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금지법은 모든 사람이 각자의 마음속에 품은 존엄을 지키는 안전망 같은 것이며, 그것이 사회에서 구조적으로 지켜질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법 제정 운동일 것이다. 그 그림을 그려나가는 곳에 ‘우리’가 함께 했다. 그리고 그것은 이 활동에 참여한 각자의 마음 속에도 평등의 무엇인가를 심었다는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ACT! 128호 이슈와 현장 2022.01.14.]
현장의 ‘시선’만들기
: 2021차별금지법연내제정쟁취 농성 기록단 '미디어팀'
넝쿨 (2021차별금지법연내제정쟁취농성 미디어팀)
2021년은 누군가에게는 코로나19로 답답했던 한 해로, 누군가에게는 여행도, 일도 없는 조용한 한 해로 기억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 어느 해보다 뜨거웠고, 숨이 차도록 바빴고,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슬픔 속에서도 무언가를 손에 꼭 쥐고 달려나간 한 해였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달렸던 사람들이 그러했고, 길 위에서 마주쳐 이 마라톤에 동참한 사람들이 그러했고, 차별금지법 제정을 외치며 연말을 함께 보낸 사람들이 그러했다. 그리고 2021차별금지법연내제정쟁취농성 미디어 기록단(이하 ‘기록단’)이라는 긴 이름의 소속을 느슨하게 갖게 된 미디어 활동가들, 다큐멘터리 감독들 또한 겨울에 등장한 새로운 얼굴들이기도 했다. 현장에서 역동하는 ‘우리’를 이야기하기 위해 2021년 농성장을 열기까지 길고 긴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이 어떤 지도 위에 있었는지를 먼저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2007년 법무부 예고로부터 본격화된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의 긴 역사를 다 말하기는 어렵지만, 차별금지법제정 운동이 우리 사회의 차별과 평등의 감각을 새로 확인하고 정립하는 과정이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어떤 개인이 ‘그럴만하기 때문에’ 모욕과 수모를 당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구조적으로 차별이 발생하는 것이며, 사회는 차별의 결과로 따라오는 불평등 뿐만 아니라 차별을 만들어내는 구조 자체를 문제 삼아야 한다는 것이 법 제정 운동이 꾸준히 말해 온 것이었다. 그러나 타인에 대한 낯선 감정을 ‘혐오’로 규정하며 소수자 집단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해 온 사람들은 차별금지법이 유예되는 동안 몸집을 불려 세력이라고 부를만한 것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정치권이 만든 ‘유예’가 혐오를 키우고 정당화하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특정한 사유를 삭제한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는 것이나,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지 않는 상태는 모두 일정한 메시지를 던진다. 누군가를 그의 정체성 때문에, 그가 바꿀 수 없는 태생적 조건 때문에, 편견에 기댄 생각 때문에 ‘차별해도 되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지속시킨다. 그래서 ‘혐오선동세력’이라고 불리울만한 세력은 차별금지법 제정을 막아서는 것 뿐만 아니라 각 지자체에서 이미 설립한 인권조례를 무력화 하기도 하고, 준비하던 학생인권조례를 무산시킬 수 있을 정도로 무력을 행사하는 집단이 되었다. 명백하게 ‘차별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세력’으로 성장시킨 것이다. 그리고 국회는 자신이 키운 그림자를 이유로 들먹이며 차별금지법 제정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별과 평등에 대한 시민들의 감각은 변화했다. 특히나 코로나19를 겪으며 단 한 사람의 안전이 모두의 안전과 연결되어 있음을, 그리고 그 안전은 결코 불평등과 떨어져 있지 않음을 감각하고 있다. 2020년 국가인권위가 조사한 국민인식조사에서는 88.5%가 차별금지를 법제화 하는데 찬성한다고 답했다.(*주1) 쟁점으로 비춰졌던 성소수자 또한 존중받고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답도 73.6%로 높게 나왔다. 차별금지법을 발의조차 하지 못한 20대 국회 끝자락에 실시한 여론조사였다. 2021년에 들어서고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그야말로 달리기 시작했다. 3월 시국선언과 만인선언을 시작으로 여름에는 10만 국민동의청원을 달성했고, 온라인 농성에서 모인 마음은 부산에서부터 서울로 걸어오는 평등행진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 걸음들이 드디어 11월 국회 앞으로 모이며 2021년 연내 제정 쟁취를 목표로 하는 농성장이 2021년 투쟁의 종착지가 되었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염원하는 ‘모두의 것이자 오롯이 자신의 것’이기도 한 농성장이 만들어졌고, 미디어 운동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함께 고민해나갔다. 2021년 11월 8일부터 농성에 돌입한다는 계획 앞에서 평등과 반차별에 관심 있는 다큐멘터리 감독, 미디어 활동가들에게 농성장 기록 활동을 제안했다. 기록단의 활동을 조금 더 쫀쫀하게 운영하기 위해 미디어팀은 별도로 매주 주간 회의를 통해 활동 계획을 세우고 진행해나갔다. 농성장의 모든 일정을 기록할 수 없다 하더라도, 차별적인 사회에 균열을 만들어내는 순간을 기록하고, 평등을 주제로 연대하는 과정이 되기를 소망했다. 감사하게도 28명의 미디어활동가, 다큐멘터리 감독들이 이 기록 활동에 연대하기로 결정해주셨다. 또 ‘현장을 지키는 카메라에게 힘을!’과 ‘미디액트’에서는 현물과 제작비지원을 아낌없이 내주셨다. 그렇게 인권운동과 미디어운동이 쌓아올린 성과 위에 미디어 기록단의 출발이 가능했다.
두 달여간의 농성기간 동안 각자의 시간과 마음을 나눠 기록단이 쌓아온 데이터는 2테라바이트가 되어간다. 또한 미디어팀에서 주요하게 기획했던 기록단의 활동 중 하나인 ‘00의 시선’이라는 프로그램은 아주 성공적이었다. 매주 금요일 이뤄지는 주간 총화 집회에서 기록단 활동가의 시선으로 바라본 차별금지법과 농성장의 모습을 영상으로 이야기할 수 있도록 기획된 프로그램이었다. 차별금지법이라는 복잡한 법률, 15년이라는 오래된 법 제정 투쟁을 속속들이 알지 못하더라도 우리는 누구나 각자 차별받는다는 서러움, 평등한 관계라는 감각을 느끼고 투쟁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으로 차별금지법 제정 투쟁에 함께한 신진 활동가들, 법을 잘 알지 못해도 차별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신진 다큐멘터리 감독들의 시선을 공유하고자 했다. 금요일마다 농성장에서 환호를 받으며 열었던 작은 상영회는 영상미디어를 다루며 궁극적으로 만나게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단면 중 하나였다. 차별금지법은 모든 사람이 각자의 마음속에 품은 존엄을 지키는 안전망 같은 것이며, 그것이 사회에서 구조적으로 지켜질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법 제정 운동일 것이다. 그 그림을 그려나가는 곳에 ‘우리’가 함께 했다. 그리고 그것은 이 활동에 참여한 각자의 마음 속에도 평등의 무엇인가를 심었다는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2021 차별금지법연내제정쟁취농성단은 2022년 상반기에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 만들기 유세단’으로 전환하여 서울수도권을 중심으로 유세를 하러 다닌다. 이동하는 농성장인 셈이다. 활발하게 생동하는 차별금지법제정운동과 미디어 기록단은 어떻게 만날지 미디어팀은 즐거운 고민을 하고 있다. 현장의 시선 만들기는 앞으로도 계속 되어야 하지 않을까. □
* 주
1) <2020년 차별에 대한 국민인식 조사 보고서>, 국가인권위원회, 2020
❚ ‘00의 시선’ 프로그램
- [수빈의 시선] 촬영 연대
https://youtu.be/PGZ8IIFaO6U
- [아름의 시선] 정신을 차려보니 농성단 미디어팀에 합류하게 되었다
https://youtu.be/p0Cj7WEwcWI
- [고운의 시선] 밤이든 낮이든 아침이든, 끝까지 사랑이 이긴다.
https://youtu.be/Nqx5pPK8N-g
- [민서의 시선] 2021 차별금지법 연내 제정은 시민들의 힘으로 쟁취할 것이다
https://youtu.be/sUHNzkxNIL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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