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 90호 이슈와 현장 2014.9.22]
한국의 영상물 심의, 어떻게 변해야만 하는가
성상민(ACT!편집위원회)
몇 달 전 한국 영화는 물론 세계 영화에 있어 유래가 없을 일이 있었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신작 영화 [님포매니악 볼륨1]의 한국 포스터가 원본 포스터에 쓰인 배우들의 모습을 뿌옇게 처리한 방식으로 공개되고 만 것이다. 당연히 배우들의 표정은 물론 형체조차 분간하기 어려웠다. 물론 연출자의 의도에 따라 처음부터 흐리게 처리한 포스터가 종종 나오지만 수입사 측에서 임의로 포스터를 이렇게 처리한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문제는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의 심의 결과에 있었다. 영등위는 원본 포스터의 이미지를 그대로 살려 제출한 수입사의 한국 포스터에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을 내렸다. ‘나의 모든 구멍을 채워줘’라는 포스터의 문구와 배우들의 표정이 선정적이라는 이유였다. 그로 인해 이 영화의 수입사인 엣나인필름은 부득의하게 포스터를 바꿀 수밖에 없었다. 이미 영화 본편도 영등위로부터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아 일부 장면을 흐리게 수정하고 재심의를 받아 겨우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을 받은 직후의 일이어서 더욱 충격은 컸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바꾼 포스터는 이번 해프닝을 확대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그들이 새롭게 만든 포스터의 문구는 이 사태를 매우 단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보여줄 수 없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 [님포매니악 볼륨1]의 한국 포스터.
왼쪽이 수정 전, 오른쪽이 수정 후 정식으로 게시된 포스터이다.
해프닝은 이 뿐만이 아니다. 김경묵 감독의 [이것이 우리의 끝이다]는 영화 본편이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을 받았다. 영등위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거친 욕설과 비속어의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사용과 청소년에게 유해한 모방 위험적인 장면을 묘사하여 해당 등급을 부여하였다고 밝혔다. 분명 영화에 욕설이 나오고, 자살 장면을 직접적으로 묘사하는 등 청소년에게 유해할 수 있는 장면이 나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장면의 비중과 분량은 적은 수준이며 해당 장면들을 제외하면 영화의 수위는 그렇게 높지 않았다. 감독은 등급 분류 판정에 유감의 뜻을 표했고, 영화 팬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있었다.
심지어는 법원에서 등급 분류 결과의 정당성을 놓고 다투고 있는 작품도 있다. 김선 감독과 김곡 감독이 공동으로 연출한 [자가당착 : 시대 정신과 현실 참여]가 바로 그 영화이다. 한국 경찰의 상징인 ‘포돌이’의 마네킹을 활용해 한국 사회를 풍자한 작품은 2011년, 2012년 2년 연속으로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았다. 영등위는 폭력 묘사가 과도하고 직접적이며 구체적이고 잔혹해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현저하게 훼손한다는 이유로 등급을 부여했다. 하지만 정작 영화는 포돌이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 전부이며, 그 폭력의 수위는 그다지 높지 않는 편이었다. 영화를 연출한 두 감독들은 해당 영화에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의 표찰을 단 마네킹이 폭력을 당하는 것 때문에 이러한 등급을 내렸을 거라고 추측하기도 했다. 결국 감독들은 2012년 행정소송을 제기해 올해 열린 2심까지 모두 제한상영가 등급 판정을 받은 것이 부당하다는 판결을 받았으나, 영등위의 상고로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는 상태이다.
위에서 예시를 든 영화 외에도 논란이 일었던 영화는 많다. 2002년 노인들의 성행위를 직접적으로 다뤘다는 이유로 제한 상영가 판정을 받았던 김진표 감독의 [죽어도 좋아], [자가당착] 이전에 대법원까지 가는 법정 공방 끝에 제한상영가 등급이 취소되고 자유롭게 극장에 걸릴 수 있었던 [숏버스], 정식 개봉 하루 전에 부랴부랴 등급을 낮추기 위해 영화 일부분을 삭제한 [악마를 보았다], 영화 포스터에 키스하는 장면이 있다는 이유로 포스터가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을 받고 수정을 할 수 밖에 없었던 [폼페이 : 최후의 날]…. 물론 심의 결과에 대한 논란은 한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에서 계속되는 문제다. 심의기관은 상대적으로 엄격하게 등급을 분류하고, 감독과 제작사는 어떻게든 낮은 등급을 받아 작품이 더 많은 대중들에게 공개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최근 벌어지는 영상물 심의에 대한 논란은 심상치가 않은 모양새이다. 일각에서는 1990년대까지 행해졌던 사전 심의와 무엇이 다를 바가 있냐는 말도 나오고 있다. 대체 무엇이 문제인 것일까.
공윤에서 영등위로, 사전 검열에서 등급 분류 심의로 바뀌었지만…
1990년대까지는 한국의 영상물 심의는 등급 분류에 목적을 두기 보다는 사전 검열에 가까웠다. 작품을 제작할 때부터 심의기관에 시나리오에 대한 심의를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항쟁으로 군사 독재 정권이 서서히 무너지고 이후 김영삼 정권은 '문민 정부‘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까지 자신들을 이전 정권들과 차별화했지만 정작 심의에 있어서는 차이가 없었다. 가수 정태춘 씨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정부의 사전 검열에 항의했고 결국 1996년부터 1999년까지 헌법재판소로부터 차례차례 사전 검열이 위헌 판정을 받으면서 한국에서 매체에 대한 사전 검열제도는 완전히 사라졌다. 영상물에 대한 심의는 검열에서 등급 분류를 위한 행위로 바뀌었다. 등급 분류를 신청한 모든 작품은 법적으로 수정 요청이나 등급 분류 거부를 당할 수 없는 것이다. 2001년까지는 ’등급 보류‘라는 이름의 사실상의 사전 검열제도가 살아있었지만 이마저도 헌법재판소로부터 위헌 판정을 받으면서 법적으로 모든 매체는 검열로부터 자유롭게 되었다.
하지만 문제의 싹은 새롭게 타올랐다. ‘등급 보류’가 위헌을 받은 이후 영상물등급위원회는 이전에 ‘등급 보류’ 판정을 받은 작품들을 그대로 ‘19세 미만 관람불가’(현재의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으로 주기엔 어렵다고 판단해 이보다 더 높은 수위의 작품들을 위한 새로운 등급을 만들었다. 바로 그것이 ‘제한상영가’이다. 또한 제한 상영가를 받은 작품들은 ‘제한 상영관’에서만 상영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리고 수많은 제약을 걸었다. 제한상영가 등급의 영화는 제한상영관 내에서만 포스터를 붙이거나 리플렛을 비치하는 홍보가 가능하고, 비디오나 DVD 같은 2차 매체로의 출시가 제한을 받는다. 제한상영관으로 지정받은 영화관에서는 제한상영가 이외의 영화는 상영할 수 없다. 당연히 제한상영가 영화를 제작·수입하는 것은 어려웠으며, 제한상영관 역시 영업에 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제한상영관은 하나 둘 씩 사라지기 시작해 2000년대 중반 이후에는 한 곳도 남지 않게 되었다. 제한상영가 영화는 제한상영관 내에서만 상영이 가능하다는 규정을 생각하면 사실상 제한상영가 영화는 영화제를 제외하면 정식으로 극장에 걸릴 수 없는 존재가 되고 만 것이다.
논란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제한상영가의 문제를 넘어 영상물등급위원회가 주관하는 영상물 심의 전반에 대한 구설수가 몇 년 전부터 계속되고 있다. 물론 예전 사전 검열을 주도하던 공연윤리위원회(공윤) 시절에 비하면 분명 많이 나아진 것은 사실이고, 영등위도 자체적으로 심의 체계를 간소화하거나 등급 분류 가이드라인을 배포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영등위는 자의적이거나 보수적이고, 때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심의 결과로 인해 논란의 중심이 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이전에 문제없이 넘어갔던 표현에 대해서도 청소년 관람불가나 제한상영가 판정을 내려 심의 기준이 퇴화하고 있다는 논란을 야기하고 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논란이 키스하는 장면이 담긴 포스터와 예고편에 대한 심의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무런 지적을 받지 않았던 포스터, 예고편의 키스 묘사는 올해부터 갑자기 몇몇 선전물이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을 받으면서 많은 사람들을 의아하게 만들었다. 이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청소년 관람불가를 받은 포스터의 경우 성인 인증을 해야지만 보여줄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오프라인 배포가 불가능하며, 예고편 역시 오프라인에서는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 앞에서만 상영이 가능하고 온라인 상영은 포스터와 마찬가지로 성인 인증이 필요하다. 한마디로 영화 홍보에 있어 전체 관람가 판정을 받은 선전물에 비해 많은 불이익을 받고 마는 것이다. 성기 노출에 대한 묘사 역시 마찬가지의 문제이다. 몇 년 전까지는 문제없이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을 받았던 성기가 노출되는 영화들이 최근 들어서 무더기로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고 있는 상태이다.
대체 왜 이런 문제와 논란이 사전 검열이 폐지된 지금에도 반복되는 것인가? 이는 심의 제도와 정부의 영상물을 포함한 문화 매체 전반에 대한 인식에 기인한다. 분명 심의 제도는 2000년대 이전에 비하면 큰 폭으로 나아졌다. 정부에 비판적이거나 섹슈얼리티를 묘사한 작품이 더 원활하게 나올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심의 제도가 개선되어도 결국 그것을 꾸리는 것은 사람의 몫이다. 여전히 심의를 담당하는 이들은 영상물의 특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보수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감독이나 제작자의 설명은 잘 받아들여지지 않거나 무시당하기 마련이다. 심의 제도가 법률과 너무나도 끈끈하게 결합된 것도 문제이다. 영상물뿐만 아니라 매체의 특성상 사전에 미리 등급을 분류 받아야 하는 게임 같은 매체의 경우 법적으로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등급 분류를 반드시 받아야만 한다. 만약 받지 않고 유통할 경우 이는 법적 처벌의 대상이 된다. 얼핏 보기에 불법적인 유통을 방지할 수 있어 좋아 보일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등급 분류에 무관하게 작품을 만들고 퍼트리고 싶어 하는 이들의 손발을 제약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이미 서울인권영화제의 경우 정부의 이러한 조치에 반발해 영화제는 제대로 된 상영관을 구하지 못하고 야외 상영관이나 시설이 열악한 곳을 이리저리 전전하고 있는 중이다. 게임의 경우 [탐정뎐] 등의 동인 작품이 심의 문제로 큰 피해를 얻기도 했다.
정부 심의, 민간 심의의 이분법적 구도를 넘어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체 어떡해야만 하는가. 단기적으로는 제한상영가 영화 및 제한상영관에 대한 규정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제한상영가와 비슷한 등급인 미국 NC-17 등급의 경우 한국처럼 광고가 제한되어 있는 것은 동일하나, 지면을 통한 광고는 부분적으로 허용되어 있으며 2차 매체로의 출시 역시 자유롭다. 또한 딱히 상영관에 대한 제약은 없으며 각 극장이 자율적으로 NC-17 등급 영화에 대한 상영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다만 대다수 극장은 보통 NC-17 등급의 영화를 상영하기 거부하기 때문에, 아트하우스 계열의 영화관에서 주로 상영된다.) 현재 몇몇 영화계 인사는 ‘아트플러스’와 같은 예술영화전용관에서 제한상영가 영화를 자유롭게 상영할 수 있기를 주장한다. 어떤 식으로든 제한상영가가 사실상의 상영 금지 조치가 되지 않도록 상영과 홍보의 길을 터줄 조치가 시급하게 필요하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한국의 영상물 심의, 더 나아가 문화 매체에 대한 심의 제도 전반을 바꿔야만 할 것이다. 한국의 매체 심의 대부분은 관에서 주도하는 심의이며, 앞서 말했듯 이 심의는 법률과 묶여 있어 창작자의 자유를 큰 폭으로 제한하고 있는 상태이다. 물론 시간이 지날수록 각 매체 종사자들의 요구로 조금씩 관 주도 심의에서 민간 심의로 넘어가고 있는 상태이다. 온라인으로 연재되는 웹툰의 경우 인터넷 콘텐츠에 대한 심의를 전담하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한국만화가협회와 MOU를 맺은 상태이며, 게임에 대한 심의는 올해부터 콘솔 · PC온라인으로 발매되는 청소년 관람불가 미만의 게임에 한하여 기존 정부 산하 심의기관인 게임물관리위원회(구, 게임물등급위원회)에서 민간기구인 게임문화재단으로 이관된 상태이다. 이 밖에도 최근 정부의 규제 완화 움직임과 얽혀 많은 영역의 심의가 민간으로 이양될 전망이다.
분명 이러한 움직임은 지난 시절부터 현재까지 정부 주도의 심의에 많은 불만과 상처를 입어온 이들에게는 좋은 반응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무조건 심의의 주체가 정부에서 민간으로 넘어오는 것만이 만병통치약은 될 수 없다. 2006년에 제작된 다큐멘터리 [이 영화는 아직 등급이 없다](This Film is not yet Rated)는 미국 영상물 심의를 주도하는 민간기구 MPAA(미국영화협회)의 실상을 다룬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는 MPAA가 한국의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에 해당하는 R등급과 제한상영가 등급에 해당하는 NC-17 등급에 대한 기준이 모호하고 심의위원들의 구성이 편향적으로 이루어져있어 전통적인 가치에서 벗어나는 동성애 등을 표현하는 영화들이 NC-17 등급을 주로 받고, 메이저 영화사와 소규모 독립 영화사에서 제작하는 영화들에 대해 차별적으로 등급을 매긴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또한 MPAA의 심의위원에 메이저 영화사 출신의 인사들이 대거 포진되어 메이저 영화사에 최대한 유리하게 등급을 매긴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NC-17 등급을 받는다고 해서 상영을 할 수 없는 상태는 아니고 등급 분류를 받지 않아도 어떻게든 영화를 개봉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국이 한국보다 나은 부분은 있지만 등급 분류에 대한 논란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정부 심의냐 민간 심의냐는 근본적인 질문이 될 수 없다. 분명 현재 정부가 주도하는 한국의 심의는 많은 관계자로부터 원성을 듣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심의를 무조건적으로 강제하는 현재의 법을 뜯어 고치지 않고 무작정 민간으로 심의를 이관하는 순간 미국의 사례보다 더 좋지 않는 미래가 올 가능성은 높아 보인다. 법률을 본격적으로 뜯어고치는 동시에 심의위원의 구성에 있어서도 현재처럼 정부, 법조계, 영화계, 시민단체 인사로 단조롭게 구성하는 대신 실제 매체를 향유하는 일반 시민들은 물론 실질적으로 영화나 미디어 운동을 하는 단체나 활동가까지 폭 넓게 참여해 가능한 많은 목소리를 듣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매체에 대한 심의가 사라지고 자유롭게 작품을 만들고 배포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각종 핑계를 들면서 사람들의 만들고 볼 권리를 빼앗던 사전 검열이 사람들에게 매체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등급 분류 심의로 전환되었듯이, 현재의 심의 역시 그런 수준의 변화를 낳을 수 있도록 진보해야만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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