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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46호 미디어꼼꼼보기] 이젠 나에 관해서는 내가 말한다 -‘나는 장애인이다’를 돌아보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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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 acteditor 2016. 8. 12.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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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나에 관해서는 내가 말한다 

-‘나는 장애인이다’를 돌아보면서 - 

박김영희(‘장애여성 공감’ 활동가)


1. 시험지를 맞이한 수험생이었다

카메라에 빨간 불이 들어오면 왜 내 머릿속은 하얀 백지가 되어 버리는 것일까? 녹화하려고 방송국을 향해 달리는 차 안에서 급하게 외웠던 글자들이 모두 어디론가 탈출해 버리고, 하얀 지면만 남겨져 카메라를 향했던 내 눈동자를 흔들리게 한다. ‘아차! 이런 흔들림도 여지없이 들키겠구나. 이런.... 좀 더 시간 내서 열심히 외울걸...’ 
녹화 때마다 이런 후회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역시나 방송 마지막 녹화 순간에도 이런 후회를 하고 있었다. 
시험을 치루고 나설 때 언제나 후회했었다. 시험 전 지나간 시간을 아쉬워하며 그 시간에 열심히 공부해 두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또 시험 때가 되면 마음은 조바심을 내면서도 충분히 공부하지 않고 시험지를 마주하고는 역시 후회하던 심정을 지난 2006년 10월 ‘나는 장애인이다’ 방송을 시작한 후 일 년 정도 계속해 왔다.
아마 여유 있게 대본을 쓴 후 대사 시간까지 정확하게 계산하고, 대사를 모두 외우고 방송에 임했었던 날은 몇 번 되지를 않았던 것 같다. 
언제나 방송이 끝나면 ‘다음 방송 때는 잘해야지’ 라는 다짐을 해보지만 시험 때 하던 다짐 처럼 번번이 무너지곤 했다. 
늘 바쁘다는 핑계로 후회와 다짐을 반복하며 일 년을 보냈다.


2. 첫 단추 끼우기

일 년 전에 다큐인에서 시민방송국에 장애인프로그램을 제작하기로 했다는 말을 들었다. 
장애인 운동을 하는 한 사람으로서 장애인의 진솔한 외침이 있는 현장에 늘 있었던 다큐인이, 또 진보적 방송을 지향하는 시민방송국에서 장애인 방송을 하게 되었다는 소식은 반갑기만 했다. 장애여성운동을 하며 미디어를 만나면서, 그것의 힘과 더불어 권력의 속성상 부정적 경험을 하면서도, 또 그것을 잘 활용하는 것에 대한 경험도 하면서 거부감과 한편으로는 긴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카메라를 누가 어떻게 잡고 있는가가 나에겐 중요했었다.
그래서 시민방송과 다큐인의 만남으로 제작되는 프로그램은 최소한 기존의 상업적인 방송이 이미지화 하는, 장애인에 대한 동정적이고 시혜적인 모습으로 나오지는 않으리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생각지도 않았던 다큐인의 박종필 감독에게서 전화가 왔다. 김주영씨와 함께 사회를 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이었다. 당황스러운 제안이었고, 이런 저런 고민은 있었으나 다른 좋은 사회자가 나타날 때까지만 한시적으로 한다는 마음으로 시작해보기로 했다.
무엇보다 장애여성운동을 하면서, 우리 사회에서 정상의 몸이라는 것을 가장 많이 요구하는 곳이 미디어라고 생각되었다. 진행자는 바른 몸, 정확한 말과 속도를 갖추어야 하고, 특히 여성 진행자는 젊고 예뻐야 하는, 이러한 몸을 가진 사람만이 카메라 앞에 설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다른 몸, 다른 말들은 이 사회가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장애가 있는 몸과 말의 속도가 다른 사람들도 나오는 방송, 그런 미디어도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뇌병변장애가 있으며, 전동휠체어를 사용하는 김주영씨와 소아마비장애로 몸의 변형이 있으며 전동휠체어를 사용하는 나의 모습을 카메라 앞에 나서게 했다.
시민방송과 다큐인도 일정정도 장애가 있는 다른 몸의 등장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3. 격주 수요일. 오후는 없는 시간.

월요일이면 어김없이 김주영씨에게서 전화가 온다. 
대본 초안과 시간 스케줄 담당을 맡은 김주영씨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잊고 있던 긴장이 생긴다. 이 주일에 한 번씩, 목요일 오전이 녹화일이라 수요일 오후에는 박종필 감독, 김주영씨와 나와 머리를 마주하고 고민을 거듭하며 대본을 완성한다.
박종필 감독은 이 방송이 박종필 감독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이 주체로 장애인의 경험과 참여가 들어간 방송이여야 한다고, 대본 작업에서 나와 김주영씨가 꼭 참여하기를 바랬다. 무엇보다 언제였는지, 무엇 때문인지는 기억이 잘 나지는 않지만, 대본 회의를 하는 중에 어떤 문제를 어떤 관점으로 바라봐야 하는가 하는 문제로 박종필 감독과 내가 팽팽한 대립 속에서 의견교환을 하는 시간을 보내기도 하였다. 그것은 대본 속에 언어 하나에서도 장애인에 대한 민감성을 드러내는 중요한 의미가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고민해야만 했다.
방송 주제를 정하고, 영상을 찍고, 대본 회의를 하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참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었다. 토론을 하는 중에 자료들을 볼 수도 있고, 서로 정보를 공유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는 시간이었고, 언제나 장애인 차별에 대한 사안으로 현장 투쟁에 급급한 상태라 미쳐 공부를 하지 못했던 나로서는 공부할 기회여서 좋았다.
또한 이러한 대본회의 때문에 격주 수요일 오후시간은 다른 어떤 시간보다 항상 우선으로 내어놓고 있어야 했다. 그리고 이 시간 조정 때문에 김주영씨가 그동안 수고가 컸다. 김주영씨에게 개인적으로, 이 회의 때문에 늦은 시간에 활동 보조 시간 맞추기 위해 마음고생 많았던 것에 대해 이 자리를 빌려 미안했다는 마음을 전한다. 

4. 영상 속에 있는 두 얼굴의 장애인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사계절 중 가장 좋은 계절이라는 4월 좋은 봄날에 ‘장애인의 날’이 만들어져 달력에 기록되어 있다. 이 날이 되면 나의 전화기가 바빠진다. 각 매체에서 바리바리 전화가 오는 이유는 어려움 속에서 장애를 극복하고 사는 장애인이나 뭔가 도움이 필요한 장애인은 없는지 또는 성폭력당한 장애 여성이나 장애인의 성에 관하여 인터뷰해 줄 장애인을 소개해 달라는 것이다.
‘장애인의 날’을 맞아 특집을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을 가진 매체들의 노력을 보면 한편으로는 일상으로 장애인이 잘 드러나지 않는데, 이럴 때라도 가상히 여겨야 하지 않을까 싶으면서도 이런 섭외가 들어 올 때마다 조심스럽기만 하다.
영상에 일상적으로 장애인이 안 나오는 것만이 아니다. 나오고 있긴 하지만, 드라마에서나 르포에서나 여러 프로그램에 나오는 장애인에 대한 시선은 동정적이고 시혜적이다. 대부분의 장애인들이 자기 삶의 계획을 자신이 계획하고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다른 누군가가 대신해주는 모습이 나오고 있다. 
그래서 ‘나는 장애인이다.’라는 프로그램의 방향은 장애인의 모습을 주체적이고, 당당하고, 자기 권리를 주장하는, 그래서 스스로 자기 삶을 변화시키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모습을 미디어에 보여 주자는 것으로 정하였다.
그래서 2006년 10월부터 ‘나는 장애인이다’가 시작되면서 그 즈음에 가장 치열하게 장애인의 생존권을 요구했던 것으로 ‘활동보조인 서비스 제도화’와 ‘장애인차별금지법 재정’과 ‘장애인등 특수교육법 제정’ 그리고 ‘사회복지사업법 개정’등 많은 사안들이 있었다. 장애인들이 투쟁하는 모습은 ‘나는 장애인이다.’의 영상에서 가감 없이 나타내졌고, 이러한 굵은 사안들이 법으로 제정되거나 개정되어지는 큰 성과들이 있었다.
이러한 것들을 영상에 담아내면서 우리의 보람도 컸다. 투쟁현장에서 장애인과 함께 연행되기도 하고 농성장을 지키기도 하고 활동 보조도 하면서 카메라를 놓지 않았던 다큐인의 감독들과 활동가들의 수고가 장애인의 진솔한 요구가 가진 진정성을 영상에 담아낼 수 있었다. 이러한 우리의 노력이 장애인 운동을 풍부하게 해주는 역할을 했다는 자부심을 가진다.


5. 우리 이야기를 하기 어려운 것과 그래도 해야 하는 것

지금까지는 장애인의 권리와 요구를 전문가들이 전달해 왔다.
이제는 장애인들이 스스로 자신의 요구를 표현하고 있으며 ‘나는 장애인이다’에서 이것을 충분히 전달하려는 목적은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주체적인 장애인의 모습으로, 미디어에 대한 새로운 도전이었고, 그리고 사회 변화의 출발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영상에 장애인의 더 다양한 모습들을 담아내지 못했던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투쟁뿐만 아니라 일상에서의 섬세한 접근으로, 몸의 차이와 차별과 눈물과 웃음과 노력을 보여 줄 수 있는 여러 방법의 모색이 어려웠다. 그리고 다큐인과 시민방송국의 인력부족과 재정적 어려움 등 우리 자신을 평가하며, 잠시 더 충전해서 더 나은 모습으로 다시 시청자들을 만날 것을 다짐하면서 지난 9월 20일 방송을 마쳤다.
목욕일 아침마다 밤을 꼬박 새워 편집하고 충혈된 눈으로 나타나던 다큐인 활동가들의 얼굴을 보지 않는 것은 좋지만, 그래도 스튜디오에서 엔지 날 때마다 서로를 격려하던 마음들이 참 소중했던 기억은 오래오래 내 삶의 힘이 되었던 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조용하게 시청해주셨던 시청자들께도 감사를 전하며 장애인들의 힘찬 모습을 기억해 준다면 우리의 선택은 맞았다는 기쁨이 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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