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ACT! 94호 리뷰] 깜보의 다큐 생존일지

전체 기사보기/리뷰

by acteditor 2015. 8. 8. 14:59

본문

[ACT! 94호 리뷰 2015.8.20]


깜보의 다큐 생존일지

- 책 <다큐멘터리 현장을 말한다> 리뷰


이인현(다큐멘터리를 꿈꾸는 사람)


필자 주 : <다큐멘터리, 현장을 말한다>는 한동대 영상 전공 학생들이 다큐멘터리를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을 인터뷰한 책이다. 방송 PD, 독립 PD, 영화감독 26명이 자신의 일과 철학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들의 삶을 주관대로 판단하는 일이 어려웠던 필자는 그들의 말을 인용한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었으니 이해해주길.



 동네를 돌아다니며 쓰레기통을 뒤지던 잡종견 깜보, 깜보는 어느 기적적인 순간, 다큐멘터리를 해야겠다고 결심한다. 깜보 뿐만 아니라 다큐멘터리를 하려고 하는 누구든지 맨 처음 떠올리는 장면이 있다. 자신에 손에 들린 카메라와 자신의 눈을 보고 신비로운 이야기를 해줄 사람들, 완성된 나의 다큐멘터리를 보고 환호해줄 관객들. 그 기쁨의 순간들은 충분히 우리를 매료시키고 남는다. 물론 그 가운데에 귀찮은 몇 개의 작업들이 생략되어 있음을 깜보는 알고 있다. 다큐멘터리를 계속하기 위해, 그리고 다큐멘터리로 생존하기 위해 몇 가지의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그러나 이 몇 개의 선택은 생각보다 훨씬 더 중요할 수도 있다. 어디서, 어떻게 다큐멘터리를 하는가이다.



1. 방송국에 들어간 깜보


 방송국에 들어가면 조직의 힘을 이용할 수 있고 일정한 권력을 획득할 수 있다. 모든 권력이 그렇듯 그것을 원하는 사람은 많고 어떤 시험을 통과하지 않는 이상 그것을 얻을 수 없다. 그 시험은 단기간에 준비할 수 없다. 좋은 영어성적, 좋은 대학만으로 이야기할 수 없는 배경과 자본이 깜보에게 필요하다. 깜보가 만약 그 과정을 통과한다면 그는 방송국에 들어가 다큐멘터리를 만들 수 있다.


"제가 다큐를 만들 수 있는 이유는 저 개인이 아니라 SBS PD라는 이름을 달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상황이 의미하는 것은, 다큐는 PD 스스로가 만드는 것이지만 시청자가 그 기회를 주었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나 개인의 만족을 위한 다큐가 아닌 우리 공동체를 위한 다큐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학교의 눈물 - 한재신 PD>


 PD가 된다는 것은 자신의 다큐멘터리를 볼 관객들이 TV를 켜는 시청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건 꽤나 당연하고 중요한 이야기다. 깜보가 어떤 삶을 살며 어떤 자세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야 하는가에 대한 단서이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 아이템을 정하는 일은 사업 아이템의 타당성을 조사하는 것과 같죠."

"다큐멘터리가 관객과 소통할 수 없다면, 프로그램을 만든 노력이 헛수고로 돌아가니까요." <울지마 톤즈 - 구수환 PD>


 사업 아이템의 타당성은 내가 만들고 싶은 물건이 아니라 누군가가 좋아할 만한 물건에서 나온다. 깜보는 뒷골목을 배회하는 개들을 찍고 싶어 했지만 그것이 대중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는지를 먼저 판단하게 될 것이다. 그 판단의 주체는 자기 자신보다는 방송국이라는 조직이 될 가능성이 높다. 방송국이 원하지 않는 일을 깜보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이 방송국에서 권력을 얻은 깜보의 대가이다.


"PD들은 월급을 받으니 조직에서 원하는 일을 해야죠. 50분짜리 다큐 하나를 2년 동안 붙잡고 있다면 그 사람에게 들어가는 2년간의 연봉이 효율적이라고 하기 힘들겠죠." <학교란 무엇인가 - 정성욱 PD>


 깜보는 앞으로 예술가가 아니라 저널리스트의 삶을 살게 될 가능성이 높다. 깜보의 소속은 방송국이며 자신은 한정된 시간 안에 완성된 프로그램을 만들어야할 의무가 있다. 깜보는 다큐멘터리를 만들며 찍고 있는 대상을 그 누구보다 재빨리 판단해야할 위치에 놓인다. 이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아야한다. 방송의 영향력 때문에 조그만 잘못된 사실도 큰 피해로 돌아올 수 있다. 그래서 그는 대상과 거리를 두어야한다.


"제작자는 대상을 끊임없이 검증해야 하는 위치에 있어야 하는데, 대상과 친해지면 그 대상의 주장을 반영하려고 하게 되거든요. 그래서 촬영 대상의 의견을 100% 믿는 것은 굉장히 위험합니다. 인터뷰에 응하는 사람 중 대부분은 인터뷰를 언론에 흘림으로써 이해관계를 관철하려는 의도가 있어요." <탈북 그후 어떤 코리언 - 류종훈 PD>


"심리적 거리를 숫자로 표현을 한다면 1미터 정도일까요? 손을 뻗으면 언제든지 잡을 수 있지만, 안 뻗으면 안 잡아도 되는 거리, 딱 그만큼의 거리를 두고 촬영을 합니다." <학교란 무엇인가 - 정성욱 PD>


 하지만 깜보는 무난히 생존에 성공할 것이다. 매달 들어오는 월급이 그의 삶을 지탱해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다큐멘터리를 다수에게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어쩌면 생존은 더 이상 깜보의 주요한 관심사가 아니게 될지도 모른다. 그것이 좋은 삶일지 어떨지는 역시 깜보의 판단이다.



2. 독립PD가 된 깜보


 방송국 안이 아니라 방송국 밖에서 방송국을 이용하며 살아갈 수 있다. 그게 독립 PD의 삶이다. 2009년부터 두각을 드러낸 독립 PD들은 방송국의 프로그램을 외주제작해주는 인력들이었다. 거기에서 얻은 제작경험을 토대로 감각적인 작품을 만들어내기 시작했고 방송국과 영화감독 사이에서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해냈다.


"독립 PD들은 자신을 전문화하고 특화해서 자기만의 영역을 화복해야 생존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강경란 PD는 분쟁 지역을 20여 년 돌아다녔거든요. 그래서 아프간전쟁이 있었을 때, 한국의 모든 방송사 PD와 기자들이 강경란 PD에게 전화를 했어요. 아무도 들어가는 방법을 모르니까." <철까마귀의 날들 – 박봉남 PD>

 깜보가 독립 PD를 하게 되면서 그는 방송국의 의뢰를 받고 그들로부터 선정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방송국이 제시하는 기획에 공모해 자신의 작품을 맡을 수도 있고 자신이 직접 기획안을 제출할 수도 있다. 어떤 방법이든 다큐멘터리를 보는 이들은 시청자이므로 방송국의 감각을 최대한 따라갈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자신만의 영역을 전문화하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그만틈 중요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도시에 사는 동물의 생태에 대해 빠삭한 깜보는 아마 독립 PD와 잘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혹은 깜보는 펀딩과 피칭에 대해 눈여겨볼 수도 있다. 영화제나 각종 기관을 통해 자신의 작품을 소개하는 것이다. 작품을 만들기 위한 지원금을 얻기 위해서 자신의 기획을 설명하고 그들을 설득해야한다.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은 저 이야기는 저 사람이 정말 하고 싶어 하는 이야기인가입니다. 이 기본이 충족된다면, 다음으로 소재나 접근법이 참신한지 봐야죠. 갈등의 포인트를 잘 정리해야 해요. 중요한 것은 마음에 있는 말을 하는 거예요." <달팽이의 별 – 이승준>


 이제 깜보는 마음에 있는 말을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그것이 펀딩과 피칭의 다는 아니지만 생존을 위해서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참으로 귀중한 경험이다. 어쩌면 생존이란게  뭘 먹고 살아야 할지 고민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다큐멘터리는 직업으로 생각하지 않는게 좋아요. 직업이라고 생각하면 뭘 먹고 살아야 하지 고민하게 되는데, 그런 고민이 깊어진다면 솔직히 이 일은 안 하는게 나아요. 저라고 고민 안 했겠어요? 하지만 적어도 처음 시작할 때는 그런 고민을 안 했습니다. 다큐멘터리와 관련된 여러 길에 마음을 열어두세요. 처음부터 나는 프리랜서로 내 작품만 할 거야라는 생각을 안 하는게 좋아요. 방송 채널이나 다큐멘터리와 관련된 다른 길도 많아요." <달팽이의 별 – 이승준>

 그래, 때로는 마음의 짐을 좀 덜어두는 것도 좋다. 다큐멘터리와 관련된 길은 다양하고 그것이 어떤 일인지 가치 판단을 두기 전에 그 과정을 즐기는 것이 좋다. 깜보는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일이 좋다. 항상 행복하고 기쁘지만은 않을 거다. 그래도 다큐멘터리가 좋다면 어떤 자리에서 다큐멘터리를 하는가는 크게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3. 독립영화감독이 된 깜보


"독립 다큐는 그냥 자기가 있는 자리에서 싹을 틔우는 것 같아요. 내가 서 있는 곳에서 무얼 말하고 싶은지, 왜 영화로 만들어야 하는지와 같은 자기만의 동기가 중요해요. 다큐멘터리는 자기 발아의 과정입니다. 나라는 사람이 어떻게 발아하는지 지켜보고, 그에 대한 타인의 이야기를 들어야 해요." <두 개의 문 – 홍지유 감독>


 깜보에게는 마음속에 활활 불태우지 못한 욕망이 남아있다. 결국 그는 길거리에 버려진 개였고 길거리에서 자라 길거리에서 살아왔다. 그것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다. 그러나 고민이 든다. 내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만든다고 누가 봐줄까? 인간들이 관심이나 있을까? 돈이 되지는 않지만 해야만 하는 이야기를 위해 깜보는 영화감독이 되기로 한다.


"제 영화에는 다른 목표가 있어요. 제 다큐멘터리를 이해할 만한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그들의 삶에서 조금 등한시했거나 오해했던 부분을 새롭게 인식하는 거예요. 그래서 영화를 본 사람들이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도록 도와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런 의미에서 관객을 한정 짓는다고 볼 수 있겠죠. 즉 작품을 보여 줄 대상이 명확하고, 그 대상을 위한 좋은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게 좋아요." <슬기로운 해법 – 태준식 감독>

"지금은 다큐가 세상을 바꾸는 게 아니고, 나 자신을 바꾼다고 생각해요. 한 사람의 관객이라도 내 말을 경청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다큐멘터리를 만들만한 보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천만 명이 본다고 세상이 바뀌지 않잖아요. 바뀐다는 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찰랑찰랑하는 파문을 일으키는 거예요." <송환 – 김동원 감독>


 깜보는 자신의 처지를 이해할 몇몇의 사람이라도 있다면 괜찮겠다는 생각을 한다. 비록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다큐멘터리를 이해하려고 하거나 혹은 보려고 시도조차 안하겠지만. 깜보는 그 과정 속에서 성장할 것이고 영화를 본 누군가 조금씩 이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할 테니 말이다.


"재능도 끼도 미학적 감각도 다 없어도 다큐멘터리는 그냥 버티면 되는 것 같아요. 다큐멘터리를 처음 하는 사람들 중에 본인의 역량이나 경제적 문제 등 다양한 이유로 중간에 포기하거나 절망하는 경우가 많은데, 버티면 된다는 생각으로 꾸준히 하시길 바랍니다. 그래도 이 말밖에는 드릴 말씀이 없네요. 포기하지 마세요." <붕괴 – 문정현 감독>


 하지만 이를 어쩌랴. 카메라를 처음 잡는 깜보는 영화를 어떻게 만들어야할지도 모른 채로 시간을 보낸다. 내가 말하고자 했던 건 결국 무엇인가, 결국 나는 무엇인가라는 주제에 시달리며 밤잠을 설친다. 돈은 떨어져가고 다른 아르바이트를 해가며 영화를 붙잡는다. 편집기 앞에 앉아 다큐멘터리를 계속 붙잡고 늘어진다. 때로는 엿가락처럼 늘어지기도 딱딱해서 부서지기도 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저는 제 가까이서 저를 불편하게 하거나 괴롭히는 이야기들이 주제가 돼요. 그런 이야기들은 대부분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들과 연관이 있구요. 예를 들어, 제가 돈에 대한 상처와 고민을 털어놓는다고 해요. 이 이야기는 개인적 고민이지만 한국의 사회, 경제로 자연스럽게 이어지죠." <레드 마리아 – 경순 감독>


 문득 깜보에게는 자신의 이야기가 자기에게만 의미 있는 이야기는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건 도시와 인간과 세상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에 공감해줄 사람이 있을 거라는 확신을 얻어간다.



"다큐멘터리는 불만이나 희망을 바탕으로 만들어집니다. 기본적으로 세상에 불만이 있는 사람들이나 지금과 다른 사회를 원하는 사람들이 다큐를 만들죠. 갈등이 없는 다큐는 정말 심심하거든요."

"다큐멘터리는 그림, 글, 극영화, 이런 여러 가지 표현 방법 중 한 가지 수단일 뿐입니다. 다큐멘터리가 가장 좋은 길이라고 할 순 없지만 돈 없어도, 늙어서도 할 수 있는 희망의 예술이라고는 말할 수 있어요. 다큐멘터리를 해나가는 힘은 희망입니다. 이것보다는 좋은 세상이 있을 거야. 지금은 힘들어 보이지만 언젠가 좀 더 나아질 거야‘라는 희망이요." <송환 – 김동원 감독>


 깜보는 희망을 얻어간다. 생존이란 살아서 존재하는 일인데 살아 있다는 현재일수도 있고 살아남았다는 기록일수도 있다. 깜보는 현재를 살아가기로 한다. 지금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면서 살아가기로 한다.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당장 뭔가를 해야 한다는 분위기에 속아서 사유할 시간을 놓치지 마세요." <레드 마리아 – 경순 감독>


 깜보는 다큐멘터리를 하면서 살아가기로 한다. 3명의 깜보는 평행우주의 각기 다른 깜보일수도 있고 사실은 하나일수도 있다. 어찌됐든 깜보는 다큐멘터리로 생존하는 길을 찾기로 한다. 다큐멘터리가 삶이 된다는 건 참으로 멋진 일이다. 깜보를 응원한다. □



<도서 정보>


제목 : 다큐멘터리, 현장을 말한다

저자 : 형대조

출판사 : 커뮤니케이션북스

출간일 : 2015년 3월 13일

쪽수 : 474쪽







[필자소개] 이인현


다큐멘터리를 꿈꾸고 있습니다




* 삽입 이미지 : 가브리엘 뱅상(GABRIELLE VINCENT), <떠돌이 개>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