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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91호 인터뷰] 릴레이 안부인사 (6) 지역에서 다큐멘터리 공동체를 만든다는 것 : 부산 <오지필름> 문창현, 박배일, 김주미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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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14. 11. 14.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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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91호 인터뷰 2014.12. 01]




릴레이 안부인사 (6)

지역에서 다큐멘터리 공동체를 만든다는 것

: [오지필름] 문창현, 박배일, 김주미




진행 및 정리 : 상민, 형준, 보람 (ACT! 편집위원회)




  세상은 더욱 각박해지지만, [ACT!]는 그럴 때일수록 더욱 적극적으로 사람들을 만나면서 안부를 전하는 것이 그런 세상을 잘 버티는 길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릴레이 안부인사’를 접했던 분들은 느끼시겠지만 시간적, 공간적 한계로 [ACT!]는 부득의하게 수도권을 거점에 두고 활동하는 다큐멘터리 공동체를 만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비수도권 지역에서 활동하는 다큐멘터리 공동체가 많지 않았던 것도 컸고요. 하지만 지난 10월 초, 세계적인 명감독 임권택과 명배우 탕웨이가 찾아와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찼던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렸고, 부산 한편에서 그들만큼 유명하지만 절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사람들과 만나 안부인사를 전하고 왔습니다. “오지필름 여러분, 밥은 먹고 다녀요?”





 부산에 위치한 다큐멘터리 공동체 [오지필름]의 사람들. 

왼쪽부터 김주미 씨, 문창현 대표, 박배일 감독.

처음 사진을 찍어달라고 말을 하니 이렇게 무뚝뚝한 모습을 하였다. 하지만 이 모습은 잠시 후




  오지필름 사람들을 처음 만난 곳은 한창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상영관 중 하나인 부산시청자미디어센터였다. 가능하면 광안리에 위치한 오지필름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싶었으나 오지필름 사람들 역시 한창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 중인 작품들을 관람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관람 스케줄에 방해를 주지 않기 위해 영화제 상영관 대부분이 몰려 있는 해운대 센텀시티에 위치한 부산시청자미디어센터 2층의 휴게실에서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푸른영상, 서울영상집단 등 대부분의 다큐멘터리 공동체가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 몰려있는 것과 달리 오지필름은 세 명의 멤버 중 가장 오랫동안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왔던 박배일 감독의 첫 극장 개봉 다큐멘터리 <나비와 바다>가 완성되었던 2011년 1월 부산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부산은 박배일 감독을 비롯해 모든 멤버에게 고향 또는 대학 시절을 보낸 중요한 장소이기도 하다.) 한국이 소위 ‘서울 공화국’이라는 이명대로 서울에 중요한 기관은 물론 각종 문화시설이 몰려 있듯 독립영화와 다큐멘터리 역시 대부분의 단체나 상영관, 유관기관이 서울에 밀집되어 있는 것이 현실임을 생각할 때 <ACT!>는 비수도권에 기반을 둔 다큐 집단이 있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특히 부산의 경우 한국 제2의 도시에 ‘영화의 도시’라는 별칭이 붙었고 다른 지역에 비하면 영화와 관련된 단체, 공간, 행사가 많은 편이지만 수도권에 비교하면 현저히 부족한 상황이다. 그런 점에서 오지필름의 의미는 컸다. 박배일 감독에게 오지필름을 만들게 된 이유를 들어보았다.



전에 제가 평상필름이라는 데서 미디어 활동을 계속 하고 있었어요. 저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 평상필름에 들어갔는데, 평상필름은 영화에 집중하기보다는 미디어활동에 좀 더 집중하는 활동을 많이 했었어요. 물론 미디어 활동도 중요하지만, 내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일은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평상필름을 그만두겠다고 하고, 2010년도에 나와서 단체를 한 개 더 만들었어요. 필름모아인가, 사실 기억도 잘 안 나는데. 그런 단체를 만들었는데, 거기도 영화를 하는 사람은 저밖에 없더라고요. 그래서 그러면 차라리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드는 전문적인 집단을 만들어보자. 이렇게 해서 고민을 하고 있다가 창현이가 대학교 졸업하고 영화제 이런 데 돌아다니면서 나름대로 자기가 하고 싶었던 것들을 찾고 있는 상태에서 영화를 하고 싶다고 해서 그러면 니랑 내랑 같이 활동을 해보자. 이렇게 해서 처음에 [오지필름]을 만들게 되었죠.




  오지필름의 대표를 맡고 있는 문창현 감독은 박배일 감독에게 같이 활동을 하자는 제안을 받기 전에는 각종 영화제에서 자원봉사 활동이나 스텝을 해왔었다. 그렇게 문 감독은 2010년 일 년 간 독립영화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슬슬 어떤 일을 해야 할지 정해야 할 때가 오고 한창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박배일 감독의 제의가 들어왔던 것이다. 그 때 박배일 감독은 한창 <나비와 바다>의 초반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때 그는 문 감독에게 같이 단체를 만들어서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것은 물론 실험도 해보고, 체험도 해보자는 말을 했던 것이다. 그녀는 그 제안이 무척이나 반가웠고 제의를 받고 일주일도 안 되어 곧장 서울에서 부산으로 내려오게 되었다. “아, 선배와 함께 다큐멘터리 만들어보고 싶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하지만 이미 2011년 당시에도 대부분의 다큐멘터리 공동체는 부산보다는 수도권에 더 많았던 것이 현실이었다. 왜 그녀는 그런데도 부산으로 내려오는 결심을 하게 되었던 것일까.



그때는 사실 푸른영상이나 다큐이야기라는 집단을 잘 몰랐어요. 오지필름 활동을 하면서 다큐멘터리도 만들고, 상도 받고, 영화제도 다니다 보니까 그런 집단과 선배님들에 대한 존재를 알게 됐고. 어떤 선택지가 있어서 뭔가를 선택했다기보다는 저는 뭔가를 빨리 해야 되는 저 개인의 시점이 있었고. 그 시기에 잘 맞게 저한테 반가운 제안을 해줬고 그래서 어떤 선택지가 있었던 게 아니었기 때문에 별 고민 없이 시작하게 되었어요.




  박배일 감독에게도 역시 부산에 다큐멘터리 공동체를 만들게 된 연유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그는 먼저 부산에 ‘다큐멘터리 공동체’가 없다는 것을 들었다. 부산에 아예 독립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이가 없던 것은 아니지만 그는 그들이 만드는 다큐멘터리와 자기가 생각하는 다큐멘터리가 다르다고 생각했다. “명확하게 구분 지을 수는 없지만, 그분들은 다큐멘터리 영화를 조금 더 영화적으로 숙성되기 위해서 영화를 하는 느낌이에요. 저는 뭔가 조금 더 사회적인 발언을 하면서 다큐멘터리를 하고 싶었는데.”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사람들은 있지만 정작 ‘공동체’는 없는 상황에서 그는 기존에 부산에서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과 다른 것을 만드는 동시에 어떠한 공간을 만들고 싶어 했다. 그렇게 같은 대학 동아리에 있던 박배일 감독과 문창현 감독은 같이 뜻을 모아 오지필름이란 공동체를 만들게 된 것이다.

  2014년 1월에 들어온 김주미 씨 역시 두 감독의 제안을 받고 오지필름에 합류하게 되었다. 주미 씨 역시 박배일, 문창현 감독과 같은 대학 동아리에서 활동했던 사이이다. 서로 안부를 묻다가 2013년 오지필름에서 다큐멘터리 <밀양 아리랑>을 제작하기 위해 스텝이 필요하다는 말을 듣게 되었고 그렇게 일을 하다가 작년 9월에 정식으로 같이 일을 해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현재 그녀는 아직 다큐멘터리를 연출하고 있지는 않지만 오지필름에서 팟캐스트와 공동체 배급에 대한 업무를 전담하고 있는 상황이다.





좌충우돌, 지역에서 다큐멘터리 공동체 만들기


  오지필름은 기본적으로 다큐멘터리 공동체이다. 당연히 주된 활동은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것이다. 오지필름의 탄생과 함께한 장애인 커플의 결혼에 대해서 다룬 박배일 감독의 다큐멘터리 <나비와 바다>를 시작으로 박 감독의 밀양 송전탑 문제를 다룬 두 개의 연작 다큐멘터리 <밀양전>, <밀양 아리랑>. 이렇게 현재 총 세 개의 작품이 정식으로 공개된 상황이다. 세 작품 중 <나비와 바다>는 2011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비프 메세나상을, <밀양전>은 2014년 서울환경영화제에서 한국환경영화 부문 우수상을, 그리고 가장 최근 작품인 <밀양 아리랑>은 DMZ국제다큐영화제 한국경쟁 부문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하였다.

  하지만 오지필름은 단순히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고 부산을 기반으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중 하나가 2014년 1월부터 한 달에 한 번씩 매달 마지막 주에 부산MBC의 청취자 제작 프로그램인 <라디오 시민세상>에 독립 다큐멘터리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방송하는 것이다. 분명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집단이 다큐멘터리를 소개하는 메리트는 크지만 쉽게 보기 어려운 사례였다. 방송에 대한 일을 맡고 있는 주미 씨에게 어떻게 방송을 만들게 되었는지를 들을 수 있었다. 그녀는 <라디오 시민세상>에 방송을 하고 있는 것이 현재 준비 중인 팟캐스트 프로그램과 연관이 깊다고 말했다.



그건 제가 오지필름에 들어오게 된 결정적인 계기 중의 하나인데요. 작년에 오지필름에 들어왔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받기 전에 선배랑 얘기를 하다가, 요새 팟캐스트 많이 하잖아요. 그런데 부산에는 그렇게 팟캐스트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없어서, 그때는 지나가는 말로 독립영화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얘기를 했죠. 그리고 제가 오지필름에 들어오게 되면서 시작을 했어요. 처음에는 방송에 낼 생각이 아니었고, 저희끼리 그냥 팟캐스트를 만들어서 개설을 해서 올릴 생각이었거든요. 그런데 어떻게 하다 보니까 저희가 퍼플릭 액세스 활동도 같이 하고 있는 바람에 방송까지 하게 됐고, 그게 약간 워밍업이 돼서 저번 달부터 조금 긴 버전을 만들어서 팟캐스트를 시작해보자 해서 긴 버전을 만들어놓고 아직 팟캐스트 개설은 안 했어요. 이제 곧 할 거예요. 올리기만 하면 돼요. (웃음)




  그 뿐만이 아니다. 오지필름은 다큐멘터리 공동체 중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다큐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하고 있다. ‘깨세 아카데미’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교육 프로그램은 2012년 초에 처음 시작해 현재까지 총 3번의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또한 비록 지원 기간을 연장했음에도 아쉽게 지원자가 한 명도 없어 오지필름 사람들에게 씁쓸한 뒷맛을 남기게 했지만 다큐멘터리 공동체로써는 최초의 다큐 제작 지원 프로젝트인 ‘오지게 프로젝트’를 열기도 했었다. 분명 이러한 활동은 의미가 큰 것들이지만 단 세 명의 사람들이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며 교육, 지원 프로젝트나 팟캐스트 등의 사업도 함께 꾸려나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어떻게 오지필름은 이러한 활동에도 관심을 기울였던 것일까. 박배일 감독은 그 이유 역시 자신이 부산에 오지필름을 연 이유와 같다고 말했다.



부산에서 다큐멘터리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저희는 너무 다 각자 활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해서 깨세 아카데미 같은 활동들을 통해서 여기저기 흩어져서 다큐에 대해서 고민하고 관심 있는 사람들을 좀 모아보자. 그리고 그런 활동이 조금 더 커지면 자연스럽게 다큐멘터리나 이런 것들이 알려질 거잖아요.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서 알리는 것도 한 방법이 되겠지만, 직접 제작을 같이 하고 지원을 하는 방법으로도 부산에서 다큐멘터리를 좀 활발하게 하면서 알릴 수 있는 방법일 거라고 생각을 해서 이것저것 아이디어를 내셨죠. 그래서 그런 아이디어에서 비롯되어서 활동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고, 실제로 깨세 아카데미 1기를 했을 때 반응이 굉장히 좋더라고요. 진짜 우리가 예상했던 것처럼. 관심들이 많이 있었어요.




  사실 다큐멘터리 공동체 차원에서는 잘 이루어지지는 않아도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것에 대해서 가르치고,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데 자금이 없어 고심하는 이들을 위한 사업은 서울에는 이미 오래 전부터 존재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그러한 사업은 부산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고, 그런 것들을 오지필름은 벤치마킹하면서 사람들에게 관심을 끌고 실험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게 오지필름은 교육 프로그램으로 처음 다큐 제작 외 사업으로 처음 시작해 팟캐스트와 퍼블릭 엑세스 사업을 준비하고 지원 프로그램으로 한 걸음 더 나갔다. 

  하지만 오지필름 사람들은 무작정 시작한 사업이 조금씩 자리를 잡는 것이 흐뭇하면서도 여전히 함께 다큐멘터리를 하는 이가 적은 것을 아쉬워하였다. 깨세 아카데미 사업을 세 번 진행하였지만 교육을 받은 이들은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대신 각자의 길을 가고 있다. 또한 앞서 말한 대로 오지게 프로젝트는 지원 접수 연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명도 신청하지 않았다. 특히 오지게 프로젝트에 대한 아쉬움이 컸다. 박배일 감독은 오지게 프로젝트 사업은 같이 활동하는 인원이 적은 상황에서 택한 현실적인 선택인 동시에 깨세 아카데미와 번갈아서 격년으로 진행하며 깨세 아카데미를 통해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기초를 배운 이들을 한 번 더 오지필름에서 책임을 지고 작품을 만들 수 있게 도와주기 위한 사업이었다고 말했다. 혹시라도 홍보가 잘 되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요, 라고 의견을 말하자 박배일 감독은 자신이 생각하는 의견을 꺼내었다.


아는데도 접근을 안했다면 모르겠는데, 그래도 다큐를 하는 사람은 이런 기회가 궁하기 때문에 찾아보게 되거든요. 근데 찾아보는 사람이 없는 게 아닐까. 정말 독립 다큐를 만드는 사람이 부산엔 별로 없다는 생각 때문에 오지필름이 정말 부산에서 열심히 해야 되겠다는 부담감 보다는 우리랑 함께 즐겁게 다큐를 하는 사람들을 찾는 게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던 것 같아요.



  ‘독립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사람이 부산에는 별로 없다’, 그 말이 왠지 모르게 오지필름을 부산에서 만들게 된 이유와 연관이 깊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부산에 오지필름이 있다는 것 자체가 의미를 줄 수 있지는 않을까. 좀 더 심도 있게 오지필름의 의미와 지역에서 독립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다큐멘터리 공동체를 만드는 것에 대해서 듣기로 하였다. 하지만 의외로 박배일 감독은 지역에서 다큐멘터리 공동체를 꾸리는 것의 의미를 너무 크게 보지 않기를 바랐다.




의미가 있는 건 단순히 서울이 아닌 곳에서 열심히 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그 의미밖에 없는 거 같아요. 독립 다큐멘터리나 독립영화는 어디서 하던 다 힘들어요. 그냥 단순히 오지필름이라는 곳이 의미 있는 건 여기에서 부산에서 활동한다는 것. 왜냐면 다른 데는 제주도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오멸 감독이 만든 자파리필름 밖에 없잖아요. 특히 다큐멘터리는 별로 없고. 근데 그게 불편하고 특이하고 그런 건 없는 거 같아요. 어차피 다큐 감독들 보면 전부 다 지역 내려와서 찍잖아요. 서울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어떤 사안에 따라선 평택에 갈 수도 있고 예를 들어 [땅의 여자] 같은 경우 진주에서 찍었잖아요.

뭔가 부산에 있어서, 서울에 있어서 다른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미디액트가 있다고 하지만 미디액트 가서도 장비는 돈 주고 빌려야 되는 거잖아요. 그리고 거의 대부분의 독립다큐 하는 사람들은 조그만 거라도 자기 장비가 다 있단 말이죠. 그런 의미에서 미디액트 같은 곳이 있다 없다, 미디어센터가 있다 없다는 차이 딱 하나 있는 것 같아요. 독립다큐멘터리를 배울 수 있는 공간이 서울에 있는 거고, 미디액트의 ‘독다큐’(독립 다큐멘터리 제작 과정) 같은 것이 있는 거고. 다른 지방엔 그런 데가 없는 거죠. 부산 역시.




  오히려 박배일 감독은 어떤 지역에서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것보다는 독립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사람들 사이에 네트워킹이 잘 형성되지 않는 문제를 지적했다. 물론 ‘강원래’ 프로젝트나(‘江, 원래’ 프로젝트. 4대강 사업으로 인해 파괴되는 지역들을 찾아가거나 사업의 문제를 지적하는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프로젝트로 2010년부터 2011년까지 총 14편의 작품이 제작되었다.) ‘잼 다큐’ 프로젝트(2011년 8명의 독립 영화감독들이 100일 동안 해군기지 문제로 투쟁중인 제주도 강정 지역으로 직접 찾아가 작품을 각자 만들고 이것들을 이어 붙여 <Jam Docu 강정>이라는 제목으로 2011년 말에 개봉하였다.) 같이 사안에 따라 네트워크를 만드는 일은 제법 있다. 또한 ‘신다모’(신나는 다큐멘터리 모임) 같은 집단도 존재한다. 하지만 박 감독은 그러한 네트워킹이 한시적이거나 개인 간의 네트워킹에 그치고 다큐멘터리 공동체와 공동체 간의 네트워킹이 되지 않는 것을 아쉬워했다. 왜 그는 ‘네트워킹’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일까. 혹시라도 오지필름을 만든 것도 네트워킹에 대한 갈망으로 나온 걸까. 네트워킹과 오지필름을 만든 이유와 연결해서 다시 한 번 묻자 그는 더 단순하지만 궁극적인 이유를 들었다. 자기 자신이 부산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하긴, 자신에게 가장 밀접한 곳에서 일을 하는 것이 가장 좋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렇게 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는 결국 부산에서 오지필름이란 다큐멘터리 공동체를 만들어 단순하지만 쉽지 않은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박배일 감독에게 네트워킹이란 무엇이고 왜 되지 않는 것일까. 그에 대한 대답 역시 단순하지만 분명했다. “네트워킹의 필요성을 못 느끼나보죠. 만약에 필요성을 느꼈으면 네트워킹을 할 거에요. 네트워킹이 없는 건 아니에요. 억수로 친밀하거든요.” 그가 말한 네트워킹은 지역에서 활동하는 사람들끼리 형성하는 관계를 말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수도권을 비롯해 부산 등 다른 지역에서도 상시적인 네트워킹은 잘 형성되지 않고 그는 그것이 궁극적으로 수도권에서 독립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것과 지역에서 만드는 것의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는 이유로 들었다. 오히려 그는 오지필름으로 독립 다큐멘터리 공동체 간 네트워킹을 만드는 것에 대해 “내가 왜 네트워킹을 형성해. 내 하기도 바쁜데….”라며 너스레를 떨었지만 직접적으로 말을 하지는 않았어도 오지필름은 조금씩 지역을 중심으로 독립 다큐멘터리 내부의 네트워킹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사진찍을 때의 어색하고 무뚝뚝하던 모습은 간데없고 금새 이렇게 밝은 모습이 되었다.





성과를 낳았지만 한 편으로는 아쉬웠던 공동체 배급


  오지필름에서는 다큐멘터리 제작, 팟캐스트 · 퍼블릭 엑세스, 교육 · 지원 프로젝트 외에도 중요하게 진행되었던 또 다른 사업이 있다. 바로 공동체 배급이다. 2013년에 완성된 박배일 감독의 다큐멘터리 <밀양전>은 영화제나 특별 상영 같은 예외를 제외하면 오로지 공동체 상영을 통해서만 영화를 볼 수 있었다. 물론 공동체 배급은 이미 웬만한 작품들이라면 선택하는 흔한 배급 경로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공동체 배급 영화의 경우 극장 개봉과 함께 진행되거나 공동체 배급만으로 상영되더라도 다른 지역, 사회운동 단체와 연합해 배급위원회를 결성하거나 시네마달, 인디스토리 등 오랫동안 독립영화를 다루면서 잔뼈가 굵은 영화사가 주도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밀양전>은 오로지 제작사인 오지필름이 직접 공동체 배급까지 전담한,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사례였다. 어떻게 오지필름은 <밀양전>을 공동체 배급으로, 그것도 직접 하기로 결정했던 것일까. 공동체 배급에 대한 일을 맡았던 주미 씨에게 그렇게 결정하게 된 과정에 대해서 물어 보았다.



일단 그 때는 밀양 송전탑 문제가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빨리 알려야 되는 시점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박배일 선배가 <밀양전>을 빨리 만들어서 내놓은 건데, 어떤 배급사를 끼지 않고 빨리 이 걸 사람들한테 전파할 수 있는 방법이, 공동체 상영을 해서 빨리 한 사람이라도 쉽게 볼 수 있게 하자는 취지에서 시작을 했죠.



  처음 진행하는 공동체 배급이었지만 성과는 나쁘지 않았다. 약 150번 가량 공동체 상영하여 5천여 명의 관객들이 <밀양전>을 관람하였다. 비록 흔히 말하는 독립영화 성공의 기준인 ‘일 만 명’은 넘기지 못하였지만 극장이 아닌 오로지 공동체 배급으로만 상영된 ‘독립 다큐멘터리’라는 점을 생각하면 분명 그럭저럭 괜찮은 결과였다. 하지만 그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오지필름 사람들은 아쉬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공동체 배급의 성과가 다른 단체와 공유되는 대신 오지필름 혼자서 공동체 배급 사업을 진행하다보니 성과나 노하우가 오지필름 내부에서 머무르는 듯한 느낌을 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박배일 감독은 “하루 이틀 정도 다른 단체와 함께 하는 것을 고민했어야 했다.”며 아쉬운 기분을 거침없이 드러냈다. 

  또한 처음, 그리고 홀로 진행하는 공동체 배급인만큼 각종 시행착오나 해프닝이 많았다. 주미 씨는 자신이 저질렀던 실수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공동체 상영을 하다보면 GV를 원하시는 단체들이 있어요. 공동체 상영 초반이었는데 전화가 되게 여러 군데서 왔어요. 많으면 하루에 스무 군데서 온 적이 있었거든요. 저 자체도 정리를 어떻게 해야 되는지 모르는 상황에 있다가 대전에서 GV를 같이 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는데 제가 마지막으로 확인을 잘 못한 거예요. 그래서 박배일 선배가 GV를 하러 대전까지 갔는데, 그 담당하시는 분은 저랑 제대로 연락이 안됐다는 이유로 그 GV를 안 한다고 생각해버리시는 바람에 그 장소까지 갔지만 선배는 GV를 못하고 그냥 돌아온 경우도 있었어요.




  또한 상영료에 대한 문제도 컸다. <밀양전>은 극장에 상영되지 않지만 영화를 보고 싶어 하는 공동체의 사람들에게 직접 찾아가서 상영되는 분명한 ‘최신 개봉작’이다. 독립 다큐멘터리 공동체 역시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모든 작품의 개봉은 공동체의 재정은 물론 이후 사업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당연히 일정한 금액을 받아야만 꾸려나갈 수 있다. 오지필름 역시 <밀양전>의 공동체 배급을 하면서 상영료에 대한 기준을 만들었다. 동시에 그에 대하여 공동체 상영 안내문에 적시를 해놓았다. 하지만 정작 공동체 배급을 시작하자 상영료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현실을 깨닫게 되었다. 대부분의 공동체 상영을 신청한 곳들은 오지필름이 정한 <밀양전>의 상영료를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너무 비싸다면서 언짢은 반응을 내비췄다. 문창현 감독은 그러한 반응이 독립영화에 대한 인식에 있다고 보았다. 박배일 감독 역시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독립영화는 좋은 뜻에서 만든 영화니까 공짜로 본다는 인식이 있어요. 우리가 좋은 뜻으로 보려고 하는데 왜 상영료를 받지? 이렇게 얘기하면 당황스러운 거죠. 좋은 의미로 보려고 하는데 왜 너네는 돈을 요구하는 거야라는 태도는 아니지만, 의역을 하면 그렇게 들릴 수 있게끔 사람들이 독립영화를 공짜로 보는 영화, 혹은 돈을 굉장히 적게 주고 보는 영화? 왜냐면 우리가 좋은 뜻에서 너네 영화를 보려고 하니까. 그런 의식이 팽배해서 약간 화도 많이 났고 짜증도 많이 났을 거예요.




  그래서 그런 것일까. 오지필름은 <밀양전>의 후속작인 <밀양 아리랑>을 비롯해 이후 작품에 대해서는 홀로 공동체 배급을 진행하는 대신 다른 단체와 연합하여 배급위원회를 결성하여 공동채 배급을 하거나 극장 개봉을 할 것이라고 향후 배급 게획을 밝혔다. 부디 <밀양전>의 공동체 배급의 궤적과 성과가 잘 공유되고 그리고 ‘상영료’의 인식이 해결되길 바랄 뿐이었다.





큰 의미는 없어도 같이 하는 모두가 즐거운 장소로


  오지필름은 현재 네 개의 작품을 준비 중에 있다. 하나는 <밀양전>과 <밀양 아리랑>에 이어 또 다시 한 번 밀양 송전탑 문제를 배경으로 하는 단편이다. <밀양 아리랑>이 한창 후반 작업을 하던 중인 2014년 6월 11일, 밀양 송전탑 건설 현장에 정부는 행정대집행을 강행했다. 그 과정에서 경찰들과 밀양시청의 직원들은 시민들과 연대를 위해 찾아온 이들에게 몸싸움은 물론 각종 폭력과 탄압을 행사했다. 하지만 언론은 그 사건을 잘 다루지 않았고, 오지필름은 그 날의 사건들을 찍어 단편으로 공개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또 다른 준비작은 부산의 대형 막걸리 제조업체인 부산합동양조에 대한 다큐멘터리이다. 부산합동양조는 부산 지역의 유명한 막걸리인 ‘생탁’을 제조하는 업체이지만 노동자들에 대한 대우는 대다수 한국 기업들처럼 열악했다. ‘생탁’을 만드는 노동자들은 2014년 1월 노조를 결성해 4월부터 파업을 해 지금까지 파업을 하고 있다. 오지필름은 파업의 과정을 다큐로 담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또한 문창현 감독이 올해 안으로 완성한 목표로 (이에 대해 박배일 감독은 단호하게 절대 불가능할 것이라는 견해를 드러내어 문창현 감독을 당황케 만들기도 했다.) 제작하고 있는 <놈이>가 있다. <놈이>는 곧 댐 건설로 수몰될 예정에 있는 문 감독의 아버지 고향에 대한 단편 다큐멘터리다. 작품은 삼 년 간 촬영되었고 원래 장편으로 준비되었으나 계획을 변경해 아버지의 고향에서 만난 할머니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단편이 되었다. 그리고 박배일 감독은 <사상>이라는 이름의 다큐멘터리를 준비하고 있다. 이렇게 제작을 준비 중인 작품들은 모두 밀양 송전탑, 부산합동양조 등 모두 오지필름이 위치한 부산 근교의 일들을 담고 있다.

  사실 오지필름의 첫 작품인 <나비와 바다>도 각각 부산과 양산에 살고 있는 장애인들의 이야기였고 박배일 감독이 오지필름을 만들기 전에 만들었던 <잔인한 계절> 역시 부산의 청소 노동자를 다뤘던 작품이었다. 거의 모든 작품이 부산을 비롯한 경남권을 무대로 삼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다큐멘터리 공동체가 가질 수 있는 장점이 아닐까. 박배일 감독에게 대부분의 작품들이 부산 근처가 무대가 되는 이유에 대해서 물어보았지만 역시 그의 대답은 담백했다. “왜냐면 제가 여기 부산에서 밥 벌어먹고 살고 있기 때문이고, 가장 관심 있는 주제니까요.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사람 모두가 자기가 관심 있는 것을 가지고 작품을 만들잖아요.” 그렇게 말을 하면서 그는 동시에 자신이 제주 강정해군기지 문제나 평택 쌍용자동차 문제를 다루지 않은 이유도 거기에 있다고 말했다. 자신의 생활 반경에서 너무 멀기 때문에. 그는 가까운 곳에서 누군가가 억울함을 말하는 목소리가 세상에 알려지지 않는 현실이 문제고, 그것을 다루는 것이 의미가 크다고 봤다. 그는 가까운 문제에 결합하고 있는 미디어 활동가나 독립 다큐멘터리 감독이 많은 것을 아쉬워했다. 문창현 감독 역시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아무래도 제가 살고 있는 가까운 곳에서 일어나는 일에 당연히 시선이 가는 게 당연하니까. 그런 곳에서 손이 필요하면 저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을 땐 카메라를 들고 가거나 프로젝트를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진행하죠.




  이렇게 오지필름은 자신만의 확고한 시각을 가지고 있는 박배일 감독을 중심으로 비록 세 명의 적은 인원이 다큐멘터리 제작은 물론 각종 교육, 지원, 방송 사업을 알차게 꾸려나가고 있는, 크기는 작지만 결코 활동은 작지 않은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결코 쉽지 않는 활동을 하고 있는 오지필름 사람들에게 오지필름이 자기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알고 싶었다. 문창현 대표에게 오지필름은 많은 사람들을 알게 한 공간이었다.



제가 사회생활을 한 번도 안 해봤어요. 졸업하고 일 년은 자원봉사 활동 한다고 작은 사회를 겪긴 했지만, 지금도 제대로 된 사회생활을 한다고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20대 후반을 오지에서 활동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된 공간이거든요. 이 오지필름을 통해서 좀 더 많은 사람들을 앞으로 알고 싶어요. 그걸 제 작품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을 알면 좋을 거 같은데. 어쨌든 오지필름은 20대 후반의 인적네트워크를 방대하게 쌓아준 곳이에요.




  아직까지 다큐멘터리 연출을 하지 않고는 있지만 (인터뷰 중간 박배일 감독은 “나와 문창현 감독이 작품을 만들고 초청받아 영화제에서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이 부럽지 않냐면서 꼬시고 있는데 이래도 연출을 안 하려고 한다.”면서 불만 아닌 불만을 드러냈다.) 공동체 배급과 팟캐스트, 퍼블릭 엑세스 등 굵직굵직한 활동을 맡고 있는 주미 씨는 오지필름이 자기 자신에게 딱 맞는 최적의 단체라고 답을 하였다. 동시에 그녀는 자기 자신에 대한 고민과 함께 지금 그녀가 발을 붙이고 있는 부산이 단순히 영화제를 하고 촬영 장소로 많이 쓰이는 의미에서 ‘영화의 도시’라는 말을 듣는 대신 일상적이고 당연하고 흔하게 독립영화 등 다양한 영화에 대해서 보고 이야기할 수 있는 곳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드러내었다.



지금 저 자신한테 과제이기도 한데 어쨌든 연출을 안 하고 오지필름에서 무엇을 하면서 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지금도 하고 있고요. 솔직히 저는 고향이 부산이 아닌데, 대학을 부산으로 오게 된 건데 부산이 좋아서 잠시 떠나있다가도 다시 돌아왔기 때문에, 부산이 좋고 독립영화가 좋아요. 그럼 오지필름은 저한테 최적의 직장? 직장이라고 하긴 그렇지만 최적의 단체거든요. 거기서 어떻게 활동을 해나갈 것이냐 했을 때 막연한 것도 있긴 하지만요.




  마지막으로 박배일 감독의 생각을 들어보았다. 그는 인터뷰 내내 그랬던 것처럼 오지필름이 특별한 의미가 있는 장소가 되기보다는 어느 순간에 “아, 오지필름 하지마!”를 해도 되지만, 하는 동안에는 모두가 즐겁게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드러냈다. 동시에 그는 자신을 비롯해 오지필름을 함께 해왔던 이들이 한 템포 쉴 수 있을 순간이 오길 바랐다.



지금까지 오지필름이 해왔던 방식은 저의 머릿속에서 나오고, 다른 두 명이 손발이 돼서 같이 하는 거였어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제 성격 자체 때문에 뭔가를 심도 깊게 고민하고 그 고민이 정리되어 어떤 활동으로 이어지고 다시 그 활동이 또다시 심도 깊게 정리되어 다음 방향으로 나아가는 방식이 아니라 그냥 죽 계속 몰아치는 거였거든요. 어느 순간에는 (나중에 함께하게 될) 친구들이 오지필름 혹은 우리가 지금까지 해왔던 활동의 새로운 방향을 제안을 해주는 것을 기대하고 있고. 또 그렇게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조금 차분하게 한 템포 쉬어가는 순간들이 몸이 아파서 오는 게 아니라 조금 더 결단에 의해서. 쉰다는 게 활동을 안 한다는 게 아니라. 그렇게 하는 시기가 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는 거죠.




  이렇게 오지필름과의 인터뷰는 약 두 시간 만에 마무리되었다. 글에 사용할 사진을 간단히 근처에서 찍고 그들과 필자 모두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보기로 했던 영화를 보기 위해 간단히 인사를 한 뒤 헤어졌다. 오지필름 사람들은, 특히 박배일 감독은 인터뷰를 하는 동안 자신들이 하는 활동들이 큰 의미가 있기 보다는 부산에서 함께 독립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사람들을 모으기 위해 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계속 드러내었다. 하지만 그것이 어쩌면 수도권을 비롯한 한국 어디서든 다큐멘터리 공동체를 꾸려 나갈 때 필요한 인식이 아닐까. 거창하고 거대한 사명이 있기 보다는 각자 하고 싶은 작품을 만들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하는 것. 그렇게 다큐멘터리 공동체가 탄생했고 많은 작품들을 만들어 왔던 것이 아닐까. 오지필름의 모습은 그런 점에서 역설적이게도 자기 자신에게 거대한 의미 대신 할 수 있는 것을 충실하게 하는 것을 통해서 의미를 만들고 그 의미를 키워나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앞으로 오지필름의 행보가 기대가 되는 이유이다. 





 인터뷰가 끝난 후, 오지필름 사람들이 꼭 실어달라고 부탁한, 올해 초 워크숍 가서 찍은 이들의 셀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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