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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94호 리뷰] '미친 교육'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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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15. 8. 8.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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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94호 리뷰 2015.8.20]

‘미친 교육’의 시대

- 다큐멘터리 <명령 불복종 교사> 리뷰

송아지(현직 교사)



 2008년, 이른바 '미친 교육'이라 불리었던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의 핵심은 '경쟁'이었다. 교육에 시장경쟁체제를 도입하여 '경쟁을 통한 학력 향상'을 내걸고 교육성과에 따른 보상과 제제를 통해 '효율성'을 높이겠다고 선언했다.

 이 영화에서 다루어지는 일제고사 외에도 수많은 정책들이 학생, 교사, 학교의 경쟁을 부추겼고 학생들은 성적에 따라 등급이 매겨졌다(소고기도 아니고). 일제고사, 교원평가제, 학교평가, 고교등급제 등의 계획이 일선 학교로 미친 듯이 날아들었지만 현장의 교사들의 목소리는 어디에도 반영되지 않았다. 교사들은 명령에 복종해 시키는 대로 움직이기를 요구받았다.

 정부 취임 일 년도 채 되지 않아 전국적으로 수백만명의 학생 전원이 일제고사라 불리는 학업성취도평가를 통해 줄세워졌다. 많은 교사들이 자신의 교육철학과는 다른 정책들에 자괴감에 시달렸지만 자신의 소신을 지킬 수 있는 틈은 허락되지 않았다. 정부는 정책에 반해 소신을 지키려는 이들에게는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하여 본보기로 삼으려했다. 이 다큐멘터리의 주인공들이 그 본보기이다.


그림1


 집으로 교감선생님이 찾아왔다. 그리고 해임통지서를 내민다. "귀하는 오늘자로 해임입니다. 내일부터 출근하지 마세요"라고 통보하기 위해 밤늦게 교사의 집으로 찾아온 것이다. 해임 통지서를 받아든 교사는 학생들과 작별인사도 못하고 이렇게 잘릴 수는 없다며 다음날 학교로 출근한다. "더 이상 교사가 아니니까 나가세요."라고 말하는 관리자(교장, 교감)들을 밀쳐가며 겨우 교실로 들어간 교사는 아이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지만 아이들은 갑자기 선생님이 학교를 나올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해임, 파면은 다시는 학교로 돌아갈 수 없는 최고 수준의 징계이다. 이러한 수준의 징계는 보통 성폭력, 비리, 음주운전 등의 사안에나 적용된다(사실 이와 같은 사안에도 낮은 수준의 형식적 징계에 그치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그러나 현실은 일제고사에 반대하는 정치적 입장을 가지고, 학생들에게 학력으로 줄 세움 당하기를 거부할 권리를 준 교사에게 해임과 파면의 통지서가 날아든 것이다.

 일제고사는 전국단위로 몇 백만 명이 보는 학력평가이기 때문에 그 중 몇 십 명의 학생들이 시험에 응시하지 않음이 그 결과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또한 체험학습은 학교에서 권장되는 있는 학생들의 권리이다.) 그럼에도 교육부는 시험 거부 움직임에 대한 강력한 응징을 위해 중징계를 내렸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일제고사 자체를 당장 멈추지는 못하더라도 징계를 각오하고 무조건적인 복종이 아닌 자신의 교육철학을 지켜 정부의 정책에 제동을 걸려는 교사들이 있었다. ‘계란으로 바위치기’임에도 기꺼이 깨진 그들이 있기에 일제고사에 반대하는 교사들의 목소리가 확대될 수 있었다. 



그림2


 공정택 교육감에게 교사들의 해고에 대한 질의를 하자 그는 말한다. "반성의 뜻을 보인다면 한 번 생각해 보겠다." 결국 누가 위에 있는지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내가 더 위에 있는 사람이니 내 발밑에 엎드리라 한다. 정책, 지침이라는 이름의 명령과 관료화된 교사들의 집단적 순응이 반복되는 학교가 '잘' 운영되는 학교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실 이명박정부의 교육정책 하에 경쟁에 내몰린 것은 학생들만이 아니었다. 학교 안의 모든 구성원을 경쟁으로 몰아넣었다. 교사들의 1년의 ‘업무 성과’에 따라 등급을 매겨 그에 따른 성과급을 지급하는 교원평가를 도입하여 교사 경쟁 체제를 도입했으며, 상대평가에서 낮은 등급의 교사는 항상 존재했다. 교사들은 매년 동료교사들과 비교하여 자신의 성과가 더 높음을 수치화하여 증명해야하는 요구를 받는 것이다(물론 교사의 본질적인 교육적 역할들은 성과로 점수화하기가 불가능하다). 

 결국 기준 미달의 학생, 교사들은 매년 생겨나고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른다. 학력 미달 학생, 기준 미달 교사들은 꼬리표를 단 채 보충수업을 의무로 받아야한다. 이 정책은 현재까지도 계속 되고 있다. 



그림3


 교사는 학생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기 위해 교실로 간다. 학교 입구부터 교사의 출입을 막는다. "당신은 해임 통보를 받았기 때문에 학교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막아서는 교사들을 헤치고 교실로 간다. 학생들과 마주하고 지금의 상황을 설명하려 한다. 울음을 참으며 학생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내려하는 순간, 다시 '교장'이 교실로 들어온다. 교장'선생님'이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은 채 말한다. "00씨, 이제 교사가 아닙니다. 귀하는 해임 통보를 받았기 때문에 자격이 없습니다. 당장 교실에서 나가세요." 나가라고 반복하여 말한다. 12살의 학생들은 이 상황을 고스란히 지켜본다. 교장'선생님'은 학생들이 안중에 없는 듯하다.


 그렇게 학교에서 쫓겨난 교사들은 거리에서 싸웠다. 해고되었다는 뉴스를 접한 이들도 그들이 얼마나 힘겹게 싸웠는지 몰랐을 것이다. 대다수의 교사들 역시 몰랐다. 제자들 앞에서 'OO씨는 이제 교사가 아닙니다.'라는 폭언을 들으며 학교에서 쫓겨났다는 것을 몰랐고 일제고사 대신 체험학습을 선택한 학생들이 '시험을 보지 않은 나 때문에 선생님이 더 이상 우리와 함께 할 수 없구나.'라는 마음의 상처를 입어야만 했다는 것을 몰랐다. 10달을 가르친 제자들의 졸업식조차 참석할 수 없도록 잔인하게 분리시켰다는 사실을 몰랐다.  

 교사들의 3년이 넘는 투쟁을 담은 영상은 단편적으로 접했던 뉴스들과는 비할 수 없는 울림을 주었다. 학교 관리자들이 치졸한 폭력들로 교사들에게 모욕감을 주어도 학생들과 교사들이 서로 끈끈하게 이어져있는 모습은 너무도 눈물겨웠고 안타까웠고 또 한편 그렇게 긴 시간을 싸웠음에도 당당한 모습이 존경스러웠다. 선생님을 지키고 싶은 제자들은 선생님이 서있는 거리에 함께 섰고 교사는 그 곳에서 학생들과 함께 자신의 정당성을 알려내는 모습은 교육이 지향해야할 방향을 보여주는 듯 했다.



복종을 가르치지 말자


 일제고사의 결과가 활용되는 과정은 학교의 단면을 잘 보여준다. 전국의 학교별 학력 미달자 비율은 인터넷으로 고시되어 누구나 볼 수 있다. 기초학력미달자에 대한 보충수업이 의무로 진행되고 시험 전이면 전년도 문제풀이 등 벼락치기 공부가 성행한다. 

 대학생들의 모습도 별반 다를 것이 없다. 과연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을 수 있는 여유는 없다. 각 대학별로 몇 명을 취업시켰는지 비율이 인터넷으로 고시된다. 취업스펙을 쌓고 면접기술을 기르기 위한 수업이 진행된다. 취업을 하여 노동자로 살아가는 삶은 역시 마찬가지다. 

 

 학교라는 공간은 학창시절의 한 켠 아름다운 그림이 아니다. 화석처럼 굳어있는 공간도 아니다. 우리 사회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는 살아 숨 쉬는 공간이다. 숨 쉴 틈 없는 경쟁, 비정규직 문제, 학교 폭력 등의 현안부터 정치색의 배제, 비판에 배타적인 분위기, 집단의 일체성 강조와 같은 이데올로기적 문제들까지 우리 사회의 모습이 학교 안에도 고스란히 존재한다. 이곳에서 아이들은 이 사회를 배워나간다.


 다시 돌아가 보자. 과연 지금 교사에게 자신의 철학을 지켜낼 수 있는 틈이 존재하는가. 정부의 정책에 반하는 철학이 용인되는 학교인가. 

 바꿔 말해보자. 과연 지금 우리 사회에서 자신의 철학을 지켜낼 수 있는 틈이 존재하는가. 정부의 정책에 반하는 철학이 용인되는 사회인가.

 저항이 용인되지 않는 학교, 그 사회에서 자라는 학생들이 복종의 시스템 속에서 저마다의 생존에 골몰할까 두렵다. 교육의 목적을 한 줄로 정의하긴 어렵지만 저항의 틈을 열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 교육이 향해야 하는 방향이 아닐까. □






[필자소개] 송아지

경기도를 떠돌며 아이들을 만나고 있는 교사이며 전교조 조합원입니다.
글을 너무 오랜만에 써서 어색하고 부족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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