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한 사회와 넘쳐나는 미디어. 현시대의 단면으로 칭함에 부족함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대의 미디어는 어떻게 존재해야 할까. 독립 미디어 세미나에서는 ‘기후위기와 콘텐츠 제작지원’을 두 번째 주제로 삼아, 기후위기 시대의 콘텐츠 제작과 사회 변화를 향한 해외 사례를 통해 국내의 제도 및 환경 개선을 촉구하려 한다.
영국의 다큐멘터리 비영리 단체 '독 소사이어티(Doc Society)'는 기후정의(Climate Justice)와 생물 다양성의 미래 발전을 위한 변혁적 스토리텔링 지원 프로그램인 '클라이밋 스토리 유닛(Climate Story Unit)'을 운영한다. 이는 '클라이밋 스토리 랩(Climate Story Labs), '클라이밋 스토리 펀드(Climate Story Fund)', '클라이밋 스토리 키친(Climate Story Kitchen)'으로 구성되어, 아티스트와 임팩트 프로듀서, 사회 운동가 등이 모여 실천을 이어가고 있다. 본 글에서는 ‘클라이밋 스토리 랩(Climate Story Labs, 이하 CSL)'의 지원 프로젝트 사례를 살펴보고, 이를 토대로 국내의 기후위기 콘텐츠와 제작지원에 대한 질문을 환기해 보고자 한다.
“CSL은 가장 설득력 있는 스토리텔링을 촉진하고, 모두를 위한 풍요롭고 공정한 기후미래를 만드는 방법에 대한 대화에 새로운 목소리를 불어넣습니다. CSL은 전 세계의 문화 단체가 주도하여 해당 지역의 기후 우선순위를 반영합니다.”(*주1)
CSL은 독 소사이어티와 협력하는 각 지역의 파트너 단체들이 개최하는 방식으로, 지역 네트워크를 소집하여 새로운 서사를 정의하고 고양하는 지역 조직 모임 시리즈를 표방한다. 이들은 지역적 맥락에 맞게 모임을 설계하고 조정하며, 워크숍, 프레젠테이션, 네트워킹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기후 스토리텔링과 임팩트 미디어에 대한 실천적 솔루션을 모색한다. 지원 프로젝트는 논픽션 필름, 트랜스 미디어, 다큐멘터리 연극, 보드게임, VR 등 장르의 경계를 초월하며, 이들의 핵심 질문은 아래와 같다.
1) 클라이밋 스토리 랩 – 아마조니아 (CSL Amazonia 2021)
CSL 아마조니아는 시청각 플랫폼 ‘마타피(Matapi)’, 아티스트 콜렉티브 ‘하케오 컬쳐럴(Hackeo Cultural)’이 호스트로 참가, “영향력 있는 기후 커뮤니케이션”을 주요 의제로 프로그램을 개최하였다. 시민들에게 영감을 전하고 지역사회를 움직이는 힘을 강조하며 논픽션 필름, 트랜스 미디어, 팟캐스트 등 다양한 형식의 스토리텔링 프로젝트 총 6편이 지원 프로젝트로 소개되었다.
# 라디오 사비아 Radio Savia
<라디오 사비아>는 라틴아메리카의 토지를 지키고 돌보며 치유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팟캐스트이다. 콘텐츠는 토착의 목소리와 치유 의식을 들려주고, 기후정의와 자연-인간의 호혜적 관계 강화를 위한 경험을 추구한다. 페미니즘, 탈식민주의, 재생주의, 반인종주의 관점에서 스토리텔링의 변혁적 힘을 만들어내고 사회운동 간 연대를 형성하는 활동 전개를 목표로 한다. 2020년부터 시작된 시리즈는 웹사이트, 유튜브 채널을 포함하여 스포티파이, 디저, 팟체이서 등의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제공되고 있다. 각 에피소드는 라틴아메리카 전역의 원주민 커뮤니티에서 인간과 지구 사이의 유대감에 대한 현지 의미를 탐구하며, 청취자들은 주류 미디어에서 접할 수 없는 나와 주변의 이야기를 들으며 공감과 연대를 형성해 간다.
국내에서는 일반적으로 영상 미디어, 라디오-팟캐스트, 게임 등 구분에 따라 제작지원 콘텐츠를 다루는 것에 비해, 장르의 경계를 허물고 의제별 영향력 있는 전달 방식에 집중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아울러, ‘기후정의’ 콘텐츠의 범주를 정함에 있어 해당 지역에 뿌리내린 심층적 문제의식을 본류로 삼는 점이 돋보이며, 이는 CSL의 핵심 질문인 ‘지역’에서의 전환과 교차한다.
2) 클라이밋 스토리 랩 – 아프리카 (CSL Africa 2022)
CSL 아프리카는 “아프리카를 위한 기후정의 내러티브는 무엇인가”를 메인 테마로, 아프리카 영화 제작자에 의해 만들어진 동아프리카 다큐멘터리 영화 기금 '다큐박스(Docubox)'가 호스트로 참가하였다. 지역사회와 협력하여 아프리카 대륙에서 제작 중인 스토리텔링 프로젝트를 주력으로, 다큐멘터리와 보드게임 등 총 4편의 지원 프로젝트를 소개하였다.
# 새로운 보트 The New Boats
<새로운 보트>는 서아프리카 해역에서의 원양어선 불법 어업이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탐사 다큐멘터리로, 위기에 처한 서아프리카 어업의 환경 재앙을 막기 위한 현지 어부와 시에라리온 어부 연합 구성원의 분투를 기록한다. 불법 어업은 환경을 파괴하고 지역사회의 생존권을 침해하는 전 지구적 자원 훼손 행위로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고 있다. 지역사회 참여와 임팩트 캠페인을 기치로 내건 협력 단위가 공동 제작한 이 작품은, 지역의 해양과 어업의 지속 가능한 미래에 대한 논의 촉발을 목표로 한다. 본 작품은 임팩트 캠페인과 커뮤니티 상영을 적극적으로 지속 전개하며, 해당 목표에 대해 아래와 같이 정하고 있다.
작품의 의제와 방향에 따른 명확한 임팩트 목표를 설정하여 실행하고, 커뮤니티와 공유하며 지속적으로 행동을 촉구하는 사례로 주목할 수 있다. 영화제, 공동체 상영 등을 통해 관객과 만나는 것을 포함하여, 사회문제에 대한 환기를 넘어 실천적 변화에 적극 가담하는 의지가 돋보인다.
3) 클라이밋 스토리 랩 – 노르딕 (CSL Nordic 2023/2024)
CSL 노르딕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스토리텔러와 영화 산업의 역량 강화”를 기치로, 2023/2024 첫 번째 에디션을 통해 북유럽 지역의 기후정의 내러티브를 다루는 총 9편의 작품을 지원하였다. 독립영화 및 임팩트 미디어 제작사인 ‘디퍼 미디어(Differ Media)’, 예술‧과학‧신기술을 아우르는 미디어 제작사 ‘흄 스튜디오 인터랙티브(HUM Studio Interactive)’, 그리고 ‘독 소사이어티(Doc Society)’와 ‘코펜하겐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CPH:DOX)’가 협력 개최하였다.
# 엘사 - 새로운 반응형 지구 Elsa - a new reactive Earth
<엘사 – 새로운 반응형 지구>는 새로운 이야기를 이끌어내고 미래의 현실을 만들어내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사변적 ‘스토리 월드’를 선보인다. 전시 형태로 ‘스토리 월드’ 소개 영상, 온라인 기후 계산기, ‘스토리 월드’를 지도화한 트랜스 미디어 설치 작품을 선보이며, 기후정의 세계를 향한 새로운 관점을 탐구한다. 이 프로젝트는 제작자인 리나 페르손의 연구 '기후정의 세계(Climate-Just Worldings)'의 연속으로, 기후정의와 예술 실천을 위한 행동과 전환을 목표로 창작 및 스토리텔링의 조건을 실험한다. 텍스트, 이미지, 사운드로 구성된 가상 세계인 ‘스토리 월드’를 구축하는 한편, 제작 현장에서의 기후정의를 위한 온라인 기후 계산기 ‘엘사(Elsa)’(*주3)를 통해 실천을 담아내는 제작 환경을 제안한다.
이는 CSL 호스트의 성격에 기반하여 새로운 서사를 정의하는 독창적 상상력이 십분 발휘된 프로젝트라 볼 수 있으며, 다양한 협력 파트너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특히, 온라인 기후 계산기는 창작자가 손쉽게 현장을 점검해 볼 수 있는 도구로써, 콘텐츠 제작과 기후정의에 대한 논의가 아직 활발하지 않은 국내 제작 환경에서도 참고할 만하다. CSL 노르딕 에디션의 경우, CPH:DOX가 호스트로 참가한 모델 또한 국내에서도 충분히 상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영화제’라는 보다 익숙한 장을 통해 문턱을 낮추고, 영화와 기후정의 간 상관관계를 환기시키며 실질적 담론을 형성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위 제시 사례는 CSL 지원 프로젝트의 극히 일부에 해당하나, 이들을 비롯한 CSL 지원 프로젝트에서는 몇 가지 공통의 질문이 도출된다. 1) 이 지역에서 살아가는 존재로서의 원류를 인식하고 지속 가능한 형태로 전환하고자 하는 스토리텔링, 2) 실천을 기반으로 하는 적극적 행동하는 존재로서의 미디어, 3) 영향력 있는 전달 방식 실현을 위한 창작자-협력자의 관계. 이는 곧 앞서 언급한 CSL의 핵심 질문에 근거하며, 이를 통해 우리는 기후위기 시대의 콘텐츠와 사회 변화를 향한 지원/협력에 대하여 국내의 제작 환경에 던지는 질문 또한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전 세계에서 프로그램이 이어지고 있지만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아직 선례가 없다는 아쉬움도 담아, 머지 않게 국내에서 관련 인식이 확산되고 보다 실천적 방안을 모색하는 길이 열리기를 바라 본다.□
3) 스웨덴 영화 산업을 위한 기후 계산기. 영화 제작 과정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의 양을 계산할 수 있다. 영화 제작 과정에서 더 나은 결정을 돕기 위한 툴로써 오픈 액세스로 제공된다. https://www.elsa.film/
[참고자료]
Climate story labs 웹사이트
https://climatestoryunit.org/labs/
CSL Amazonia 2021 페이지, 보고서
https://amazonia.climatestorylabs.org/
https://docsociety.org/static/core/pdf/csu/Report_CSL-Amazonia_EN.pdf
CSL Africa 2022 페이지
https://climatestorylab.africa/
CSL Nordic 2023/2024 페이지
https://www.climatestorylabnordic.org/
<Radio Savia> 웹사이트
<The New Boats> - The New Boats 페이지, Global Giving 페이지
https://www.weowntv.org/projects-archive/the-new-boats
https://www.globalgiving.org/projects/the-new-boats/reports/#menu
<Elsa - a new reactive Earth>, Elsa - Lina Persson 웹사이트, Research Catalogue 페이지
https://www.researchcatalogue.net/profile/show-person?person=251089
글쓴이. 최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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