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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69호 특별기획 2010.05.05] 한국영화아카데미 파행 사태의 경과와 그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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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16. 1. 21.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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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69호 / 2010년 5월 5일




한국영화아카데미 파행 사태의 경과와

‘그들에게만' 보내는 경고
 
 
 
이용배(한국영화아카데미 1기/비대위 위원장)

 

 

 

 

그들에게는 한국영화아카데미가 ‘학교'였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현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의 조희문 위원장은 한국영화아카데미 (*주1) 가 ‘영화학교'가 아니기를 바라는 속내를 자기 입으로 드러내고야 말았다. 인사말만 해도 되는 자리에서 그는 “영화아카데미를 학교라고 부르지 말아 달라”고 주문했던 것이다. [영화아카데미,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동문회 주최 포럼(3월 18일, 서울아트시네마에서 개최)에서다.

 

 

지루한 공식 같던 인사말은 중단되고 발제가 시작도 되기 전에 포럼은 격렬한 토론장 분위기로 급변해 버렸다. 객석에서까지 거센 항의성 발언들이 끼어들자 조 위원장은 당황하는 기색을 보이면서도 충분히 즐기는 듯 애써 태연했다. 역시 그 특유의 언변은 갈팡질팡하였다. 영화아카데미가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는데 왜들 이러느냐고 했다. 왜 변한 게 없냐며 기능축소와 직제개편을 언급한 작년도 장관업무보고 내용은 뭐냐고 따지자, “보고는 보고일 뿐”이라고 했다. 지금 장관이 바로 앞에 있어도 그렇게 말하겠냐고 했더니 “그럴 수 있다”라고 우기기도 했다. 원장이 공석인 이유와 교수진 계약이 반토막으로 강행된 것은 뭐냐는 질문들이 쏟아졌다. “아카데미 원장을 공모한다는 공지가 이번 주(3월 15일)에 이미 났다”라고 생색내면서 “교육기능은 축소할 것이며, 정규교육을 없애고 재교육 중심으로 개편시키는 실행 작업은 신임 원장 주도하에 하면 된다”며 조금 전에 내뱉은 모순된 말마저 어물쩍 넘겼다. 그게 본인도 영 거북했던지 “이런 계획이 주무부처인 문화부만이 아니라 주요 관련부처(특히, 기획재정부)까지 확정되어 있다”며 자기 손에서 이미 떠난 사안인 듯한 발언도 하였다.

 

 

보다 못해 토론자로 오셔서 객석에서 대기 중이던 하명중 감독이 마이크를 잡았다. “위원장이 그렇게 말하면 되나”, “영화아카데미는 재건축 개념으로 더 번듯하게 만들어놔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충고하자 조 위원장은 입을 다문 채 벌겋게 얼굴이 달아올랐다. 50분 가까이 진행되던 초유의 ‘발제 이전 격렬 토론'은 그제야 겨우 정리되었다. 조 위원장은 표피 두꺼운 얼굴을 들고 선거유세장에 나온 후보처럼 근사한 악수를 나누며 토론장을 빠져나갔다.

 

 

당시 동문주최 포럼마저 기어이 파행(?)일 수밖에 없게 된 사연은 대체 무엇 때문이었을까? 왜 그들은 영화아카데미를 떳떳하게 ‘영화학교'라고 인정하지 않으려는 걸까? 지난 한 달 간 아카데미 원장을 공모하여 최종면접 절차(4월 5일)까지 다 마치고 일주일이 넘게 발표(12일 임명 공개)를 미룬 것도 아직 그들만의 속셈이 끝나지 않아서다. 영화아카데미가 이렇게 극심한 파행을 거듭하게 만든 도화선이 무엇인지 추적해 보자.

 

 

 

그들의 ‘좌파 토벌작전'과 그들만의 잔치

 

 

 

문화계의 좌편향을 바로잡겠다고 ‘문화미래포럼' (*주2) 이 떴을 때 일이다. 당시 동아일보 사설은 ‘촛불'까지 인용하며 이렇게 환영한 바 있다.

 

 

- 이미 영화 속의 반미는 유행처럼 됐고 좌파 서적이 학교의 필독도서로 선정되는 일이 당연시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자유민주주의에 근거한 건강한 문화관과 국가관을 수호하겠다'고 선언한 문화미래포럼의 등장은 때늦은 감이 있다. “이제 촛불을 켰으니 어둠 속에서도 모이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라는 복(거일) 대표의 말처럼...(2006년 11월 18일자) -

 

잃어버린 10년 만에 정권을 잡았다던 MB정부 탄생 이후, 이제 칼자루를 쥔 그들은 엄청 빠른 속도전으로 몸집을 불려나갔다. 바로 뉴라이트 계열 문화단체들이었다. 물론 가장 센 칼은 문화미래포럼이 선점해 치고 나갔다. 자주 그리고 열심히 심포지엄을 열었고, 자칭 우파들을 결집시켰다. 뉴라이트전국연합의 문화예술정책센터도 발족(2008년)시켰고, '문화미래포럼 2008 매니페스토'를 내밀며 “앞으로 또다시 지난 촛불 시위와 같이 포퓰리즘을 등에 업고 구차스럽게 잔명을 이어가는 좌파 세력들의 책동이 되풀이된다면 우리는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고난도의 행군 선언도 했다. 2008년 9월에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고흥길 위원장에게 ‘문화 예술계 현안과 과제'라는 제목의 문건도 제출했다. 그것은 ‘좌파 토벌작전서'였다. 영화계 좌파 세력을 청산할 것, 민예총 등 문화예술단체를 개혁할 것, 한국예술종합학교를 개혁할 것, 국공립 예술단체들의 전속제를 철폐하고 계약제로 전환할 것... 그 내용은 장관을 포함한, 문화계를 쥐락펴락하는 정권의 실세들에겐 철칙이었다.

 

 

‘좌파 토벌작전'은 연중무휴 십자포화를 날리며 강행되었다. 지난 정부 기간 동안 영진위가 그 근거지를 지원했음은 물론, 독립영화 관련 단체, 부산영화제 등 각종 위원회 및 소속 영화인들은 국가보안법 폐지, 한미 FTA 체결 반대,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등 좌파 문화운동에 적극 참여하여 대한민국의 이념적 정체성을 변혁시키기 위한 활동을 계속 하고 있으니 그냥 둘 수 없다는 것이다. 그 가운데 ‘문화예술 분야의 좌파 엘리트 집단의 온상'이라며 진행했던 ‘한예종 죽이기'는 점입가경이었다. 이를 몸으로 막아서던 1인 시위 학부모는 ‘좌파에 세뇌' 당한 것으로 매도되었다. 그것도 ‘좌파 때려잡기' 나팔수로 나선 문화부 장관께서 친히 자전거로 사령부를 내왕하시던 중 안장에 앉아 빙빙 돌면서 그랬다.

 

 

 

당시는 문화미래포럼의 영화분과 회원이었던 조희문 인하대 연영과 교수(현 영진위원장)도 그 나팔에 그 나팔수였다. 그는 “한국 영화계가 그동안 이념과 선동의 레드카펫을 걸었다”고 했다. “‘표현의 자유' 확대는 기존의 가치와 인식을 전복하는 빌미로 동원되었으며 ‘스크린쿼터 수호'는 한국 영화 보호의 명분을 업은 채 반미 선동의 명분이 되었다”, “(독립)영화 운동의 근저에는 외세 배격의 주장이 있었고, 이는 이북의 선전 이념과 맞닿았다”며 나팔수 대장(문화부 장관)에게만 들으라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은 자리(영진위원장)에 있어 가급적 균형을 잡으려 여러 목소리를 듣는다지만, 그는 “영진위를 접수한 좌파 세력들이 영화를 동원한 ‘문화혁명'을 수행했다”고 그 폐지의 나팔소리를 드높였던 장본인이다.

 

 

사태가 이런데 영화아카데미라고 온전하겠는가? 그래서 필자는 문화계 우파인사들이 한예종 사태가 일단락되자 영화계 주도권쟁탈 차원에서 공격 목표를 영화아카데미로 재설정한 것으로 본다고 인터뷰(한겨레신문, 3월 18일자)했던 것이다. 이것이 ‘아카데미 흔들기'의 배경이자 본질이다. 이런 것이 모든 파행의 도화선이다.

 

 

영진위는 2012년에 부산으로 이전할 계획이며, 부처 효율화 등에서 성과를 내고픈 장관의 지시로 2011년 조기 이전을 서두르고 있다. 이때 문제가 되는 곳이 남양주종합촬영소(매각 추진 중)이고 그 직원들이다. 강제적 구조조정에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현상소, 녹음실 등 기술사업부의 기능 축소 또는 중단으로 남는 일부 직원들에게도 할 일은 찾아주어야 한다. 정규영화학교로 취급하지 않던 아카데미가 그들만의 잔칫상이 된 것은 당연하다. 3D입체영상 컴퓨터 기술교육을 포함해서 마음대로 기능을 축소하고 조직을 개편하자는 것이다. 성과를 낳은 브랜드로 확인된 아카데미 간판은 그대로 두자는 것이다. 마침 일부 원로 영화인들도 영화아카데미에 부정적인 태도도 보이니, 그것을 부각시키면 간단하다.

 

 

“영화아카데미가 너무 엘리트 집단화 되었다아~”. “반미, 좌파영화 밖에 못 만드는 것들이 영화계 핵심세력이 되었다아~”, “촛불정국 때 시국선언에 참여한 영화인들 중에 국비 혜택을 받아 공부한 아카데미 출신 애들도 많다아~”, “국고 지원 교육비가 과다하고, 영상원과 중복 투자다아~”, “정규교육에 드는 예산을 삭감하고 영화인 재교육 예산으로 돌려라아~” 등등. 여기에 영진위원장의 영화아카데미에 대한 편견과 무지, 직제 개편과 원장 공석에 따른 학사행정 마비를 초래한 독선, 학칙 등 교수회의 요청 묵살과 기만, 문화부 일개 부서 과장의 전화 지시에 맹종하는 권위 추락 등이 보태지면서 아카데미 파행은 지속되고 있다.

 

 

 

영화아카데미 총동문 중심의 비대위가 보인 대응과 엄중한 경고

 

 

연속적인 아카데미 파행에 맞서 총동문회는 비상총회를 개최(2009년12월18일)하였다. 곧바로 대표단을 구성하여 영진위원장 면담과 공개질의서를 발송하였지만 반응은 없었다. 정상화를 촉구하는 결의대회(2월6일)를 개최하여 힘을 결집해 보았다. 영진위는 요지부동이었다. 오히려 불투명하게 공모, 선정한 제2기 독립영화전용관 시네마루가 궁지에 몰리자 아카데미 졸업작품들을 땜빵으로 대리 상영토록 저작권한만 남용하고 있었다. 시네마루 상영장 앞에서 ‘내 영화를 상영하지 마라'는 1인 시위(2월 22일~3월 5일)를 진행했다. 1인 시위를 마감하며 2차 공개질의서도 직접 전달(3월 5일)했다. 국회(최문순의원실 후원) 프레시안 토론회 [영진위 정상화를 위하여: 영진위가 가야 할 길을 묻다]에 참석하여 아카데미 입장을 전달하고 토론하였다. 그들은 가타부타 없이 감감하기만 했다.

 

 

그러나 3월16일 ‘영진위 정상화를 촉구하는 1천 영화인 선언'으로 1692명의 명단이 공개되자마자 즉각적인 연락이 왔다. 모든 영화인들이 한 목소리를 내는 것에 화들짝 놀란 것이다. 앞에 서술한 조 위원장의 횡설수설은 그 이틀 뒤에 있었던 일이다. 바빠서 참석 못할 듯 하더니 제 발로 찾아와서는 제 값도 못 추스르고 만 꼴이었지만.

 

 

 

그래서 엄중하게 경고하고자 한다. 이제까지처럼 한다면 1692명의 영화인은 곧 2010명이 되고 5000명도 넘어 관객들마저 나설 것이다. 영화아카데미는 ‘그들만이' 좌지우지할 수 있는 밥그릇 싸움터가 아니다. 이미 아카데미는 27년간 어떤 정권이 들어섰어도 한국영화 한복판에서 소중한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적어도 아시아의 영화자산 급은 된다는 인정도 받고 있다. 지금 영화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무차별적 '좌파 낙인'과 공격, 소위 ‘척결'은 결국 ‘그들만이' 코 박는 잔치가 될 것이 분명하다. 잃어버렸다는 열등의식에서 헤쳐 나와 함께 가자는 넉넉함을 발휘해 보라. 영화는 문화이고 다양성이며 예외도 끌어안는 살아있는 가치이지 않은가. 남한강과 북한강이 양수리쯤에서 만나 한강으로 흐르지 않던가. 영화아카데미는 앞으로도 새로 임명된 원장과 함께 인위적인 편 가르기가 아니라 교육의 근간이 살아 숨 쉬는 영화 배움터가 되어야 한다. 더 이상 흔들지 마라. 아니, 영진위로부터 독립시키자. 우리 국민 모두에게도 소중한 국립영화학교 하나 제대로 만들자.□

 

 

*주1) 한국영화아카데미 : 영화진흥위원회 부설 영화학교

 

 

*주2) 문화미래포럼 : 2006년 문화예술계의 우파 지식인을 중심으로 발족, 비정치적・자유민주주의・정부비지원의 기치로 설립한 문화단체. 2008년 12월에 있었던 ‘새 정부의 문화 정책의 방향' 토론회 자리에서 문화미래포럼은 ‘문화미래포럼 2008 매니페스토'를 발표하고 “소위 좌파 이데올로기는 그 생명력을 소진했다고 판단한다”며 “오늘의 대토론회가 이 같은 좌파 이데올로기의 종식을 선언하는 자리가 될 것을 희망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필자소개


이용배
애니메이션 및 영화감독
한국영화아카데미 1기 졸업생이자 한국영화아카데미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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