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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올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와 영화인연대의 공동 주최로, 부천시 웹툰융합센터 1층 컨벤션홀에서 정책 포럼이 열렸다. '영화산업 위기 극복 영화인연대'는 지난해부터 한국 영화계에 닥친 위기들을 꾸준히 조명하며, 이를 극복하고 도약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왔다. 이번 정책 포럼은 복합적인 위기 국면에 놓인 한국 영화산업의 현재를 짚고, 산업 생태계의 구조적 개편과 지속 가능한 회복을 위한 실행 과제를 모색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포럼은 두 개의 세션으로 구성되어, 1부에서는 영화계에 만연한 불공정 구조의 현실과 이에 대한 제언을, 2부에서는 한국 영화 생태계의 취약한 현실과 그에 대한 몇 가지 방안을 다뤘다. 발제 이후에는 토론자들과 플로어가 함께 의견을 나누는 시간이 이어졌다. 총 3시간 30분 동안 진행된 이번 포럼은 한국 영화의 위기에 공감하는 열정적인 영화인들의 참여로 단 5분의 휴식만이 허락될 만큼 뜨거운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
1부 | 불공정 해결, 지금 아니면 늦는다
[사 회] 이은 한국영화제작가협회 회장
[발제 1] 홀드백을 둘러싼 3가지 질문: 누가, 왜, 어떻게 | 이화배 이화배컴퍼니 대표
[발제 2] 스크린 독과점 VS. 스크린 상한제 | 노철환 인하대학교 연극영화학과 교수
[발제 3] 극장을 극장답게, 투배사를 투배사답게 | 김병인 한국시나리오작가조합 대표
[토 론] 김윤미 한국영화제작가협회 이사 | 전영문 전 영화진흥위원회 공정환경조성센터장 | 최낙용 한국예술영화관협회 대표
2부 | 한국영화 생태계 회복, 지금이 골든타임이다
[사 회] 백재호 한국독립영화협회 이사장
[발제 4] 윤석열 정부 삭감된 영화 예산의 복원, 무너진 영화 생태계 회복의 전제 | 김동현 서울독립영화제 프로그램위원장
[발제 5] 영화산업 기획·제작 생태계 복원을 위한 방안 | 박관수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부대표
[발제 6] 팔 길이 원칙 기반 예산 편성과 관료주의 타파형 집행 체계 제안 | 원승환 인디스페이스 관장
[토 론] 김민하 <아메바 소녀들과 학교괴담: 개교기념일> 영화감독 | 안병래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운영위원 | 장은경 한국영상미디어교육협회 미디액트 사무국장

1부 사회를 맡은 이은 협회장은 현재 한국 영화계가 “복합적인 위기 상황”에 처해 있다며, 단편적인 대응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복잡한 국면에 놓여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포럼이 그 위기를 객관화하고, 짧은 시간 안에 극복의 실마리를 찾는 자리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세션을 시작했다.
이화배 대표는 팬데믹과 OTT 확산 이후 SVOD 중심의 시장 구조가 빠르게 고착화되며 기존 영화 유통 질서가 흔들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유통 창구 간 순서를 보장하던 ‘홀드백(Holdback)’ 제도의 무력화는 극장, TVOD, OTT 간의 역할 분담을 붕괴시키고 영화 유통의 수익 구조를 위협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최근 개봉 3~6주 만에 OTT에 진입하는 사례가 늘며 TVOD 창구는 사실상 사라졌고, 극장의 수익성 역시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유통 질서를 시장 자율에만 맡기기엔 한계가 있다며, 배급단체 구성을 통한 현실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유통 정책은 흥행을 위한 기본적인 안전장치”라며, 홀드백 제도의 회복이 유통 구조 전반의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노철환 교수는 현재 한국 영화산업의 구조적 문제로 ‘스크린 독과점’을 짚었다. 특정 흥행 영화가 스크린 대부분을 점유하는 현실은 관객의 선택권을 제한할 뿐 아니라, 다양한 영화들이 상영조차 되지 못하는 구조를 고착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관객이 일주일에 한 편의 영화를 본다면, 그 다음에 볼 영화가 극장에 없다”며 콘텐츠 다양성의 부족을 지적했다. 이를 위해 ‘스크린 상한제’ 도입을 제안했으며, 프라임타임 기준 상영 점유율을 50%로 제한하고 6편 이상을 상영하는 극장에 적용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또한, 스크린쿼터제와 함께 입법화해야 실효성이 있으며, 법적 장치와 재정 지원이 병행되어야 구조적 불균형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병인 한국영화시나리오작가조합(SGK) 대표는 다양성 영화가 수익성이 없다는 인식은 산업 구조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특히 극장 부율 구조가 제작자에게 불리하게 설계된 점을 지적했다. 현재의 상영-배급 겸영 구조는 오히려 비용을 절감하기보다 특정 자본과 콘텐츠의 집중만을 강화해 오히려 시장 경쟁력을 약화시켰다고 봤다. 그는 투자와 배급의 기능 분리, 상영-배급의 독립성 확보를 위한 법적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 말했다. 또한, 다양성 영화를 위한 시장 환경을 조성하려면 단순한 규제에 그치지 않고, 배급사 간 협력과 제작자 중심의 수익 모델 설계 등 구조적 변화가 함께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1부 토론은 발제자 3인과 토론자 3인의 참여로 진행되었다. 다양한 영화가 관객에게 도달하지 못하는 불공정한 유통 구조의 문제를 바탕으로, 제도 개편과 정책 제안, 영화인들의 연대와 기록의 필요성이 주요 의제로 다뤄졌다. 최낙용 한국예술영화관협회 대표는 강변 CGV 개관 당시의 기대와 현실의 괴리를 언급했고, 전영문 전 영화진흥위원회 공정환경조성센터장은 OTT 관련 제도 개선이 내부 저항과 부처 간 권한의 한계로 좌절된 경험을 공유하며, 정책 실현을 위해 영화계 내부의 실천과 연대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플로어에서도 영진위의 정책 현실화 한계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고, 김병인 대표는 지속적인 영화인들의 참여와 제도 개편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어진 논의에서는 데이터 기반 정책 수립, 투자 유인 방안 등 구체적인 제안들도 제시되었다.

영화인들의 열띤 논의로 인해 단 5분의 짧은 휴식만이 허락됐고, 곧바로 2부 발제가 이어졌다. 김동현 서울독립영화제 프로그램위원장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단행된 영화 예산 삭감이 단순한 긴축 재정이 아니라, 명백한 정치적 억압으로 작용한 점을 짚으며 발제를 시작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 특정 영화나 개인을 겨냥한 방식에서, 윤석열 정부는 전체 영화계를 향한 조직적 예산 삭감으로 그 수위를 높였다는 것이다. 실제로 다수의 영화제가 예산 전액 삭감 통보를 받은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점을 지적했다. 특히 지난 2년간 독립·예술영화 분야 예산은 사실상 100% 삭감됐으며, 문체부 전체 예산은 큰 변동이 없었던 반면, 유독 영화진흥위원회 예산만 대폭 줄었다. “예산은 곧 정책이며, 예산이 없으면 정책도 실현될 수 없다”며 실행 기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지역 단위 영화 활동이 큰 타격을 입었다며, 예산 복원이 한국 영화 생태계 회복의 핵심 조건이라고 지적했다. 과거의 거버넌스를 단순히 되살리는 것이 아니라, 지역과 관객, 공동체가 실질적으로 참여하는 생태계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의 보장에 관한 법률’이 여전히 개인 예술인 중심에 머무르고 있다며, 공동체와 단체를 포괄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새로운 정부와 새로운 국면을 맞으며, 전 정부에서 일어난 일들을 정확히 기록하고 점검해야, 다음 정부에 무엇을 요구할지 명확해진다는 말을 끝으로 발제를 마무리했다.
박관수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PGK) 부대표는, 현재 영화산업이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이라는 비정상적 구조에 놓여 있다고 분석하며 관객들이 영화관을 찾는 방식과 기대는 바뀌었지만, 산업은 여전히 과거의 기준에 머물러 있다고 진단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새로운 기획과 실험이 가능한 제작 환경을 복원하기 위해 중·저예산 영화 지원 확대와 함께, 공공영화발전기금 1조 원 조성 같은 안정적인 투자 기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복권기금, OTT 매출 부과 등을 통한 구체적인 기금 조성 방안을 제시하며, 프랑스 등의 사례를 참고한 체계적인 재원 확보 전략도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끝으로 변화하는 콘텐츠 소비 환경에 맞춰 기획개발 생태계를 복원하고, 이를 위한 지원사업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원승환 인디스페이스 관장은 예산 증액이나 사업 확대보다 예산 편성과 집행 구조의 재설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영화발전기금은 영화진흥위원회가 편성 권한을 갖지 못하며, 문체부 중심의 결정 구조는 현장의 의견을 반영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연 단위 지원 사업은 영화 제작의 계절성과 흐름을 고려하지 못해 제작에 제약을 준다고 지적했다. 지금의 사업 진행이 계속된다면 촬영, 후 작업 등의 시기가 정해져 독립영화에서 사계절이 사라지게 된다. 복잡한 정산 시스템은 창작자의 자율성과 지속성을 해치며, 독립영화인은 인건비조차 지원받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 또한 지적했다. 그는 창작자의 생존권 보장과 함께, 더 정교하고 현실적인 정책 설계가 영화 생태계 회복의 핵심이라고 주장했다.
2부 토론은 앞선 발제자들의 분석과 제안 위에, 현장 영화인들의 체감과 고민, 그리고 미래를 향한 제언이 더해지는 자리로 이어졌다. "한국영화 생태계 회복, 지금이 골든타임이다."라는 제목이 던져졌을 때, 일순간 무거워진 분위기도 있었지만, 곧이어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미래, 그리고 후배 세대의 자리를 만들어가는 일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며, 이 위기를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플로어와 단상에서 활발히 오갔다. 김병인 SGK 대표는 “지금까지는 공룡의 시대였다. 소행성 충돌로 그 시대는 끝이 났고, 지구의 생명도 그런 식으로 이어져 왔듯 영화계 역시 이제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야 한다”며 지금이 전환점임을 강조했다. 김동현 위원장은 “관객들이 극장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제작자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영화를 만들고, 다양한 시도를 하며, 이를 위한 권리를 지키기 위해 싸워야 한다. 동시에 정부와 운영 조직은 영화인들과 논의해 정당한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원승환 인디스페이스 관장은 “감독들이 이런 자리에 오는 데 여전히 소심한 면이 있다”며, “이제는 정책 마련과 현장 논의에 모두가 힘을 보탤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하며 영화인들의 연대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민하 감독은 “영웅은 난세에 나온다. 제가, 저희 세대가 그런 영웅이 되어보겠다. 잘 이끌어 달라”는 말로 좌중의 웃음을 자아내며 무거운 논의의 끝에 희망을 남겼다.
1·2부를 통틀어 ‘영화의 다양성’에 대한 문제의식이 반복적으로 제기된 만큼, 앞으로의 영화계에는 새로운 시대를 상상하는 힘과 이를 실현할 연대가 무엇보다 절실하다는 점이 확인되었다.
영화인연대 공동대표 이동하 대표는 포럼의 마지막 발언에서, 영화인연대를 처음 시작했을 당시 “이 많은 일을 우리가 어떻게 해낼까, 영화 찍는 것만으로도 벅찬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선배들이 쌓아온 토대 위에 새로운 아이디어가 더해지며 조금씩 해답을 찾아갈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이어 “오늘 하루만 해도 영화계의 오래된 화두부터 새로운 논의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고, 이런 간담회와 포럼은 단순한 연례행사가 아니라 축적의 장이 되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지금까지의 논의들을 바탕으로 이제는 방향을 정하고 주어진 과제를 하나씩 처리하는 방식이 아니라, 각자의 위치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실천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하며, “이제는 하나하나 마침표를 찍어야 할 때”라고 말하며 포럼을 마무리했다.
이번 포럼은 산업 구조에 대한 진단과 정책 제안으로 가득한 자리였다. 과거를 짚어보며 앞날을 다지는 초석이 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기생충’을 보고 영화를 꿈꿨을 이들, 김민하 감독의 동료나 관객을 플로어에서 마주치긴 어려웠다. 영화제는 연일 매진을 기록했지만, 포럼은 영화가 상영되는 극장에서 몇 정거장 떨어진 곳에서 열렸고, 셔틀버스조차 마련되지 않았다.
이러한 거리감은 단순히 물리적 공간의 문제만은 아니다. 지금 논의해야 할 것은 “과거로 돌아갈 수 있을까?”가 아니라, “앞으로 어떤 새로운 시대를 함께 만들어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미래 세대가 오지 않는다면, 우리가 먼저 그들에게 다가가야 한다. 향후 포럼은 더 열린 방식으로 기획되기를 바란다. 극장 로비, 시청 앞 광장, 혹은 야외 상영 공간처럼 영화제에 온 모든 영화인들이 우연히라도 들를 수 있는 열린 포럼을 상상해보자. 부산국제영화제라면 레드카펫이 깔린 야외극장이 될 것이다. 모든 출구를 활짝 열고 누구나 와서 참여할 수 있도록. 한국 영화 생태계를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고민하고 있는지, 그 안에 바로 당신도 있다는 것을 알리는 자리가 될 것이다. 이런 상상을 하며, 더 많은 영화인들이 주목할 수 있는 논의의 장을 기대해본다. 누구나 와서 자유롭게 앉아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포럼. 환경이 변하듯 산업도 변화해야 하며, 이런 논의의 장 역시 예외일 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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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신한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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