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53호 / 2008년 7월 30일
아고라가 묻다홍지 (진보네트워크센터)idiot@jinbo.net
아마추어의 혁명, 프로를 당황케 하다
2006년, 나는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아래 에이즈예방법) 전면개정을 위한 활동에 참여하고 있었다. 당시, 아고라를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의 활동을 알리자는 제안이 나왔다. 우리는 모두 “그렇게 하면 좋겠지.”라고 생각은 했으나, 실제로 아고라에 게시물을 올리는 일은 없었다. 여전히 우리들에게 인터넷은 가상의 공간이자 현실과 유리된 공간, 나아가 유언비어와 욕설이 난무한 오염된 공간이었다는 인식이 강했다.
그러나 2년이 지난 지금. 청계광장에서 최초의 촛불이 켜진 5월 2일 이후, 아고라는 2달 넘게 지속되는 유래 없는 집회의 유일한 배후 세력으로 지목된, 스스로를 유일한 배후세력으로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다. ‘운동의 프로'라고 말할 수 있는 활동가들이 한 달을 고심하며 벌이는 일들을 아고라는 한 시간 만에라도 거리에서 현실로 만든다. 일례로, 소위 ‘~권'들은 안티조선운동이 시작된 이래 몇 년 동안 조선일보의 지면 한 페이지를 줄이지 못했는데, 아고라는 단 며칠 만에 조선일보의 지면을 절반 가까이 줄여버렸다. 경악했던 것은 조?중?동뿐만이 아니다. ‘아마추어' 네티즌들의 맹활약에 ‘프로' 활동가들 역시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었다.
나는 현재 에이즈 치료제 공급을 위한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함께하는 활동가들은 2년 전 그대로이다. 이제 우리들은 누가 말하지 않아도 직접 아고라에 우리의 활동을 알리는 글을 올린다. 아무도 그 공간이 현실과 다른 공간, 합리적 토론이 불가능한 공간으로 보지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의 활동은 네티즌들의 주목을 받지는 못한다. ‘의료 공공성'은 아고라의 주된 토론거리 중 하나이지만, 우리가 올린 글은 1분에 몇 십 건씩 올라오는 게시물의 홍수 속에 묻히고 만다. 왜 그럴까?
온-오프라인 경계 허물기 : 스티로폼 연단 논쟁
정보통신운동은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온라인 안에서의 소통을 고민해왔다. 오프라인은 영역 밖의 공간, 정보통신운동이 관여할 필요가 없는 다른 공간이었다. 오프라인 활동 역시 온라인 공간을 도구로서 활용할 줄 밖에 몰랐다. 최초의 대규모 촛불이 일었던 2002년 효순이?미선이 추모 집회와 2004년 탄핵반대 집회, 2006년 평택 미군기지 이전 반대 집회에 이르기까지 그러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아고라에서 벌어진 조?중?동 광고주 게시물 소송 건으로 그간 좀체 만날 수 없었던 정보통신운동과 언론운동 활동가들이 한 테이블에서 만나고 있다. 서로에게 불가침의 영역이었던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를 허물어버린 1등 공신은 누가 뭐래도 아고라이다.
6월 10일, 광화문 사거리에 마치 합성사진처럼 생뚱맞게 등장한 ‘명박산성' 앞에서의 온-오프라인 난상토론은 그 백미였다. 구리스로 떡칠이 된 그 거대한 조형물 앞에 사람들은 스티로폼 연단을 만들기로 하였다. 연단 설치는 거리에 있는 사람들이 몇 시간의 토론 끝에 합의 한 결과였다. 그러나 아고라에서 네티즌들이 문제제기를 했다. 튼튼하지 않은 스티로폼 위에 사람들이 모두 올라갔을 경우 발생할 추락 사고나, 발화점이 낮은 구리스에 마찰이라도 일어나서 화재가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우려, 그리고 붉은 조끼를 걸쳐 입은 한 무리의 사람들이 연단위에 올라가 있는 모습에 대한 거부감 등등이 터져 나왔다. 온라인에서의 문제제기로 결국 거리의 스티로폼 연단 쌓기 토론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야 했다. 이후로도 온-오프를 망라하는 수 시간의 논의 끝에, 6월 11일 새벽, 사람들은 몇 명의 기수들만을 명박산성 위로 올라가게 한다는 합의를 이끌었다. 깃발 중에는 ‘토론의 성지, Agora'라고 써진 깃발도 펄럭였다.
거리에 있지도 않은 네티즌들의 문제제기에 대해 어떤 이들은 ‘찌질이들'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비폭력 논의를 제안하고자 붉은 조끼를 걸쳐 입은 인권활동가들을 ‘프락치'로 몰아가고, 명박산성 위에 깃발만이 나부끼게 만든 ‘후퇴된 합의'를 이끌었다는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거리에 있었던 ‘아고리언(Agorian)'들이 당시 상황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아고라에 올리면서 활동가들에 대한 유언비어를 잠재우고, 또한 폭력-비폭력 논쟁을 온라인에서 지속시켰다. 논의는 이후 ‘국민토성' 쌓기로 자연스럽게 이어졌으며 또한, 경찰차벽에 가로막힌 광화문을 떠나 여의도로, 강남으로, 서울의 온갖 장소에 촛불들이 달려 나가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다. 인권활동가들도 내부적으로 대중과의 소통 문제를 고민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6월 14일, 인권활동가들이 시청 앞 광장에서 마련한 ‘비폭력과 직접민주주의' 토론회는 그러한 자성의 결과였다.
오마이뉴스 대신 아고라를 택하다
포털 사이트 ‘다음(Daum)'의 여러 서비스 중 거의 방치되다시피 했던 서비스인 아고라는 이번 촛불집회에서 모든 미디어를 압도했다. 아고라는 대의제의 틀 밖에 존재하는 대중적 소통 창구였기 때문이다.
2002년 효순이?미선이 추모 촛불집회 이후, ‘오마이뉴스'로 대표되는 인터넷 언론을 통해 대중들은 이전보다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정치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을 확보했다. 하지만, 노무현 정권 출범 이후, 이들마저도 청와대와 여의도를 정점으로 한 대의제의 틀 안에 매몰되기 시작했다. 노무현 정권은 대다수 국민들의 반대에도 파병을 감행하고, 대추리를 미군 손에 갖다 바치고, 강남불패 신화를 강 건너 불구경 하듯 바라보았다. 지금의 정권은 전(前) 정권이 즐겨 사용한 ‘말의 성찬'마저 걷어버린 채, 눈 감고 귀 막고 온갖 삽질에 여념이 없다. 대의제를 존립 근거로 삼는 미디어는 대중들의 정치적 요구를 정치에 전달하기 보다는 오직 여의도와 청와대에 누구를 보낼 것인지에만 관심을 가졌을 뿐이다.절차적 민주주의의 확대에도 대의제적 정치제도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폭주 속에서 대중들에게 철저한 배신감을 되돌려 주었고, 급기야 위험한 먹거리를 강요하며 목숨마저 위협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대의제가 대중의 목소리를 왜곡하는 것을 넘어, 귀 막고 눈감아 버리며 스스로에 대한 파산을 선언하자, 사람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요구에 대한 대답을 정치인들과 미디어에 기대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절차적 민주주의가 무력화되어, 말뿐인 대의제가 남아있는 상황은 곧, 전체주의로의 전이를 뜻하기도 한다. 가장 민주적인 헌법이라 불리며, 이후 여러 나라의 민주주의에 많은 영향을 끼쳤던 독일 바이마르 헌법 하에 등장한 최악의 전체주의 정권이었던 나치가 그 증거이다. 하지만, 21세기 남한의 대중들은 운 좋게도, 정 반대의 출구를 찾을 수 있었으니 노래 ‘헌법 제1조'와 함께 울려 퍼지게 된 직접민주주의이다.청와대 대변인의 한탄처럼, “쿠데타로 집권한 것도 아닌”, “출범한 지 100일도 안 되는” 정권에 대해 ‘독재타도'와 ‘이명박 out'이라는 구호가 등장하고 있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정권의 문제를 넘어 사람들은 대의제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를 시작한 것이다. 직접 민주주의의 요구가 전면화 되는 시기에, 나의 이야기가 그 누구의 손도 타지 않은 채 날(生)로 전파될 수 있는 것만이 지금의 촛불이 인정하는 유일한 미디어다. 그래서 과거 두 차례의 촛불과 달리 ‘오마이뉴스' 대신 ‘아고라'가 떴다.
아고라의 산파술(産婆術) : 질문으로 구성되는 직접민주주의
아고라의 네티즌들은 그 말의 기원이 되었던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 광장을 모방하며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해갔다. 아고리언들은 인터넷에 모여서 소고기 문제뿐만 아니라, 온갖 것들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권'들이 수년 째 고민만 하고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던 것들을 하룻밤 사이에 이야기를 하고 바로 행동으로 옮긴다. “공영방송 사수”를 외치며 광화문에서 여의도까지 2시간 가까이 걸린 촛불 행진을 감행하고, 검찰청 사이트에 “나를 고발하라.”며 실명으로 글을 올리며,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퇴근길에 지나치는 지하철역마다 촛불을 들고 서 있기까지 한다. 5.18 광주 민주화 항쟁 기록에서나 보았던 시민들의 자발적인 물품 (우비, 수건, 음식, 물 등)지원은 물대포가 시위대를 겨누는 날이면 어김없이 등장한다.
전체주의로 전이될 조짐을 보이는 권력들을 공격하는 이러한 직접행동은 경찰이 안쓰러울 정도로 집착하는 광우병국민대책회의의 ‘회의록'이 명령한 것이 아니다. 길거리에서 벌어지는 직접행동의 모든 동력은 다름 아닌, ‘질문'에서 비롯된다.“이건 도대체 뭐야?”로 끝나는 게시물들은 곧바로 새로운 직접행동을 낳고, 또 다른 질문과 행동을 낳는다. 6월 10일 명박산성 앞에서의 스티로폼 연단 논쟁 역시 끝없는 질문들이 이어지면서 밤을 지새웠다. 네티즌들은 폭력집회 논란이 불거진 6월 7일 집회 현장을 찍은 사진을 분석하여, 경찰이 쳐놓은 펜스를 부순 사람이 집회참가자인지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기도 한다. “조?중?동을 어떻게 골탕 먹일까?”라는 질문에 대해 광고주에 대한 압박 전화를 하자는 대답을 내놓았고, 네티즌들의 이러한 요구를 무시하는 회사에 대해서는 경쟁업체를 띄워주는 기획을 내놓았다. 보수언론의 공격에 ‘다음'이 아고라의 ‘추천베스트'란을 ‘찬성'과 ‘반대'로 나눠버리자, 아고리언들은 “뭐니?”하면서, 자신들의 글에 ‘반대' 버튼을 눌러달라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다음의 눈물겨운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고라 추천베스트 란은 찬성베스트건, 반대베스트건 여전히 온갖 지령(?)들로 넘쳐난다.
“전체주의의 진정한 반대자는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었다. 질문은 무대 뒤에 그려진 배경그림을 잘라서 그 뒤에 숨겨진 것을 보여주는 칼과 같다.”라는 밀란 쿤데라(Milan Kundera)의 말처럼, 이명박 정권과 보수언론이 짜놓은 시나리오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아고리언의 질문들에 번번이 농락당하고 있다.2008년의 촛불에서 ‘~권'들이 맥을 못 쓰고 있는 이유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 활동가의 존재 역시 대의제의 틀 안에서 필요가 있는 태생적 한계가 있기에, “왜?”라고 질문을 쏟아내는 대중들에게 “~을 해야만 한다.”라는 이야기밖에 하지 못한다. 역사는 진보한다는 키치(kitch)와 대중동원을 위한 아지(agitation)를 만들어내는 데만 익숙한 나머지, 현장에서의 구체적인 요구들과 활동과 활동을 연계시키는 상상력이 고갈된 활동가들은 이번 촛불집회에서 대중들에게 가까이 다가서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6월 10일 스티로폼 연단에서 활동가들은 비판을 받았으며, 아고라에서 우리들이 올린 글들이 외면 받는 이유 역시 이 때문일 것이다.작금의 대중들은 주어진 주장에 대해 선택하는 대의제적 질서를 거부하며, “왜?”라고 질문하고, 토론을 통해 스스로 답을 찾아가면서 직접민주주의를 새롭게 구성하고 있다. 그들은 정치인과 미디어뿐만 아니라 활동가들조차 불신하며 스스로 새로운 주체로 나서고자 하는 것이다.
물론, 주체가 되고자 하는 대중들의 질문과 그에 대한 해답으로 내놓은 행동들이 언제나 정확하거나 올바르지만은 않다. 6월 1일 경찰의 과잉집안이 있었던 경복궁역에서 ‘여대생이 사망했다.'는 확인되지 않은 사실들이 인터넷에서 일파만파로 퍼지기도 했다. 집회 때마다 인터넷에서 떠도는 각종 유언비어들은 네티즌들이 ‘명박퇴진'과 같은 말머리 달기 등을 통해 가려내려고 하지만 역부족인 상황이다. 또한, 개인의 신상정보가 공개되면서 피해를 받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여과되지 않은 용어들은 소수자들에게 상처가 되기도 한다. 이를 핑계로 정부는 무차별적인 임시조치, 인터넷 실명제 확대 등 인터넷에 대한 온갖 규제 정책들을 내놓고 있는 상황이다.
디지털 쓰레기장에서 꽃피우는 아고라
한나라당 주*영 의원은 아고라를 향해 “소수의 인터넷 룸펜들이 다수를 가장해 분노와 증오를 부추기는 디지털 쓰레기장”이라고 말했단다. 틀린 말은 아니다. 지난 6월 27일 조선일보의 한 기사는 주성영 의원의 발언을 뒷받침해준다. ‘극소수가 토론 지배하는 다음 아고라, 10명이 2만 1810건 글 올려'라는 제목의 기사는 “지난 4월 1일 ~5월 18일 다음 아고라 게시판의 글을 분석한 결과, 상위 10명이 무려 2만 1810건의 글을 썼고, 1위는 3170개의 글을 올렸다.”라고 보도한다.그런데, 이보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다음 아고라를 지배하는 극소수의 네티즌” 중 최대 글 게시자인 ‘환율'은 아고라에서 소위 ‘알바'라 불리는 네티즌이었다는 점이다. ‘환율' 외에도 ‘소수의 인터넷 룸펜'으로 순위권에 올라온 이들 알바 중에는 한나라당 의원의 비서관으로 알려진 사람도 있다.
주*영 의원의 충고를 받아들여 디지털 쓰레기장에서 옥석을 가려내고, 조선일보에게 어처구니없는 자살 보도(?)를 했음을 친절히 알려준 이들은 다름 아닌 ‘아고리언'들이다. 그러니 아고라가 ‘디지털 마오이즘'이나, ‘마녀사냥'에 경도되어 있다고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원래부터 민주주의란 정상과 비정상, 추함과 아름다움의 경계가 없이 온갖 것들이 모인 쓰레기통 같은 것일지니! 그들은 그 속에서 끝도 없이 질문할 것이며, 사실을 캐내려 할 것이며, 그 과정에서 현재의 모난 부분들은 가다듬어질 것이다.그런데도 이 정부는 인터넷에 글을 올렸다는 이유만으로 전담 검사만 5명을 배치하여 공안사건 다루듯이 하여, 게시물 삭제로도 부족하여 출국금지에, 가택 압수수색에, 인터넷 실명제를 확대한다고 하니, 그들에게 두려운 것은 과연 무엇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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