 등의 쟁점과 함께, 이 49%마저 넘어서거나 아예 없애버리라는 압력이 감지되고 있다. 2005년 5월 말에 제출하기로 한 세계무역기구(WTO) 도하개발아젠다(DDA) 서비스 협상 2차 양허안에도 이와 같은 요구가 담겨 있었으며, 올해 4월에 미국이 발표한 2006년 무역장벽보고서를 보더라도 기간통신사업자에 대한 외국인 투자 제한을 철폐하라는 요구가 포함된 바 있다. 이러한 정황에 따라, FTA의 서비스 협상 테이블에 통신과 함께 올라갈 교육/의료/법률/영화 등 핵심 쟁점 사안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쟁력을 갖춘 분야”인 통신이 희생 카드로 제시될 수 있는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런데 보면, 미국조차 유선사업자에 대해 외국인 지분 제한이 없는 대신 그 투자에 대한 강력한 공익성 심사 제도를 두고 있고, 무선사업자의 경우엔 외국인 지분 제한을 20%선으로 묶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제도적 규제 장치가 없더라도, 엄청난 자본력을 요구하는 미국 통신 시장에서의 지분 인수는 국내 자본에겐 현실적으로 원천 봉쇄돼 있는 것이다. 무역의 자유를 누리고 싶어도 그럴 형편이 안 되는 데 무슨 자유무역협정?!

 

신자유주의 세계화 + 방통융합 = 신자유주의적 융합미디어 환경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통신 시장 개방의 문제는 국내 통신 산업의 자주성의 문제를 넘어 융합미디어 환경에 미칠 잠재적 파급력 혹은 파괴력을 고려해 볼 때 더욱 중요한 사안이 아닐 수 없다. 미국 통신 자본과 워싱턴의 추가 개방 요구는 한국 시장에서 막대한 지분 차익을 노리는 것일 뿐만 아니라, 통신 시장을 통해 간접적으로 방송 시장까지 자연스레 침투하려는 전략일 수 있다.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에서 방송을 문화적 예외로 지켜냈던 캐나다의 경우에도 당시 지상파만을 예외 대상으로 한 탓에 케이블이나 위성, 그리고 통신과의 융합 서비스 등의 신규 미디어 서비스에는 그 예외가 적용되지 않았으며 통신 시장은 1990년대 후반에 이미 미국 거대 자본에 의해 대부분 잠식된 전례를 봐도 그렇다.


KBS 뉴스9 - [연속기획]韓-美 FTA 분야별 쟁점/(11)방송통신시장 개방(2006년 5년 19일), 뉴스 다시보기 

우리의 상황을 볼 때, 방송과 통신이 서로 분간할 수 없게 된다면서 하나 둘 융합 미디어 서비스가 등장하고 있는 현재 시점 역시 통신 시장의 추가 개방 가능성이 예사롭지 않은 대목이다. 이들 융합 미디어 서비스에 대한 법적 규정이나 적절한 공공적 규제조차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곧바로 통상 현안에 노출된다고 할 때,  인터넷 유료 VOD 서비스나 인터넷방송(다음부터 IPTV로 표시) 같은 것들은 그야말로 초국적 미디어 자본의 투기장이 될 것이 뻔하다. 단적인 예로, “146일”이라는 극장에서의 한국영화 의무 상영일수(스크린쿼터)는 이미 두 동강 났고, 별 다른 이변이 없다면 어느덧 그런 게 있었나 하는 때가 올 것이지만, 모든 극장들이  디지털 전송/영사 시스템으로 전환되는 디지털 시네마가 곧 구축되었을 때, ‘FTA의 기본 정신’에 따라 이런 새로운 기술이 적용된 미디어 서비스에는 스크린쿼터 같은 것이 처음부터 아예 적용되지 않게 될 것이 뻔하다. 즉, 새로운 기술 환경에서는 처음부터 새출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있었던 공적인 무언가를 지키는 싸움이 아니라, 그래도 최소한 이러저러한 공적인 서비스를 해야 안 되겠니? 하며 뒤늦게 후회할, 그 보다 몇 배 더 어렵고 불리한 싸움을 해야 한다.

현재 방통융합이라는 변화의 소용돌이와 ‘시의적절하게’ 만나고 있는 FTA에 충실하게 우리 사회의 미디어-커뮤니케이션 환경이 좌우된다면, 영화든 방송이든 통신이든 디지털 전환은 곧 다 개방이라는 정부 정책의 기조가 만들어질 지도 모를 일이다. 그 동안 기술의 진보에 따라 자연스럽게 커뮤니케이션 환경의 자연스러운 발전 과정처럼 보여 졌던 방송과 통신의 융합이라는 것이 FTA 국면(시대?)과 노골적으로 조우한다면, 이는 사실상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세계 경제의 지배 논리를 등에 업고 맹목적인 시장 확대를 꾀하면서, 신자유주의적 융합미디어 환경으로 치달아 왔다고 봐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할 때 문제는, ‘우리의 통신 시장을 지켜내자, 그러니 우리 대~한 민국 협상단! 이거 개방 안 되게 협상 잘 해 달라’는 게 아니다. 디지털 전환이며 현재의 미디어 환경 변화라는 것이 이미 있는 것들은 더 이상 팔리지 않으니 새로운 미디어를 등장시켜 이미 있는 것들 다 없애 버리고 새롭고 더 좋은 거 사라는 것인데, 그러면서 미디어를 통한 정치적 대화와 토론은 극도로 주변화 되고 문화정치적 공공영역은 철저히 상품화의 블랙홀로 빨려 들어간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논리를 철저히 관철시키려는 FTA 자체가 저지되어야 마땅하다.

통신 서비스의 경우, 미국도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는 공익성에 대한 정보통신 정책이 왜 우리에게는 FTA 이전에라도 점점 사라지고 있는가. 그렇지 않아도 독과점 구조가 심화되고 있고, 국내 통신 시장은 포화상태에 이르렀고, 자본 지네끼리 고객 뺏기 전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통신사업자들에 대한 어떠한 규제도 모두 없애라는 요구가 목소리를 높여가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공공적 규제를 강화하고 민주적 융합 커뮤니케이션 환경을 구축해 갈 것인가의 문제 설정이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시점이다. 그 필요성은 FTA 이전에라도 - FTA가 필요 없을 정도로 그에 충실한 제도 정책 및 구조조정이 자행되고 있는 현실에서 더욱 커지고 있다. 그 문제 설정에는 아래와 같은 몇 가지 현안들이 포함될 수 있겠다.

 

 

 

위성방송 사업자의 대기업 소유 지분 완화 문제

독자적인  위성방송 사업자인 스카이라이프(최대주주: KT)는 만성 적자에 허덕이고 있고, 가입자 증가율 둔화 및 지상파 재송신 불가 등의 이유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그러니 누가 하랬나!) 위성DMB사업자인 티유미디어(최대주주: SK)가 이런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로비해 왔던 일 중의 하나는 방송법상 사업자에 대한 소유 지분 제한을 완화해 달라는 것이었다. 소유 지분  제한 규정에 묶여 자본 유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징징대니까, 몇 명의 의원들이 나서주어 의원입법 형태의 엇비슷한 방송법 개정안들이 제출되면서 소위 뉴미디어 사업의 소유 지분에 대한 탈규제 흐름이 본격화되어 왔다.

위성방송사업자에 대한 소유 지분 완화를 골자로 하는 방송법 개정안은 그러나 2006년 4월, 국회 문화관광위원회의 법안심사소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유보된 상태이기는 하다. 어쨌거나 이러한 법개정은 유료 방송시장에서 뉴미디어 사업자들이 살아 남으려면 추가 자본 조달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소유 지분의 완화가 필요하다는 명목으로 추진되고 있는 셈인데, 이렇게 돈벌이만을 위한 유료 방송사업이 확장되어 갈 때, 미디어 소유 구조는 돈 놓고 돈 먹는 독과점으로 갈 수밖에 없고, 방송의 상품화, 독점화는 해외 자본이 정문으로 걸어들어 오기 전에라도 이미 한참 고도화되고 있다. 그런데 시민언론운동을 해온 몇몇 단체들까지 거드는 현재의 분위기는 소유 지분 규제를 낡은 논리로 치부하는 것이고, 이제 거추장스러울 뿐이니 대~한 민국이 먹고 살려면 무조건 살려야 한다, 개방도 국익을 위해서 필요하다는 것이 대세인양 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거대 자본에 의한 미디어 소유의 집중화는 그 콘텐츠의 상업화와 저질화로 이어지고 도무지 공익성을 찾아볼 수 없을 것인데, 최소한의 규제 장치로서 국내외 거대 자본의 진입 제한을 통한 미디어 소유의 다원성 보장이 왜 필요하지 않다는 것인가. 물론, 소위 뉴미디어 사업자들에 대한 소유 규제를 계속 유지할 때, 현재의 지상파 방송사업자의 (기형적인) 시장 지배력에 대한 볼멘소리를 무시할 수만은 없다. 그렇다고 형평성이라는 형식 논리에 빠져 탈규제로 가야 한다는 것이냐. 아니다. 소유 규제와 함께 공영방송 및 지배적 지상파방송에 대한 다양성과 공공성은 또한 어떻게 강화할 것인가의 포괄적인 전략이 필요한 대목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미디어 소비자/수용자 운동과 미디어 개혁 운동 차원에서 캠페인을 벌이고 정책 대안을 마련하며 개입해 들어갈 일이다. 하지만 이 소유 지분 완화의 문제는 그간 미디어 수용자 운동 차원의 감시 활동에서 누락되어 온 게 사실이다. 오랜 동안 미디어 모니터링을 해온 시청자단체 및 언론개혁 단체들의 경우, 언론 보도라든가 방송 콘텐츠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감시 활동을 벌여왔지만, 궁극적으로 이러한 보도나 콘텐츠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미디어 소유 구조라든가 정책 감시 부분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루어 왔던 것으로 안다. 그러나 그런 감시 활동이 없을 때 나타나는 폐해는 뱌로 지금 케이블 방송에서 단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케이블 방송사의 독과점 폐해 문제

케이블 방송의 경우, 이미 2004년 방송법 개정을 통해 대기업 소유 지분 제한이 완전히 해소되어 있다. 즉, 소유 지분 제한 규제에 있어 대기업 100%, 외국자본 49%까지 허용된 것이다. 이를 기점으로 해 케이블 사업자들은 대규모 자본을 유치하여 대형화(MSO)되어 왔고, 디지털 전환과 맞물려 유무선통신사업자와 방송사업자 간 주도권 싸움이 한창인 TPS(Triple Play Service, 방송+전화+인터넷)의 선점 작업에 눈 코 뜰 새 없다.

 

그런데, 이러한 독과점과 융합미디어 서비스의 도입 과정에서 발생하는 폐해는 자꾸 채널을 변경하거나 축소해 버리지 않나 가입비를 지 맘대로 인상해 버리는 것이다. 서울 관악구의 경우, 가입자들에게 충분한 사전 공지 없이 기본료를 50% 인상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는데, 이는 2005년 3월 관악케이블TV방송(HCN)이 관악유선방송(KTN)을 인수합병하며 시장을 완전히 장악한 이후 벌어진 일이다. 이러한 케이블 방송사들의 독점 횡포가 관악뿐만 아니라 서울의 다른 지역들에도, 그리고 부산, 경기, 경남 등 전국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다(김수정, “케이블 방송 독점 규제와 난시청 해소 운동의 의의와 전망,” 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31호, 2006년 5월).

대표적인 난시청 지역이기도 한 관악구의 주민들은 지상파 시청을 위해 KBS 수신료 2천 5백 원과 케이블 방송 수신료 6천 6백 원을 합해 월 1만원 가까이를 부담하고 있다고 한다. 난시청 지역에서는 이렇게 지상파 방송 시청을 위해서라도 케이블 방송에 가입해야 하는데, 여차저차 전국적으로 현재 1천 4백 만이 넘는 가구가 케이블 방송에 가입해 있는 상황을 볼 때 위와 같은 폐해들은 미디어 수용에 대한 보편적 접근을 제약하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문제를 겪고 있는 각 지역 주민들은 자발적으로 모임을 결성해 적극적으로 대응하면서 문제적인 케이블 방송사에 대한 허가취소 요구, 수신료 납부거부 운동, 부당 인상 요금 환불 청구 등의 공동행동 등이 조직되고 있고, 인터넷에서는 안티케이블연대(http://www.anticable.org)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러한 케이블 방송사들의 횡포는 케이블 업체의 독과점 심화, 외국기업의 소유 지분 확대와 무관하지 않고, 디지털 전환 과정에서 필요한 새로운 비용을 소비자 부담으로 전가해도 별 문제 없을 만큼 탈규제 정책이 심해지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밖에는... 그래서 가능하다면 지역 주민 대책위원회들이 케이블의 독과점에 대항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좋은 화질만을 위해 멀쩡한 수상기를 교체하거나 굳이 필요 없는 주변 장치를 사면서 호주머니만 털리게 될 디지털 전환까지도 거부하면서 디지털 전환 정책을 근본적으로  바로 잡는 싸움을 해나갈 수도 있겠다. 김수정의 말대로, “현재 시민들의 저항을 단순한 요금 인상에 대한 불만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이는 독점 기업의 횡포에 맞선 저항이며, 시청권 확보를 통해 방송의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한 운동”이라면 말이다. 다른 한편, 시청자 권리를 내걸었던 시청자단체나 시민언론단체들은 이렇게 지역 주민들, 시청자들이 직접 대책위를 꾸리고 “케이블 방송 독점 규제와 난시청 해소를 위해 공동 대응”을 위해 싸우는 상황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답답할 따름이다.

 

융합미디어: 보편적 서비스에 대한 침해, 콘텐츠에 대한 통제 문제

핸드폰에서 인터넷에 접속하려면 특정한 사이트를 통해 걸러진 콘텐츠에만 접속할 수 있다. 핸드폰으로 인터넷 접속을 하는 것 자체가 (아직은) 접속료가 비싸서 대중화가 되지 않았고, 그런 만큼 인터넷 접속을 제한시키는 문제가 크게 이슈화 되지 않은 것으로 추측된다. 그런데 바로 그러한 일들이 IPTV이나 휴대인터넷(다음부터 Wibro로 표시) 등의 새로운 융합미디어 서비스에서도 벌어질 모양이다. KT 등이 사업자로 준비하고 있는 IPTV의 경우, 프로그램 가이드(EPG)와 셋톱박스의 기술적 특성을 이용해 일종의 포털 형태로 독점적이고 폐쇄적인 콘텐츠 서비스를 계획하고 있다고 하고, 고맙게도 이동 환경에서 무선인터넷 접속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기대했던 Wibro 역시 폐쇄적인 형태로 각종 콘텐츠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비지니스 모델이 등장하고 있다(전응휘, “'균형'보다 '빨리'가 중요한 정보통신정책,” 진보네트워크센터 <네트워커> 33호, 2006년 5월).

이런 방식은 인터넷의 포털이나 핸드폰에서의 접속 방식을 통해 이미 자연스러워 보이기까지 하다. 굳이 예전 PC통신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PC통신이라는 것이 상업적인 몇몇 대형 BBS(온라인 게시판)들을 통해 소개되면서 데이터베이스를 중심으로 한 다른 나라들과는 구별되는 방식으로 통신 문화가 전개되어 나갔는데, 당시부터 상업적 통신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초기화면’에 길들어져 왔던 것(김형준, “정보운동사”)도 사실이다. 대부분의 네티즌들은 극소수의 영리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정보를 습득한다는 통계는 말할 것도 없고, 이용자들이 정보를 검색할 때도 광고료 지불 순위에 따라 그 검색 결과의 앞자리가 결정된다는 점은 이미 아는 사실이다(최세진, "인터넷이 광장이라는 편견을 버려!" 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13호, 2004년 8월).

더 나아가, 비디오 콘텐츠가 점차 널리 유통되고 있는 광대역 인터넷 환경에 대한 접근에서 특정한 콘텐츠의 이용 자체가 상업적으로 통제받을 가능서도 커지고 있다. 현재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네트워크 중립성(network neutrality) 논란이 먼 이야기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네트워크 중립성은 망(network) 사업자(ISP)가 특정한 데이터에 특혜를 주는 것이 아니라, 모든 데이터를 동등하게 취급함으로써 네트워크의 개방성과 자유로움을 보장하는 원칙 같은 것이다. 그런데 이 사업자들이 대역폭을 많이 잡아먹는 인터넷전화서비스나 VOD 서비스가 상용화되고 서비스의 안정성과 지속성이 관건으로 부각되면서, 자사의 서비스만 고속으로 전송하거나 다른 인터넷 콘텐츠 및 애플리케이션 기업의 서비스를 고속으로 전송하는 경우에는 특별 과금을 부과하겠다고 나서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그에 따라 인터넷의 이중구조화(혹은 2계층[layer]의 인터넷)의 가능성조차 비집고 나오는데, 한 계층은 고속 서비스를 위해 요금을 지불하는 회사를 위한 것이고, 나머지 한 계층은 그렇지 않은 회사들을 위해 저속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것이다(단순하게 보면, PDBOX와 같은 서버 제공 서비스에서 돈 내면 고속 다운로드, 그냥 하려면 저속 다운로드를 하게 하는데, 이게 인터넷 환경 전반에 적용된다는 것이다). 이는 일반 소비자에게 제공하고 있는 인터넷 액세스보다 뛰어난 사설 네트워크가 나타날 가능성도 농후해 지는 것이며, 경제적 불평등 구조에 따른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인터넷 접속 속도 및 접근할 수 있는 콘텐츠 자체가 차별적으로 구성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우리에게도 지난 해 있었던 인터넷 종량제에 대한 논의도 이러한 움직임의 하나이고(네티즌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대용량 트래픽을 발생시키는 기업용 서비스에 대해서만 종량제를 도입하자는 이야기가 비집고 나왔다), 데이터뿐 아니라 음성과 방송까지 인터넷 망(All IP)으로 서비스되는 광대역통합망(BcN) 시대를 선도하고 있는 “대~한 민국”에서도 이러한 네트워크 중립성은 위기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 융합 미디어 환경에서 이러한 중립성 혹은 개방성은 방송과 통신 전반에 이어져 아주 강력한 상업적 동기에 의한 게이트키핑(콘텐츠 통제)이 광범위하게 일어날 수도 있다. 하지만, 쌍방향의 수평적이고 자유로운 커뮤니케이션 기술 환경을 토대로 대중들의 자율적인 커뮤니케이션 실천을 통한 직접 민주주의의 광장이 계속 이렇게 사유화되고 주변화 되어가고 있는 상황은 부지불식간에 이미 닥쳐있는 재앙이 아닐 수 없다.

 

그리하여...

구체적 분석이 필요하겠지만, FTA를 맞이하는 노(No!) 정부의 기조가 내줄 것 다 내주고 가는 판국으로 치닫게 되면, 그나마 지금까지 일궈온 민주적 미디어 정책 결정 과정(민간인 참여 가능했던 각종 위원회들) 및 공적 지원 구조(독립영화 지원, 미디어교육, 미디어센터, 퍼블릭 액세스 지원 등등)가 무역 장벽의 직접적 제소 대상이 되지는 않더라도, 그에 대한 정부의 정책 의지와 예산 편성이 신자유주의적 기조에 완전 편승되어 이들은 상당히 축소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공적 자금이 투여되었는데 어쨌거나 돈 안 되는 사업이라면 그러한 공적 지원들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공격도 한층 거셀 것이니 말이다.

따라서 FTA를 통해 더욱 옥죄어 오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공세에서 미디어-커뮤니케이션 환경은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지, 이를 거슬러 어떠한 민주적 변화를 만들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운동의 전략적 내용과, 곧바로/좀 나중에 할 수 있는 실천 활동들이 정리되어야 한다. FTA 이전에라도 신자유주의적으로 야금야금 탈바꿈되고 있는 미디어 환경에서 지역성, 다양성, 공공성이 어떻게 훼손되어가고 있는지, 이를 어떻게 회복하면서 되려 FTA를 (미디어에 대한 정치 교육의) 계기로 삼아 우리의 의제들을 어떻게 현실 속에서 실현시키며 대중화시킬 수 있을 것인지 말이다. 미디어 공공성과 다양성 등의 개념을 장식품처럼 달고 있을 게 아니라 이 참에 급진화 시키는 것이 필요한 것은 아닌가.

하여, 수세적으로 대응하는 것도 힘겨운 상황이기는 하지만, 아니 그렇다면 그 대응하는 것에서 잠시 멈춰, 보다 급진화된 미디어-커뮤니케이션의 공공성 및 다양성을 중심으로 우리의 의제를 망설일 것 없이 던지면서, 한편으로 정부 차원의 신자유주의 정책 기조에 대해, 다른 한편으로 디지털 전환이며 방송통신 융합을 앞세운 자본의 시장 확대에 대해 어떻게 대항하고 대안을 만들어 갈 것인가를 동시에 규명하는 전략 속에서 조금은 즐겁게 실천해 나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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