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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41호 특집] 한미FTA 협상 저작권 분야, 협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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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16. 8. 12.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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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41호 / 2007년 5월 2일

 

 


한미FTA 협상 저작권 분야, 협상은 없었다! 


오 병 일 (한미FTA 저지 지적재산권 분야 대책위원회) 
 
한미FTA 협상 저작권 분야의 결과는 참담 자체이다. 도무지 협상 자체가 있었던 것인지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한미FTA 저지 지적재산권 분야 대책위원회’(*1)에서 지난 해 6월 외교통상부에 제출했던 의견서(*2)를 참조하여 살펴보면, 이번 저작권 분야에서 쟁점이 될 것으로 예상했던 미국의 거의 모든 요구사항을 한국 측이 일방적으로 수용했음을 알 수 있다. 한국 측에서는 변변한 요구사항도 별로 없었고 관철된 것도 없는 그저 방어밖에 없었던 일방적 협상이었다. 


저작권 분야를 포함한 지적재산권 분야는 전체 FTA 협상 의제 중 미국의 핵심적 요구 중 하나였다. 미국 재계의 입장을 담고 있는 ‘주한미상공회의소 2005 정책보고서’에서 한미FTA에 대한 4가지 요구사항 중 하나로 ‘디지털 지적재산권 침해를 중심으로 지적재산권 보호 및 단속 강화’를 포함하고 있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러나 한국정부에게 지적재산권 분야는 농업, 문화 등 다른 영역과 함께 FTA 협상 체결을 위한 희생양에 불과했다.

저작권 분야 협상 결과

저작권 분야의 협상 결과를 간략히 살펴보자.

- 저작권 보호기간 연장
저작권 분야에서 그나마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쟁점이다. 현재 저작권 보호기간은 ‘저작자 사후 50년’이다. 이를 70년으로 연장했다. 그나마 정부는 미국이 법인과 같은 자연인이 아닌 경우에는 발행 후 95년 또는 창작 후 120년까지 연장을 요구했지만, 결국 일괄적으로 70년에 합의했다는 것에 의미를 둘 수 있다. 그리고 집행은 2년의 유예기간을 두었다.- 일시적 저장의 복제권 인정
우리가 컴퓨터를 통해 프로그램을 실행하거나 홈페이지를 열람할 경우, 컴퓨터 내의 램(RAM)과 같은 메모리에 저작물이 일시적으로 저장된다. 이 저작물은 컴퓨터를 끄거나 다른 명령을 실행하면 자동적으로 사라진다. 현행 저작권법은 복제를 ‘유형물에 고정하거나 유형물로 다시 제작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일시적 저장은 저작권법 상 복제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 협상에서 일시적 저장을 통한 복제도 저작권자의 권리로 인정한 것이다.

- 기술적 보호조치 확대 (접근통제 기술적 보호조치 신설)
기술적 보호조치란 저작물에 암호화를 하여 기술적으로 저작물에 대한 접근이나 복제를 막는 장치를 의미한다. 국내 저작권법도 기술적 보호조치를 깨는 행위를 법으로 금지하고 있는데, 그 범위는 저작물의 복제 등 저작물의 이용을 통제하는 기술적 보호조치에 한한다. 그런데 이번 협상에서는 이에 더하여 저작물에 대한 ‘접근’을 통제하는 기술조치까지 포함한 것이다. 쉽게 얘기하자면, 어떤 책의 복사를 방지하는 기술이 있다면 이는 이용통제 기술조치이고, 책을 밀봉해서 접근을 막는다면 접근통제 기술조치라고 할 수 있다.

- 온라인 서비스 제공자의 책임 강화
저작권자의 민사소송을 돕기 위해 포털 등의 온라인 서비스 제공자로 하여금 저작권 침해자의 개인정보를 저작권자에게 제공하도록 하는 조항이 도입되었다.

- 비친고죄 적용 범위 확대
상업적 규모의 저작권 침해 시 비친고죄를 적용하도록 하였다. 지금까지 저작권법은 저작권자의 고소가 있을 경우에만 형사처분이 되도록 했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지난 해 말 국회를 통과한 저작권법 개정안을 통해 ‘영리?상습적으로 저작권 침해 시 비친고죄를 적용’하도록, 즉 저작권자의 고소 없이도 형사처분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한 바 있다.

- 법정손해배상제도 도입
국내 저작권법은 기본적으로 권리자의 통상 손해 또는 침해자의 이익을 선택적으로 청구하되, 손해액 산정이 어려운 경우에는 법원이 취지를 참작하여 손해액을 인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법정손해배상제도는 미국법상에 존재하는 제도로 권리자가 피해자의 손해 또는 침해자의 이익 대신 법정손해배상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여, 저작권자의 입증책임을 완화하고 손해입증이 어려운 경우 저작권자의 손해에 대하여 법원의 재량에 따라 적절한 보상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초국적 문화자본을 위한 미국 저작권 제도의 국내 이식

여러 분야에서 협상의 실익을 따지며, 제반 산업에서의 이익과 손해액수를 계산하고 있지만, 저작권 분야에서의 영향은 단순히 문화산업에서의 피해 액수로 환원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저작권 분야의 가장 큰 문제는 한국의 문화적 상황에 맞지 않는 미국의 저작권 제도를, 그것도 미국 내에서조차 많은 문제가 제기되었던 제도가 이식되었다는 것에 있다.

- 저작권 보호기간 연장의 경우, 미국에서 1998년 ‘저작권 보호기간 연장법’이 제정될 당시부터 많은 논란이 있었으며, 위헌 소송까지 제기된 바 있다. 상식적으로 저작권 보호기간이 저작자 사후 50년에서 70년으로 연장되었다고 창작되지 않았을 저작물이 창작될 것이라고 기대하기 힘들다. 저작권 보호기간이 만료될 때까지 상업적 가치를 가지는 저작물이 극히 드물다는 현실을 볼 때, 저작권 보호기간은 이미 충분히 길다. 더구나 미래의 저작물이 아니라 이미 창작된 저작물에 대해서도 저작권 보호기간을 연장하도록 하고 있는데, 이미 사망한 저작자가 저작권 보호기간이 연장되었다고 무덤에서 새로운 창작을 한다는 말인가? 이는 현재 상업적 가치를 가지고 있는 극소수 저작물의 독점적 이익을 20년 동안 추가로 보장해주기 위한 시도라고밖에 볼 수가 없다.


미국에서도 2004년으로 저작권 보호기간이 만료될 운명에 있었던 ‘미키마우스’의 수명을 연장하기 위한 법안이라는 의미에서 ‘미키마우스 보호법’이라고 조롱을 받았다. 2004년 <포브스>지(誌)에 의하면, 미국의 경우 거대 문화콘텐츠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캐릭터를 통해 벌어들이는 캐릭터 라이선스 수입은 10대 캐릭터(이 중 미국이 보유하고 있는 것이 1, 2, 3, 5, 7, 8, 9위로 7개에 달한다)만을 보더라도 연간 252억 달러에 달한다. 이 중 1위는 그 유명한 미키마우스와 친구들인데, 1년 매출액이 58억 달러(원화로 약 6조900억 원)다. (2004년 한국영화 총 매출액은 기껏해야 2854억 원에 불과하다.) 미국이 각 국과의 FTA 협상을 통해 저작권 보호기간 연장을 반드시 관철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3)
- 일시적 저장에 대해 복제권을 인정한 것은 디지털 환경의 특성을 무시하고 저작권자의 권리를 일방적으로 강화하는 것이다. 일시적 복제는 디지털 환경에서 저작물에 대한 ‘접근(열람)’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일시적 복제를 저작권자의 권리로 인정하는 것은 ‘읽을(볼) 권리’를 저작권자에게 부여한 것이나 다름없다. 책을 읽는데도 저작권자의 허락을 맡아야 한다는 말인가? 비록 ‘시사보도, 교육, 연구 등 공익적 목적을 위한 공정한 이용의 경우에는 저작권을 침해하지 않은 것’으로 하여 예외를 인정하였다고 하나, 원칙과 예외가 뒤바뀌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세계지적재산권기구의 저작권조약(WCT)과 실연음반조약(WPPT) 체결 과정에서도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은 일시적 저장 규정을 포함하려 하였으나 제3세계 국가들과 온라인 서비스 제공업체의 반대로 좌절된 바 있다. 심지어 미국 저작권법도 이를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지 않다.
- 접근통제 기술적 보호조치를 수용한 것도 저작권자에게 ‘읽을(볼) 권리’를 부여한 것에 다름 아니다. 저작물에 접근하여 열람하는 것이 저작권 침해가 아닌데, 접근통제 기술적 보호조치를 무력화했다고 해서 어떻게 권리 침해라는 것인가? 이 조항은 이용자들의 정당한 저작물 접근을 위축시킬 우려가 크다. 예를 들어, DVD는 일정한 지역코드를 포함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구입한 DVD 플레이어로는 미국의 DVD 타이틀을 재생할 수 없다. 이 때 다지역 플레이어를 제작하여 국내에서 미국의 DVD 타이틀을 재생할 수 있도록 한다면, (지금까지는 저작권법 위반이 아니지만) 저작권 위반이 되는 것이다.(*4)
- 온라인 서비스 제공자가 권리자에게 침해자의 개인정보를 제공할 의무를 부담하는 것은 이용자의 프라이버시권을 침해할 우려가 높다. 정부는 권리자가 서비스제공자에게 직접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행정 혹은 사법절차를 통해서 하는 것이라고 해명하지만 구체적인 방안은 나와 있지 않다. 저작권자의 권리를 위해 개인정보 보호원칙이 후퇴해서는 안 된다.
- 비친고죄 도입은 국내 논란과정에서도 이미 많은 반대에 부딪혔다. 이미 민형사상 저작권자의 권리가 보장되고 있고, 권리자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는 한 저작물을 이용하는 것은 문제될 것이 없으며, 오히려 권장되어야할 것이다. 그런데 권리자의 고소도 없이 정부가 나서서 단속하겠다는 것은 저작물 이용을 위축시키게 될 뿐이다.
- 법정손해배상제도의 경우 국내 법체계와 맞지도 않는 제도일 뿐더러, 이런 제도를 굳이 도입해야하는지도 의문이다.
저작권 협상의 결과 제도가 선진화되었다고?

협상 타결 후 발표한 자료에서 문화관광부는 협상 결과를 ‘선진제도의 도입’으로 치장했다. 진정 위에서 언급한 제도들이 선진적인 것이었다면, 굳이 한미FTA 협상에서 거론할 필요도 없었다. 국내 입법과정을 통해서도 충분히 도입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렇게 선진적인 제도에 대해서 문화관광부 협상 당사자들은 왜 처음에는 미국의 요구에 대해 반대 입장을 표명했을까?

저작권은 무조건 강화한다고 좋은 것이 아니다. 만일 저작권자의 권리가 강화될수록 문화 창작이 활성화된다면, 저작권 보호기간을 영구적으로 하지 않을 이유가 있는가? 저작권은 권리와 이용의 균형을 도모해야 하며, 이러한 판단은 각 국의 문화수준에 따라 달라진다. 물론 미국과 한국의 문화 현실은 매우 다르다. 2002년 미국의 저작권 관련 산업(도서, 신문, 영화, 음악, 텔레비전 쇼, 컴퓨터프로그램 등)이 미국의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6%이며, 그 총액은 6266억 달러이다. 당시 한국의 GDP는 5469억 달러에 불과했다. 2006년 3월 세계무역기구의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이 2004년 한해에 지적재산권 로열티만으로 벌어들인 수입이 513억 달러에 달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2002년 무역수지는 53.94억 달러 흑자를 기록했으나, 서비스 수지는 82억 달러 적자로 나타났고, 이 중 29억 달러 정도는 지적재산권에 대한 로열티로 지급된 것이다. 세계은행은 지적재산권을 국제기준에 따라 강화했을 때 가장 손해 보는 국가로 한국을 지목했다.(*5) 이미 한국은 자신의 몸에 맞지 않는 너무 큰 옷을 입고 있었다. 기실 기존의 제도조차 우리 스스로 우리의 처지를 살피며 만든 것이 아니었다. 80년대 미국의 통상압력에 의해, 그리고 90년대 이후 WTO 무역관련지적재산권협정(TRIPS) 등 국제협정 가입 과정에서 외국의 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그리고 또 다시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미국 국회에서 제정한 저작권 제도가 국내에 이식될 위험에 놓여있다.
앞서 보았다시피, 이번 한미FTA 저작권 분야 협상은 소수 초국적 문화자본의 이익을 위해 대다수 민중들의 문화적 권리를 침해하는 내용들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각 쟁점들이 많은 논란을 내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적인 합의 과정 없이 일부 협상가들에 의해 제도가 결정됨으로써 입법권을 침해하고 있다. 추후에라도 우리 몸에 맞는 저작권 제도를 수립할 수 있기 위해서라도 한미FTA 협상이 체결되어서는 안 된다. (끝) □
<주>
* 1. 한미FTA 저지 지적재산권 분야 대책위원회, http://nofta-ip.jinbo.net
* 2. 한미FTA 지적재산권 분야에 대한 의견서, http://nofta-ip.jinbo.net/?q=node/6
* 3. 출처 2004.10.14, <문화산업백서 2005>, 문화관광부 2006 발간,에서 재인용
* 4. 이는 미국 저작권법(DMCA)의 내용을 수용한 것인데, 이 법의 문제점은 미국 시민단체인 전자개척자재단(EFF)의 ‘Unintended Consequences: Seven Years under the DMCA’에 상세히 설명되어 있다. http://www.eff.org/IP/DMCA/unintended_consequences.php
* 5. TRIPS 협정으로 누가 이득을 보는가(세계은행 2002 자료) http://nofta-ip.jinbo.net/?q=node/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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