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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69호 특별기획] 미디액트 핑계대고 잘 놀고 있는 우리들.

이전호(78호 이전) 아카이브/특집

by acteditor 2016. 1. 21.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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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69호 / 2010년 5월 5일

 

 

 

미디액트 핑계대고 잘 놀고 있는 우리들.

[돌아와 미디액트]

나비 (돌아와 미디액트)


 

 

 

에잇 더럽다! 이제 광화문 쪽은 쳐다보지도 않을거야

 

 

처음 미디액트가 공모에서 탈락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래서 스텝들이 일주일 만에 짐을 싸서 광화문 일민미술관 5층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야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이제, 정말 광화문 쪽은 쳐다보지도 않겠어. 라고 말이다.

 

 

당시에 수강하던 [영화, 글쓰기] 수업시간에 들어와 왜 미디액트가 계속 광화문에 있을 수 없는지를 설명하는 스텝 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일주일 만에 짐을 싸는 모습을 뻔히 보면서도 뭔가 현실감이 없었다. 그렇지만 공모 결과 발표 일주일 만에 광화문에 있던 영상미디어센터 미디액트는 없어졌고, 시민영상문화기구의 광화문 미디어센터가 그 자리를 채웠다. 모든 일은 참 기가 막히게 빠르게 일어났다. 광화문 쪽은 쳐다보지도 않으려고 했는데 종로에서 술마시고 집으로 가려면 어쩔 수 없이 광화문을 지나가야 한다. 그래서 나는 자꾸만 기억하게 된다. 원래 미디액트는 광화문에 있었는데. 라고, 저기서 다큐멘터리를 처음 배웠는데. 라고, 그리고 저기에 참 많은 순간들이, 많은 친구들이,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는데... 라고 말이다. 좋은 기억들은 잘 까먹어지는 게 아니니까 말이다.

 

 

 

나는 미디액트는 ‘당연히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광화문역에 내려서 5번 출구로 나와서 일민미술관으로 들어가는 문을 열고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기다렸다가 엘리베이터가 내려오면 엘리베이터에 살짝쿵 올라타서 5층 버튼을 누르고 문이 닫히고 그리고 다시 문이 열리면 거기에 있는 것. 그게 바로 미디액트였다. 2007년 봄, 처음 독립다큐멘터리 제작과정을 수강하면서부터 미디액트에 대한 공모 얘기가 떠돌던 2010년 초반까지 나에게 미디액트는 늘 그런 곳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깨닫게 되었다. 미디액트는 당연히 있는 데가 아니었구나. 아.......... 왜 나는 늘 당하고 나서야 알게 되는 걸까!!???

 

 

 

뒤통수는 맞았지만;;; 덕분에 생긴 ‘돌미'

 

2009년에서 2010년으로 해가 바뀌던 즈음부터 영상미디어센터의 새 사업자 선정을 위한 공모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이야기가 돌기 시작했다. 멀쩡히 잘 하고 있는데 왠 공모? 물론, 이런 생각도 있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미디액트에 대한 무한한 신뢰로 공모를 한다 해도 뭐 해볼 만하지 않겠어? 라는 생각도 있었다. 난 정말... 미디액트가 공모에 떨어질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2010년의 대한민국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그 이상을 매순간 갱신하며 보여주는 공간이다. 놀라운 영화진흥위원회의 심사위원들은 지난 8년 동안 차곡차곡 쌓아온 공공미디어센터 ‘미디액트'의 성과를 단박에 종이쪼가리 정도로 취급해버렸다. 1차와 2차로 이어진 심사. 그리고 1차에서 꼴찌로 탈락시켰던 시민문화영상기구라는 듣도 보도 못한 단체를 2차에서 기어이 사업자로 선정했다. 미디어센터를 이용하던 사람들은 듣도 보도 못한 어떤 사람들이 미디액트, 일민미술관 5층 그 공간을 차지해버렸다. 모든 일은 말할 수 없이 빨리 일어났다. 그 공간에 있던 사람들이 그동안 점유했던 공간에 대한 최소한의 권리를 주장할 사이도 없이 모든 것이 사라졌다.

 

 

미디액트가 이사를 하기 며칠 전, 우리는 너나할 것 없이 미디액트 대강의실에 모였다. 미디액트 복도를 지나치며 많이 봐서 어쩐지 익숙한. 그래서 안다고도 할 수 없고 모른다고 하기에도 뭣한 사람들이 모여 앉아 처음으로 자기소개를 하고, 쑥스러운 인사를 나누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미디액트가 없어지는 이상한 상황을 막으려고였다. 그리고 우리는 ‘돌아와 미디액트'라는 이름으로 함께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미디액트 돌아와'였지만 줄여서 ‘미돌'이 되는 것보다는 ‘돌미'가 낫지 않은가? 여튼 우리는 ‘돌미'가 되었다. 나는 그제야 알게 되었다. 나만의 공간, 내 공간 이라고 생각했던 미디액트는 사실 우리 모두의 공간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복도를 지나쳐가는 사람들. 로비에 앉아서 수다를 떨던 사람들. 각 강의실을 메우고 수업을 듣던 사람들. 그리고 밤을 세우며 믹싱을 하거나 편집을 하는 사람들. 무지 많은 장비를 5층에서 1층으로 1층에서 5층으로 나르던 그 사람들 모두의 공간이었다는 걸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새로운 이름도 생겼다. 통칭 ‘돌미들'이라고나 할까?

 

 

 

 

 


“집회 하시는 건가요?” “아니 그냥 노는 건데요;;;;”

 

 

‘돌미들'의 본격적인 행동은 곧 시작되었다. 미디액트에서 관리하던 회원들의 개인정보가 사이트 이양과 함께 시민영상문화기구로 인계된다는 것을 알고 나서 회원들은 적극적인 ‘개인정보 인계거부'를 하기 시작했다. “제 개인정보를 듣보잡 단체로 절대 넘겨주지 마세요!” 라는 글이 게시판에 계속 해서 올라오기 시작했다. 미디액트를 탈퇴하는 것이 아니라 이상한 심사 결과로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는 영상미디어센터를 탈퇴하겠다는 것이었다. 정보 인계거부에 이어서 직접적인 항의행동도 꾸려졌다.

 

 

1월 27일의 영진위 사업자 선정 결과 규탄 기자회견과, 1월 29일의 미디어센터 사업자 선정 철회 요구 기자회견 “심사를 발로 했습니다.” 같은 기자회견도 있었지만 2월 10일의 영진위, 문화관광부에 대한 항의 1인 시위 음악회 같은 형식의 항의 행동도 있었다. 집회도 아니고 기자회견도 아닌 애매한 상황이었다. “유인촌 빵꾸! 조희문 똥꾸! 둘이 합쳐 빵꾸똥꾸!”라는 가사로 시작되는 경쾌한 노래를 부르고 있는 우리에게 살짝 다가온 경찰들은 “지금 집회 하시는 건가요?”라고 물었다. 그렇지만 우리의 대답은 “아니, 그냥 노래하는 건데요. 노는 건데요”일 수밖에. 그리고 누구는 항의 전화 체험기를 게시판에 올리고 문화관광부와 광화문 미디어센터를 슬쩍 슬쩍 왔다 갔다 하며 틈틈이 1인시위도 한다. 그리고 급기야 광화문 일민미술관 앞에서 돗자리를 펴놓고 돌아와! 미디액트! 이런 저런 물감을 찍어 글씨를 예쁘게 써보기도 하고, “국민혈세로 니들만 잘 먹냐! 우리도 잘 먹으련다!”라며 우동을 끓여먹기도 한다.


 

 

 

 

사실 누구누구가 ‘돌미'의 회원이다. 라고 말할 수는 없다. 딱히 대표자라고 할 만한 사람도 없이 느슨하게 자발적으로 이루어져왔다. 물론 돌미 활동도 몇 달간 지속이 되다보니 얼굴을 자주 보이는 누구누구들이 생긴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돌미'는 ‘돌미들'이다. 정해져있지 않은 누군가 슥 하고 들어와 ‘돌미들'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내키는 대로 노래 부르고 ‘미디액트 돌려내'라고 떠들면 그만이다. 그래서 돌미의 활동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다.

 

 

자신의 영화를 만들겠다는 소박한 소망을 가지고 하나둘 몰려들었던 사람들이 꿈을 꿀 수 있었던 이유. 미디액트를 우리에게 다시 돌려내야 하는 이유와 같다. 이상하고 부당한 공모결과를 받아들일수 없는 이유도 그것과 같다.

 

 

 

자, 이제 우린 또 무엇을 하고 놀까?

 

 

공모결과의 발표가 난지 석 달이 가까워져 오지만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영화진흥위원회는 미디어센터와 관련한 이렇다 할 이야기를 내놓지 않고 있고, 부당한 심사결과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식이다. 아직도 광화문 미디어센터에 가면 출근하는 김종국 소장과 아무렇지도 않게 센터를 드나드는 영진위의 조희문 위원장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화가 나기만 한다. 저들의 뻔뻔함이 우리를 화나게 하지만 우리는 아마도 계속해서 지금처럼 노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미디액트는 광화문을 떠나 상암동에 자리를 잡아가고 있고, 어쩌면 곧 광화문보다 상암동이 더 익숙해질지도 모르지만 여전히 끝나지 않는 것은 그들이 아직 거기에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그러니까, 그러므로, 우리 ‘돌미들'은 한동안 계속 이러고 놀지 않을까? 1인 시위를 하고, 조희문과 김종국씨를 괴롭히고, 영진위 게시판에 심심할 때마다 항의글을 올리고, 노래를 하고 시끄럽게 떠들고 그래서 그분들에게 ‘여기서 계속 이러고 계시면 안 된다는 걸' 보여주지 않을까 싶다. 이제 곧 봄이다! 봄에는 꼭 함께 소풍을 가자!

 

 

 

 

 

필자소개

 


나비

돌아와 미디액트 회원, 4월 한달간 돌미 지키미로 활동하였다.
‘돌아와 미디액트'는 미디액트 공모 탈락의 부당성을 알리고 선정 결과 전면 백지화를 요구하는 자발적 연대체로 미디액트 수강생, 회원, 독립영화제작자, 교사 등이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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