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 94호 이슈와 현장 2015.8.20]
독립영화, 그리고 ‘독립적 유통’
- 독립영화와 자본 사이 (2) 독립영화 유통-배급의 현 상황, 그리고 대안
성상민(ACT! 편집위원회)
편집자 주 : 지난 시간에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를 중심으로 한국 독립영화의 유통과 배급이 결코 대형 영화사와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에 대해서 이야기하였습니다. 하지만 대형 영화사로 인해 생기는 문제만 해결하면, 모든 독립영화들은 같은 선상에 설 수 있는 것일까요. 대형 영화사의 힘으로 생기는 격차 외에 어떤 격차들이 발생하고 있는지, 그리고 독립영화인들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어떤 것들을 생각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독립영화의 유통-배급, 양날의 칼에 놓이다
지난 번 글에서는 CJ E&M을 중심으로 한국 독립영화가 대형 영화 투자-배급사와 이미 너무 많이 얽혀 있으면서 생기는 유통-배급 문제를 중심적으로 다루었다. 이러한 문제 제기에 대해 어떤 이들은 현재 한국 독립영화가 처해있는 문제를 단순히 대형 영화사가 독립영화에 쉽게 손을 대지 못하게 만들면 독립영화들 간의 공정한 경쟁이 가능하리라는 생각을 내비추기도 한다. 분명 대형 영화사가 독립영화에 끼치는 영향이 점차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대책이 일정한 효과를 낼 수 있겠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대형 영화사가 본격적으로 독립영화에 개입하기 전부터 독립영화들 사이의 유통-배급의 차이는 이미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먼저 한국 독립영화의 배급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져 왔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96년 이전, 다시 말해 한국 문화에 사전 검열 제도가 폐지되기 전까지는 일부 작품을 제외하고는 독립영화는 철저히 지하에서 유통되었다. 주류 매체에서 다루지 않는 한국 사회의 다양한 면을 다루는 영화들이 애초에 그 당시 ‘공윤’(공연윤리위원회)으로 대표되는 검열 기구를 통과할 수도 없었기도 했지만, 당시의 한국 독립영화는 각종 사회운동과 협력하면서 성장을 해왔기 때문이기도 했다. 1980년대 후반 ~ 1990년대 초에 제작된 김동원 감독의 <상계동 올림픽>, 영화창작집단 장산곶매의 <파업전야>, <오! 꿈의 나라>, <닫힌 문을 열며> 등의 작품들은 노동운동, 빈민운동, 교사운동과 함께 제작되었고 유통 역시 이들 운동과 함께 이루어졌다. 물론 그 유통의 방식은 자체적으로 제작된 비디오를 통해 알음알음 배포하거나 경찰의 감시와 탄압을 뚫고서 상영회를 여는 등 온갖 물리적, 사법적 제약이 가해지는 상황에서 열악하게 이루어진 것이었지만 기존 TV나 극장에서 볼 수 없었던 작품을 만들고 알린다는 차원에서 얻는 쾌감은 분명 시대적으로 유의미한 경험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로 접어들며 한국 사회의 운동은 점차 힘을 잃게 되었고, 운동과 함께 성장한 초기 한국 독립영화의 유통-배급 역시 그 성격을 조금씩 바꿀 수밖엔 없었다. 직접적으로 독립영화라는 단어를 꺼내지 않았지만 임순례, 정지우, 곽경택 등 훗날 높은 인지도를 얻은 감독들을 배출한 서울단편영화제나 세계화 붐 아래서 태어나 현재까지 한국 최대 규모의 영화제로 자리 잡고 있는 부산국제영화제, 또는 인디포럼과 같이 독립영화를 표방한 감독들이 만든 영화제 등 독립영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 영화제들이 1990년대 중반부터 속속들이 생겨났다. 이후 1996년 공윤의 사전 검열이 헌법재판소로부터 위헌 처분을 받으면서 더 이상 독립영화를 극장에 걸리지 못할 법적인 걸림돌은 사라졌고 그에 맞춰 인디스토리, 미로비젼, 동숭아트센터 영상팀(현, 영화사 진진), 시네마달 등 독립영화를 전문적으로 배급하는 영화사들도 속속들이 생겨났다. 이후 한국 독립영화의 주된 배급 방식은 비디오나 게릴라성 상영회 등 언더그라운드적인 성격에서 극장을 통한 방식으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여기에 2000년대 중반 이후 영화진흥위원회가 본격적으로 독립영화에 대한 제작, 배급 지원을 시작하면서 작품을 유통하는 비용도 조금은 덜 수 있게 되면서 독립영화와 극장 사이의 문턱은 낮아졌고, 여기에 2007년 한국독립영화협회가 ‘독립영화 전용관’을 표방한 인디스페이스를 개장하고 1990년대 말부터 <아름다운 시절>, <송환>, <우리 학교>, <워낭소리>, <낮술> 등의 작품들이 극장에서 좋은 흥행 성적을 거두며 극장을 통한 독립영화의 유통은 확고히 정착하게 되었다. 물론 여전히 각종 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 극장이 아닌 지역에 상영회 형식으로 작품을 유통하는 ‘공동체 상영’ 등의 유통-배급 방식이 존재하지만 이러한 방식은 이미 주류에서 멀어진지 오래이다. 그나마 이러한 방식을 택할 수 있는 작품도 <우리 학교>나 <두 개의 문>, <밀양전>과 같이 사회적 메시지를 가진 다큐멘터리 장르의 독립영화에 한정되고 있는 상황이다.
분명 한국 독립영화는 언더그라운드에서 극장으로 유통의 무대를 옮기면서 큰 성장을 달성할 수 있게 되었다. 전국에 채 열 곳도 되지 않던 독립영화관이 2015년 현재 전국적으로 약 50곳에 달하게 되었고, CGV 아트하우스와 같은 대형 영화사를 끼지 않고도 매년 한 작품씩은 독보적인 흥행을 달성한 작품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필자는 바로 이러한 변화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고 본다. 여전히 독립영화 내부에서는 지속적으로 ‘독립영화’에 맞는 제작과 유통 방식을 고민하고 있지만, 극장 상영을 개시하게 되면서 독립영화는 상업영화와 큰 차이 없는 환경에 놓이게 되었다. 특히 2009년 이후 개봉하는 독립영화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독립영화는 상업영화와의 경쟁뿐만 아니라 다른 독립영화와의 경쟁까지 준비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그렇게 독립영화의 환경 변화는 시장 확대와 경쟁 확대를 동시에 가져오는 양날의 칼을 낳았다.
무엇이 한국 독립영화의 유통-배급을 움직이는가
그렇다면 한국 독립영화 유통-배급은 구체적으로 어떠한 상황에 놓여있는 것일까. 현 유통 상황을 가장 두드러지게 보여주는 요인은 바로 ‘배급사’이다. 지난 번 글에서 살펴보았듯 이미 CGV 아트하우스를 위시한 대형 배급사는 독립영화 유통-배급에 있어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하지만 꼭 대형 배급사만 독립영화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배급사이냐에 따라, 특히 영화사가 극장을 소유하고 있는지의 여부가 작품의 상영 횟수를 좌우한다. 극장을 소유한 영화사의 경우 자사에서 배급하는 영화를 자사 소유 극장에 특별히 더 많이 상영하는 식으로 작품을 관객들에게 더 많이 노출시키고는 한다.
[사진 1] KT&G 상상마당을 통해 배급된 <족구왕>은 CGV 아트하우스를 통해 배급된 독립영화보다는 적은 상영관에서 배급되었지만, ‘자사 영화 밀어주기’ 논란에서 자유롭지는 못한 작품이었다.
예를 들어 2014년 CGV 아트하우스를 통해 배급된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한공주>, <도희야>에 이어 많은 관객들이 찾은 독립영화 <족구왕>의 사례를 보자. <족구왕>을 배급한 영화사는 대기업 계열인 KT&G 상상마당이다. 자사 영화를 개봉 첫 주에 200, 300여개 상영관을 통해 배급하는 CGV 아트하우스, NEW 등에 비하면 KT&G 상상마당은 아무리 상영관을 많이 잡아도 50개 내외에서 배급하고 있다는 점에서 양심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자사 소유 극장의 작품 상영 여부로 들어가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2014년 8월 21일에 개봉한 <족구왕>은 개봉 1주일간 KT&G 상상마당이 소유한 극장인 홍대의 ‘시네마 상상마당’을 통해 총 30회 상영되었다. 시네마 상상마당이 하루 5번 영화를 상영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주간 상영 횟수 35회의 거의 대부분을 자사 영화인 <족구왕>이 차지한 것이다. 심지어는 하루 종일 <족구왕>만 상영하는 날이 일주일 중 총 나흘에 달했다. 같은 시기 비영리적으로 운영되는 독립영화관 인디스페이스의 경우 <족구왕>은 주간 34회 상영 중 단 6회에 불과했다.
2009년에 개봉한 영화사 진진 배급의 <똥파리>도 비슷한 상황을 보였다. 현재는 폐관했지만 당시 영화사 진진이 대학로에서 운영하던 극장 하이퍼텍 나다에서 <똥파리>는 개봉 첫 주 주간 상영 횟수 34회 중 총 33회 상영되었다. 정기 특별전이 편성된 단 하루를 제외하면 <똥파리>는 쉬는 회차 없이 일주일 내내 계속 상영되었다. 하이퍼텍 나다보다 약간 늦게 <똥파리>를 스크린에 건 인디스페이스는 주간 41회 상영 중 10회 정도 거는 것에 그쳤다. 이들 사례는 비슷한 사례들 중에서 매우 극단적인 사례이긴 하지만, 멀티플렉스를 소유한 배급사에서 논란이 되는 ‘자사 영화 밀어주기’의 문제가 독립영화에서도 비슷하게 벌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2015년 7월 기준으로 영화사 진진(씨네코드 선재), 영화사 조제(스폰지하우스 광화문), 엣나인필름(아트나인), KT&G 상상마당(시네마 상상마당), 영화사 백두대간(아트하우스 모모)이 극장을 소유하고 있는 상태이다.
배급사의 극장 소유 여부 외에도 배급사의 홍보-마케팅에 따라서도 작품의 유통과 배급은 큰 영향을 받는다.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지난 6월 중순에 개봉한 <한여름의 판타지아>이다. <한여름의 판타지아>의 경우 개봉 전에는 영화제를 통해 소개되며 많은 호평을 들었지만 개봉일이 점차 다가올수록 흥행에 있어 많은 의문점을 남긴 작품이었다. 감독도, 배우도, 소재도 딱히 큰 화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지점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전후에 개봉하는 독립영화인 <마이 페어 웨딩>, <성난 화가>에 화제 요소가 가득했다. 전자의 경우 2013년 화제가 된 청년필름의 김조광수 대표의 공개 동성 결혼식을 소재로, 후자의 경우 인기 배우 유준상이 제작비 투자는 물론 직접 출연까지 한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여름의 판타지아>가 누적 관객 3만명을 돌파하며 좋은 흥행을 보였던 것과 달리 나머지 두 개의 영화는 각각 4500여명, 1000여명의 관객을 모으는 것에서 그치고 말았다. 대체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든 것일까.
여러 요인이 있었지만 흥행의 차이를 만든 큰 요인 중 하나는 홍보와 마케팅이었다. <한여름의 판타지아>는 개봉 전부터 영화를 소재로 각종 상품을 만들어 관객들에게 알리거나 네이버와 같은 포털 사이트 메인 페이지를 통해 노출하는 것은 물론, 개봉 이후에도 CGV 아트하우스나 시네마 상상마당 같은 극장과 함께 ‘플리마켓’, ‘시네마톡’, ‘라이브러리톡’, ‘라운지톡’, ‘관객 모더레이터’, ‘이동진의 라이브톡’, ‘CGV 아트하우스 데이’ 같은 다양한 행사를 계속 벌여 관객들의 관심을 지속적으로 이끌어 냈고 자연스레 입소문이 형성되었다.
반면 <마이 페어 웨딩>과 <성난 화가>의 경우 감독과 배우가 참석하는 GV 행사를 제외하면 <한여름의 판타지아>에 비해 홍보가 부족한 편이었다. 특히 <성난 화가>의 경우 배급사를 끼지 않고 제작사가 자체적으로 배급하는 작품이기에 상영관 확보에 있어서도 난관을 보였다. 그나마 <마이 페어 웨딩>이 <한여름의 판타지아>와 비슷한 규모로 배급되었지만 <마이 페어 웨딩>은 <한여름의 판타지아>보다 일찍 극장에서 내려가게 되었다.
물론 이러한 상황들이 단순히 나쁘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영화를 만들고 배급하는 입장에서는 이번 주에 막 개봉한 영화를 하루에 1, 2회만 편성하는 소위 ‘퐁당퐁당 상영’으로 관객으로 하여금 발품은 물론 시간까지 일일이 맞춰가게 만들면서 영화 관람을 불편하게 하는 대신 관객이 아무 때나 영화관을 찾아가도 영화를 볼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영화를 유통-배급하는 입장에서는 더욱 효과적일 수 있다. 또한 애초에 극장을 통해서 다른 작품들과 경쟁하는 상황에 놓인 만큼 독립영화에서도 상업영화만큼 홍보와 마케팅이 지니는 가치는 결코 무시할 수 없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은 독립영화가 놓여있는 유통과 배급의 상황이 상업영화의 흐름과 큰 차이가 없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가 된다.
장르에 따라, 유명 감독에 따라서도 차이는 발생한다
이러한 차이는 배급사에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독립영화의 장르에 따라서도 이러한 흥행 격차가 발생한다. [표 1]에서도 알 수 있듯, 같은 독립영화 일지라도 극영화가 다큐멘터리보다 상영관을 많이 확보하는 편이다. 그나마 다큐멘터리의 경우 <워낭소리> 등의 작품이 흥행하면서 이전보다는 상영관 확보가 수월해진 편이지만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장르가 있다. 바로 애니메이션이다. 애초에 극장에 걸리는 작품의 수도 얼마 되지 않지만 대형 배급사를 통해 배급되거나 연상호 감독 같이 독보적인 위치에 있지 않는 이상 대부분의 독립 애니메이션은 첫 주 스크린을 20곳도 확보하기 쉽지 않다. 2008년에 개봉한 <인디애니박스 : 셀마의 단백질 커피>는 첫 주에 단 2곳, 2015년에 개봉한 <생각보다 맑은>은 첫 주 단 17곳에서만 상영되었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운영하는 영화교육기관 한국영화아카데미(KAFA)의 경우, 2013년 이후 본격적으로 노선을 상업적으로 전환한 뒤에는 아예 애니메이션 전공에서 제작된 작품은 정식으로 극장에 걸지 않는 상황이다.
그나마 장형윤 감독의 신작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가 2014년 200여개 상영관에서 개봉했지만 이는 매우 특수한 경우이다. 작품 내용과 상관없이 영화의 홍보 방향을 어린이 대상으로 잡았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이지만 한국의 극장들은 연상호의 작품이 아닌 이상 성인 애니메이션보단 어린이 취향의 애니메이션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 존재하고,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는 이러한 극장들의 취향을 맞추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런 식으로 홍보를 할 수 밖에는 없었다. 이에 대해 한국독립애니메이션협회의 최유진 사무국장은 현재 독립 애니메이션이 놓인 상황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독립 애니메이션이 현재 처해있는 문제는 독립 애니메이션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애니메이션 장르 전체가 어린이용이냐 아니냐로 흥행이 무척 갈리는 것 같습니다.”
[표 1] 독립영화의 주요 장르인 극영화. 다큐멘터리 별로 각각 통계를 산출하였다. 단, <피에타>,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와 같이 예외적으로 첫 주 스크린을 많이 확보할 경우 이를 제외한 통계를 따로 산출하였으며 2개관 이상으로 개봉한 작품에 한정하여 통계를 내었다. 애니메이션의 경우 개봉되는 작품이 일 년에 한 작품 이하인 경우가 다수라 통계 대상에서 제외하였다.
또 한 가지 발생하는 차이는 영화를 만든 감독의 유명세로 인한 차이이다. 소위 홍상수나 김기덕 같이 독립영화를 잘 모르는 관객들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감독의 작품은 전체적인 독립영화의 상황과 상관없이 꾸준한 흥행세와 상영관 확보를 보였다. 특히 김기덕의 경우 2012년 작품 <피에타>가 넥스트엔터테인먼트월드(NEW)라는 대형 배급사를 통해 배급되어 더욱 폭발적인 흥행세를 과시하였다. 통계를 낸 연도에 개봉한 작품이 없어 통계 자료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애니메이션 감독 연상호의 경우에도 단관 개봉한 <창>을 제외하면 꾸준히 일 만 명 이상의 관객을 모으는 흥행 성적을 보였다. (<돼지의 왕> 19,792명, <사이비> 22,318명)
[표 2] 홍상수, 김기덕의 영화와 그 이외 감독의 영화들로 구분하여 각각 관객수와 스크린수를 산출하였다. 이례적으로 흥행한 작품이 포함되어 있는 경우 이를 제외한 평균을 따로 구하고, 2개관 이상 개봉한 작품에 한정하였다.
독립영화 유통-배급의 차이들, 결국 활용하는 것은 대형 영화사의 몫
이렇게 한국 독립영화는 다양한 요소에 의해 유통-배급의 차이가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 놓여 있다. 그리고 대형 영화사들은 이 차이를 다시 자신들이 독립영향에 미치는 영향력을 높이는 발판으로 사용하는 계획을 짜고 있다. 이러한 요소를 잘 활용하는 대형 영화사는 CGV 아트하우스이다. 가장 많은 독립영화관을 보유하고 있는 것은 물론 전국적으로 다양하게 자사 소유의 영화관들이 분포하고 있어 자사가 배급하는 작품은 물론 타사에서 배급하는 작품이라 할지라도 홍보-마케팅에 있어 사실상 필수적으로 자신들을 거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었다. <한여름의 판타지아>의 경우 시네마 상상마당과 함께한 ‘플리마켓’ 행사나 인디스페이스와 함께한 ‘관객 모더레이터’ 행사를 제외하면 영화 홍보-마케팅을 위한 대부분의 행사를 CGV 아트하우스와 함께 하였다. 이는 다른 독립영화, 예술영화도 사정이 비슷하다. 독립영화에 대한 홍보-마케팅이 강화될수록 아이러니하게도 CGV 아트하우스가 지니는 영향력도 함께 늘어나고 마는 것이다.
CGV 아트하우스처럼 극장을 소유하고 있진 않지만 NEW 역시 독립영화의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 많은 계획을 짜고 있다. 앞서 언급한 독립 애니메이션 감독 연상호의 경우 단관 개봉한 단편 <창>과 자신의 단편이 들어간 옴니버스 작품 <인디애니박스 : 셀마의 단백질 커피>를 제외하면 처음으로 개봉한 장편부터 KT&G 상상마당을 통해 배급되었으며, 이후 작품은 모두 NEW를 통해 투자, 배급되고 있다. 심지어 NEW는 장편 애니메이션 프로젝트 <서울역>과 동시에 이와 연계되어 제작되는 실사 영화 프로젝트인 <부산행> 모두에 투자하고 있는 상황이다. 큰 변화가 없는 한 그의 작품은 앞으로도 계속 NEW에서 투자, 배급될 것으로 보인다.
NEW의 행보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한동안 감독 개인이 만든 영화사인 ‘영화제작전원사’와 독립영화 전문 배급사인 영화사 조제가 공동으로 배급하던 홍상수의 영화는 2015년 9월 개봉 예정인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부터 전원사와 NEW가 공동으로 배급하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CGV 아트하우스가 2014년부터 보인 독립영화 유통-배급의 모습에 비하면 아직까지 NEW는 낫다고도 볼 수 있지만, NEW 역시 독립영화에 많은 영향력을 발휘하려는 생각은 큰 차이가 없는 셈이다.
[사진 2] 2015년 9월에 개봉을 준비하고 있는 홍상수의 신작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는 영화사 조제를 떠나 대형 영화사인 NEW를 통해 배급될 예정이다. (사진제공=영화제작전원사)
결국 현재 독립영화가 유통-배급되는 상황은 상업영화처럼 배급사의 역량과 작품의 성향에 따라 좌우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자신들의 작품이 극장을 소유하고 있거나, 홍보와 마케팅에 많은 공을 쏟는 배급사를 통해 유통되면 흥행할 가능성이 높아지지만 그렇지 못하면 흥행은 기대조차 않는 게 차라리 나은 마당이 된다. 하지만 냉정히 따져볼 때 이러한 상황을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곳은 CGV 아트하우스나 NEW와 같이 독립영화는 물론 한국 영화 전반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대형 영화사들이고, 이러한 유통-배급 상황을 개선하지 못하면 대기업이 미치는 영향력은 결코 줄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부당하게 주목을 받지 못하는 작품 역시 계속 늘어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어떠한 대안이 지금의 상황을 바꿀 수 있을 것인가.
독립영화인들, 정책을 통한 상황 개선을 촉구하다
현재 대다수의 독립영화인들은 정책을 통한 상황의 개선을 주장한다. 특히 정부의 영화 정책을 대표하는 기구인 영화진흥위원회가 영화의 유통-배급 문제에 이렇다 할 대안적 정책을 내놓지 못하는 상황이 몇 년째 계속되며 정책에 대한 불만과 함께 독립영화를 위한 실질적인 정책을 원하는 목소리가 시간이 지날수록 커지고 있다. 이미 새정치민주연합의 최민희 의원은 2013년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제출하며 특정영화가 전체 스크린의 30%를 점유하지 못하게 하는 한편, 다양성 영화를 위해 멀티플렉스가 최소 1개 이상의 대안 상영관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앞서 살펴봤듯 대형 배급사가 독립영화에서도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법안이 실제 시행된다 하더라도 자신들이 직접 배급하는 영화가 걸릴 가능성이 크다는 비관론도 함께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독립영화인들은 어떤 정책이 자신들에게 진정으로 도움이 된다고 생각할까. <파티51>의 정용택 감독은 영화진흥위원회가 현재 책정하고 있는 독립영화 제작, 배급 지원금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설사 흥행이 되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 제작비용을 보전 받고 다시 차기작을 제작할 수 있게는 해야 할 거 아니에요. 지금은 절대 그렇지 못한 상황입니다.” 그는 최민희 의원이 제출한 법률 개정안에 찬성하는 입장을 보였지만, 동시에 독립영화 내부에서도 대형 배급사의 비율을 제한하는 등 엄격한 독립영화 스크린쿼터가 시행되어야 한다고 보고 있었다.
<안녕, 투이>의 김재한 감독은 정용택 감독과 비슷한 의견을 제시했다. 그는 영화진흥위원회가 현실을 먼저 파악한 뒤 그에 맞는 정책을 수행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런데 지금 상황으로는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이러다 보니 독립영화 단체들도 별 힘을 못 쓰고, 다들 CJ 같은 대형 영화사에 목줄이 쥔 것 같달까.” 그는 차선책으로 자신이 직접 현재 거주 중인 경남 지역의 공공 상영 공간과 영화 수입, 배급사와 연결해 대관 상영 운동을 벌이고 있다고 답했다. 경남 지역은 거제아트시네마가 사라진 이후로 사실상 독립영화관이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나비와 바다> 등의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최근 신작 <밀양 아리랑>을 개봉한 박배일 감독은 자신의 작품을 유통-배급하며 겪은 일을 들려주었다. 그는 <나비와 바다>, <밀양 아리랑>은 극장을 통해 배급하고 나머지 작품들은 공동체 상영을 통해 유통하였다. “공동체 상영으로 개봉하면 사회적 이슈가 있을 땐 홍보를 안 해도 사람들이 찾지만, 그렇지 않으면 상영 공간을 확보하기 쉽지 않아요. 극장을 통해 개봉하면… 사회적 이슈가 있으나 없으나 결과가 별로 차이가 없네요.”
박 감독은 이러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영화진흥위원회와 같이 정책을 주도 하는 이들이 독립영화에 대해 심도 있게 살필 것을 주문하고, 독립영화가 활발하게 생산될 수 있는 지원체계가 확보되는 것이 먼저라고 밝혔다. 동시에 다양한 지역에서 독립영화가 상영될 수 있도록 독립영화 전용관을 확대함은 물론 멀티플렉스에 한국 독립영화 쿼터제를 실시하고 극장이 아닌 상영시설을 통해 독립영화를 상영하는 비상설극장 프로그램을 더욱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책 개선을 넘어, 인식의 변화를 요구하다
실험 영화를 주로 만들고 최근에는 문정현 감독과 함께 합작으로 <붕괴>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든 이원우 감독은 현재 한국 독립영화가 놓여있는 구조 자체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했다. “무에서 유가 생긴 것이 한국 독립영화의 역사죠. 그러한 맥락 속에서 독립영화 배급사가 생기고 전용 극장이 생긴 것은 감격스럽지만, 늘 힘든 가운데 힘들게 버티는 구조는 결국 독립영화 내부에서 흥행작을 위주로 몰아주는 것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걱정을 해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히트작이 나와 극장과 영화사를 먹여 살려야 다른 영화가 나올 수 있는 것이 큰 아이러니고요.”
이 감독은 ‘지속가능한 지원과 자원’이 필요함을 강조하며 긴 시간을 바라보는 지원 계획과 독립영화 스크린쿼터의 확대를 주장했다. 하지만 동시에 독립영화를 만드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다양성에 대한 긴장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독립영화를 단순히 저예산 영화로 보는 것이 아니라면 독립영화의 정의를 끊임없이 재정립해야겠죠. 흥행과 상관없이 독립영화를 계속 만들고 관객과 만나게 하기 위해선 말이죠.”
[사진 3] 독립다큐멘터리 공동체 서울영상집단에서 활동하는 김청승 감독.
한편 작년부터 독립영화가 제작비를 지원하는 방법 중 하나인 피칭(pitching, 영화제, 또는 영화 투자자들에게 자신의 영화를 알리고 소개하여 제작비를 받는 제도 및 행사 전반을 통칭하는 단어)을 비롯해 한국 독립영화 전반에 비판을 제기한 서울영상집단의 김청승 감독은 좀 더 급진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였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온라인으로 배급한 경험을 들려주었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작품을 보고 싶은 사람에게 클라우드로 개인적으로 유통하던 작품이었는데, 누군가 작품을 유튜브에 올린 것이다. 김 감독은 생각 이상으로 유튜브에서 자신의 작품을 본 것이 인상적이었다고 답했다. 물론 온라인으로 유통되는 것이 꼭 답이 아니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그는 독립영화 배급이 극장 밖을 벗어나는 것도 해답이라고 보고 있었다.
또한 그는 대안을 제시하기 앞서 90년대 중후반 이전 독립영화가 유통된 지점을 다시 돌이켜 봐야 한다고 보았다. “그 때 독립영화가 극장에 걸리던 시절도 아니었고, 분명 노동 운동이나 학생 운동 같이 다양한 사회 운동과 연대를 하면서 작품을 유통했겠죠. 하지만 지금은 그런 유통망이 사라지고 빈자리를 다른 상업영화와 큰 차이 없이 극장을 통한 유통망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사회 운동을 하는 사람은 많은데, 독립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이에 따라가지 못한 거죠.” 그는 재차 독립영화인들이 ‘독립적’인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독립영화를 만든 선배들이 이러한 문제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못한게 아쉬워요. 분명 독립영화계를 위해 노력을 하고 그로 인해 제작 지원 같은 정책을 만들었지만, 그 수혜가 모두의 것은 아니죠. 우리는 만들어진 길 위에서 일종의 강요를 받고 있는 겁니다. 그것이 큰 문제입니다.” 현재 그가 속해 있는 서울영상집단은 다른 다큐멘터리 공동체와 함께 ‘다큐유랑’이라는 협동 배급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는 중이다.
독립영화에 대한 고민을, 독립적 유통에 대한 고민으로
지난번의 글과 이번 글에서 살펴봤듯 이미 한국 독립영화는 크고 작은 내부의 격차들이 존재해왔었다. 그리고 그 격차는 2014년 CGV 아트하우스를 통해 유통된 독립영화들이 압도적인 수준으로 배급되고 폭발적인 흥행을 낳으면서 수면 위로 조금씩 오르고 있는 상황이다. 많은 이들이 현재 한국 독립영화가 놓인 유통-배급 상황에 대해 문제의식을 조금씩 가지며, 그에 대한 대안을 요구하는 움직임 역시 서서히 나오고 있다. 실제 독립영화 현장을 고려한 정책을 요구하거나 앞서 언급한 ‘다큐유랑’이나 ‘늘씨네’와 같이 극장을 벗어난 유통을 시도하는 것이 그 예이다. 물론 대안을 내놓기에 앞서 영화 정책을 총괄하는 영화진흥위원회가 오히려 퇴보적인 자세를 보이는 만큼, 위원회가 최소한 현상 유지라도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현재의 가장 시급한 과제이자 선결 조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몇몇 독립영화인의 지적대로 한국 독립영화는 표현의 자유를 지키는 것에 열중하고, 독립영화에 대한 정책적인 지원을 늘리고, 그리고 몇몇 독립영화가 기대 이상의 흥행을 거두는 것에 신경을 쓰는 동안 실제 현장에서 독립영화가 어떻게 유통되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적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는 단순히 영화를 제작하는 방식뿐만 아니라 영화를 유통하고 배급하는 방식과 연관이 깊은 문제기도 하다. 외부의 적과 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러한 지점에 깊게 생각하지 못하고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것은 결국 독립영화가 시간이 지날수록 자본에 종속적인 모습을 보이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과연 어떠한 해결책이 지금의 상황을 조금이라도 평등하게, 그리고 독립적인 기치를 살리는 방향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인가. 물론 어떤 방법이든 결코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CJ-롯데-쇼박스-NEW로 대표되는 대형 영화사들이 압도적인 점유율로 다른 대다수의 영화들을 압박하고 있는 상황에서 독립영화 내부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더욱 난망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안을 내는 것이 쉽지 않다고 하여 언제까지 고민을 미뤄둘 수도 없는 일이다. 이미 문제는 눈앞에 닥쳐온 지 오래인 마당이다. 어떤 대안을 만들지를 고민하는 동시에 과연 어떤 유통-배급 방식이 ‘독립’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야만 할 것이다. 단순히 ‘독립영화’를 ‘저예산영화’와 동의어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독립영화’가 이름만 남고 실체가 사라지는 불상사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
※ 지난 번 글의 통계 수치에 일부 오류가 있었고, 이번 글에서 수정하였습니다. 부정확한 통계를 제공한 것에 대해 사과를 드리는 바입니다.
※ 기사 작성에 사용한 모든 데이터는 KOBIS(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http://www.kobis.or.kr/)에서 가져 왔습니다.
[필자소개] 성상민(만화평론가)
2005년 만화언론 <만>의 객원필진으로 데뷔한 이후 2006년 부천국제만화축제(BICOF) 강풀 특별전 전시 기획 참여와 <인터넷뉴스 바이러스>에서 2009년 문화부 기자 생활을 하며 본격적으로 글을 쓰게 되었다. 현재는 <미디어스>에서 정기적으로 만화 및 문화 평론을 하고 있다. 또한 학점 관리에 큰 문제가 생겨 경희대 사회학과를 1년 더 다니는 게 최근 확정됐다. 트위터 주소는 @skyjets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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