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 54호 현장] 방송과 영화관의 새로운 만남 인디스페이스 KBS 스페셜 「누가 유가를 움직이는가」(이강택PD연출) 특별상영회
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54호 / 2008년 9월 1일
방송과 영화관의 새로운 만남 인디스페이스 KBS 스페셜 「누가 유가를 움직이는가」(이강택PD연출) 특별상영회 |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 프로그래머 김소혜 |
지난 7월 30일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에서는 특별한 상영회가 있었다. 그 전 주인 7월 27일(일)에 방송되었던 KBS스페셜 「누가 유가를 움직이는가-3차 오일쇼크의 배후」를 극장에서 상영하는 행사였다. 어떤 이들은 TV에서 방송된 프로그램을 왜 굳이 다시 스크린으로 상영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번 상영은 인디스페이스가 ‘다른 영화관'을 지향하는 또 하나의 작은 실험의 시작이었다. 조금은 다른 영화관 작년 11월 8일 인디스페이스가 문을 열었다. 그리고 반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독립영화가 더 다양한 방식으로 관객에게 다가가기 위한 여러 가지 시도를 하고 있다. 그러나 접근성이 좋지 않은 단관극장이라는 한계 속에서, 충분한 마케팅 비용도 없이 조금은 낯선 영화들로 관객을 만나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은 일이다. 그와 함께 극장을 시작하기 전부터 나에게 있었던 또 한 가지 고민은 ‘극장'이라는 환경이 이미 현재의 미디어 지형에서 너무 낡은 공간이 아닌가라는 고민이었다. 다양한 방식으로 새로운 미디어가 소통되고 결합되는 지금, 일정한 관람료를 내고 어두운 극장에서 1시간 남짓의 시간을 보내는 전통적인 관람 행위가 과연 현재의 독립영화배급에 얼마나 효과적일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한계들 속에서 인디스페이스는 처음부터 ‘조금은 다른 영화관'이 되어야 할 의무감이 있었다. 새로운 미디어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형성된 새로운 운동들과 다양한 창구로 소통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결합할 것. 이러한 모토는 당연한 듯 보이지만, 실제 프로그래밍의 영역에서 어떤 방식으로 구체화 될 수 있을지는 조금 막막한 일이기도 하다. 여전히 그러한 고민은 나에게 숙제로 남아있다. 이번 상영은 그런 의미에서 영화와 방송이라는 산업지형에서 획일적으로 구획화 된 미디어의 영역을 넘는 첫 번째 시도였다. 5월부터 시작된 촛불집회로 많은 국민들이 현 정부의 여러 가지 정책들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지금, 이강택 PD가 만든 KBS스페셜은 여러 의미로 되짚어 볼 만한 이야기였다. 그러나 통상적으로 TV 다큐멘터리가 일회적으로 방송된 후 사장된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이에 이번 극장 상영을 통해 TV 다큐멘터리의 일방적 상영과 수용의 형식을 벗어난 다른 소통을 불러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또한 KBS 정연주 사장 사태를 둘러싼 논쟁이 거센 지금, 방송국 밖에서 방송과 미디어 환경에 대해 나누고 싶은 이야기도 많았다. 이러한 기본적인 생각을 바탕으로, 미디액트 김명준 소장님의 도움과 이강택 PD님의 적극적인 협조, 그리고 KBS 한국방송공사의 자료 협조로 이번 상영이 준비되었다 특별상영 「누가 유가를 움직이는가」 그리고 관객과의 만남 그러나 특별상영이라는 이름으로 기획된 이번 프로그램은 불행히도 홍보할 시간이 여유롭지 않았다. 게다가 이미 전 주에 방송된 영상을 다시 상영한다는 핸디캡을 안고 초조하게 관객을 기다릴 뿐이었다. 흔쾌히 사회를 맡아준 김명준 소장님은 몇 명이 없더라도 심도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위로해주셨지만, 한산한 극장 안을 바라보는 관계자의 심정은 결코 편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한 상황에 다른 극장에서 같은 시간에 있는 시사회로 인디스페이스 상영관 입구가 거의 막히자, 더욱 노심초사.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하나, 둘, 관객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상영이 시작되었다. HDCAM 상영본은 TV에서 볼 때와 비교할 수 없이 깨끗하고 선명한 영상으로 큰 화면 속에 흘러가기 시작했다. 이강택 PD의 이번 다큐멘터리는 천정부지로 오르는 세계 유가, 그 이면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작품이었다. 이강택 PD는 지난 2006년 「얼굴 없는 공포- 광우병」을 연출해 당시 큰 파장을 일으킨 바 있으며, 「위험한 연금술, 유전자 조작식품」등과 같이 신자유주의 시대 초국적 자본이 야기하는 사회 곳곳의 다양한 문제들을 TV다큐멘터리에서 풀어내왔다. 이번 다큐멘터리 역시, 피크오일(peak oil:원유생산량이 정점을 지나 급격히 감소하는 상태)에 대한 세계적 공포 이면에 유가를 손에 쥐고 흔드는 초국적 자본들의 실상을 파헤치며, 치솟는 유가의 근본적 문제를 다시 묻는 작품이었다. 60여분의 상영이 끝나고, 관객과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많지 않은 관객이었지만, 상영이 끝날 때 약 40여명의 관객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약 1시간여 가까이 계속된 GV동안, 거의 한 명도 자리를 뜨지 않은 채 활기찬 토론을 벌였다. 사회를 맡은 김명준 소장은 GV를 시작하면서 “방송 다큐멘터리의 경우 이렇게 관객과의 대화를 하는 것이 매우 드물다”고 입을 떼며, 이러한 기회를 통해 더 다양한 관객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눌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내비쳤다. 이강택 PD 역시 극장이라는 환경에서 큰 스크린으로 집중해서 자신의 작품을 다시 보면서 새로운 부분들을 많이 발견했다고 말하며, 결론이 너무 성급히 끝난 것 같아 아쉽다는 말을 했다. 이후 이어진 관객과의 대화에서는 다큐멘터리 속의 내용인 유가와 석유자본의 문제가 보다 심도 깊게 이야기되었고, 방송에서 다 하지 못한 뒷이야기들이 자유롭게 오갔다. 진지한 자세로 GV에 자리를 지켰던 관객들은 마치 강의실의 학생들처럼 필기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며, 자신이 정리한 내용을 바탕으로 전문적인 질문을 던지는 분들도 있었다. 일부 관객들은 초국적 자본의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들이 주는 무력감에 대하여 토로하기도 했다. 이강택 PD는 물론 결말이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구조를 먼저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했다. 같은 맥락에서 피크 오일문제가 어떤 부분에서 사실이라 할지라도 피크오일을 도입하는 순간, 대안 에너지, 친환경 에너지로 문제가 전환되며, 투기자본의 문제가 가려진다는 점을 지적했다. GV에서는 방송의 내용과 신자유주의 시대 초국적 자본에 대한 의견들뿐만 아니라, 방송 다큐멘터리와 독립다큐멘터리가 연계하는 방식에 대한 여러 전망들도 나왔다. 김명준 소장님은 외국의 경우 방송사가 독립다큐멘터리의 제작비를 조성하고, 이렇게 만들어진 다큐멘터리를 방송으로 방영하는 커미셔닝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데 한국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며 방송사와 독립 다큐멘터리 진영이 보다 적극적으로 연계하는 방식을 도모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리고 이러한 연계의 시초로 이번과 같은 상영회가 발판이 될 수 있을 것임에 동감했다. 새로운 상영회를 준비하며 이어진 뒤풀이 자리에서는 보다 많은 이야기가 자유롭게 오고갔다. 이강택 PD는 항상 집에서 산만한 가운데 자신이 만든 다큐멘터리를 봤었는데, 1시간동안 극장에서 집중해서 보게 되니 새로웠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와 함께 이번 상영회가 어떤 방식으로 계속 될 수 있을지에 대한 여러 가지 아이디어도 공유할 수 있었다. 방송 전에 먼저 영화관에서 시사를 하거나, 방송에서 다 하지 못했던 감독판을 상영하는 방식으로 다양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 수도 있을 것이며, 그 과정에서 독립영화와 독립영화전용관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새로운 관객들이 이 공간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하게 되었다. 이번 상영은 방송다큐멘터리와 영화관이 연계하는 새로운 시도였고, 어떤 면에서 파일럿 프로그램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기회를 통해서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나 자신도, 콘텐츠를 만든 감독도 새로운 가능성들을 볼 수 있었다. 인디스페이스가 조금은 다른 영화관으로 어떻게 성장할 것인가. 그리고 독립 다큐멘터리와 방송 다큐멘터리 사이의 벽을 어떤 방식으로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인가. 이에 대한 자세한 전략과 전망은 앞으로 계속 될 상영회들에서 차근차근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다음 프로그램이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앞으로도 이런 방식의 상영회는 다양하게 시도될 예정이다. 더 많은 홍보와 준비를 통해서 새로운 관객들이 이 공간에서 많은 것을 담아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독립다큐멘터리, 방송 다큐멘터리, 인디스페이스, 그리고 관객이 함께 성장하며, 이 공간이 새로운 창구가 될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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