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53호 / 2008년 7월 30일
촛불속의 미디어, 진화하다 |
조대희 (칼라TV PD) |
장면 1 촛불집회가 재중계 되는 다음(daum) TV팟과 아프리카 방송 채팅방의 글들이 쉴 새 없이 오른다. “시청광장 천막 강제철거중입니다”, “현재 시위대가 종각역 쪽으로 이동중이예요”, “청계광장에서 경찰과 충돌중입니다. 칼라TV 빨리 가주세요!”, “시청광장으로 출발합니다." 장면 2 경찰의 원천봉쇄로 막힌 시청광장을 뒤로 한 채 을지로로 행진하던 시위참가자들은 경찰들에 갇히게 되고, 지휘책임자인 남대문경찰 서장은 시위대를 향해 경고방송을 한다. “피켓 든 놈, 깃발 든 놈, 촛불 든 놈 다 잡아!”, “등록된 언론사가 아니면 취재에 응할 수 없습니다.", “인터넷방송 촬영 못하게 다 막아!” 장면 3 경찰과 대치중인 시위대의 촘촘한 대열을 따라 카메라가 이동을 하면 시민들은 길을 열어준다 “칼라TV 지나갑니다. 길 좀 비켜주세요!”, “아프리카 보고 열 받아서 나왔습니다.", “SBS 찍지 마, 내려와”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과 미국산 쇠고기문제로 시작된 촛불은 조중동 반대운동, 공영방송지키기, 공공부문 민영화반대, 의료민영화반대, 대운하반대, 비정규직철폐, 한미FTA 등 정부정책 전반과 신자유주의 문제로까지 확장되었다. 또한 아고라로 상징되는 온라인 광장과 오프라인 광장의 촛불은 시민불복종운동이고, 직접행동이며 축제의 한마당이라고 볼 수 있다. 어쩌면 우리는 시민들을 광장으로 불러내어 거리의 정치, 축제의 장을 펼칠 수 있도록 한 이명박 대통령에게 감사해야 할지도 모른다. 5월 2일부터 시작된 촛불은 7월말 현재 장맛비에 잠시 주춤한 듯 보이지만, 이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여전히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의 촛불은 꺼지지 않고 환하게 타오르고 있다. 촛불은 명박산성을 넘기 위해 모래탑을 쌓기도 하고, 엄청난 압력의 물대포를 향해 스크럼을 짜고 맞선다. 광장의 원천봉쇄는 게릴라 시위로 이어지고, 경찰과 격렬하게 대치하는 전방과는 달리 후방에서는 자유로운 토론이 벌어지며, 거리 음악가들의 반주에 맞추어 노래와 율동이 어우러진다. 때로는 10 시간 넘게 밤새 이어지는 이 촛불 버라이어티쇼는 인터넷 망을 타고 전국으로, 해외로 중계된다. 이 글에서는 그간의 미디어활동과 촛불 속 현장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촛불과 인터넷 생중계의 상호작용, 촛불 생중계를 통한 미디어의 확장과 아프리카로 상징되는 생중계 플랫폼, 촛불이 미디어운동에 남긴 것들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물론 촛불이 현재 진행형이고, 현재도 새로운 실험 속에 있기에 미처 담아내지 못하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부족하지만 촛불 속 미디어운동의 경험과 고민을 함께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움직이는 인터넷 생중계의 출현 5월 2일 처음 광장으로 모여들기 시작한 촛불은 몇 번의 진화를 거듭하게 되는데 그 첫 진화는 24일 문화제를 마치고 벌어졌다. 20여일 넘게 진행된 촛불 행렬에도 불구하고 대화할 생각이 없는 청와대를 향해 시민들이 광장을 벗어나 청와대로 행진을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 날은 청계광장의 촛불문화제에 고정되었던 생중계의 카메라가 움직이는 CCTV가 된 날이기도 하다. 촛불 초기만 해도 인터넷 생중계를 했던 오마이뉴스, 민중의소리 외에는 개인미디어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주류 미디어에서도 촛불 생중계를 하고 있고, 개인미디어는 그보다 훨씬 더 많다. 그만큼 촛불은 주류와 비주류, 경찰의 표현대로 하면 등록된 미디어와 등록하지 않은 미디어, 모두에게 중요한 콘텐츠였다. 촛불정국에서 인터넷 생중계가 큰 반향을 일으킬 수 있었던 외부적 환경은 크게 접근하기 쉬워진 디지털장비, 용이해진 미디어서버접근성, 그리고 이동 가능한 무선인터넷 와이브로 등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특히, 미디어서버 접근성과 와이브로가 없었다면 10시간이 넘는 저화질의 라이브 촛불영화를 밤잠을 설쳐 가며 감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사실 촛불 이전에도 인터넷 생중계는 여러 가지 내용과 형식으로 존재했다. 사회운동이슈로서 2006년 한미FTA 투쟁과 2005년 부산 아펙(APEC) 반대투쟁, 홍콩 WTO 각료회의 저지투쟁때 생방송 형식의 생중계가 있었고, 노동절, 노동자대회, 노동조합의 대의원 대회, 진보정당의 대의원대회 그리고, 각종 토론회 생중계 등은 노동사회운동 내부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상태였다. 다만 지금과 차이가 있다면 이동 생중계가 가능하지 않았다는 점뿐이다. 인터넷 생방송을 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촬영 장비 외에 여러 명이 동시에 접속해서 시청이 가능한 스트리밍 서버가 필요한데, 이 스트리밍 서버는 비용 면에서 그리고 기술적으로도 쉽게 접근할 수 없었다. 그러나 동영상 UCC 사이트가 속속 생겨나고, 동영상 콘텐츠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게 되면서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다양한 동영상 플랫폼들이 생겨나게 되는데 그중의 하나가 촛불정국에서 가장 인기를 끌게 된 플랫폼이 바로 아프리카(http://www/afreeca.com) 이다 (afreeca는 A Free Camera의 약자) 아프리카는 개인들이 쉽게 생방송을 할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하는 곳으로 이곳의 인기생방송은 게임중계부터 시사적인 것까지 다양하다. 물론 지금도 많은 수의 UCC 영상이 연예인들의 가십거리나 흥미, 오락 거리만을 다루고 있으며 다음이나 아프리카의 생방송에서 최고 인기방송은 게임중계방송이다. 하지만 촛불 정국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흥미, 오락중심의 생중계가 정치, 사회적 이슈로까지 확장되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촛불 생중계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아고라, 인터넷 커뮤니티 등 온라인 전반에 걸쳐 목격되고 있다. 촛불과 생중계의 상호작용 그리고 미디어의 확장 촛불 생중계에서 주목해야 하는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가 촛불과 생중계의 상호작용이고, 두 번째가 미디어의 확장이다. 촛불과 인터넷 생중계는 어떤 방식으로 상호작용 했을까? 5월 24일을 돌이켜보자. 많은 참가자들은 광장 안에서 거리로 행진한 이후, 자정이 넘은 시간에 ‘생중계를 보고' 거리로 뛰쳐나왔다. 아프리카 재중계방에서는 칼라TV 재중계방만 수십 개, 실시간 채팅창에 많게는 2천명이 동시접속해서 실시간으로 촛불의 감상평이 올라오기도 하고, 각종 정보들을 쏟아냈다. 아울러 카메라가 미처 잡아내지 못하는 긴박한 상황에 대한 취재요청과 함께 집회 참여를 독려하는 글들이 채팅방을 채웠고 경찰의 폭력적인 진압을 보다 못해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자정이 넘은 시간 택시를 타고 달려오기도 했다. 촛불 생중계 팀이 지나갈 때 마다 목격되는 촛불의 환호는 촛불과 생중계가 어떻게 상호작용하고 있는가를 다시 한 번 증명한다. 칼라TV의 경우 상황실 전화기로 수많은 제보전화와 문자가 날아오고, 칼라TV의 천막으로 시민들이 성금과 보급품들이 줄을 잇기도 했다. 이동하는 카메라의 앵글을 따라 생중계 모니터를 바라보고, 채팅방에서 열심히 키보드를 두들기는 것을 넘어, 생중계 플랫폼을 통해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는 재중계는 미디어의 확대, 재생산이다. 여기에 더해 단순하게 생중계 원소스를 재중계하는 차원을 넘어 자신의 목소리로 내레이션을 넣고 자막을 통해 또 다른 방송을 만든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여기에서 원본과 복제본의 구분은 더 이상 무의미해지며, 촛불속의 미디어는 확장하고 재생산 된다. 촛불 생중계의 시청자들은 시청자로서 관객으로서 뿐만 아니라 집회 참여자이며, 생중계의 제작자로 더 나아가 새로운 방송을 창작하는 미디어로 확장 되는 것이다. 그런데 촛불 속의 미디어가 확장, 진화하면서 몇 가지 문제와 부딪치게 된다. 프라이버시문제, 생중계의 선정성문제, 그리고 개인미디어들의 자유로운 취재제약문제 등이다. 경찰의 불법적인 강제 진압과 연행으로 촛불이 격렬해지면서 촛불 생중계는 경찰의 폭력적인 진압에 포커스가 맞추어진 감시 카메라로 작동하기를 요구 받기도 하고, 도심의 수많은 카메라는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개인들의 프라이버시 침해를 가져오기도 한다. 그리고 등록하지 않은 개인미디어의 자유로운 취재가 경찰에 의해 때로는 집회 참가자들에 의해 제약을 받기도 한다. 이는 경찰의 불법적이고 무분별한 체증이 그 원인이지만 자유로운 취재 제약문제는 독립미디어 활동가들에게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촛불 생중계의 배후는 아프리카? 촛불 생중계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곳이 아프리카이다. 초기에는 모든 촛불 생중계가 아프리카 방송으로 불리어지기도 했다. 이는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자체 미디어서버의 유지, 운영비용이 만만치 않기에 한겨레신문, 프레시안 등도 아프리카에서 제공하는 생중계 플랫폼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마이뉴스의 경우에는 8개 채널이 가능한 자체적인 생중계 솔루션을 통해 생중계를 하고 있는데, 미디어서버는 플래시 기반의 서버이다. 칼라TV의 경우 2001년 초반 사회운동진영이 공동으로 출자해 만든 노동넷의 미디어서버를 대여해서 사용하고 있으며, 이 서버는 윈도우 기반의 서버이다. 비용문제로 대여서버의 회선을 줄이고, 아프리카와 다음에서 제공하는 플랫폼을 통해 재중계 하는 방식과 자유소프트웨어를 같이 병행하는 것을 현재 검토하고 있다. 참세상의 경우 윈도우 기반의 서버를 통해 송출하지만 플랫폼은 자유소프트웨어인 VLC를 사용하고 있다. 민중언론 참세상에서 사용하는 자유소프트웨어 플랫폼인 VLC(Video Lan Client) (자세한 설명은 액트온 <촛불생중계, 자유소트트웨어로 보고, 재전송하기>를 참고)는 앞서 설명한 윈도우나 플래시처럼 고가의 별도 미디어서버가 아닌 시청자의 개인 피시가 서버역할을 하면서 P2P 방식으로 생중계를 시청하는 동시에 재중계 할 수 있는 플랫폼이다. 단점은 채팅기능이 없다는 점이나, 채팅기능은 다른 형태로 구현이 가능하다. 칼라TV는 방송초기 아프리카로부터 독자적인 플랫폼 제공에 대한 제안을 받았으나 거절했다. 거절이유는 아프리카가 상업 플랫폼이기 때문에 생중계 시작 때 노출되는 상업광고는 어쩔 수 없겠지만, 해외 이용자는 별도로 비용지불을 해야 시청이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제공하는 다음 TV팟 생중계 플랫폼은 현재까지 광고는 없으며 해외 이용자도 시청이 가능하다. 여기서 우리는 상업 생중계 플랫폼이 영리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다소 사용자들에게 폐쇄적인 부분을 가지고 있으며, 혹 현재 그렇지 않더라도 언제든지 그런 부분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한국의 온라인 환경에서 다음과 아프리카를 단순히 ‘미디어자본'으로 규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다소 복잡하다.) 또한 현재 정부에서도 다각도로 온라인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여기에서 볼 수 있듯이 어찌 되었건 분명한 것은 온라인공간이 권력과 자본에 의해 언제든지 통제 가능하다는 점이다. 자유소프트웨어의 인프라가 극히 낮은 한국에서 미디어 플랫폼 사업자를 뛰어 넘는 서비스는 불가능하겠지만 자유소프트웨어의 적극적 이용이 현재 촛불의 개방성, 참여의 역동성과 오버랩 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촛불방송이 우리에게 남긴 것 그리고 이후 촛불 광장에서 칼라TV는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통해 옴니버스 독립다큐멘터리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를 상영했고, 반응은 뜨거웠다. 영화를 보는 내내 채팅방은 한미FTA, 새만금, 비정규직, 사립학교법 문제에 대한 토론으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분명 촛불이라고 하는 특수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겠지만, 지금 촛불은 더 다양한 콘텐츠를 원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미디어운동 진영은 온라인을 통한 콘텐츠 배급에 대해 좀 더 적극적으로 사고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본다. 1인미디어 또는 개인미디어는 어떤 형태가 되었든 기술적 진화를 거듭하고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미디어 환경자체를 변화시킬 것이다. 아직 상용화 단계는 아니지만 와이브로 기능이 내장된 장비가 카메라 일체형으로 개발되었고, 인코딩과 서버송출 기능을 하는 노트북을 최소화하는 형태로 장시간 사용할 수 있는 장비도 개발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기술진화의 과정에서 지금도, 앞으로도 그 선점의 우위는 주류미디어 라는 점이다. 이 글을 마무리 하고 있는 24일 저녁 촛불집회 진압경찰 포상에 대한 기사와 민주노총 지도부에 대한 체포영장발부 기사를 접했다. 언젠가는 촛불이 꺼질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정부의 대응은 장기적 투쟁에 대한 고민을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다. 진보신당의 당원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가고 있는 칼라TV는 천막철거 이후 약 한 달간의 여관 생활을 청산하고 숙대입구 근처에 작은 사무실을 마련, 새로운 실험과 투쟁을 준비 중이다. 필자소개 : 미디어활동가로 2004년 이주노동자 인터뷰 프로젝트 <죽거나 혹은 떠나거나>와 2006년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 작업에 참여했고, 현재 칼라TV 책임PD로 활동하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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