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47호 / 2007년 11월 29일
한국독립 다큐멘터리 속에서 본 비정규직 투쟁 | |
한범승(미디어활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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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된 옛날 얘기부터 해볼까 한다.
17~18세기 매뉴팩처 시대의 수공업적 노동자는 ‘장인’이었다. 지금으로 치자면 대학교수급이라고나 할까? 당시의 노동자는 업무에 숙련되는데 오랜 세월이 걸렸고, 일하는 모습과 작업장의 환경도 지금과는 전혀 달랐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노동자의 일상은 기계가 생산에 투입되면서 일시에 파괴되었다. 테일러 포드 시스템의 전지구적 확산과 더불어 생산 과정 자체가 투명해지면서, 19세기 산업혁명 이래 노동은 언제나 탈숙련화의 방향을 취했고, 그것은 노동자의 탈권력화로 이어졌다. 그것은 신세기를 향한 핑크빛 무드 속에 정보화 사회의 도래와 신종 직업의 무분별한 등장으로도 깨지지 않을 만고불변의 법칙이다. 그 게임의 규칙 속에서 요 몇 년 새 우리나라에 불어 닥친 IMF 구제 금융은 구조조정이란 이름하에 수많은 노동자들을 정리해고 시켰다. - 제 1장 : 퇴출.. 98년 IMF 때 다들 이렇게 말했다. “모두 다 죽을 수 없기에... 누군가는 배에서 내려야 한다”고.. 그로부터 10년이 지났다. 그 10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것이 똑똑히 알 수 있었다. <인간의 시간>(부제: 19980618-20000127_태준식/2000년/116분)은 바로 그 시점... “모두다 죽을수 없기에 누군가 배에서 내려할” 그 시점을 기록한 다큐멘터리다. ![]() 결국 450여 일간 거리에서 투쟁한 노동자들은 신자유주의의 전지구적 공세를 등에 업고, 구조조정이란 이름 아래 사회 각계에서 자행되는 그‘합의’라는 것에 의해 퇴출되고 만다. - 제 2장 : 확산.. 경기보조원들은 말한다. “우리도 노동자이고 싶다.”고.. ![]() 노동자이면서 노동자 지위를 받지 못한 예는 비단 “경기보조원”뿐만 아니었다. 2003년 발표되었던 김미례 감독의 <노동자다 아니다>(김미례/2003/60분)라는 다큐멘터리를 보면 그 현상은 더욱 뚜렷해진다. ![]() 경기보조원과 레미콘 노동자와 같이 노동자이면서 노동자로서 지위를 인정받지 못한 특수고용직의 확산으로 인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범위는 점점 넓어지게 된다. - 제 3장 : 배신.. ![]() <이중의 적>(이지영/2003/129분) 이라는 제목은 권력과 자본이라는 하나의 거대한 적에 익숙해있던 노동자들이 맞닥트린 새로운 상황을 상징한다. 지금 ‘노동자는 하나’라는 대원칙으로 총파업이 조직되고 ‘비정규직 철폐하라’는 슬로건이 노동자계급의 첫 번째 슬로건이 되었지만 이러한 구호가 이제 구호로만 외쳐지는 슬픈 현실(자본의 미끼로 의해 노동자가 노동자를 지배하게 되는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 제 4장 : 분노.. 노동자도 인간이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청계천 한복판에서 제 몸뚱이를 불태웠던 ‘전태일 열사’ 하청노동자도 인간이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며 또다시 제 몸뚱이에 불을 지핀 ‘박일수 열사’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 그런데 어쩜 이다지도 외침이 똑같은 것일까?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조선소, 현대중공업에서 사내하청 노동자 박일수 열사가 “하청 노동자도 사람이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유서를 남기고 분신해 자결했다. 단 하나뿐인 혈육인 딸을 두고 추운 겨울 매서운 바닷바람 피할 곳 없어 공장을 전전하고, 펄펄 끓는 철판 위에서 햇볕 한줌 피할 곳 없어 그늘을 찾아 헤매야 했던 비정규직 노동자의 설움과 절망을 남기고 열사는 자신의 몸을 불살랐다. 박일수 열사가 일했던 현대중공업은 세계 제일의 기술력을 자랑하는 조선소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수없이 많은 노동자들의 희생이, 특히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죽음이 가려져 있다. 현대중공업에는 대략 150여개에 이르는 사내 하청업체가 있고, 1만 2천여 명의 하청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원청과 하청업체에 의해 철저하게 법의 사각지대로 방치됐고, 일회용 소모품처럼 버려졌다. 연장근로, 야간근로, 휴일근로, 주휴수당, 연월차수당, 퇴직금, 그리고 4대 보험 가입은 사내하청 노동자들에게 남의 나라 이야기일 뿐이었고, 노동부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억울함을 철저히 외면했다. 그 뿐이 아니다. 현대중공업 안에서는 노동자의 목숨은 파리 목숨으로 전락하고 있었다. 박일수 열사가 분신하던 날 아침에도 근-골격계로 산재치료를 받고 있던 현대중공업 직영 노동자가 산재의 고통을 이기지 못한 채 병원 계단에서 목을 매어 자살했다. 하지만 사측에서는 이러한 사실을 감추기에 급급했다. 그뿐만 아니다 박일수 열사가 분신한 2004년 현대중공업에서는 산업재해로 인해 10여명의 사내하청노동자들이 죽음을 맞이했다. ![]() 바로 <유언 - 박일수 열사가 남긴 56일의 이야기>(2005/80분/박세연)는 지난 2004년 2월 14일 울산에서 분신한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 박일수 열사가 분신한 날로부터 땅에 묻힐 때까지 총 56일의 기간을 중심으로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과 투쟁을 조명한 작품으로 현제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열악한 지위를 대변하고 있다. - 제 5장 : 그리고 지금... 2006년 12월 30일 정기 국회 마지막 날 거대정당들은 ‘비정규직 보호법’을 처리해 버렸다. 그러나 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되기도 전인 2007년 6월 30일 이랜드 그룹의 뉴코아에서 일하던 350명의 계약직 전산원 노동자들이 해고 통고를 받는다. 그리고 이들이 근무하던 자리는 외부용역업체에서 파견된 사원들이 채워졌다. 또한 같은 그룹 홈에버에서도 지금까지 무려 500여명의 비정규노동자들이 길거리로 내몰리고 만다. 비정규직 보호를 위해 만들어진 법이 법 시행 전부터 문제가 터지기 시작 한 것이다. 이번 이랜드 홈에버 사태에서와 같이 기업들의 2년 이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대량해고가 연이어 있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비정규직보호법을 통한 노동시장의 유연화는 정부의 신자유주의 세계화 구호 속에서 더 가속화 될 것이며 이는 결국 이랜드 홈에버 사태와 같이 기업의 이윤을 목적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합법적으로 대량 해고하는 악순환을 만들 것이다. 따라서 이랜드 홈에버 비정규 노동자들의 투쟁은 삶의 벼랑 끝에서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며 이후 비정규직보호법의 적용에 있어서 선례가 될 수 있는 중요한 투쟁이다. 고로 이랜드 투쟁을 기록 중인 한국 독립다큐멘터리 감독들의 카메라에 더더욱 기대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 이랜드 투쟁이 어떻게 전개 되어 갈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의 카메라에 기록되어지는 영상들이 편집되어 세상 밖으로 나올 시에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 되어 승리의 감격을 만끽할 수 있길 조심스럽게 기대해 본다. 투쟁! 참고 및 인용 자료 인간의 시간 - 4백50일 동안의 싸움 현대중기산업. 고용승계 기만 합의 거절의 기록 (주성철) 겨울에서 겨울로 - 제 4회 여성영화제 홈페이지 http://www.wffis.or.kr 이중의 적 - 노동자뉴스제작단 홈페이지 http://www.lnp89.org/ 유언 - 그의 죽음을 헛되이 말라(이동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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